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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태(破太) 외 9수
최 병 영
내 눈물은 죽어서 비리다
거친 손금들이 손풍금처럼 스쳐가고
지느러미에 해독되지 않은 지문이 박힌 채
만장도 없이 내동댕이쳐지고 짓밟혔다
덕장 서까래에 목매달 여지도 없이
까마귀들이 너덜너덜한 생명을 쪼아댔다
참으로 고달픈 숨이었다
이제, 허름한 한 생의 모퉁이에서
어느 이 빠진 무쇠칼날이
바다처럼 시퍼런 눈매로
나에게서 생을 가르고 비린내를 꺼낼 것이다
고향친구 녀석들
황태 되었다고 휘파람 불며
백화점으로, 해장 집으로 나들이 나가는데
황새기 젖처럼 짰던 날들
넝마 한 조각으로 비닐봉지에 담긴 채
단두대 오른 죄수처럼
황급히 유서 한 장 휘갈긴다
한밤, 양재기는 들끓고
아직도 내 눈물은 죽어서 비리다.
깡태 ․ 2
흠씬 두들겨 맞아야
비로소 한 줄기 빛이 드는 생이 있다
제사상에 오르기 위해
초연히 겪어야하는
눈물겨운 고통의 통과의례
황금 빛 우아한 황태되려
설악덕장 서까래에 목매달고
살점 저미는 고행 겪으며
치열히 꿈꾸고 염원했던 소망의 빛
그것이 오로지 유일한 존재이유였다
그 해, 산마루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하얗게 굳어 딱딱해진
살갗을 파고드는 것은
고드름 같이 희번덕거리는 절망의 그림자였다
오늘 밤도
어느 집에 제사상 차려지고
젓가락 한 번 쉬었다 가지 않는 천대 속에
비몽사몽으로 어설픈 의식 치루며
어동육서 지정석에 앉아
겸연쩍게 낯선 영혼을 맞는다.
먹태
한겨울 동해바람은
주검의 시신조차 운명을 결정한다
하늘하늘 눈 날리는 산자락에서
누군 너무 추워 슬픈 생을 살고
누군 너무 따스해 설운 삶을 산다
바다에서 총총히 달려와
등성이 오르느라 숨 가빴다
새 명찰 달아야 하는 두 번째 인생
반상의 대열에 오르기 위해
눈물겹도록 얼얼한 한설(寒雪) 고대했지만
내가 살아온 생애처럼
겨울은 온통 미지근한 바람이었다
유원(悠遠)한 역사와 전통에 기반하여
백의겨레로 살아왔고
단일민족으로 살아간다는 나라
거기서는 무조건 까무잡잡한 게 죄였다
우량한 유전인자는 무참히 짓밟히고
언제나 저울눈이 갸우뚱한 고갯짓으로 가리키는 건
미끈하게 단장한 겉포장지였다
까무잡잡하다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유일한 내 죄였던 게다.
봄바람 ․ 1
봄바람 살랑대는
단옷날
춘향이가 광한루에서 그네 뛴다
꽃향 들큼한 화원에
갑사댕기 하늘거리고
다홍치마 펄럭펄럭 바람에 휘날린다
달빛 부서지는 하얀 밤
변 사또 수청 거절하다
귀신형용 쑥대머리 된다한들
알콩달콩
오늘밤은 지새도록 방구석 돌며
이몽룡이 사랑가 부르며 어부바하잔다.
