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저는 제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저버리고 말았어요. 쓸데 없는 반항 한 번 해보려고 저에게 주어진 것을 다 포기해 버렸어요. 지금 저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쓰는 거예요. 이 편지를”
이제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이 오는 듯하다. 제법 시원해진 바람이 마음까지 상쾌해지려는 오후 따따이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작년 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가 있는 희진이로부터 온 편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마구 읽어 내려가려다가 따따이에게는 수 많은 생각이 스쳐가기에 살짝 두 눈을 감았다.
희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누가 책임지고 키울 수 없어 보육원에 맡겨졌었다. 중학생이 되어 보육원 생활에 답답함을 느껴 순간적으로 가출하였는데 그때 나쁜 오빠들을 만나 성폭행과 성매매로까지 이어져 한 번의 가출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가출 후 갈 곳이 없는 희진이를 이용하려는 성매매 일당들에게 6개월 가까이 몸과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었다. 결국 희진이는 성매매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었고, 따따이가 희진이의 국선보조인이 되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넌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지내게 되었니?”
“그러게요. 그런데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몇 번이나 바람을 피우다가 아빠한테 걸려서 맞다가 서울로 도망갔어요. 아빠는 술만 마시고 살다가 알콜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러다가 이혼하면서 저를 시설에 맡긴 거예요”
“그랬구나. 그 후에 거기서는 어땠어?”
“나름대로 힘들어도 잘 버틸려고 했는데 언니들이 너무 힘들게 했어요. 너무 답답한 마음도 들었구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더 참고 지낼걸 가출한 것이 후회가 되요”
“그럼 가출하고는 어떻게 지낸거야?”
“저에 대한 소문을 다 들으셨죠? 근데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냥 아는 사람들을 만나 숙식을 제공받으며 지냈었는데....”
희진이는 따따이에게 자신의 비행 특히 성매매 사실에 대해서는 잘못 소문이 나고 조사가 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판을 기다리며 분류심사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희진이를 면회와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따따이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면회를 신청하여 잠시라도 마음 편히 먹고 싶은 간식을 마음껏 먹도록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줄곤 자신의 비행을 부인하던 희진이가 재판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따따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 이제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요. 저 사실은 가출 기간 동안 오빠들이 시켜서 성매매를 했었어요. 오빠들이 잡히면 안된다며 울산, 대전, 인천, 수원까지 데리고 다니며 시켰어요”
“이제 왜 사실을 말하는거니?”
“사실대로 말하면 소년원 갈까봐 겁나서 거짓말 한거예요. 처분을 잘 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는데, 이젠 처분이 어찌 되든 사실을 이야기하고 용서받고 싶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생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잡히게 되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난 번에 판사님께 보낸 편지에도 거짓말을 했는데 다시 써서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그리고 털어놓은 희진이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그 동안 성매매를 너무 많이 해서 횟수도 모르겠어요. 어떤 오빠는 하루 2~3회 정도 시켰고, 또 다른 오빠는 4~5회 정도 시켰어요. 가출한 7개월 중 5~6개월 정도 그렇게 성매매를 한 것 같아요”
“가출한 후 도움받기 위해 갈 곳도 찾아갈 사람이 없었어요. 어떤 날은 정말 하기 싫어서 아무리 사정을 해도 계속 시켰어요. 딱 하루 제 생일날만이라도 안하게 해달라고 부탁부탁하여 겨우 그 날은 하지 않았어요”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저 이제부터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다른 아이들처럼 교복 입고 학교 다니고 싶어요”라며 희진이는 울부짖었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아픔과 고통을 누르느라 끄억끄억거리는 소리를 내뱉으며 희진이는 힘들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저 이제 10호 소년원 보내도 갈 마음의 준비가 됐어요. 그동안 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라는 희진이의 인사를 뒤로 하고 따따이는 분류심사원 철문을 나왔다. 돌아와서 판사님에게 제출할 의견서를 정리하는 내내 희진이의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울부짖던 그 울음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렸다.
드디어 재판 날.
