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세기 12장 7-9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당시 신들을 섬기는 지역은 신들의 영토로 간주되었다. 가나안은 바알의 땅이었다. 그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하셔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사탄의 땅인 이 세상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심겨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심는 자가 된다. 그래서 그 열매의 씨가 계속 심겨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곳에 제단을 쌓게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모레 상수리 나무를 부여잡고 있는 자인가, 아니면 그곳에 제단을 쌓는 자가 되는가? 우리는 세상의 축복을 향하여 뒤를 돌아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심어나가는 자인가 확인해야만 한다. 나의 육신의 눈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믿는 자가 바로 제단을 쌓는 자가 된다. 『나』라는 존재의 항복선언인 것이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벧엘(하나님의 전)과 아이는 서로 대조된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꿈에서 천사들이 사닥다리(인자)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내려오고 다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땅에 내려온다는 것은 죽어야 할 존재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로 다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단(오늘날 교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곳을 상징한다. 그래서 교회는 옛사람이 죽어있는 무덤이 되는 곳이다. 무덤이 될 때, 그곳은 또한 부활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초로 세워진 영적교회가 바로 예수님이 장사지낸 그 곳이라는 의미다.
아브라함은 벧엘의 동쪽인 아이에 가서 이와 같이 제단을 쌓게 된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말하자면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심은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를 심은 것이다. 그 제단은 성도가 가는 곳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성도가 그리스도를 심는 것에 아주 작은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 아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을 정벌하면서 유일하게 패한 곳이 아이성이다. 더 큰 여리고 성도 무너뜨렸는데 제일 작은 성에서 패전을 맛보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 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하나님은 여리고를 정벌하면서 여리고 성이 가나안의 첫 번째 성이기 때문에 그 성에서 얻은 물건은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시날 산 외투 한 벌과 금 오십 세겔, 은 이 백 세겔을 자신의 장막 땅속에 파묻어 두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범죄 한 것이 되어서 전쟁에 진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아간 한 사람은 너무도 작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한 사람 때문에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전을 겪고 마음이 물같이 녹아 내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아간이 감춘 물건은 시날산 외투 한 벌, 금 오십세겔, 은 이백세겔이었다. 이 물건은 아간 개인에게는 큰 물건이었지만 여리고를 정벌하고 얻은 이스라엘 민족의 전체 노획물 중에서는 너무도 작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전체 이스라엘이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패전하고 많은 사람이 죽는 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여정을 나타내는 모습은 장막과 제단이다. 장막은 나그네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장막을 치고, 다시 저곳으로 장막을 옮겨다니는 나그네의 모습이다. 제단은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 즉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장막을 거두고 옮겨다닐 때마다 그곳에는 제단이 남아있었다는 의미다. 오늘날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상황에서 제단이 남아있어야 함을 보여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인가 아니면 풍요의 신인 바알인가를 선택하는 기로에 항상 서게된다. 그 때마다 제단을 쌓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나간 삶의 여정 속에서 과연 무엇이 쌓여있는가?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성도의 신앙의 모형으로 서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의 권세를 삼켜버렸으며, 이제 영적 왕권을 되찾아오신 것이다. 약속의 땅 정복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실제로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벌렸다.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영적으로 이미 예수님이 정복하신 나라를 확보하여, 깃발을 심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전쟁을 계속 이어 나가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결과로, 이미 이 세상은 정복당한 것이다. 그 정복 당한 땅을 하나님 말씀을 힘입어 믿음으로 제단을 쌓고, 깃발을 꽂으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남방은 헤브론이다. 가나안을 통과하여 헤브론으로 간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여정이 이렇게 아브라함의 여정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따르는 것과 하나님 말씀 순종 속에서 모든 신도가 서 있다. 여기에서 통과하여 헤브론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이미 정복 당한 세상을 성도는 십자가를 들고 믿음으로 그저 내려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에 십자가에 의해 정복당한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 된다. 그 진행이 성도의 상황에 따라 지연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것이다. 성도는 이를 확인하며 믿음으로 나갈 뿐이다.
그런데,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가 느리지만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간 것처럼, 성도 역시 점점 남방(헤브론) 으로 내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8절에서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헤브론은 히브리 원문에서 교통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집은 하늘의 생명의 문제이며, 교통은 생명이 나아가는 교량역할을 한다. 그래서 벧엘(하나님의 집)을 거치지 않고 헤브론(생명)에 거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헤브론이 벧엘 이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