봄바람 ․ 2
길섶에서 아름아름 꽃향 안겨드는
고이 굽어진 토담 길
똬리 끈 잘근 입에 물고
향단이가 물동이 이고 간다
야단났다
개미허리 수양버들처럼 실룩대고
능금 두 쪽 엉덩이 파도처럼 요동친다
지게지고 가만가만 뒤따르던
방자 녀석
애꿎은 지겟다리만 두드리다
힐끔힐끔
청보리 밭 엿본다
보리대궁 한 아름 드러누운 밭에서
포로롱
종달새 한 쌍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봄바람 ․ 3
꽃향기 점점이 문풍지에 젖어드는 밤
달빛 묻어나는 대청에서
천하절색 황진이가 가야금을 탄다
가락 소쿠라져 한바탕 시화로 돋아나고
시화 넘실거려 한바탕 음률로 피어나고
종래, 그것들이 대청 한가득 송이송이 꽃무리진다
주안상 가만히 한켠으로 밀치고
서경덕이 붓을 들어
명주 속치마 활짝 펼치고
단숨에 연시(戀詩) 써 내린다
달콤하고 그윽하여
입자 조밀해진 밤은
거친 숨소리에도 묽어지지 않는다.
사인암
어느 산사에선가
해맑은 범종소리 흘러들어
천년을 깨우고
나는 탈피하여 생의 비늘을 벗긴다
드높은 쪽빛하늘엔
하얀 양털구름 한가로이 떠돌고
강은 속살을 뒤집어 물보라를 일으킨다
푸르게 젖은 바람 한 점
가만히 숲에 들고
가벼이 몸을 흔들어 반기는 잎새들
내 생도 저처럼 푸르렀을까
내 삶도 저처럼 생기찼을까
절벽바위는 생의 끝단에서
바람에 닳고 닳아
살을 버리고 뼈로 서있고
지속적으로 철썩이며 골을 파고드는
강물의 비정
얼마나 아리고 슬펐을까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
내 할배 닳은 관절처럼
내 아비 굽은 등골처럼.
농다리
농다리를 건넌다
거센 물살이 가랑이에서 고환을 훑어댄다
무작위로 쌓은 듯한 돌이
견고한 얽힘으로 최상의 돌다리를 이루는 진천
자근자근
암반만한 돌에서 선조의 땀과 지혜가 밟힌다
농다리는 어울림이다
자연에 대한 맞섬이나 도전이 아닌
존중이고 긍정이고 융합이다
자연을 자연의 자리에 놓아두고
생활에 응용하는 절정의 과학이다
농다리를 건넌다
따스한 돌 체온에 고환이 축 늘어진다.
일등 공화국
애벌레들이 꽃나무에 오른다
우듬지에 올라 나비로 부화하기 위해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곰실거린다
행여 늦으면 도태될까 두려워
맨 먼저 오르려고 사력을 다하는
본능적인 몸짓이다
항상 일등만이 찬란하고
선두만이 존재가치가 인정되는 세상,
오로지 금메달만 거룩하고
은메달과 동메달은 죄송스러운 나라
꼴찌가 설 땅이 없는 그곳에 부화한 애벌레들
인간을 닮은 그들의 몸서리쳐지는 경쟁이다
노랑나비가 우듬지에 앉아 꿀을 채집한다
그곳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애벌레들은 깨닫는다
꼴찌까지도 모두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음을
나비가 되어 자유로이 훨훨 날아갈 수 있음을
애벌레가 선탈(蟬脫)하는 날,
줄곧 일등을 하다 이등으로 내려앉은 중학생이
아파트 옥상에 올랐다
어둠의 밀도가 농액(濃液)처럼 엉켜 붙은 밤이었다.
따로 세상이야기
전원을 켜면
이스트처럼 왁자하게 부풀어 오르는
온갖 수다들
남편이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연애가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낯간지럽고 볼썽사나운 이야기들
도대체 저들의
밴댕이 속 같이 환히 비치는 수다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저들의 경박하게 까무러지는 웃음이
우리 삶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누군가는
세상이 너무 삭막해 그런다지만,
떠들수록 가련해 보이고
웃을수록 초라해 보이는
화면 속 여인들의 수다.
안동포
최 병 영
안동포는 지독한 슬픔의 잔해이다. 황금빛 실타래에 배어 있는 진한 슬픔이 격정적이어서 다스리기 어렵다. 안동포에서는 항상 구슬픈 상여소리가 들린다.
