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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히에라볼리)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
사도빌립순교기념교회.
요한계시록 3장1-6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사데교회)
사데 (SARDIS)
사데는 기원전 1200년 경에 세워진 소아시아의 서부 루디아 왕국의 수도이며 상업과 군사 도시이며 서머나 동쪽 85km지점에 위치하였다. 특히 사데를 수비하는 성곽은 바사의 고레스와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 때를 제외하고도 역사상 한 번도 정복되지 않았을 정도로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한 때 번성하여 염색과 보석 공예로 유명하였고 최초로 금, 은 주화를 주조하여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데에는 키벨레 여신의 밀의 종교가 성행하였는데(계3:1), 초대교회 당시 사데에 세워진 교회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우상에 빠져들었으며, 예루살렘 출신의 유배자가 B.C. 5세기에 거주하였으며 계시록을 쓰던 당시에도 유대인이 많았다. 실제로 근처에서 매우 큰 유대인 회당이 발견되어 복원되기도 했다.
사데 유적은 크게 아데미 신전과 교회 유적이 있다. 금가루가 흘렀던 시내와 깎아지는 절벽 위에 요새가 사데의 특징이다. 사데 왕 크로이소스는 이 시내를 통해 내려오는 사금으로 큰 부자가 되어 한 때 페르시아까지 원정을 갈 정도로 막강했으나 나태함에 결국 멸망했다.
'마이다스의 황금 손' 전설의 근원지이다. 신 디오니소스에게 무엇이든 만지면 황금이 되는 손을 소원으로 빌었던 마이다스 왕은 실수로 딸을 만져 황금으로 만들어버리자 디오니소스에게 소원을 철회해줄 것을 원했고, 디오니소스는 팍탈로스 강(현재 Gediz nehri)에 가서 손을 씻음으로 정상적인 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이후 팍탈로스 강에서는 사금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산이 사데의 아크로폴리스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잠자다 두 번이나 정복을 당했다. 앞쪽 높은 기둥은 아데미 신전이고 두 기둥 오른쪽 모서리에 초라한 교회 유적이 있다.
사데의 요새인 아크로폴리스(도시의 높은 구역에 있는 요새)는 사면이 절벽이라 누구도 감히 점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적이 쳐들어오는데도 여유를 부리다 두 번이나 점령을 당했다. 특히 고레스는 성을 포위했으나 점령이 힘들자 비밀 통로를 찾으라고 명령했다. 마침 한 사데 병사가 졸다가 투구를 떨어뜨렸는데 얼마 후 그 병사가 비밀 통로로 나와 투구를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목격됐다. 고레스의 군사들이 이 비밀 통로를 이용해 성으로 들어갔을 때 사데의 병사들은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견고하고 안전한 요새만 믿고 있다가 허점을 노출해 점령당하고 만 것이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으로 페르시아가 쫒겨나고 근교의 베르가마 왕국의 통치를 받았고,
알렉산더 대왕의 명령으로 아데미 신전이 세워지게 되었다. 아데미신전은 50m*100m, 78개의 기둥, 가장 큰 두개의 기둥은 18m 높이로 지어졌다.
[사데교회에 보내는 말씀]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1절. 2장에 나오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교회들은 해안을 가까이 한 도시들입니다. 해안을 통하여 세상의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도시들이며 우상숭배와 황제숭배의 중심지들이 되었습니다. 반면 3장에 나오는 사데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내륙 도시들입니다. 지리적인 여건이나 자원과 교통에 따라 무역과 산업 발달에 다라서 그 생활상이 달라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책망만 있는 교회입니다. 그 책망이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라고 하십니다.
‘주여! 주여!’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나 주님은 ‘모르겠다.’하십니다.
사데교회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금광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다른 교회보다 가장 부한 교회입니다.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사데교회 성도들은 표면적으로 예수를 믿고 예배를 드리지만 장차 오실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고난이라는 말을 그저 교리적인 지식일 뿐입니다.
분명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는데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멋진 집과 값비싼 자동차와 별장과 호화로운 삶이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땅에서 부하고 평안하며 자녀가 잘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한가로운 휴식이고 사교에 불과 했습니다.
