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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問:念佛之安心,應云何知?
묻기를: 염불의 안심을 어떻게 알고 있어야 하는가?
答:應具足三心。其三心者,“一者至誠心,二者深心,三者回向發願心”也。一“至誠心”者,真實之心也。善導和尚《觀經疏·散善義》釋言:“‘至’者真,‘誠’者實。真實心中厭捨此三界六道之自他依正二報,三業所修必須真實。外現賢善精進之相、內懷虛假者,雖日夜十二時勤修,如炙頭燃,亦不得往生。唯不簡內外明暗,皆須真實,故名至誠心。”
답하기를: 마땅히 삼심을 구족해야 한다. 그 삼심이란, “첫째는 지성심이요, 둘째는 심심이요, 셋째는 회향발원심이다.” 첫째 “지성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선도화상의 《관경소·산선의》에서 해석하기를 “‘지’는 진이요, ‘성’은 실이다. 진실한 마음속에서 이 삼계육도 가운데 자신과 타인의 의정이보를 싫어하여 버려야 하고, 삼업으로 닦은 바는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 겉으로는 현명하고 착하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안으로 거짓을 품고 있으면, 설사 밤낮 24시간을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부지런히 수행해도 역시 왕생할 수 없다. 다만 마음속이든 겉모습이든, 사람들이 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진실해야 하므로 지성심이라 부른다.”라고 말하였다.
二“深心”者,深信也。決定深信自身現是罪惡生死凡夫,曠劫以來常沒常流轉,無有出離之緣。又決定深信,彼阿彌陀佛以四十八願攝受衆生,無疑無慮,乘彼願力,定得往生。仰願深信佛語,若一切智者,百千萬人來,多引經論言“一切凡夫,念佛不得往生,”亦不起一念疑退之心,唯報云:“汝所引經論非不信之,然汝所信經論者,汝有緣之教也;我所信者,我有緣之教也。今所引經論者,通說菩薩人天等,此《觀經》等三部,乃爲濁惡不善之凡夫所說。然佛說彼經時,處別,時別,對機別,利益別,今聞汝言,唯增長我之信心。”若羅漢、辟支佛,初地、十地菩薩,遍滿十方,化佛報佛輝光吐舌,言“不得往生”者,亦當報言:“一佛所說,即同一切佛說;若改釋迦如來所說之教,則所制之殺生十惡等可改可犯乎?若前佛所說虛假,則後佛所說亦是虛假。若相同者,即不可改初信之法。”永不退故,名爲深心也。
둘째 “심심”이란, 깊은 믿음이다. 자신은 현재 죄악생사범부로서 광겁 이래 항상 침몰하고 항상 유전하며 출리의 연이 없음을 결정코 깊이 믿는다. 또 저 아미타불께서 48원으로 중생을 섭수하시니, 의심과 걱정 없이 저 부처님 원력에 올라타 반드시 왕생함을 결정코 깊이 믿는다. 우러러 바라건대, 부처님 말씀을 깊이 믿고, 만일 지혜 있는 자들 백천만 명이 와서 많은 경론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일체 범부는 염불해서 왕생할 수 없다.”라고 하더라도 역시 한 생각 의심하고 물러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만 응답하기를 “그대가 인용한 경론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가 믿고 있는 경론은 그대와 인연 있는 교법이고, 내가 믿고 있는 교법은 나와 인연 있는 교법이다. 지금 인용하고 있는 경론에서는 보살, 인천 등을 통틀어 설하고 있고, 이 《관경》 등 삼부경은 탁악(濁惡)하고 선하지 못한 범부를 위해 설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저 경을 설할 때는 장소가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상대하는 근기가 다르고 이익이 다르므로, 지금 그대의 말을 듣고서 내 신심만 증장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만약 아라한, 벽지불, 초지, 십지보살이 시방에 가득 차 있고, 화신불과 보신불이 광명을 놓고 광장설을 내밀어 말하기를 “왕생할 수 없다”라고 말하더라도 역시 “한 부처님이 설한 것은 곧 모든 부처님이 설한 것과 같다. 만약 석가여래께서 설한 가르침을 바꿀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제정해 주신 살생과 십악 등도 바꿀 수 있고 범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앞의 부처님께서 설한 것이 거짓이라면 뒤의 부처님께서 설한 것 역시 거짓일 것이고, 만약 똑같다고 한다면 처음 믿었던 법도 바꿀 수 없어야 한다.”라고 답해야 한다. 영원히 물러나지 않는 까닭에 심심이라 부른다.
