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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볼 때 아마 농어가 지구 상에서 제일 맛 좋은 물고기일 것 같다.
고향의 농어회가 먹고 싶다며 높은 벼슬마저 팽개치고 낙향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갖 진수성찬에 입맛이 길들여진 황제마저 농어를 먹고는 맛있다며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고 하니 맛 좋기로 농어만 한 생선이 없을 듯하다.
4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장한이 가을바람이 솔솔 부는 것을 보고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난다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훌쩍 돌아가버렸다.
낙향하기 전 친구에게는 “세상이 어지러워 재난은 끊이지 않는데 벼슬에서 물러나기는 쉽지 않다”며 “인생살이 마음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찌 그까짓 벼슬에 연연해 살아야겠느냐”고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그러다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송강에서 잡히는 농어회를 먹어야겠다고 결단을 내린 후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순로지사’ 혹은 ‘순갱노회’라는 유명한 고사로 《진서》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순(蓴)은 순채라는 채소고 노(鱸)는 농어인데 고향에서 먹던 순챗국과 농어회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널리 인용되는 고사이지만 사실 그 이상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지금의 중국 쑤저우 부근인 송강의 농어회를 먹겠다고 장한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정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폭군이었던 임금이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재상 자리에 있던 장한이 눈앞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고향으로 낙향한 덕분에 재난을 면했으니, 고향의 농어회가 장한의 목숨을 구해준 셈이다.
송강에서 잡히는 농어는 황하의 잉어, 양자강의 시어, 흑룡강의 연어와 함께 옛날부터 중국의 4대 명물 어류로 꼽혔다. 보통 농어는 아가미가 양 옆으로 두 개씩 있지만 송강의 농어는 안쪽에 두 개가 더 있어 아가미가 모두 네 개라고 한다. 송강의 농어를 회로 뜨면 육질이 눈처럼 하얗고 입에 넣으면 오래도록 입 안에 향기가 돈다고 하는데 실제인지 중국인 특유의 과장인지 알 수가 없다.
중국 역사에서는 이렇게 생선회 가운데 농어회를 으뜸으로 여기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는 금제옥회(金虀玉膾)다. 서기 6세기 말엽, 수나라 양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수도인 장안을 떠나 남쪽으로 순시 여행을 하여 오군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지금의 쑤저우 부근이다.
황제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현지 관리가 송강에서 농어를 잡아 회를 뜨고 곁들여 먹을 만한 야채를 만들어 황제에게 바쳤다. 맛을 본 수양제는 입을 다물지 못하며 “이것이 바로 동남 지방에서 유명하다는 금제옥회로구나”라며 손에서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금제옥회라는 요리는 금처럼 빛나는 양념장 금제와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고 해서 옥회라고 부른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사실 금제옥회라는 농어회는 수양제가 맛보기 이전부터 있었던 요리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금제라는 양념장을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생선회와 함께 먹는 양념장인 금제는 여덟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에서 팔화제라고도 하는데 마늘과 생강, 소금, 좁쌀, 멥쌀, 소금에 절인 백매(白梅)를 귤껍질과 함께 장에 버무려 만든다. 귤껍질이 황금색으로 보여 황금빛 양념장이라는 뜻의 금제(金虀)라는 이름이 생겼다. 농어회와 겨자장 그리고 금제를 각각 다른 접시에 올려 내놓으면 각자의 기호에 맞춰 회와 양념장을 먹는다고 한다.
금제옥회는 나중에 여러 형태로 요리 방법이 변화하는데 가늘게 썬 생선회와 감귤을 껍질째 짓이겨 함께 버무리기도 하고 횟감 역시 농어가 없으면 쏘가리로 대신하기도 했다.
이렇게 금제옥회라는 요리는 진수성찬의 대명사로 쓰였으니 혹시 농어회나 쏘가리회를 맛볼 기회가 있으면 수양제처럼 황제가 된 기분으로 입맛을 다셔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