“존경하는 재판장님! 소년은 책임지고 양육할 보호자도 없고 몸과 마음이 지친 소년입니다.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소년을 위해 안정적인 환경 가운데 학력을 취득하고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라고 따따이는 희진이를 위해 말했다. 판사님은 희진이의 진심어린 반성하는 태도를 보시고 희진이가 둥지센터에서 지내도록 선처해 주셨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판결이었다. 소년원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희진이도 따따이와 함께 둥지에서 지낼 수 있다는 말에 너무 좋아 몇 번이고 판사님께 인사를 했다.
그리고 희진이는 둥지에서 지내면서 중졸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친 희진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2개월 정도 일한 월급을 들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따따이는 몇 번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희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희진아! 너 왜 이러니?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잖아? 교복 입고 학교 가고 싶어했잖아?”
한참 뒤에 따따이에게 답장이 왔다.
씨발. 평범하게 살아봤어야 내가 평범하게 살지. 평범하게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 뭘 더 원하는거야?
그렇게 희진이는 둥지를 따따이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보호관찰위반으로 구인장이 발부된 상태에 서울에서 불심검문으로 붙잡혀 재판을 받고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10호 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때에 따따이에게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다시 읽어내려 가는 희진이 편지에는 이렇게 써여져 있었다.
“그렇게 아껴주시고 믿어주시고 보살펴 주셨는데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게 고작 이것 뿐이라서 죄송해요. 감사해요. 도와주셔서. 미안해요. 이런 모습 밖에 보여드리지 못해서. .... 도와주지 않으시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딸이라 불러주시고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못나고 부족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고 또 주고 또 주셔서 감사해요. 한 없이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보듬어 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감사할게 많은데 어리석은 모습만 보여드렸네요. 후회. 당연히 되죠. 제가 늘 그랬죠.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구요. 바로 이거였네요. 제가 갚지도 용서받지도 못할 잘못. 기회는 여러 번 있었고 제 발로 그 기회들을 차버렸네요. 제가 왜 그랬던 걸까요. 도대체 왜. 어떻게 해야 저를 멈출 수 있을까요. 도대체 왜 저는 행복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행복들을 피해 도망치려고만 할까요. 왜 저는 늘 이런 식일까요. 모르겠어요. 저도 저를 모르겠어요. 잘하려고 해봐도 그게 잘 안되요. 왜 안될까요. 왜 나는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어서 사랑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목말라하고 필요해 했는데 너무 오랜 기간 마르고 굳어 갈라져서 걷잡을 수 없을만큼 작아지고 작아졌어요. 그래서 모르겠어요. 행복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건지. 사랑과 관심을 어디에 담아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늘 힘들었던게 이거일까요. 모르겠어요. 이젠 정말 나도 나를 모르겠어요. 가슴이 아파오고 눈물이 나오는데 무엇을 위해 우는 것까요. 무엇 때문에 가슴이 아린걸까요. 견딜 수가 없어 미치겠어요. 정말 진짜 너무 힘들어요. 저는 왜 구제불능일까요. 이렇게 못되쳐 먹은 걸까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그만둘 수 있을까요. 뭐가 필요한건지 무슨 방법을 써야 하는지 하나도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요. 너무 아프고 망가지고 힘들어서 정말 죽고만 싶어요.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요.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아픈데 아무리 생각하고 쥐어짜 내봐도 모르겠어요. 정말 죽고 싶을만큼 아파요 마음이. 원래 이렇게 쓰려던게 아니었는데 말이 변해버렸네요. 저는 감사하다고 할랬어요. 감사하다고. 너무 고마웠어요. 진심이예요. 아빠. 사랑해요. 딸 희진이가”
평범하게 산다는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따따이는 희진이의 편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갑자기 창문 밖엔 장대비가 내린다. 이 가을에 무슨 비가 장마비처럼 내리는거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유리와 길바닥과 부딪히며 쏟아져내리는 빗줄기가 괜시리 고맙다. 라디오에선 마침 ‘위대한 약속’이라는 노래가 들려온다. 김종환이라는 가수가 그의 딸 리아킴에게 만들어 준 노래라는데 가사 한 절 한 절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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