三“回向發願心”者,一切善根悉皆回向往生極樂,決定真實心中回向,作得生想。此心深信,猶若金剛,不爲一切異見、異學、別解、別行人等之所動亂破壞。
셋째 “회향발원심”이란, 일체 선근을 모두 회향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으로, 결정된 진실한 마음속에서 회향하며 왕생하였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마음의 깊은 믿음은 금강과도 같아 일체 이견, 이학, 별해, 별행의 사람들에 의해 혼란스러워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又,白一切往生人等,今更爲行者說一譬喻,守護信心,以防外邪異見之難。何者是也?
또한, 일체 왕생하는 사람들에게 아뢰오니, 지금 다시 행자들을 위하여 비유 하나를 설함으로써 신심을 수호하고 다른 견해를 가진 외도나 삿된 무리의 비난을 막고자 한다. 어떤 비유인가?
譬如有人,欲向西行,百千之裏。
忽然中路,見有二河,一是火河在南,二是水河在北。
二河各闊百步,各深無底,南北無邊。
正水火中間,有一白道,可闊四五寸許。
此道從東岸至西岸,亦長百步。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서쪽으로 백천리가 되는 먼 길을 떠나고자 한다.
길을 가던 도중 갑자기 두 강이 보였는데, 하나는 남쪽에 있는 불의 강이었고, 또 하나는 북쪽에 있는 물의 강이었다.
두 강은 각각 백 보 정도의 폭이었고, 각각 끝없이 깊었으며, 남북으로 한없이 넓었다.
마침 물과 불의 중간에 하얀 길 하나가 있는데, 그 폭은 대략 네다섯 치 정도였다.
이 길은 동쪽 언덕에서 서쪽 언덕으로 나 있으며, 길이 또한 백 보였다.
其水波浪,交過濕道,其火焰亦來燒道。水火相交,常無休息。
그 물의 물결이 넘쳐흘러 길을 적시고 있었고, 그 불의 화염 역시 길을 불태우고 있었다. 물과 불이 서로 교차하며 쉴 새 없었다.
此人既至空曠迥處,更無人物,多有群賊惡獸見此人單獨,競來欲殺。此人怖死,直走向西,忽然見此大河,即自念言:“此河南北不見邊畔,中間見一白道,極是狹小,二岸相去雖近,何由可行?今日定死不疑。”
이 사람은 광활하고 외지고 먼 곳에 이르러 동행자도 없고 호신용 물건도 없는데, 수많은 도적 떼와 흉악한 짐승들이 이 사람이 혼자인 것을 보고는 다투어 죽이려고 하였다. 이 사람은 죽음이 두려워서 곧장 서쪽으로 도망가다가 홀연히 이 큰 강을 보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강은 남북으로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중간에 아주 협소한 하얀 길 하나만 보이는데, 두 언덕의 거리가 가깝긴 하나 어찌 갈 수 있단 말인가? 오늘은 틀림없이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正欲到回,群賊惡獸漸漸來逼,正欲南北避走,惡獸毒蟲競來向我,正欲向西尋道而去,復恐墮此水火二河。
(그래서) 이제 막 되돌아가려고 하니, 도적 떼와 흉악한 짐승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이제 막 남북으로 도망치려고 하니, 흉악한 짐승과 독충들이 다투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며, 이제 막 서쪽으로 길을 따라서 가려고 하니, 또 이 물과 불의 두 강에 떨어질까 두려웠다.
