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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어휘 연구] 59. 품에 품으시는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 '하바브' | 남대극 교수
안녕하십니까? '에스라넷 나무 강단' 성경 어휘 연구 시간입니다. 오늘은 59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또 특별한 한 단어를 연구해 보겠는데, 이 단어를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어떠한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신아홉 번째 강의에서 다룰 주제는 신명기 33장 3절에 나오는 '사랑하시나니'라는 표현의 원어, 즉 '하바브(Chabab)'라는 동사입니다. 우리는 지난 58번째 강의에서 사랑의 형태와 종류에 관해 헬라어 네 가지 단어(아가페, 스토르게, 필리아, 에로스)를 공부했습니다. 그중 성경에 나오지 않는 스토르게와 에로스를 제외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와 인간적인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룰 신명기 33장 3절에는 구약 히브리어 중에서 아주 독특한 사랑 어휘가 하나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33장 3절 본문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우리말 성경과 영어 성경(Love)은 다 똑같이 '사랑하다'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이 본문을 기록할 때 쓴 히브리어 원어는 일반적인 사랑 단어와 완전히 다릅니다. 본문을 보면 모든 성도가 그분의 손(수중)안에 보석처럼 안겨 있고, 그분의 발아래 가까이 앉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묘사인데, 여기에 쓰인 '사랑하시나니'의 히브리어 동사가 바로 '하바브(Chabab)'입니다.
이 히브리어 '하바브'의 명사형 형태가 바로 '품, 가슴'을 뜻하는 '호브(Chob)'입니다. 즉, 가슴이나 품을 뜻하는 명사 '호브'에서 '품에 안다', '품에 안을 만큼 친밀하게 사랑하다'라는 뜻의 동사 '하바브'가 파생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하바브'의 정확한 의미는 '품에 품다', '가슴에 따뜻하게 안다'이며, 여기에서 발전하여 '애틋하게 사랑하다, 깊이 사랑하다, 각별하고 끔찍이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니게 됩니다. 비록 우리말 성경에는 그냥 '사랑하신다'고만 번역되어 있지만, 그 내면의 진짜 의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가슴으로 품에 안아주듯 따뜻하게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이처럼 품에 품을 만큼 깊이 사랑하시기에, 모든 성도가 그분의 손안에 안전하게 거하며 그분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하바브'라는 동사는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오직 신명기 33장 3절에 단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단 한 번만 기록된 희귀한 단어를 학술적으로 '하팍스 레고메논(Hapax legomenon)'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이 동사의 모태가 되는 명사인 '품(호브)' 역시 구약 성경에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 하팍스 레고메논 어휘입니다. (참고로 앞으로 다가올 62번째 어휘 연구 시간에 성경에 단 한 번만 사용되는 흥미로운 하팍스 레고메논 단어들을 모아서 집중적으로 연구해 보겠습니다.)
명사 '호브(품)'가 사용된 유일한 구절은 욥기 31장 33절입니다.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겼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호브)에 감추었으며." 이처럼 품을 뜻하는 호브와, 품에 안아 사랑함을 뜻하는 하바브는 구약에 각각 딱 한 번씩만 쓰인 매우 특별한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구약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사랑하다'를 표현할 때는 어떤 단어를 쓸까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히브리어 동사는 바로 '아하브(Ahab)'입니다. 구약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는 거의 모두 이 '아하브'가 쓰였습니다. 또한 이 동사에서 파생된 사랑이라는 뜻의 명사는 '아하바(Ahaba)'로, 성경에 40여 회 이상 사용되어 모두 '사랑' 혹은 '연애'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일반적인 동사 '아하브'는 사랑하는 주체와 객체가 누구이든, 혹은 대상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실 때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도, 심지어 학문이나 나라를 사랑할 때도 모두 '아하브'를 씁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신약 헬라어의 '아가페(신적 사랑)'와 '필리아(인간적 우정)'가 엄격한 차이를 두고 구별되어 쓰였던 것과 달리, 구약의 '아하브'는 대상의 제한 없이 보편적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에 반해 신명기 33장 3절의 '하바브'는 오직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실 때만 쓰인 지극히 특별한 어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품에 품으시며 모든 성도가 그분의 수중에, 그리고 그분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게 하시는 친숙하고 각별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스승의 설교나 강의를 들을 때 바로 앞 발치에 바짝 앉아서 귀를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친밀한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항상 그분의 품에 의지하거나 가장 가까운 발치에서 말씀을 듣던 제자가 바로 사도 요한이었고, 마르다의 집에서 예수님 발치에 앉아 친밀하게 말씀을 듣던 여인이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이처럼 '수중에 있다, 발 아래에 앉아 있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가슴의 품에 안아주시듯 깊이 고수하시고, 애틋하고 끔찍하게 각별히 사랑하심을 뜻합니다.