안동포는 올마다 결결이 숨이 막힐 지경으로 고와서 슬프다. 안동포는 화관모 쓴 여인의 다소곳한 매무새에서 설핏 드러나는 하얀 속살처럼 너무도 눈부셔서 슬프다. 안동포는 힘겨운 일상을 숙명으로 보듬고 살아가는 아낙의 찬연한 결정이라서 슬프다. 안동포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닳아진 베틀에 켜켜이 쌓인 아낙의 짙은 시름이라서 슬프다. 안동포는 실올을 넘나드는 살가운 북소리에 얹히는 아낙의 구음이 너무도 곡진하기에 슬프다. 안동포는 베틀에 몸을 묶고 숱한 밤 지새우며 신 새벽 문풍지에 번지는 동녘을 맞이하는 아낙의 긴 숨결이 스몄기에 슬프다. 안동포는 베를 짜는 여인조차도 저승에 갈 때라야 비로소 입고 가는 망자(亡者)의 마지막 옷이라서 더욱 슬프다.
베틀은 여인의 버거운 일상이 한으로 농축된 구조물이다. 안동아낙에게 베틀놀음은 숙명적으로 보듬어야 했던 삶의 행로였다. 안동포는 수많은 공정마다 여인네의 삶이 고뇌로 스쳐간 자국이 선연하다. 올마다에 머문 여인네의 섬세하고 꼼꼼한 자국이 숙연케 한다. 여인들은 베틀에 앉아 피륙을 짜며 일의 고단함과 생활의 근심을 덜어내기 위해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수많은 날에 걸쳐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던 음계가 분명치 않은 노래이다. 그 구음들이 구슬픈 장단에 배어들어 음영(吟詠) 민요가 되었다. 베틀가는 부녀자의 애환이 서린 노동요(勞動謠)이고 고된 삶이 응축된 애수어린 노랫가락이다.
베틀을 놓세 베틀을 놓세 옥난간에다 베틀을 놓세.
에헤요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지누나.
양덕 맹산 중세포요 길주 명천 세북포로다.
반공중에 걸린 저 달은 바디 장단에 다 넘어간다.
오늘 날도 하 스산하니 베틀이나 놓아 볼까.
초산 벽동 칠승포요 희천 강계 육승포로다
춘포 조포 생당포요 경상도라 안동포로다.
젊은 비단 생팔주요 늙은 비단 노방주로다.
촌로(村老)가 삼밭에 들어선다. 새봄의 입김이 이따금씩 기웃거리는 비탈 밭엔 아직도 겨울바람의 텃세가 심하다. 촌로가 대토를 넣고 초벌갈이를 한 이랑에 불을 지핀다. 아낙은 앞에서 소처럼 보습을 끌고 남정네는 뒤에서 쟁기질을 하여 고랑을 낸다. 뒤 따르는 할멈이 삼씨를 줄뿌림하고 맨 뒤의 자식이 발로 뭉그적거려 흙을 덮는다. 그리고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며 밭고랑을 타고 넘는다.
대마의 싹이 돋아난다. 다른 일년생 식물보다 훨씬 성장속도가 빠르다. 대마가 고개를 내밀어 푸릇푸릇해지자 봄이 질펀했던 비탈 밭에 여름이 성큼 다가선다. 대마가 웃자라며 산등성이 바람을 품안에 들인다. 대마 줄기마다에 햇살이 비집어들어 성장 환경을 동력 화한다. 대마는 무작정 세월을 먹고 자란다. 농부는 삼 농사를 지을 때마다 고사도 지내고 푸닥거리도 하면서 풍년을 기원한다.