當時惶怖,不復可言,即自思念“:我今回亦死,住亦死,去亦死;一種不免死者,我寧尋此道向前而去,既有此道,必應可度。”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돌아가도 죽을 것이고, 여기서 멈추어도 죽을 것이고, 이 길을 따라가도 역시 죽을 것이다. 똑같이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면, 나는 차라리 이 길을 따라 앞으로 가겠다. 이 길이 있는 한 틀림없이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作此念時,東岸忽聞人勸聲:“仁者但決定尋此道行,必無死難,若住即死。”
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동쪽 언덕에서 문득 누군가 권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자시여, 결심을 내리고 이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죽지 않을 것이니, 만일 멈춘다면 곧 죽을 것이다. ”
又,西岸上有人喚言:“汝一心正念直來,我能護汝!衆不畏墮於水火之難。”此人既聞此遣彼喚,即自正當身心,尋道直進,不生疑怯退心。
또, 서쪽 언덕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며 말하기를 “그대는 일심 정념으로 곧장 오너라. 내가 능히 그대를 보호해 줄 수 있으니, 물과 불의 재난에 떨어지지 않을까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이쪽에서 보내고 저쪽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하얀) 길을 따라 곧장 나아가며, 의심하고 겁내고 물러나려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或行一分二分,東岸群賊等喚言:“仁者回來,此道險惡不得過,必死不疑,我等衆無惡心相向。”
앞으로 조금씩 걸어가자, 동쪽 언덕에서 도적 때들이 (이 사람을) 부르며 말하기를 “인자시여, 돌아오시오. 이 길은 험악하여 지나갈 수 없으니, (계속 가다가는) 반드시 죽을 거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 없소. 우리는 (당신에게) 악한 마음이 전혀 없소.”라고 하였다.
此人雖聞喚聲,亦不回顧,一心直進,念道而行。
이 사람은 비록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심으로 (하얀) 길만 생각하며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須臾即到西岸,永離諸難,善友相見,慶樂無已。
잠깐 사이에 곧 서쪽 언덕에 도착하여 영원히 모든 재난에서 벗어나서 훌륭한 벗들과 만나 기뻐하여 마지않는다.
此是喻也。
이것은 비유이다.
次合喻者:
다음은 무엇에 비유했는지를 설명하겠다(合喩).
言“東岸”者,即喻此娑婆之火宅也。
“동쪽 언덕”이란 말은, 곧 이 사바세계의 화택에 비유한 것이다.
言“西岸”者,即喻極樂寶國也。
“서쪽 언덕”이란 말은, 곧 극락보국에 비유한 것이다.
言“群賊、惡獸詐親”者,即喻眾生六根、六識、六塵、五陰、四大也。
“도적 떼와 흉악한 짐승이 친한 척한다”라는 말은, 곧 중생의 육근, 육식, 육진, 오음, 사대에 비유한 것이다.
言“無人空迥澤”者,即喻常隨惡友,不值真善知識也。
“사람이 없는 광활하고 외지고 먼 못”이란 말은, 곧 항상 나쁜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진정한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음에 비유한 것이다.
言“水火二河”者,即喻衆生貪愛如水、瞋憎如火。
“물과 불의 두 강”이란 말은, 곧 중생의 탐욕과 갈애가 물과 같고, 성내고 미워함이 불과 같음에 비유한 것이다.
言中間“白道四五寸”者,即喻衆生貪瞋煩惱中能生清淨願往生心也。乃由貪瞋強故,即喻如水火,善心微故,喻如白道。
중간에 “하얀 길이 네다섯 치”란 말은, 곧 중생의 탐진번뇌 속에서 능히 청정한 왕생을 원하는 마음을 낼 수 있음에 비유한 것이다. 이는 탐진번뇌가 강한 까닭에 곧 물불과 같다고 비유한 것이고, 선한 마음이 미미한 까닭에 하얀 길과 같다고 비유한 것이다.
又,“水波常濕道”者,即喻愛心常起,能染汚善心也。
또한, “물결이 항상 길을 적신다”란, 곧 애착하는 마음이 자주 일어나 능히 선한 마음을 오염시킬 수 있음에 비유한 것이다.
又,“火焰常燒道”者,即喻瞋嫌之心能燒功德之法財也。
또한, “화염이 늘 길을 태운다”란, 곧 성내고 싫어하는 마음이 능히 공덕의 법재(法財)를 태울 수 있음에 비유한 것이다.