여기서 '각별(各別)하다'는 단어는 참 특별한 단어입니다. 간혹 글을 쓸 때 오기하기 쉬운데, '각자'라고 할 때의 나무 목(木) 변을 쓰는 '각(各)' 자와 달리, 마음 심(心) 변이 들어간 방 정할 각 자나 특별할 각 자를 써서 '특별히 깊다, 아주 각별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가까이하시는 사랑이 이처럼 지극히 깊고 친숙한 '하바브의 사랑'입니다.
성경 구약에 단 한 번 나오는 이 '품에 품으시는 애틋한 사랑'은, 신약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의 대선언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신 말씀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당신의 하나뿐인 독생자를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주기까지, 그리하여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실 만큼 '이처럼' 깊이 우리를 품에 안아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바브의 사랑의 실체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3장 1절에서도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춤을 받게 하셨는가"라고 감탄했습니다.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멀어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받은 존귀한 자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해할지라도, 우리는 이 압도적인 하바브의 사랑을 소유한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각별하고 특별한 애틋한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 역시 그 사랑을 이웃에게 풍성하게 전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품어주신 그 귀한 사랑을 마음에 넘치도록 받았다면, 이제는 그 사랑을 우리의 가족과 친구, 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웃과 전 인류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구걸하는 영혼이 있다면, 우리가 주님께 거저 받은 사랑이 있는 만큼 마땅히 손을 펴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내 손안에만 꽉 쥐고 아끼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신아홉 번째 시간을 통해 신명기 33장 3절에 기록된 '하바브'가 얼마나 짙고 특별한 사랑인지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이 위대한 품어주심의 사랑을 전적으로 부여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사랑을 부지런히 주고받고 베풀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큰 사랑을 베풀어주신 우리 주님께서 마침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영광의 그날, 우리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던 그 신실한 손으로 주님의 인자하신 못 자국 난 손을 잡고 다 함께 하늘 공중으로 영광스럽게 올라가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히브리어 '하바브(Chabab)'의 어원과 뜻
신명기 33장 3절에 '사랑하시나니'로 번역된 단어로, 구약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만 사용된 '하팍스 레고메논(Hapax legomenon)' 어휘입니다.
이 단어는 '품, 가슴'을 뜻하는 히브리어 명사 '호브(Chob, 욥 31:33에 1회 나옴)'에서 파생된 동사로, 본질적인 의미는 '가슴의 품에 따뜻하게 안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품에 품어주듯 '애틋하고 끔찍이 아끼시는 각별한 신적 사랑'을 뜻합니다.
일반적 사랑 '아하브(Ahab)'와의 신학적 대조
구약 성경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사랑 동사는 '아하브(Ahab)'이며 명사형은 '아하바(Ahaba)'입니다. 이는 사랑의 주체나 객체, 대상의 제한 없이 광범위하게 쓰이는 일반 단어입니다.
반면에 '하바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지극히 친밀하게 보호하시고 소통하시는 특별한 관계를 강조할 때만 제한적으로 쓰인 고귀한 차원의 사랑입니다. 모든 성도가 그분의 손(수중) 안에서 보호받고 그분의 발치(발 아래)에 바짝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친숙한 연합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신약의 복음과 연결되는 하바브의 사랑과 성도의 자세
이 '품어주시는 각별한 사랑'은 신약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신 선언 및 요한일서 3장 1절의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자녀 삼으셨는가" 하신 복음의 메시지와 완벽히 일치합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크나큰 하바브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이 사랑을 자신만 아끼고 독점할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 소외된 영혼들에게 삶으로 풍성하게 베풀고 나누어 주며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