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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월(星山月)은 성주의 기생이다.
장안으로 뽑혀 들어와 제일가는 명기가 되었다.
날씬하며 피부가 뽀얗고 수려해 귀인들이 노니는 화연을 독차지했으니,
장안의 젊은 협객들이 멀리서나마 바라보고자 해도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하루는 진신(缙紳) 명류들과 더불어 한강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취한 틈을 타 주연을 피해 돌아오던
도중에 큰비를 만났다.
소매가 반쯤 젖은 채 걸어서 숭례문에 이르니 문이 잠겨 있었다.
돌아보니 연당의 서쪽 언덕가에 불이
켜진 작은 창이 있었는데,
창 안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에 구멍을 내고 엿보니 젊은 서생이 있었다.
성산월이 조그맣게 기침소리를 내며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서생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성산월은 나지막한 소리로 하소연하였다.
저는 성 안에 사는 기생이옵니다.
주연을 피해 오다 비를 만났는데 기숙할 곳이 없습니다.
책상 아래 한 귀퉁이를 빌려 주어 밤을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서생이 창문을 열고 보니 화장을
한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데
옷차림과 용모가 모두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크게 놀라 생각하기를 이처럼 빼어난 미인이 어찌 빈한한 서생에게
스스로 몸을 던지리오?
필시 요괴일 것이다'하고는 즉시 문을 굳게 닫고 손가락을 튕겨 주문을 외우며 말했다.
어떤 요망한 귀신이 감히 와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냐?
성산월이 말했다.
저는 사람이지 귀신이 아닙니다.
나이 젊은 선비가 풍류가 적어 그렇소?
어찌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 이리도 야박하시오.
서생은 더욱 두려워져 스스로 안정시킬
수 없는지라
연이어 이십팔수 외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성산월은 밤새도록 문지방에 앉아 꾸벅 꾸벅 졸면서 비를 피하였다.
날이 밝자 성산월은 창문을 밀치고
서생을 꾸짖었다.
불쌍하구려 이 서생아!
당신은 장안의 명기 성산월의 이름도
못 들어 보았소?
당신같이 궁색한 선비가 청천명월에
나를 맞이하려 한들
내가 당신을 돌아보기나 하겠소?
내가 불행히 비를 만나 재워 달라고 애걸하였는데도
도리어 나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지지리 복도 없는 인간이오.
나를 자세히 보시오.
내가 과연 귀신이오?
서생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져 성산월을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이 서생은 곧 문과에 올라 첨정으로 있던 김예종이다.
장흥고(長興庫)의 한 종은 재산이 거만이었는데
목에 큰 혹이 마치 호리병박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가 재물을 미끼로 성산월을 낚았는데 이때부터 성산월의 진가는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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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수---
고대 인도와 중국 등에서 해와 달 및 행성들의 소재를 밝히기 위해 황도를 중심으로 나눈 천구의 스믈여덟 개의 별자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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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고(長興庫)---
조선 시대 때 돗자리. 종이 등 관리 및 궐내의 여러 관청에서 쓰는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맡은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