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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을도(太乙道) : 태을궁 용봉서신(太乙宮 龍鳳書信) 원문보기 글쓴이: 마중물(忠日)
2016년 10월 진해도회 도훈
참회와 일심
2016. 10. 9 (음 8. 9)
오늘 가을 하늘이 맑고 높은데, 진해법소에서 인덕(仁德)도인님, 충일(忠日)도인님, 충양(忠陽)도인님, 이렇게 모시고 도회(道會)도 하고 제21차 태을주 수꾸지 수련도 해서 참 좋습니다.
여러 도인님들 덕분에, 특히 진해에서 인덕도인님과 충일도인님이 명실상부한 태을도가(太乙道家)를 이루어주시고 또 성경신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서 수행도 하시고 기도도 해주셨기 때문에, 어제 다섯 분이 입도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충양도인이 울산에서 참 외롭고 힘든 속에서 바쁜 회사생활 속에서도 변치 않는 일심으로 태을도인 속육임의 길을 걸어오셔서, 어제 훌륭하신 태을도인들이 입도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태을도는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세계일가 천하일가를 건설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족과 가정에서 화기(和氣)가 무르녹고 가족 간에 서로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 넘쳐흘러야, 그것이 자연스럽게 외부로 흘러서 인연이 하나하나 맺어나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붙들어가고 또 상제님 고수부님 천명을 받들어가는 데 있어서, 일심(一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 일(一)자 마음 심(心)자. 자기를 세우는 것도 일심이고, 가족을 세우는 것도 일심이고, 또 직장을 세우는 것도 일심이고, 우리 태을도를 세우는 것도 일심이고, 상제님 고수부님이 천지인신(天地人神)을 세우는 것도 일심이고, 모든 것이 개인으로부터 천하에 이르기까지 일심으로 세워져있기 때문에, 일심의 마음을 가지면 다 두루두루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일심은 천지부모님도 알아보고 산천초목도 알아보고 또 우리가 얼굴도 성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한테 무의식이 전해 져서, 그 무의식을 일깨워서 천지부모님의 품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전(前)에 경북대학교 총장을 하셨던 박찬석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의 고향이 경북 산청입니다. 집이 가난해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는데, 부모님이 그 아들내미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대요. 부모님이 못 배운 한을 풀려고 동네에서도 제일 가난한 소작농 집에서. 그렇게 고생을 해가면서 자식 뒷바라지를 했는데,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는데 머리도 없고 공부에 별 취미도 없는 아들내미는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매일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그랬대요.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1학년 때 그 반 학생수가 68명이었는데 68등을 했대요.
그러니 본인이 봐도 부모님한테 얼마나 송구스럽고 죄송하겠어요. 최선을 다하고 난 뒤 그렇게 했으면 덜 죄송할 텐데, 자기가 봐도 일심으로 안 한 거지 공부를. 부모님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머리카락을 뽑아 짚신을 삼아도 모자랄 판인데, 유학 첫 학기를 그렇게 보냈으니 얼마나 송구하고 죄송했겠어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성적표를 고쳤대요. 68명중에 68등인 걸, 68명중에 1등으로 고친 거예요.
그 성적표를 아버지가 받아보시곤, 유학 보낸 아들내미가 방학이라 돌아왔으니 궁금해서 집으로 몰려온 동네분들한테 친척분들한테 자랑을 했다는 거예요. 우리 찬석이가 참 부모 고생하는 줄 알고 대구에 유학 가서는 반에서 1등을 했다고, 그러니까 동네분들 친척분들이 “아이고, 찬석이 아버지. 찬석이를 대구로 유학 보내가지고 1등을 했으니 한 턱 내소. 얼마나 좋은가.” 하니, 그 아버지가 “내지, 우리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해서 1등을 했는데 내가 턱을 못 내나.” 하신 거예요.
방학 때이고 지은 죄도 있고 해서, 저는 멱 감으러 나가서 한참 만에 돌아와 보니, 집안이 온통 잔치분위기더래요. 그래서 뭔가 하고 살펴보니, 우리 찬석이 1등 했다고 자기 아버지가 돼지를 잡아가지고 잔치판을 벌렸더라는 거예요. 옛날에는 소, 돼지가 집안의 큰 재산이잖아요. 그걸 팔아가지고 자식들을 유학 보내고 논 밭 사고 그랬는데,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소작농인 자기 집에서 자기집 재산 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가지고 자기 아버지가 우리 찬석이 1등 했다고 잔치판을 벌린 거예요.
자기 거짓말이 너무 커져버린 거예요. 그러니 겁도 나고, 어디 쥐구멍이라도 없나 싶고. 그래서 다시 도망 나와서는 물에 빠져 죽어버리려고 했대요. 우리 아버지를 속이고 우리 엄마를 속였으니. 그러다 집으로 다시 돌아갔대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실토를 하려고 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더래요.