살아 있는 듯 보이나 죽은 교회입니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2-3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어느 때인지 알지 못하는 시간에 환란이 닥치면 지금의 믿음으로는 결단코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복을 얻기 위해 믿음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의 온전함이 없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하여 드러나는 믿음이 온전하지 않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행함이 아니라 행함으로 그 믿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온전하다면 온전한 행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교를 말하면서 잠깐 선교현장에 나와 선교사를 대적하고 불순종하며 선교현장에서 불평과 불만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선교는 거짓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살아가며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선교사에게 불평하고 이것 없고 저것 없다고 하는 것은 참 악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교현장에서 불평불만 하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선교’이야기는 ‘행함이 없는 그 자체가 죽은 선교이야기’일 뿐입니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내가 이 땅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 누리고 있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피조 된 세상을 구할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분을 구하여야 될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어야 될 것입니다. 이제 내가 손에 가진 것을 돌아보고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잡아야 될 것입니다.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와야 될 때입니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4-6절.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다행이 사데교회의 희망이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일곱 교회를 보면 우리가 싸워야 될 것은 결코 황제 숭배도 아니고 여러 우상도 아닙니다. 우리가 싸워야 될 것은 우리 속에 있는 탐욕과 두려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고 우리 안에 있는 탐욕과 두려움을 제하여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탄의 속임수와 하늘의 음성을 구분 하며 결단코 흔들리지 아니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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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
요한계시록 3장7-13절 -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빌라델비아교회)
빌라델비아
필라델피아 : 형제를 사랑하는 자의 도시. 포도농사가 유명한 곳.
소아시아 여러 교회들에 포도주를 공급한 교회.
현 지명은 알라셰히르.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아탈로스 왕조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그의 동생 아탈로스 2세 필라델포스의 별명을 따서 지은 도시.
기원후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대파됨.
비잔틴 시대에 교회가 세워짐.
[빌라델비아교회에 보내는 말씀]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7-8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난하고 무능하며 비천한 교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9절. 포도농사로 유명한 빌라델비아교회는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난하고 비천하게 사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훼방 때문이었습니다.
매년 소아시야 여러 교회에 성찬의 포도주를 공급하여준 교회입니다.
유대인들은 황제를 신이라고 하는 로마보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을 더 미워하였습니다. 서머나교회에서 풀리캅이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화형당하여 죽을 때 유대인들이 앞장서서 장작을 날랐다고 합니다.
당시 초대 교회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기 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런 상황에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가난하고 미약하며 비천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어느 지역보다도 유대인들의 핍박과 박해가 심한 곳이었습니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0절.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인내의 말씀은 나를 핍박하고 저주하며 훼방하는 자들을 저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예수로 인하여 가난하고 비천해 지며 궁핍하고 어려움과 고난을 겪지만 원망하거나 낙담하지 아니하고 그런 가운데 더 하나님을 붙들고 소망의 예수그리스도 생명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빌라델비아’는 ‘형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시험을 면케 해 주신다는 것은 황제숭배로 고난당하는 것을 면하게 하심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은 다 망해도 우리 집은 잘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험 중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선택하여 죽었다고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자는 죽는 것이 시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택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시험이 없습니다.
시험은 세상 땅을 잡은 자에게 오는 것입니다. 하늘을 소망한 자에게는 시험이 시험이 아닙니다. 비천에 처하고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 같으나 그것이 그리스도와 왕 노릇하며 온 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1절. 그들이 내 육신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가진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은 빼앗지 못합니다.
이런 자의 구원의 문을 닫을 자는 없습니다. 결단코 빼앗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2-13절.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이렇게 끝까지 싸워 이기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성전의 기둥으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둥에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탄의 속임수와 하늘의 음성을 구분 하며 결단코 흔들리지 아니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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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
요한계시록 3장14-22절 -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라오디게아교회)
라오디게아
소아시아 프리지아(부르기아)의 수도이었고, 알렉산더 대왕 사후 안티오쿠스 2세가 자신의 아내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라오디케아로 이름하였습니다.
에베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여 부유한 상업도시로 금융업과 양모업이 발달하였습니다.
