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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와불이라 함은 열반상(涅槃像)으로 베개를 베고 편히 열반에 든 부처상을 말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운주사의 와불은 와불이 아니라 불립즉와불(不立則臥佛), 즉 서지 못해 누운 부처, 누워 있어 와불이 아니라 실제로는 일어나야 할 부처가 일어나지 못한 상태의 부처이다. 그래서인지 안내판에는 와형석조여래불이라 적혀 있다. 운주사 와불은 한 분이 아니라 좌불(坐佛)과 입상불(立像佛)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있는 두 분의 부처이다. 이렇게 좌불과 입상불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는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데 좌불 12.7미터, 입상 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부처이다. 나침반을 대면 거의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어 이 미륵불이 일어나면 곤륜산의 정기를 우리 민족이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니 갑자기 이 전설을 믿고 싶어진다. 진짜 와불은 이 돌 위의 부처가 아니라 입구 부근에 따로 있다.
< 입구 쪽에 있는 부처상. 한 팔로 팔베개를 하고 열반에 든 부처상으로 흔히 이런 모습의 부처를 와불이라 한다. >
< 이 부처는 위의 부처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을 뿐이니 와불은 부처가 하늘을 보고 누운 것이 아니라 옆으로 누운 것이 특징이다. >
< 스리랑카의 석조 및 목조 와불상으로 한 손을 베개 삼아 열반에 드신 모습이다. >
이 미륵불이 일어나면 큰 와불은 대장이 되고 작은 와불은 부대장이 되고 시위불은 소대장이 되고 천불은 군사, 천탑은 창검이 되어 새 시대를 일으킬까? 그러나 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희망사항임을 민초들 스스로가 알기에 나태한 동자승의 닭울음소리 흉내 같은 장난으로 돌려 버리고는 구체적, 현실적 증거로 연장바위를 선택한 게 아닐까?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누구나 꿈꾸는 일이되, 2002년의 꿈결 같았던 노무현의 승리와 그에 대한 기대가 종래에는 노대통령 자신은 부엉이 바위에서의 비극적 결말로, 국민은 보수라는 이름의 적폐세력이 저지르는 9년 간의 전횡을 지켜보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정치는, 현실은 이상주의자, 낭만주의자가 바라는 대로 녹록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자유를 빼앗으려는 자보다 더 냉혹하고 잔인할 때서야 비로소 지켜지는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준 것이다. 우리 스스로 미륵불의 도래를 믿지 못하고 미륵의 도래를 준비할 연장을 던져버리고 마는 민족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 와불을 지나 조금 오니 다시 7층탑이 나타나고 둥근 바둑돌 같은 것이 흩어진 칠성바위가 보인다. 칠성바위의 돌이 5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왼쪽 비탈에 있다고 하니 드론이라도 사서 촬영을 해야 할 판이다. 사실 와불의 경우는 드론으로 찍었으면 참 좋은 그림이 나올 듯했다. 퇴직 후 하나 구입해 연습부터 해 봐야겠다. >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돌이 놓인 위치는 북두칠성의 모양과 일치하는데 돌의 크기가 같지 않아 의아했는데 그 크기는 별의 밝기와 일치한다고 하니 옛사람의 주도면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언덕을 다 내려오니 우측에 여러 부처상을 두었는데 최근 것이 많은 듯 했다. 이곳에 위에서 이야기한 진짜 와불도 있었다. >
< 위의 현대에 만든 부처와 이런 기괴한 부처를 같은 줄에 세워 두었는데 그 저의를 알 수 없었지만 곧 그 의미를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
< 이런 부처상을 본 적이 있는가? 부처라기보다는 동네에 한두 명씩은 꼭 있는 성낼 줄 모르는 넓적한 얼굴의 형님 모습이다. >
< 이 부처상이 부처 줄의 맨 마지막에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오른쪽 아래 글이 눈에 띄었다. >
< 화강암의 흰 줄이 눈가를 스치게 된 것일까? 스치게 한 것일까? 그렇다. 부처 한 분, 탑 한 기마다에 깃든 민중의 바람이 천불천탑의 전설이 되어 이렇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탑이 물경 천 년 전 고려 초기의 탑들과 같이 있어도 되는 이유인 것이다. 민중의 바람을 외면하고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방치하고 있던 2014년의 현실이 이런 부처를 만들어 고려의 부처들과 같이 있도록 한 것이다. >
운주사를 뒤로 하고 내비년에게 화순온천모텔로 좋은 말할 때 순순히 안내할 것을 지시하고 저녁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의논했다. 전남 화순까지 왔는데 좋은 음식을 먹자는데 의견일치를 본 후 숙소에서 샤워하고 추천하는 이가 많은 남도음식명가 ‘수림정’에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거리도 적당해서 걸어가도 될 정도였다. 일단 예약을 하고 화순 구경도 할 겸 설렁설렁 걸어갔다. 화순 군청 민원센터 앞이라 했는데 제법 헤맨 후에야 수림정이란 한식집을 찾았다.