할 수 없이 그렇게 방학을 끝내고 대구에 와서 생각을 했대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그렇게 고생해서 날 유학 보냈는데,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공부를 등한히 해서 그렇게 꼴찌를 했는데, 처음부터 이실직고를 하고서 ‘여차저차해서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한 것도 아니고, 성적을 조작했으니 참 얼굴을 들 낯이 없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그 실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좋아가지고 돼지 잡아 잔치를 하셨으니, 야~ 내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서 내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때부터 진짜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대요, 부모님께 죄송해서. 정말 일심으로 공부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68등이었던 사람이 1등을 했어요. 얼마나 일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으면 1등을 했겠어요. 68명중에서 68등 꼴찌가 68명중에 1등을 한 거예요. 1학기 때에는 자기가 등수를 조작해서 1등을 만들었는데, 공부를 일심으로 하니깐 진짜 1등이 된 거예요.
우리가 다 아는 얘기지만, 옛날에 예수에게 열두 제자가 있었어요. 열두 제자 중에 예수의 정통을 이었다는 베드로를 다들 잘 아실 거예요. 베드로는 갈릴레아 호수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는데, 예수가 베드로에게 “이제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 그래서 예수를 열심히 따라다녔어요. 예수가 명을 다해 저 세상으로 갈 때가 되어서 제자들을 불러 모았어요. “오늘밤 너희는 나를 모두 버릴 것이다.” 예수의 말에 베드로가 “모든 사람이 다 선생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선생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니 예수가 베드로를 쳐다보며 “너는 오늘밤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러자 베드로가 “무슨 말입니까?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한테 충성을 다하기로는 제가 누구한테도 안 집니다.”큰 소리로 장담했어요. 그러고서 얼마 있다가 예수는 잡혀가고,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도망가 버렸어요. 베드로는 멀찌감치서 예수를 뒤따라갔어요. 예수가 잡혀들어간 집 뜰에서 상황이 어찌 되어가나 살펴보다가, 베드로를 알아본 누군가가 “당신도 예수와 한 패지?” 하니, 베드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고, 또다른 사람이 또 자신을 예수와 한 패로 지목하니, 또 그 사람 모른다고 딱 잡아뗀다고요. 좀 있다 또 사람들이 베드로를 의심하니, ‘만일 자기가 그런 사람이면 저주를 받을 거라’는 맹세까지 하면서 또 아니라고 부인하는데, 그때 저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닭 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을 차린 베드로가 탄식을 해요. ‘내가 우리 선생님한테 일심을 가지고 가르침을 따른다고 했는데, 내가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의 제자라는 걸 부정했구나.’ 밖으로 나가서 예수의 말을 생각하며 베드로가 많이 울어요. 말(言)은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주워담질 못하잖아요. 결국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어요. 베드로가 너무너무 죄송한 거예요. 자기 스승이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따랐는데, 그 위기 상황에서 내가 그걸 못 버티고 마음이 풀어져서, 나 살자고 ‘나는 예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요.’ 이렇게 부인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가 다시 회개해 가지고 목숨을 바쳐서 예수의 가르침을 전했어요. 일심을 다했어요.
박찬석 총장이라는 사람도 그렇게 과거를 반성하고 방심했던 마음을 되돌려서 일심으로 공부해서 박사를 따고 해서 그로부터 17년 후 교수가 되었대요. 그 사이에 나이가 차서 결혼도 해서, 자신의 아들내미도 옛날 자기가 중학교 다닐 때 쯤 나이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동안 항상 가슴 속에 묻어두고 지낸 게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 아버지에게 거짓말한 것이 너무 죄송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있던 것을, 아들내미가 더 크기 전에 진실을 한번 얘기해야겠다.
그래서 45세 되던 해,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시골을 갔대요. 아들내미 앞에서 부모님한테 무릎 꿇고 빌어야겠다. 그래서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딱 꿇고, “어무이...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하고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다 말고 “됐다 마. 니 아들이 듣는다.” 그러시더라는 거예요.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던 거예요. 아들이 그때 성적을 조작한 걸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 탓 하지 않았어요. 아들이 1등이라고 하니깐 그걸 그대로 덮고서 잔치를 해준 거예요. 아들이 얼마나 죄송했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그런 아들을 아버지가 껴안아준 거지. ‘우리 아들이 언젠가는 회개하고 반성하겠지. 그래서 풀어졌던 마음, 방심했던 마음을 뉘우치고 열심히 해서 일심으로 해서 반드시 성공할 거다. 나는 우리 아들을 믿는다. 지금은 저렇지만 우리 아들을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아버지가 동네잔치를 벌리신 거예요.
