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정미
파도는 웃음을 접었다. 말과 말 사이를 오가며 춤출 것이란 비말, 바닷가에 사람들이 만발하였으니 대화를 탐낼 것이란 말, 그런 희망은 귓바퀴에 닿지 않았다. 그만 오늘의 힘겨운 단절을 몰아 막말의 수렁에 드러누웠다. 경청이란 글자를 모래사장에 써서 짠물에 적셨다. 그때야 햇살 따라 사시 좌선하는 침묵의 등이 반짝였다. 저렇게 여리고 아름다운 등짝을 가진 자는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그것은 면벽 이전의 침묵, 일생을 등만 보이며 말을 타는 그는 말을 버린 적도 탐한 적도 없다. 최초의 대화인 그의 그림자에선 갯내가 났다. 지나치게 지나치지 않는 그에게서 풍기는 오래된 세계의 향기. 찢어진 파도를 깁는 비말에게 넌 누구의 상처냐, 물으니 그가 말했다. 나는 조난당한 말의 파편이자 파도들이 꾸는 품위의 망울. 가무스레한 그 숨결을 더듬다가 노을의 황혼처럼 절여지는 대화였다.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눈 밖에서 바람이 분다. 바다가 해독되지 않은 파도를 격하게 게워 낸다. 입술의 감정으로 웃음을 받아 안는다.
정 미 | 200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를 스쳐 갈 때』, 장편동화 『이대로도 괜찮아』 등. 2009년 아테나 아동문학상 대상, 2018년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 수상. 아르코, 경기재단 창작지원금 다수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