< 음식 값이 만만치 않은 만큼 종류와 맛이 궁금했다. 가장 비싼 수림정식을 주문할까 하다가 음식이 결국 서로 겹칠 뿐, 다 먹지도 못할 것을 눈요기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한 단계 아래인 특정식을 주문하기로 했다. >
< 우선 밑반찬으로 나온 송이와 노루궁둥이버섯이 눈에 띄었고 왼쪽 아래 목이와 팽이버섯 무침 같았는데 모양이 조금 다른 듯해서 물어보니 팽이버섯이 아니라 외국이름의 낯선 식재료였다. 전체적으로 정갈한 느낌이고 특히 양이 적당해서 접시 비우기가 좋았다. 쓸데없이 가짓수만 늘여 상 가득 펼쳐둔들, 사람이 먹는 양은 정해져 있고 먹는 종류도 거의 정해져 있다는 것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결과이다. >
< 드디어 메인이 나왔는데 센터를 차지한 것은 시장에서 본 병어였다. 그리고 병어 우측에 전라도 대표음식 홍어 삼합이 있었는데 덜 삭혀서 나 같은 사람도 먹을 정도였다. 병어 좌측은 집 나간 며느리도 들어오게 한다는 제철 생선인 전어구이. 나중에 굴비와 함께 식사가 나왔는데 전체적으로 먹을 만했다. >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오는 길에 하나로 슈퍼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사서 들어와 마시다가 쓰러져 잤다. 숙소인 화순 온천모텔은 2인 1실 4만원에 1인 추가 5,000원으로 되어 있었는데 웬일인지 4만원만 받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침구류 세탁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냄새가 심했다. 하루를 마치면서 반성이라든지 내일의 계획을 세워야 할 텐데 모두 지쳐서 정신없이 잤다.
일요일 아침, 오늘은 화순적벽투어가 주된 일정이다. 9시30분까지 이용대 체육관으로 가야 했기에 지리도 모르는 터라 조금 일찍 일어났다. 가정식 백반을 잘 한다는 삼일식당이란 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잠 덜 깬 내비년에게 잘 찾아보라고 했더니 근처까지는 잘 가는데 디테일한 면이 부족하여 결국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골목 안에 작은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휴일.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내가 지닌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가장 좋은 방안을 연구해 내는 것이 전문가이기에 어제 갔던 고인돌 시장으로 가 일단 민원센터에 주차하기로 했다. 입구에 바로 눈에 띄는 우리식당. 시장 안에서 밥집을 한다면 기본 내공은 다 갖춘 집이다.
