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천국에 대한 특권과 기회 그리고 감당해야 할 책임감입니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언제나 그에 상응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주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은사와 기회를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한 은사와 기회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믿는 자는 예외없이 전부 달란트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 칭찬받는 제자는 착한 마음으로 신실하게 헌신한 사람입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주님 오실 때까지 감당해야 할 거룩한 삶을 사는 것과 복음 사역을 충성스럽게 했을 때 받는 칭찬입니다. 우리가 받은 1년 365일을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면서 성도들과 더불어 수고했을 때 받는 칭찬입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이 칭찬은 주인이 돌아와서 칭찬할 만큼 우리가 담대하고 진취적인 삶과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파루시아’(재림)를 준비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열심히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자는 반드시 보상을 받습니다.
첫 번째 종이나 두 번째 종은 받는 달란트가 달랐어도 주님의 칭찬은 동일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남겼느냐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신신하게 살았느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했느냐를 보시지,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을 묻어두지 말고 하나님의 집 즉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힘써 일할 때 주님께서는 기뻐하면서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종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았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정죄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행위가 주님께 악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보다도 자기가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맡긴 돈으로 장사해서 이익을 남기더라도 자기에게 어떤 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는 게으르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는 소심해서 주인의 돈을 과감하게 활용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불신 때문에 주저하고 뒤로 물러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들은 개척자들이고, 탐험가들이고, 모험가들입니다. 신자들은 주님의 제자로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람들은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깃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방해와 핍박이 있고, 나에게 손해가 있더라도 일어나 나아갑니다. 안전한 길이나 이익이 되는 길로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고, 샘이 없는 곳에 생명의 샘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세 번째 종은 왜 정죄받고 결국 실패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무익한 자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룬 것은 그의 고백과 일치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나라에 속할 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입니다. 두 사람이 즉시 그것으로 장사하였듯이 우리는 ‘파루시아’를 고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일하는 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