히에라볼리의 온천수와 타우러스산의 차가운 물이 만나 프리지아의 돌을 형성했는데 이 돌가루로 만든 귓병과 안병의 특효약(콜로니온)이 유명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디오스폴리스', 즉 ‘제우스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히에라폴리스(성스러운 도시)
온천수에 포함된 소금과 미네랄 성분으로 인해 도시의 절벽이 하얀 석회질(탄산칼슘)으로 덮여있습니다. 파묵칼레 온천을 위해 로마인들이 건설한 도시이며 심장병과 신경통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병이 낫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묻히는 '네크로폴리스(죽은 자의 도시)'가 공존합니다. 원형극장은 최대 만 오천 명 수용 가능하며 이는 히에라폴리스의 인구가 15명이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1354년 대지진으로 도시 가 무너지고 메몰 되었고 후에 독일 고고학자 카르프만이 1887년 발견 및 복원하였습니다. 지금도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말씀]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4절.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주님을 소개합니다.
이사야 65:16-17
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진리의 하나님’ 히브리어로 ‘아멘이신 하나님’입니다.
‘창조의 하나님’ 나의 근본을 기억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5-17절.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세상의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 ‘돈이고 건강이고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의사 집사님을 둔 권사님의 고백이 생각이 납니다. 어느 날 의사 아들이 쓰러져 꼼짝을 못하게 되자 권사님의 고백이 ‘우리가정에는 기도가 없었다. 돈이 없으면 의사 아들을 찾고 아프면 의사 아들을 찾고 날마다 아들 자랑만 하니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가정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셨다.’라고 고백하시던 권사님이 생각이 납니다. 자녀가 의사이면 세상에서 구하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됩니다. 돈과 건강과 자녀가 잘 되는 것 모든 것을 얻었지만 하나님과 멀어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내가 존재 할 수도 없고 살아 갈 수도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없는 것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입니다.
에베소의 에바브라가 개척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금융과 직물과 의약산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그들은 주님으로 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재물로 부요함을 삼았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물입니다. 씻는 물은 히에라볼리 온천의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물을 끌어다 사용하였고 마시는 물은 골로새에서 끌어와서 사용하였습니다. 뜨거운 온천수가 라오디게라까지 오면서 식었고 미지근하여 마시는 물과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입에 넣어 보고 먹을 수 없는 물인 것을 알고 뱉어내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라오데게아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가슴이 뜨겁지 않고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며 하나님을 구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주님 양쪽에 물을 대고 있는 것이 라오디아교회의 영적인 상태였습니다.
골로새서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로새서 4:13-17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베소의 에바브라에 의하여 개척 된 교회입니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8절. 라오디게아는 금융 직물 의약 산업이 발달하여 물질적으로 부하였지만 영적으로 주님에 대하여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금융으로 부하다고 생각하는 라오디게아교회에 주님은 세상의 금을 버리고 불로 연단된 금을 사라고 하십니다.
값비싼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라고 하였습니다.
의약산업이 발달하여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님은 네 눈이 멀었으니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고 하십니다.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19절.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의 주제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책망하고 징계하심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사도요한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을 주신 것은 죄에 빠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책망과 징계는 나를 살리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녀가 아닌 길에서 보는 아이들은 책망하지 않고 할 수 없습니다.
요한1서 4:18-19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계시록은 부담되고 두려운 말씀이 아니라 쉽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멘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0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주님께서 우리를 토하여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거부하고 토하여 버린 것입니다.
라오디아교회는 세상을 택하고 그 안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토하여버린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먹이고 건강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1-22절. 이기는 자는 주님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일곱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싸워야 될 것은 황제의 핍박이 아닙니다. 우리가 싸워야 될 것은 내 안에 있는 탐심과 두려움입니다.
일곱 교회 안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하게 죄와 탐심과 두려움이 가득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황제의 군대에 무너진 것입니다.
황제의 군대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탐심과 두려움에 의하여 무너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이 주님의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예수님 아니고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무교병이 아니라 온갖 맛난 것과 온갖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케익과 같습니다. 안약을 발라 우리의 추하고 악한 모습과 벗은 부끄러움을 깨달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네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죽었다고 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가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날선 주님의 검이 내 혼과 마음과 생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고치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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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
요한복음 1:35-51 -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사도빌립 순교기념교회)
[요한의 두 제자]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35-39절.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 세례요한의 두 제자는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요한과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그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 하였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예수님을 따르는 요한과 안드레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구하며 사는 자인가요? 날마다 자신에게 물어야 되는 질문입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제자들은 ‘주님이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구하며 사는 자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주님이 구하시는 것이며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와서 보라’ 예수님은 첫 제자 요한과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면 보고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머무시는 곳은 압제당하고 병들고 낮고 천한 곳이며 연약하고 약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완악한 죄인이 머무는 곳입니다.