< 애호박 된장국은 어제 맛을 보았으니 오늘은 당연히 다슬기 된장국이다. 밑반찬으로 나온 것들이 전라도 특유의 짭조름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났다. 그 중 내 눈을 끈 것은 밴댕이 젓갈인데 양념이 되어 한여름 밥도둑 역할을 할만 했다. 그 외는 콩자반, 김자반 무침, 도라지 무침, 고구마줄기 무침, 메추리알 조림, 깻잎 장아찌, 가끔 한 번씩 먹고 싶은 단무지 고춧가루 무침 등 값이 싸지만 나름의 정갈한 음식이 한 상이었다. >
< 된장국에 두부와 애호박, 그리고 다슬기를 넣었는데 경상도와 달리 다슬기를 껍질째로 넣어 다슬기 알은 손님이 까먹으려면 까먹으라는 듯 이쑤시개가 옆에 있었다. 그리고 된장 맛이 우리의 재래식 된장이라기보다 일본 미소된장 내지는 마트에서 파는 쌈장 같은 단맛이 났다. 그러나 숙취에 지친 속을 달래기에 부족함은 전혀 없었다. >
이용대(화순 출신의 배드민턴 선수) 기념 체육관 앞에 도착하니 벌써 6대의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우린 예약한 2번 버스의 문화해설사 뒷자리에 앉았다. 이왕이면 잘 들리는 곳에 앉는 것이 좋으니까 우리 자린 로얄석이라 할 만하다. 화순적벽은 1982년 동복댐 조성으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이후 32년만인 2014년 10월부터 버스투어만 허용이 되어 그 위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니 한번쯤은 와 봄직한 곳이라 여겨졌다. 또 이곳은 김삿갓이 여러 번 찾아올 정도로 경치가 좋은 곳이며 그가 몰(歿)한 곳이기도 한데 그의 무덤은 원래 이곳에 있다가 고향인 강원도 영월 김삿갓면에 빼앗겼다고 하니 살아서는 떠돌이 신세가 죽어서는 자기 고장에 정착하라고 시신 쟁탈전이 일어날 만큼 귀한 사람이 되었으니 같잖은 일이라고 김삿갓도 지하에서 웃겠다. 하긴 돈만 된다면, 존재하지도 않은 허구의 인물인 흥부나 홍길동의 고향이 자기 마을이라 우기는 세상이니 실존했던 김삿갓이야 말해 무엇 하리오.
버스는 동복댐 초입에 거북이가 물에 들어가는 형상이라고 한번 차를 세웠다. 내가 안내하는 사람이라면 여기는 거북이가 물을 만난 드문 지세라서 이를 휴대폰에 저장해 놓으면 거북은 장수하는 동물인지라 일 년 내내 무병장수한다는 멘트를 쳐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고 난리가 나도록 하겠다. 그러나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안내하시는 여자 분은 그런 선의의 거짓말에 익숙하지 못한 듯 의미 부여가 필요한 이 경치를 그냥 단순히 재미난 형상의 지형으로 만들고 말았다.
< 조금이라도 특별한 지형은 스토리텔링으로 재미난 의미 부여를 하거나 기복(祈福)적 의미 부여를 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
< 드디어 나타난 화순 적벽. 화순은 이름난 4개의 절벽이 있고 그 중 이곳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김삿갓도 오고 누구도 오고.... 그래서 도대체 뭐 어쩌라구. >
32년 만에 개방한다고 해서 와 본 정도이고 그리 특별한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 같은 것은 청도 운문댐의 공암풍벽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청도군에서는 차라리 청도의 주구산(走狗山)의 주상절리의 절벽을 보여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예비군 교육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산 정상의 평평한 부분을 정리하던 중 많은 토기류 등이 발굴되는 걸로 보아 아주 유서 깊은 군사적 요충지이며 주구산의 떡절(餠寺)이 생기게 된 유래와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의 죽엽군 전설을 통해 이서국의 군사력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실제로 엎드린 개 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장소임을 충분히 설파할 수 있어 여기보다는 훨씬 방문객의 반응이 나을 것 같다. 게다가 그 옆에 있는 철교는 최남선의 경부철도가에도 나오는 100년이 넘은 산성철교라는 곳이며 조금 장소를 이동해 송북리에 남북으로 늘어선 고인돌 무덤군 등등. 그 주변에 있는 유적만으로도 청도가 가야문화권의 이서국이라는 곳이었다는,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화양으로 이동해 화양읍성을 한 바퀴 돌리고, 석빙고(흔히 석빙고하면 경주 반월성의 석빙고를 신라 때의 것으로 알아 그것이 가장 오래된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를 보고 척화비에서 대원군 이야기, 향교에 가서 향교의 기능과 배치에 대한 설명, 그 뒤 화악루에 올라 화강지를 보면서 청도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를 이야기하면 한나절 보내는 것이야 쉽지 않을까? 또 코미디나 개그의 중심지가 이제 청도라는 것을 실제 보여주며 홍보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물론 내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보고 느낀 “미인출몰지역”이란 벤치마킹도 어느 곳에 설치해 살짝 웃기기도 하고,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시간제 미녀 알바도 투입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주구산의 인조 목재로 만든 흉측한 계단을 철거하고 주상절리가 제대로 보이도록 나무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리고 엎드린 개의 형상이 가장 잘 나오는 곳에 포토존을 만드는 일과 시멘트로 막아버린 주상절리 바위 아래 옛날 샘을 복원하는 일도 해야 할 일이다. 그 외에 호랑이 굴이라는 곳이 그 부근에 있다는 이야기와 주구산 아래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지하 동굴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데 그것도 사실 여부를 조사해서 개발에 대한 타당성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청도는 많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후손들이 개발해 부자가 되도록 아끼는 것 같다. 청도에는 왕릉급 무덤도 실제로 몇 곳이 있지만 개발하지 않는다. 마치 중국인들이 병마갱 옆의 산이 진시황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 우린 진시황의 무덤을 발굴할 정도의 과학적 지식이 모자란다는 식의 겸손을 부리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병마갱만으로도 사람 모우기에 충분하다는 게지. 부럽다. 짜식들.
