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가 오시면
요한 16장 1-11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야 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근심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따랐는데
예수님이 떠나버리시면
자신들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무어라고 하십니까?
7절에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심이 왜 유익이신가
예수님이 떠나시지 아니하시면
보혜사가 오시지 않을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가셔서
보혜사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보혜사란 말은
위로자 대변자의 뜻입니다.
성령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보혜사를 보내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떠나셔야 하시는 것이고
떠나심으로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께서 보내실 보혜사가 오시면
어떤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선 성령이 오신다는 말씀을
구약에서 한 곳만 찾아 보면
요엘서 2:28-32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 때에 여호와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실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하며
늙은이가 꿈을 꾸고
젊은이가 이상을 볼것이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래일, 꿈,
이상이라는 말을 가지고
성령이 임하시면
환상을 본다. 꿈을 가진다.
장래일을 말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점치는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들은
구약식으로 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일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해준다. 기도받는다 하면서
개인의 신수를 물으러 다니는 일들이
이러한 말씀으로
인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의 상황입니다.
종말이란
성령이오시면 그것이 심판이요
종말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는 것이
여호와의 심판입니다.
피와 불과 연기,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빛같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날들이 이르기 전에
즉 최종적인 종말이 이르기 전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이미 종말이 시작된 것이고,
이러한 종말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장래일을 말하는 것이며,
꿈을 꾸는 것이며,
이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바는
성령이 오시면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곧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하신 것은
곧 성령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완성시키는
차원에서의 유익인 것입니다.
단지 제자들의 개인의 신세가
세상의 힘과 능력을 받아서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가신길을
뒤따라가게 함으로
이 세상이
심판아래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임한자들은
한결같이
고난의 길로 간 것입니다.
제자들과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져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임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니 주여 우리 자녀,
우리 남편이
성령의 능력으로 시험도 잘치르고
하는 사업도 잘되게하옵소서
이러한 성령은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엘서에서 예언한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성취가 되는지를
사도행전 2:14-36절을 보면
사람들이 제자들을 보고
술취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장래일을 말하고, 꿈을꾸며,
이상을 말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예수님이 주님이십니다. 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종말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36절에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세상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세상은 끝장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죄와 허물로 인하여
심판과 저주를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을 보니
너희는 정말 심판아래 있다는 것이
확증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마태복음 21:33-46절에
나와 있습니다.
설교란
성경의 내용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성경에서 더 풍성하게
증거하는가가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아름다운 말을
얼마나 매끄럽게 잘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성경이 증거하는
죄와 의와 심판이 증거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33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높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사
모든 사람이
그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뛰어난 이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이 오심으로
세상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쫏아 내어 버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아니하심이
증거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세상이
심판받는 증거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객관적인 사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
즉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반드시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8-11절을 보면
그가 오시면 즉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입니까?
9절입니다.
이 세상의 죄의 기준은
인류의 행복과 안위를 헤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여 알게된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없이
내가 주인이 되어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이롭게 하는 자는
그 대상이 신이라도 좋은 신이 되지만
나를 이롭게 하지 않는 것은
그 대상이 비록 신이라 할지라도
죽이겠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에 나타난
인간의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의 일들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란
바로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십자가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나의 죄로 인하여
예수님이 죽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죽으심이란
내가 받아야 할 심판과 저주를
대신 받은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 하는
모든 일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인 이름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하여 알게 하신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세상에서
죄다 아니다 하는 것들을
책망하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에 대하여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10절 보세요.
의에 대하여서라 함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버리셨기에
세상에는
그 어떤한 의도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장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다 모아 내어도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곳에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구약에서 계속하여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데
예수님이 떠나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의가 없기에
이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서라함은
11절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심판의 기준은
이세상 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어떠한 심판을 받을까를
두려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심판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심판을 받아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무슨 심판에 관심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까?
주님의 심판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심판의 기준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이 세상이
주님의 심판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령이 임하심으로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달리 소망이 없음을 반드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보내어 주신
보혜사를 통하여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공통적인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와 성격이 다르고
나와 여러 가지로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한 성령을 받았다면
요한복음 16장에 나타나는
이러한 책망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을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의에 대한 책망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는 어떠한 것도 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의가 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가
성령이 임한자이고
복있는 자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에
이제 심판의 기준은
오직 주 예수님이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님들에게
살아 계신 예수님,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
성령을 보내시는 예수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어떤 핍박과 환난,
위기와 죽음이 닥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고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승리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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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보혜사가 오시면 요한 16장 1-11절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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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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