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을 쓰고 마치려다가 카페지기님의 아쉽다는 말씀에 조금 더 써보고자 한다.
1) 음식(diet)
내가 양고기와 보쯔, 호쇼르 등이 맛있다고 말했는데 혹시 여행가서 먹어보고 맛이 없다는 분이 계실 줄 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식점이나 주부들 솜씨에 따라서 맛이 다 다르듯이 마찬가지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내가 머무는 가정의 뭉크 장로 부인의 음식 솜씨는 남다르다. 내가 충대 총장이셨던 내 은사 오** 교수를 모시고 간적이 있었는데 그 집의 조찬식사를 하고나서는 한국에 와서도 늘 그 집 아침 식사 이야기를 하였다. 그 Nara 여사의 음식솜씨는 양고기와 기타 모든 밀가루 음식에서도 빛이 난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나의 모든 친구들에게 먹어보도록 했으면 한다. 언젠가 기회가 있기를.... 그리고 우리나라도 한우라고 다 좋은게 아니라 횡성이니 어디니 특히 좋은 고기가 있는 것처럼 몽골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곳의 특산품인 마유주(에릭이라고 한다)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은 시금털털하고 시기만 하고 맛이 하나도 없고, 가서 잘못 먹으면 대번 배탈 나서 설사를 하니 조심해야 한다. 그것도 특별히 좋은 에릭을 만드는 지방이 따로 있다. ‘세링게’라는 지방이 그 중 하나이고 그 도시에도 우리들의 교회가 있다.
2) 수명(longevity)
내가 1990년대 처음 갔을 때만 해도 그들에게 평균 수명을 물으니 40-50이라고 했다. 지금은 조금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병이 많은 것이 매우 안타깝다. 특히 암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이다. 나는 이 한국에서 우리들 교회 함께 생활하는 신자들 가운데 먼저 보낸 분이 매우 드물다. 인수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겠지만 10-20년 동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몽골의 성도들 가운데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그것도 젊은 형제자매들 가운데 깊은 병이 들어 먼저 보내야 하는 내 심정은 참담하고 말로 다할 수 없이 아팠다. 왜 그렇게 암이 많을까 생각해보고 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도 보았다. 첫째는 음식의 문제이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다. 처음 내가 몽골에 갔을 때 그들은 우리가 야채를 먹는 것을 보고 매우 신기해하면서 그런 것은 양이나 소가 먹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 때 그들은 양이 야채를 먹고 우리는 양을 먹으니 식물동물 다 포함해서 먹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농담 같이 들렸지만 그만큼 그들은 고기를 치중해서 먹는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몽골 교회에 세운 첫 번째 장로 가운데 Nachagdorige 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한국에 와서 한동안 살았고, 서울대에서 박사를 받은 현 몽골 국립대의 교수이다. 그녀는 전문 나의 몽골어 통역자이기도 하다. 그 남편이 5년 전 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학생 때 처음 우리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정말 멋있게 생긴 몽골 청년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큰 사업가가 되어서 한국 몽골 컨테이너 사업을 하였었다. 내가 몽골에 누군가 차를 하나 사주고 싶으면 그에게 내가 차를 살테니 운송비는 자네가 대시게 하면 언제나 웃으며 그래요... 했던 사람이다. 몽골 선교 초기 이야기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암이 왔다. 어떻게든지 살려보려고 했지만 4-5년 투병 후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그를 위해 노래를 2곡이나 지어서 위로했다. 그 중에 하나는 프랑크 시나트라가 부른 ‘my way’에 맞춘 가사였다. 그 친구만이 아니다. 또 젊은 자매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경우, 그 외에도 안타까운 일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또 다른 암을 유발하는 이유 하나는 중국산 과일이다. 그 나라에서 나는 과일은 거의 없어서 많은 과일들이 중국산인데, 약을 많이 사용한 과일들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공기이다. 울란바토르는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특히 겨울) 도시 전체를 한 켜의 구름같이 감싸고 있는 광경이다. 그들은 아직도 겔(몽골식 텐트)에 사는 인구가 많고 갈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엄청난 매연이 있다. 겨울에 가면 코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것 또한 질병 유발의 큰 요인으로 본다.
3) 외국인(alien)들에 대한 태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점을 36 년간 당한 결과로 반일감정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중국의 지배를 200년간 받았고 따라서 중국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그들로부터 독립전쟁을 이끈 사람의 이름이 수흐바타르이고, 시내 중심가에 수흐바타르 광장(중국의 천안문 광장처럼)이 있고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당연히 그는 몽골 민족의 영웅이고(우리나라 독립투사처럼) 30대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독살을 당했다는 말도 있다. 한국인들에 대한 감정은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개방 초기에 한국의 못된 사람들이 몽골 사람들 사기친 경우(내 가까웠던 교인 중에도 사기 당한 친구가 광화문 앞에서 시위하는 것도 본적이 있다)도 있고 해서 한국인들에 대하여 좋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래서 몽골을 방문할 경우 한국처럼 치안을 믿고 하나 둘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다니다가는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얻어터지는 수가 있으니 반드시 여럿이 다녀야 한다. 아침 운동을 반드시 하는 나도 교외의 공원에 나갈 때는 몽골 목사, 장로들과 여럿이 나간다.
4) 과분한 접대(hospitality)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좋지 않은데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40대 후반 그곳에 가서 나는 한쪽 고막을 잃었다. 병원도 변변한데가 없을때이니 며칠간 고름이 줄줄 흐르는데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와 병원에 가보니 고막이 완전히 녹아서 없어졌다고 했다. 지금도 내 가까운 친구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 자주 이비인후과를 다니냐고 묻는다. 그 때 고장난 고막이 지금까지도 완전하지를 않다. 그 뿐 아니라 이곳저곳 문제를 일으켜서 외국에 나가서 고생할 때가 자연히 많았다. 100회 남짓 갔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머무는 집의 뭉크 장로 가족은 긴장한다. 그리고 희한한 것을 가지고 와서 다리와 발에 발라봐라, 먹어봐라 한다. 물론 몽골 전통 민간요법으로 하는 것인데, 어떤 전문인을 불러오는가 하면, 장로부인이 때로는 말우유를 잔뜩 욕조에 넣고 뜨거운 물속에 땀이 흠뻑 날 때까지 앉아 있다가, 나오라고 명령하면 도리없이 하라는 대로 해야한다. 그리고 두꺼운 까운을 입고 욕조를 나와서 그 열을 서서히 식히우며 자라고 한다. 진짜로 엄청 땀이 난다. 그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몽골 전통식으로 몸에 좋다는 벼라별 것을 다해본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어떠냐고 묻는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어떤 때는 내가 진짜 눈물이 났다. 내가 왜 먼 외국에 와서 이 순수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을까! 몽골만이 아니라 이나라 저나라 이런 이야기를 다하려면 한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외국인들을 돕기 위해 선교를 다닌다고 했지만 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주님께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부족한 주님의 종인 나에게 베푼 과분한 접대에 대하여 백배 천배 갚아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몽골 이야기를 진짜 마치겠다.
여기까지 나의 부족한 졸필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많이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