言“人行道上直向西”者,即喻回諸行業直向西方也。
“이 사람이 길을 걸으며 곧장 서쪽으로 향한다”란 말은, 곧 모든 행업을 돌려 곧장 서방으로 향함에 비유한 것이다.
言“東岸聞人聲勸遣,尋道直西進”者,即喻釋迦已滅,後人不見,由有教法可尋,即喻之如聲也。
“동쪽 언덕에서 길을 따라 곧장 서쪽으로 나아갈 것을 권하며 보내는 어떤 사람의 소리를 들음”이란 말은, 곧 석가불이 이미 열반에 드셔서 후대 사람이 친견할 수 없음에 비유한 것이고, 교법은 찾아볼 수 있는 까닭에 소리와 같음에 비유한 것이다.
言“或行一分二分,群賊等喚回”者,即喻別解、別行、惡見人等,妄說見解,迭相惑亂,及自造罪退失也。
“앞으로 조금씩 걸어가자, 도적 떼가 돌아오라고 불렀다”란 말은, 곧 별해, 별행, 악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부로 자기 견해를 말하여 번갈아 미혹시키고 있음과 스스로 죄업을 짓고 퇴굴심을 냄에 비유한 것이다.
言“西岸上有人喚”者,即喻彌陀願意也。
“서쪽 언덕에서 어떤 사람이 불렀다”란 말은, 곧 아미타불의 원력의 뜻에 비유한 것이다.
言“須臾到西岸,善友相見喜”者,即喻衆生久沉生死,曠劫輪回,迷倒自纏,無由解脫。仰蒙釋迦發遣,指向西方,又藉彌陀悲心招喚,今信順二尊之意,不顧水火二河,念念無遺,乘彼願力之道,舍命以後,得生彼國,與佛相見,慶喜何極也。
“잠깐 사이에 서쪽 언덕에 이르러 훌륭한 벗들과 만나서 기뻐한다”라는 말은, 곧 중생은 오랫동안 생사에 빠져 광겁을 윤회하며 미혹하고 전도되고 스스로 얽매여 해탈할 방법이 없었다. 우러러 석가불께서 보내시며 서방을 가리키심에 힘입고, 또 아미타불의 대비심의 부르심을 빌어, 지금 두 부처님의 뜻을 믿고 따르며 물과 불의 두 강을 돌아보지 않고 잠시도 잊지 않으며 저 부처님의 원력의 길에 올라타 목숨을 버린 후에 저 국토에 왕생하여 부처님과 만나게 되니, 그 기쁨에 어찌 끝이 있겠는가에 비유한 것이다.
又,一切行者,行住坐臥,三業所修,無問晝夜時節,常作此解,常作此想,故名回向發願心。
또한, 모든 행자는 행주좌와에 삼업으로 닦은 것은 밤이든 낮이든 때를 묻지 않고 언제나 이렇게 이해하고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에 회향발원심이라 부른다.
又,言“回向”者,生彼國已,還起大悲,回入生死,教化衆生,亦名回向也。
또한, “회향”이란 말은, 저 나라에 왕생한 후에 다시 대비심을 일으켜 생사 속으로 돌아와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 역시 회향이라 부른다.
三心既具,無行不成;願行既成,若不生者,無有是處也。
삼심을 갖춘 이상, 성취 못 할 행이 없고; 원행이 성취되었음에도 만약 왕생할 수 없다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以上皆是善導和尚之釋文也。
이상 모두 선도화상의 석문(釋文)이다.
첫댓글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시방중생들을 극락왕생시키고자 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대자비심으로 펼쳐주신 백도의 길 !
일향전념
전수염불로 보은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석가세존께서 보내시고
아미타불께서 부르시니
오직 일향전념하여
이하백도의 한길에서
벗어나는 일없이
일심 정념으로 곧장 가옵니다
감사올립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진실한 깊은 믿음으로
일향전칭 미타불명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소중한 법문과 그 은혜에 감사의 합장을 올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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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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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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