< 셋이 찍은 사진은 늘 없는 편이라 겨우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찍었다. 얼굴에 화색이 좋은 것은 원래 피부가 좋아서이지 결코 어젯밤 과음한 영향은 결코 아니다. >
< 은행나무가 오래되어 이제 가지에서 혹처럼 달린 것이 내려오는데 저것이 땅에 닿으면 뿌리로 변한다고 한다. 나무의 생존전략이 놀랍다. >
< 오늘의 술 시작의 단초를 제공한 일송정 식당의 메뉴판. >
화순투어 후 화순의 명물이라는 흑염소탕을 먹기 위해 수소문한 결과 ‘일송정’이란 곳이 가장 낫다고 해서 와보았더니 간판 우측에 “희망하시는 분에게는 삼지구엽주 1병을 서비스로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오늘은 맑은 정신으로 집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서비스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서비스만 달랑 받는 자체가 술 마시는 사람의 도리를 벗어나는 짓이기에 어쩔 수 없이 소주 1병을 시키면서 서비스를 요청했다. 인간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 오는 길에 함양 상림공원에 들러 다 져버린 꽃무릇 사이에서 기어코 온전한 놈을 발견해 겨우 올해의 눈요기를 했다. >
그리고는 계속 달리고 달려 청도에 도착해 황선생은 밤눈이 어두워 야간운전은 꺼리는 것을 아는 터이라 더 만류하지 않고 먼저 보내고 안선생과 둘이서 여행의 대미를 백화춘 중화식당의 탕수육과 2병의 소주로 마무리했다.
화순 나들이 정산서 | ||||
일시 | 장소 | 단가 | 금액 | 비고 |
9/23 | 화순 적벽 투어 신청 | 10000 | 30000 | 9/11일 예약 |
| 거창하 휴게소 커피 | 4100 | 8200 | 2잔 |
| 진미식육식당 | 육회. 점심 | 42000 | 애호박 돼지찌개 |
| 운주사 입장료 | 3000 | 9000 | 현금 |
| 운주사 커피 |
| 8800 | 현금 |
| 화순온천 모텔 | 40000 | 40000 | 061-374-1971 |
| 수림한정식 | 35000 | 125000 | 주대 20000 |
| 수림한정식 | 10000 | 10000 | 팁 |
| 하나로 마트 | 16010 | 소주, 맥주, 안주 | |
| 통행료 | 현풍-광주 | 6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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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행료 | 광주 시내 | 1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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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 우리식당 | 6000 | 18000 | 다슬기 된장국 |
야사마을 휴게실 |
| 7000 | 커피, 생수 | |
일송정 |
| 40000 | 양탕 | |
지리산 휴게소 | 1500 | 3000 | 커피 2잔 | |
지리산 휴게소 |
| 7220 | 과자 | |
기름값 |
| 45000 | ||
통행료 | 광주 시내 | 1200 | ||
통행료 | 광주- 함양 | 4400 | ||
통행료 | 함양-현풍 | 4700 | ||
계 | 426930 | 142310 |
2017. 10. 05
끝.
첫댓글 여행기 작성하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