주님이 머무시는 곳은 사마리아와 열방 땅 끝입니다.
주님이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기를 원합니다. 아멘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0-42절. 요한의 아들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소개하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을 베드로(게바. 반석)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장차 게바라 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장차’ 게바 베드로 반석이라 하리라 하셨습니다.‘장차’는 지금 아니어도 반석이 되어 갈 것이라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누구도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40년 미디안광야에서 연단을 받고 모세가 되었습니다.
‘장차’라는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다]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4절. 사도빌립은 지금 터키의 히에라볼리(파묵칼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고 히에라볼리에 사도빌립을 기념하는 허물어진 교회가 있습니다.
매년 마다 단기선교팀과 함께 가서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빌립[Philip]
‘말(馬)을 사랑하는 자’란 뜻.
1. 사도 빌립(Philiptheapostle) - 갈릴리 호수 근방 벳새다 출신(요 12:21).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안드레와 함께 세례 요한의 제자로 추정된다(요 1:44). 나다나엘을 주님께로 인도했다(요 1:45-49).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보듯이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반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품을 가졌다(요 6:5).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목격하고(고전 15:5)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다(행 1:13). 말년에 소아시아의 브루기아에서 사역하다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Eusebius).
2. 집사 빌립(Philiptheevangelist) - 예루살렘 교회에서 헬라파 과부를 돕고 봉사와 구제를 위해 선발된 최초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행 6:3, 5).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행 6:5).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나자 유대인들이 배척하던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행 8장). 또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도중 에디오피아 여황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는데(행 8:26-40) 이 사건은 동북 아프리카의 복음 전파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주로 가이사랴에서 아소도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무대로 전도 사역을 감당하였다(행 8:40). 말년에는 예언자요 전도자인 네 딸과 가이사랴에 거주하였으며 선교여행을 마치고 귀향하는 바울 일행을 극진히 접대하기도 하였다(행 21:8-9). 그가 리디아의 트랄레스(Tralles)에서 감독으로 지내다 자연사했다는 견해와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했다는 견해가 있다.
(라이프성경사전)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5절.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신명기 말씀에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이며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빌립은 자신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소개하였습니다.
나다나엘도 구약의 말씀(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에 근거하여 오실 그 언약의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입니다.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6절.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나사렛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예언의 말씀으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한 것을 말합니다.
간혹 기독교인들의 이야기 가운데 무시하는 투로 이 말씀을 인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7:41-42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마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의 출생을 상세하게 기록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헤롯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셨다가 다시 올라와 나사렛에 정착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와서 보라’ 직접 행하고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은혜입니다. 믿음은 행함을 반드시 동반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2:14-22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와서 행하고 보아야 아는 은혜입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47-49절.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을 처음 본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며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께서 열방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전하기 위하여 먼저 택하여 부르신(예정론) 족속입니다. 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는 것은 거짓이 없는 왕의 마음입니다. 모세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편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간사함이 없는 마음으로 살면 바보취급 당하며 굶어 죽고 왕따 당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이 말씀 한 마디에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구약에서는 제사를 지내거나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무화과 나무아래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메시야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던 자입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이었을 것입니다.
나다나엘[Nathanael]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뜻. 빌립의 소개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갈릴리 가나 사람(요 1:45; 21:2). 처음에는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의심했으나(요 1:46) 예수님의 영적 통찰력을 발견하고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였다(요 1:47-48). 후에 디베랴(갈릴리) 바다에서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요 21:2). 한편 그의 이름이 사도들의 명단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바돌로매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인도와 아르메니아 지방에서 전도하다 살갗이 벗겨지는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라이프성경사전)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50-51절. 나다나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구하는 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간절히 구하고 만나기 원했던 주님을 만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야곱이 꿈에서 본 환상입니다.
창세기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그 곳을 향하는 사닥다리가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왕래하였습니다.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주님을 만난 자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은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가장 큰 일을 보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크신 은혜로 내가 살았습니다.
나다나엘(바돌로매)은 빌립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 나도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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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