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장마가 시작된 오늘입니다.
오전엔 건강검진을 갔다가 오후에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는 길을 걷기로 합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 다름이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라고 박경리 샘이 통영을 묘사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 한 켠을 매립하여 지금의 죽림 신시가지가 생겨 났지요.
매립을 하면서 섬 하나를 그대로 살려 두었는데, 그게 내죽도 입니다.
본래 섬이었으나 사방의 바다가 뭍이 되는 바람에 더 이상 섬이 아닌
지금은 근린 공원으로 조성한 자그마한 언덕 정도 입니다.
통영 어느 곳이나 해풍을 맞으며 자라는 이 소나무는
섬이 섬의 특성을 잃은 지금도 독야청청 그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지요.
키 작은 엉겅퀴가 보입니다.
홀로 외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같이 간 아연씨에게 주희씨가 또 묻습니다.
"이게 뭐게?"
"........"
그래서 갈쳐 줍니다.
엉겅퀴
그래 맞다 엉겅퀴..지난 번 본 거 이거랑 비슷한 거 뭐였지...
지청개
그래서 제가 또 묻지요
"지청개가 유혹적이야, 엉겅퀴가 유혹적이야?"
엉겅퀴
ㅋㅋ거 봐 역시 팜므파탈이라니까..순딩이 같은 우리들은 영...
그러면서 또 까르륵 넘어갑니다..
길 곳곳에 돌을 깔거나 벽돌로 마감을 해서 비가 와도 걷기엔 좋습니다.
비에 젖은 나무들이 햇빛 쨍한 날보다 더 짙어 보이는 것은
물이 반가운 나무들이 신나서 그런 걸까요???
비와서 신나는 아이들이 또 있었네요.
길에 달팽이들이 행진을 합니다.
잘못해서 밟을까 조심조심...
예전엔 흙길이었는데...
오롯한 오솔길이 참 예쁜 길이었는데..
주희씨가 그럽니다.
애들 어릴 때는 유모차 끌고 올 수 있어서 좋더만
이제 애들 크니까
그냥 흙길이었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드네..
다들 자기 처지에서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나 봅니다.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 놓아도
찾는 이의 몫은 늘 다르니까요..
한쪽엔 연못도 있습니다.
야트막한 물에 다리도 만들고
동네 아이들 데리고 나와 놀기 좋겠네요...
그래도 내죽도 공원 처음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오롯한 오솔길의 흙냄새, 나무 냄새, 새소리...
죽림만 산책길을 걷기로 합니다. 운무에 가린 산과 하늘을 닮은 바다
그 바다를 보면서 걷는 사람들로 저녁이면 길이 꽉 차는 곳입니다.
우중에 낚시 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지나가면서 보니 물고기가 계속 잡힙니다.
뭘 잡는지 궁금하여 내려가 봅니다.
뭔 물고긴지 물었는데, 당신네들도 모른다 합니다.
그렇게 크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돌 위에서 낚시대를 넣기만 해도 금새 금새 잡혀 올라 옵니다.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 들고 있으니
제 앞으로 낚시대를 들고 와주십니다.
낚시 바늘을 물고 하늘에서 춤을 추게 된 물고기는
벗어나 보겠다고 애를 씁니다.
불쌍한 물고기...
한참을 버둥거리다 이내 포기도 합니다.
"잘 잡힌다 야"
"좀 빼주라 야"
"사진 찍는다자나 좀 들고 있으라 야"
말끝에 야 가 자연스럽게 붙습니다. 강원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그래서 묻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그랬더니 저를 한참 쳐다 보십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말 끝에 야 가 붙는 게 어디 말인가...
중국 흑룡강성에서 오셨답니다.
오늘 쉬시는 날인가 물었더니
비가 와서 공치는 날이랍니다.
통영엔 낚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 물어 봤으면 그냥 낚시 하는 아저씨 정도 였을 건데..
물어보니 중국 교포인 것도 압니다.
일 없는 날 그냥 방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 낚시라도 하니 좋을 겁니다.,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더 좋겠지요..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빗줄기 세례를 받은 바다는 움푹움푹 패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물도 많은데
성질까지 다른 빗물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온 몸이 패이게 아플 겁니다.
그래도 받아들이는 바다는.. 그래서 큰가 봅니다.
작은 우산 하나를 둘이 받쳐 쓰는 일은
서로의 어깨 한쪽씩을 적시면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비 맞는 게 싫어서 비 오는 날은 절대 밖에 안 나온다는
그이가
어깨 한쪽을 비에 내어주고
한 팔은 동무의 어깨에 걸칩니다.
어깨동무한 그들의
뒷모습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가늠합니다
푸른 바다 둘러 쓴 섬이었던 그 시절
파도와 바람 뿐이었던 곳에
발로 내딛는 언덕이 된 지금은
찾아드는 사람들
웃음 소리 한숨소리
담배연기
유모차
삼겹살 굽는 냄새
섬은 언제가 더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