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11일) 저녁 ‘노래로 다리를 놓는 사람들(노다놓사)’ 공연을 다녀왔다.
암환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봉사단체인 ‘시드니 샘물 호스피스’ 후원을 위해 마련된 이날 공연은 자리를 함께 한 많은 한
인들의 호응으로 ‘열린 음악회’와 같은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클래식 가곡부터 맛깔스럽게 편곡한 한국 가요까지, 특히 앙콜곡으로 부른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압권이었다. 경쾌한 리듬의
최신 가요 앞과 뒤를 클래식 풍으로 편곡해 신선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2시간 가량의 이 멋진 콘서트에서 유독 눈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한 켠의 피아노 앞에서 함빡
웃으며 신나게 반주하고 있는 이경혜 목사(50)였다. 공연기획, 곡 선정, 편곡, 반주까지 그의 참여가 단단히 돋보이는 수준급
공연이었다.
“관중들과 마음 열고 하나되고 싶었어요. 클래식이 가지고 있는 오만, 일반인들이 가지는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허물자는 것에
감사하게도 출연진들도 흔쾌히 동의하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 다리를 놓아 큰 즐거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원했던 공연의 취지는 한치의 오차 없이 맞아 떨어졌다. 이런 공연에 목말라 있었던 관중들의 우뢰같은 박수와 성
원으로 하나가 되었다. 기금도 제법 모여 4천905달러를 시드니 샘물 호스피스에 기부했다고 한다.
이경혜 목사는 뮤지컬단 ‘더 워드(The Word)’의 단장으로 한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2003년 3월에 창단, 9월 창단 공연으로
<넌센스>를 무대에 올린 뒤 지난해까지 7차례 공연을 가졌으며, 올해 8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공연 연보를 보니 7개 작품들 중 절반 이상이 창작극이다.
창작극이라면 대본부터 처음 쓰고 음악, 연기, 춤, 무대, 조명, 음향, 배우들 의상, 분장까지 다 새로 구상해야 한다. 이 힘든 작
업을 다 어떻게 하시나, 아니 편한 기존 극을 마다하고 ‘왜 고생을 사서 하시나’ 궁금했다. 더불어 기독교 문화사역을 담당할 지
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만든 단체인데, 몇몇 작품의 내용은 기독교와 무관한 듯 보였다.
“기독교 작품과 기독교적인 작품이 있어요. 예를 들면 ‘사운드 오브 뮤직’은 기독교적인 작품이예요. 직접적으로 기독교가 개
입돼 있지 않지만 결국은 종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죠. 이에 반해 기독교의 스토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 기독교 작품인데,
난 전자 쪽을 하고 싶어서 창작을 하는 거고, 관객들이 ‘기독교인들만의 잔치이군’하는 거부반응 없이 다가올 수 있게 함이랍
니다.”
그는 ‘더 워드’에서 총감독이자 예술 감독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절대음감’을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
터 피아노와 음악과 늘 같이 살았던 터라 ‘나만의 달란트’인 것을 모르고 고마운 줄도 몰랐다 한다.
1986년 호주로 이민 와 웨슬리 신학대학 음악목회과정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화성법은 물론, 음계를 왔다 갔다 하고 음을
헤쳤다가 다시 조합하는 등 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고 한다. 또 음악을 편식 하지않고 평소에 듣는 재즈, 가요, 클래식,
팝 등의 다양한 음악들이 자양분처럼 몸 속 어디엔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가 작업할 때면 필요한 요소들이 쏙쏙 나와주는 신기
함이 있다고도 했다.
단원들은 6-7명이 확보되어 있는 가운데 공연 때마다 오디션을 통해 새 단원들을 선발한다. 나이는 5세부터 50세까지 다양하
다. 그가 연습 중 단원들에게 꼭 당부하는 것은 “No 로맨스, No 컴플레인, No 지각, 결석” 세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젊은 단원
들 중에 애정을 키워 결혼으로 골인하는 일이 이번에 생겼다.
그는 단원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우리 아이들’ 중에는 물론 무지하게 속썩이는 아이도 있단다. 그래도 무조건 안아
준다. 6개월동안 연습하면서 함께 보듬어야 한다고 모두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요즘 변화를 실감하는 것이 단원들이 각자의 교회로 돌아가 크던 작던 문화사역자의 노릇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교회
로 돌아가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다. 이럴 때 이 목사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래서 쉼 없이 뮤지컬을 창작하는 ‘맨
땅에 헤딩하기’를 반복하기로 결심한다.
창작 뮤지컬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다
공연 준비를 하다가 난관에 부딪히면 수장으로서 어떻게 하실까? 이경혜 목사는 웃는다.
“어휴, 매일매일이 사건이고 기적입니다. 단원과 스태프들이 이를 목도하는 가운데서 저절로 영성 훈련이 되고 팀워크가 단단
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추진력이 좀 강해서 이끄는 대로 못 따라오는 사람들을 헐떡거릴 정도로 밀어 부치지만 정작 문제가
생기면 ‘화살기도’(짧은 기도)를 하고 오히려 느긋하게 기다립니다.”
6년 동안 일어났던 별의별 일이 경험과 노련함이라는 재산을 남겼다.
올해에는 두 작품을 계획중이라고 했다. 6월에 <Keep y’a head up!>을, 그리고 11월에는 지난 2006년에 공연했던 <나의 하
나님 닷 컴>을 다시 각색해 다시 올린다고 한다.
현재 한창 연습중인 뮤지컬 <Keep y’a head up!>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가정이 깨지고 가족들이 고통을 받는 가운데 주인
공이 엄마의 사랑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일상과 꿈을 회복하여 발레리노가 된다는 내용이다.
“난 언제나 해피엔딩이 참 좋아요.” 이 목사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창단시절부터 작업을 무보수로 함께
해 온 우리 스태프들에게는 항상 감사할 따름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다뤄주신 교민 언론사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이 모든
후원이 오늘까지 ‘더 워드’를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2009년 새해가 밝았는데 기축년 소망이 있다면 무엇일까?
“연습실이요. 마음 편히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요, 두 번째는 정기적인 재정후원, 세 번째는 내년에는 시드니 페스티벌에 참가
하고 싶어요. 따뜻하게 관심을 가지고 봐주세요.”
자신의 재능을 남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이경혜 목사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기획력으로 호주에서 널리
쓰임 받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출처 : 한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