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예대전 특별상
우편번호 40240에서/김선유
한반도의 새벽을 깨우는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그리움과 설렘의 방향에서다. 도동항에서 독도까지 87.4km의 거리를 향해 뱃머리가 서서히 움직인다. 부푼 내 가슴처럼 새하얀 물결 일으키다 포말로 부서진다. 파도를 거스르며 검푸른 바다를 가로질러 달려간다. 늘 동경한 동해의 한 점 섬은 어떤 모습일까.
저 멀리 검은색 바위 두 개가 뿔처럼 우뚝 솟았다. 멀리서 보니 마치 동해를 지키는 용의 뿔 같다. 살다 보면 자신을 지키려고 저마다 마음에 뿔 한 개쯤 세우듯. 독도도 망망대해에서 홀로 우리 바다를 꿋꿋하게 지켜왔다. 그렇게 뒤척이고 꿈틀거린 긴 역사를 생각하니, 언저리 여기저기 삐죽삐죽하게 솟은 암초들도 수호신으로 보인다.
화산섬에 닻을 내린다. 아! 검은 바위와 푸른 바다가 만들어 내는 풍경에 그만 빠져든다. 바다를 박차고 괭이갈매기가 날아오른다. 바다 저 멀리서 보고 온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듯 끼룩끼룩, 절벽으로 빙그르르 궤적을 그린다. 파도에 씻기고 비바람에 깎인 세월의 내력을 말해주듯 기암과 괴석이 즐비하다. 마치 신이 빚어 동해의 중심에 전시한 작품 같다.
옛날, 누군가는 외롭다 이름 지었고 그것이 서러워 누군가는 절규하듯 지켰을. 512년 해상왕국 우산국이 신라의 영토가 된 후, 역사상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일이 없는 우리 땅이다. 만약 남의 땅이라면, 이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운명적 만남이 있을까. 동도에 첫발을 딛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경건해진다.
원뿔형의 높고 넓은 서도의 뾰족한 봉우리를 영상으로 잡아당긴다. 고단한 어부의 인기척마저 감싸 안았는지.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아프고 쓰린 순간들이 흉터처럼 새겨져 버린 우뚝 솟은 탕건봉이 우리우리하다. 그 기세를 빼닮은 촛대바위와 삼형제굴바위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가슴에 품었는지. 기운차게 뻗은 형세가 아찔한 절개를 자아낸다.
동도의 북쪽 기암절벽을 올려다본다. 바람에 흙과 풀씨가 날아와 화산암의 틈새마다 온갖 풀이며 꽃을 피웠다. 바람과 파도가 깎은 기암괴석 위로 새가 날아다닌다. 어찌 저 풍경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으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를 꺼낸다. 저마다 독도를 배경으로 넣고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면서 한반도 지형도 가슴에 선명하게 인화한다.
동도의 천장굴과 마주 선다. 그 위엄에서 나온 용기일까. 더는 외롭지 않은 섬 독도. 우리는 독도를 사랑한다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섬이다. 내 짧은 외침과 행동에 같이 온 이들도 태극기를 흔들어 보인다. 삼삼오오 모인 다른 일행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땅 독도를 외친다. 남녀노소 온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는 순간, 가슴 속에서 다시 뭉클한 뿔 하나가 불쑥 솟아오른다.
아치형 창문처럼 뚫린 동굴의 상부에 빛이 들어선다. 화산쇄설물 알갱이가 풍화되면서 만들어진 흑갈색의 현무암 이곳저곳이 움푹움푹 파였다. 수백만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눈물 구멍으로 닿아진다. 흘러내린 퇴적암 모양도 들쭉날쭉이다. 청록빛 바닷물이 눈앞에서 일렁이니, 먼 흔적 속의 돌덩이 그 끝으로부터 나오는 무게가 선조들의 혼불로 비친다. 남겨진 자취에 손을 대고 이제는 괜찮다고 가만히 어루만져주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라 마음만 덧댄다.
민족의 혼이 담긴 커다란 태극기가 박혀 있는 표석을 어루만진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 휘몰아치는 파도를 거친 숨결로 잠재우고 우리 한국인의 얼을 독도에 심었노라는 이 땅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슬픈 영웅의 정신이 느껴진다. 표석 앞에 서 있으니, 제주 해녀의 독도 출어를 입증한 기념비가 떠오른다. 독도에 대한 주권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 강화’에 애쓴 국제법 권위자 박관숙선생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걸어온 길의 궤적이 더욱 실감 난다.
독도는 총면적 187,554㎡로 그야말로 손바닥만 하다. 하지만 발아래 거느리는 영토는 어마어마하다. 컴퍼스 중심을 독도에 찍고 이백 해리로 한 바퀴 돌리면 독도가 동해의 중심에 우뚝 솟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해의 한 점이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수평선 아래로 거대한 대륙붕을 거느린다. 독도의 품 안에 숱한 해양생물이 깃들어 산다.
독도는 이곳을 보금자리로 살아가는 생물의 영토다. 괭이갈매기, 해오라기, 밀화부리, 슴새, 흑비둘기, 황로, 다양한 조류가 옹기종기 모여 알을 낳고 산다.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식물과 곤충들의 생활 터전이고, 풍부한 플랑크톤으로 모여든 독도는 가제 등 해양생물이 저마다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동해 용이 용오름을 타고 하늘로 가려다가 그만 남아서 동해를 지킨다는 상상을 하니, 구름이 파동을 일으키면서 그 사이에서 용 한 마리가 배를 밀고 나온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우기는, 일본을 향해 입을 쩍 벌리며 이빨을 드러낸다. 내 상상이 독도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가슴에 자리를 잡는다.
뿌웅! 승선하라는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짧은 만남의 이별처럼 못내 아쉬워 뒷걸음질 친다. 외로워서, 돌아볼수록 애틋해서 더 그리울 독도가 가슴에 꽉 찬다. 독도를 떠나기 전에 나는 마음의 편지를 쓴다. 울릉읍 독도리 쓰고 우편번호 40240을 쓴 다음 곱게 접는다. 그러고는 괭이갈매기 날개에 실어 우리 민족의 가슴으로 띄운다.
독도와 잠시 살을 맞댄 배가 이안한다.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이어지면서 독도가 멀어진다. 점점 작아지다가 한 점으로 사라진다. 동해를 지키려는 우뚝 솟은 독도처럼 내 마음 중심에서 독도를 지키는 뿔 하나가 불쑥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