남정네들이 삼을 베어 수확을 한다. 길쌈은 아낙네들의 몫이지만 삼을 베는 일은 남정네들의 일거리이다. 남정네들이 삼밭에서 자신의 키보다 실히 한 뼘은 더 웃자란 삼을 벤다. 후끈 달아오른 지열에 숨이 가빠올 무렵 삼밭 모퉁이로 새참을 내오는 아낙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온다. 남정네들이 사발 가득 농주를 따라 단숨에 들이켠다. 산등성이 솔바람이 삼대를 스치자 삼 잎들이 일제히 동요하며 부스럭거린다. 촌로가 소매로 얼굴을 쓱 문질러 송골송골 돋은 땀을 닦는다.
삼굿을 한다. 삼을 쪄내는 공정이다. 삼 잎을 추리고 크기별로 삼대를 묶어서 삼단을 만든다. 경운기에 삼단을 싣고 삼굿 장소로 이동한다. 삼을 찌기 위해 구덩이에 큰 가마솥이 걸린다. 삼을 차곡차곡 높이 쌓고 김이 새나가지 못하도록 비닐 천으로 촘촘히 덮는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삼을 푹 쪄낸다. 불을 지핀 후 대여섯 시간이 지나면서 설익지도, 무르익지도 않은 삼이 누런 형체를 드러낸다. 삼굿이 끝난 피대를 냇가로 운반하여 물에 불린다. 물에 충분히 불려 햇빛에 말리고 다시 불렸다가 말리기를 반복한다. 껍질을 벗긴 인피를 낮에는 햇빛에 말리고 밤에는 이슬을 맞혀서 은은한 삼빛을 낸다.
아낙이 삼 째기를 한다. 하얀 삼속을 손톱으로 가늘게 쪼갠다. 아낙의 투박한 손길이 무척 조심스럽다. 실올의 굵기에 따라 삼의 품질과 세수가 결정되는 중요한 공정이기 때문이다. 아낙이 짼 삼을 삼 뚝 가지에 걸어놓고 삼 삼기를 시작한다. 삼 일 중에서 가장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중요과정이다. 삼을 삼고서 물레에 올려 실 다발을 만든다. 삼 올을 허벅지에 대고 굴리며 비벼 꼬아 실올을 이어간다. 가끔씩 삼 올에 침을 묻혀 엮어서 날실과 씨실을 만든다. 대마에서 실 가닥까지 자연으로부터 문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연적이다. 삼 농사는 언제나 많은 공력과 품이 드는 힘든 농사일이다.
아낙들이 베매기를 한다. 날실에 풀을 먹이는 일이다. 삼에다 된장과 좁쌀을 섞어 쑨 풀을 먹이고 왕겨에 불을 지펴 말린다. 아낙들이 실올을 바디에 꿰어서 풀칠을 한다. 길쌈은 마을 아녀자들의 공동 작업이면서도 개개인의 도덕성을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
아낙이 베를 짠다. 북 속의 씨실과 틀 위의 날실을 엮어 베를 짠다. 배를 닮은 북이 날렵하게 실올 사이로 미끄럼질을 하면서 실올은 점차 옷감의 형체를 갖추어간다. 씨실을 가늘고 얇은 바디로 쳐서 베를 짜고 도투마리에 감는다. 아낙은 베틀에 앉아 씨실에 시름을 달래고 날실에 소망을 담아 소박한 자신의 삶을 짜간다.
황경나무 북 바디집은 큰 애기 손목에 다 녹아난다.
이 베를 짜서 누구를 주나 바디 칠손 눈물이로다.
닭아 닭아 우지를 마라 이 베 짜기가 다 늦어 간다.
잉앗대는 삼형제인데 눌림대는 독신이로다.
영원 덕천 오승포요 회령 종성 산북표로다.
모든 시름 다 떨치고 이 밤이 지새도록 베만 짜세.
주야장천 베만 짜면 어느 시절에 시집을 가나.