얼마나 아버지가 아들 교육을 잘 시켰어요. 예수도 마찬가지라.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줄 알았으면 혼구녕을 내면서 “네가 그럴 수가 있느냐. 어떻게 수제자라는 친구가 닭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부인할 수 있느냐. 나는 너를 도저히 못 믿는다. 내 문하에서 떠나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예수는 그런 걸 다 알면서도 베드로를 탓하지 않았어요. 껴안아주었어요. ‘네가 정신을 차려서, 네가 나중에 어떤 계기가 되면, 니 스스로 회개하여 더 열심히 더 일심을 다해 내 가르침을 펴나가겠지.’ 그때까지 기다려준 거예요.
베드로는 기다려준 예수님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스승님이 나를 탓하지 않고 내 잘못을 탓하지 않고, 베드로 자기가 예수님을 살릴 방도를 어떻게든 구했으면 예수님이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나 때문에 우리 스승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을 수도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깐 너무나 죄송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목숨을 다 바쳐 예수의 가르침을 펴가지고, 예수의 그 법통이 초대 베드로부터 지금까지 교황으로 이어져오고 오잖아요.
일심(一心)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고요. 어떤 계기가 있어야 돼요. 무슨 계기? 내 양심을 바르게 깨어나게 하는 계기가 있어야 돼요. 내 양심을 울리는 감동의 계기가 있어야 된다고요. 감동하지 않으면 양심이 안 깨어납니다. 감동하지 않으면 일심이 안 나와요.
우리 태을도인들도 누구를 막론하고 다들 죄가 있다고요. 부모님한테 불효한 죄,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한테 불경한 죄, 상제님 고수부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불충한 죄,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다 죄가 있지만, 우리 부모님이 나를 껴안아 주셨고, 우리 선생님이 초 중 고등학교 때 나를 껴안아 주셨고, 상제님 고수부님께서 나를 껴안아 주셨고, 그러면서 우리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철들기를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아~ 내가 이 잘못을 어떻게, 이 불효를 불충을 불경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스스로 내가 감동이 되면, 박찬석 같이 회개자심해서 일등을 한다고요. 베드로같이 수제자로서 목숨을 바쳐서 일심을 다하는 거예요.
상제님 말씀을 한번 보세요. 강증산과 태을도 306페이지의 말씀을 제가 읽어볼게요.
@ 이제 모든 일에 성공이 없는 것은 일심(一心)가진 자가 없는 연고라. 만일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느리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던지 일심 못함을 한할 것이요, 못되리라는 생각은 품지 말라. (대순전경p335)
그 밑에 있는 말씀입니다.
@ 최익현이 순창에서 잡히거늘, 가라사대 “일심(一心)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환 속에서 정시해는 죽었으되 최익현은 살았으니, 이는 일심의 힘으로 인하여 탄환이 범하지 못함이라. 일심을 가진 자는 한 손가락을 퉁겨 만 리 밖에 있는 군함을 깨뜨리느니라.” (대순전경 p335)
아까 제가 서두에서 이 세상이 다 일심으로 연결된다고 했어요. 일심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일심을 가진 사람은 하늘이 돌보고 땅이 돌보고 신명이 돌보고 천하 사람들이 다 돌봐요. 그렇기 때문에, 일심 가진 사람이 가족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스승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이 세계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일심을 하면, 다 이루어지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런 일심을 가지려면 뼈저리게 참회하고 반성을 해야 돼요. 그냥 일심이 나오는 게 아니고, 내가 참회하고 반성하고 그런 속에서 내가 나를 감동 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일심의 힘은 무엇이냐? 감동시키는 거예요. 내가 나를 감동시킨 그게 일심이 되어가지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게 일심이에요.
누구나 다 죄가 있고 잘못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죄를 범하고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렇게 내가 용서를 받고, 내가 이렇게 보듬을 받고, 사랑을 받고, 다시 새 출발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세요. 박찬석 총장이 중고등학교에 와서 아까 그 얘기를 하니,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듣고 다 울더라는 거예요, 죄가 있으니까. 베드로가 돌아다니면서, ‘내가 우리 스승님한테 이렇게 사랑을 받았는데도 내가 스승님을 세 번이나 배신한 사람이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되지 마세요.’ 하며 일심으로 전도했다고요.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자복하고 깨어났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과 글에 행동에 진실성을 느낀다고요. 내가 낮아져야 해요. 참회하고 반성하면 낮아진다고요. 그러면 사람들이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정직하게 받아들여서, 그 사람의 말과 글에 감동이 되어, 같이 동료가 되고 뜻을 같이 이루게 된다고요.
오늘 진해도회에, 우리 태을도인들께서 정말로 천지부모님의 사랑과 천지부모님의 은혜를 다시한번 우리가 갚고, 또 가정에서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신 그 은혜를 갚고, 또 우리가 학창시절 사회시절 우리 선생님이 나를 껴안아준 그 은혜를 갚는, 그런 태을도인들이 되어야 되겠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도훈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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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을도(太乙道) : 태을궁 용봉서신(太乙宮 龍鳳書信) 원문보기 글쓴이: 마중물(忠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