흔히 삼베로 불리는 안동포는 북포, 동실날이, 감포로도 불린다. 삼베는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폭넓게 사용해온 섬유이자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옷감이기도 하다. 삼베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친환경적인 옷감이다. 이는 천년을 두어도 좀이 슬지 않고 변질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안동포는 통풍이 잘 되고 감촉이 까슬까슬하여 여름철 옷감과 더불어 양반가의 상복(喪服)으로도 두루 쓰였다. 올이 가늘고 고우며 붉은 빛과 누런 황토 빛을 내는 안동포는 이미 실만으로도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지난날에 규수들은 안동으로 시집가기를 꺼렸다. 결이 곱기로 이름난 안동포를 제대로 짜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동에서는 규수의 얼굴보다 베틀 소리를 듣고 신부를 고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안동포는 최상품으로서 궁중 진상품으로 올려졌다. 안동 여인들의 베 짜는 솜씨가 워낙 출중했던 결과이다. 안동포 짜는 여인은 다섯 필이면 살이 마비되고, 열 필이면 피가 뭉치고, 스무 필이면 남의 살이 된다고 하였다. 그만큼 완성하기가 어렵고 일거리가 힘든 노동이었던 것이다.
안동포는 화려하지도, 드러내지도 않는 수수한 자연의 산물이다. 여인네의 손길이 수없이 머물고야 완성되어지는 정성의 결정체이다. 삼베는 양반보다는 서민에게 적합한 옷감이다. 검소하고 진솔한 멋을 풍기기에 민초들의 옷감으로 적격이다. 삼베는 한국인의 소박한 정서와 성품을 잘 대변해 주는 가장 한국적인 옷감이다. 접히면 접히는 대로, 구겨지면 구겨지는 대로 자연미를 풍기며 더욱 멋스러워지는 특성이 있다. 전통 삼베에 담긴 고고한 정신은 우리 아낙들이 피땀으로 이루어낸 황금빛 가치이다.
안동포 마을은 예전에 금소 역으로서 역마들이 머문 교통의 중심지였다. 신라 때는 화랑도의 옷으로,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명성을 누려온 영화로운 고장이기도 하다. 안동 베전골목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던 안동포 최대의 거래시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안동포는 현대화된 화사하고 다양한 옷감의 등장으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뒤안길의 안동포처럼 안동 신시가지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베전골목도 흥청거리던 옛 영화를 접고 퇴락한 거리로 변모하고 말았다. 오늘날 베전골목에서는 하루 종일 음울하고 썰렁한 바람만 진창 불어대고 있다.
안동시장에 안동포를 내다파는 촌로의 얼굴이 어둡다. 대처로 나간 자식의 학비를 충당하기에는 시세가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가 헐값에 팔았다는 할멈의 질긴 원성에 시달릴 일도 결코 예사롭지 않다. 우리 전통 삼베가 향기도, 빛깔도 뒤지는 중국산에 내몰리는 오늘날의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중국 삼베가 우리의 시장과 상가(喪家)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난장을 벌이도록 방치한 정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오늘도 극심한 울화통은 스스럼없이 발걸음을 주막거리로 끌어갈 것이다.
베틀에 앉아 실올을 짜는 아낙들의 수심이 깊다. 아낙네 대부분은 이미 고령에 다다랐다. 머지않아 대를 잇지 못해 안동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실정도 베전골목을 어둡게 한다. 그러기에 오늘날 안동 아낙의 수심어린 베틀가는 더욱 황량하고 서글픈 애조를 머금는다.
❍ 필자 약력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신문학인협회 고문, 서울교원문학회 감사, 월간「문학세계」편집위원 및 교육위원, 월간「한국수필」 이사,
▪서울 선유중학교 교장 역임, 서울 국공립중학교 퇴임교장회 부회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담양답사기 공모 당선
▪우도농악무형문화재 전수자, 전)풍물교육연구소장
▪시집 : 「시나위가락, 강물로 여울지다」「자기야, 청산도 가자」「깡태의 꿈」
수필집 : 「사라지는 소리들은 아름답다」「바람결에 머무는 소리」
시․수필집 : 「길에서 만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