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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에 부른노래
미니스커트가 처음 나와 멋을 아는 처녀들이 입고 다니기 시작하던 시절 이였지요.
그 시절 농촌에는 智 德 勞 體 라는 슬로건으로 4 h 라는 단체가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시골의 젊은 남녀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배움과 봉사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며 젊음을 나름 누리던 때 이였습니다.
동년배들은 공부를 더 하기위해 도시로 유학을 가거나, 공장 등 직장을 얻어 자기의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가고 고향에 남은 저희 또래들은 배움은 부족하지만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 이웃들과 품앗이 하며 농사를 지으며 낮이면 밭에 나가 길 삼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매끼 꼬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려 했지요.
그 시절 추석이 되면 활발한 4 h 활동을 하던 우리는, 짚 공으로 축구를 하고 씨름도 하던 어느 조상님의 묘지 앞 넓은 곳에 가 설 무대를 만들어 놓고 콩 클 대회(노래자랑)를 열었었지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이 미자 님 의 ‘울어라 열풍아’가 유행하던 시절 은 우리들의 마음을 가수 분들이 달래 주었다 하겠습니다.
콩 클 대회를 치루면서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그 시절 이웃동네 4 h 들은 기타 하나나 둘로 노래자랑을 진행 하였지만 우리는 다행히 김포 농고에서 밴드 부장을 하던 또래가 있어 드럼, 기타, 섹스 폰까지 갖추어 놓고 행사를 하였으니, 지금이야 별 볼일 없겠으나 그 시절 내 고향 지 랏(질 앗)은 그야말로 주변 동리에서는 볼 수 없는 멋과 날만이 있는 마을 이였지요.
그 시절 트렌지스터 라듸오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청소년들의 선망의물품 이였습니다.
그 귀한 라듸오를 일등 상품으로 내 걸었으니 노래를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남녀 젊은이 들은 물론이고, 그 시절 가설극장은 마송이나 하성에 어쩌다 오기는 했어도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마땅한 놀이가 없으니 주변 어른들도 묘지 앞 공터에 모여들어 3일간을 함께 축제를 즐겼습니다.
주체 측 인 우리는 일등 상품을, 쌀 한 가마에도 살까 말까한 터무니없는 상품을 걸어놓고 고민을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ㅎㅎㅎ...)
마침, 담터 해병대 헌병대 대원들이 우리를 찾아와 흥정을 하더라고요. 자기네들 에게 일등을 주면 상장만 받고 상품은 돌려주겠다는 조건입니다. 물론 우리도 기분 좋게 합의를 해 주었습니다.
합의는 했어도 걱정은 여전히 남아 우리는 밤낮으로 모여 궁리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상품을 돌려준다고는 했지만 그 시절 해병대는 누구도 대 들지 못하는 거북한 존재들인 걸 모두는 알고 있을 겁니다. 행사 날은 다가오는데 ...
그 시절 저희 아버님께서는 회갑이 아직 몇 년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병인 해수병으로 사랑방에서 골패나 화투로 손위 분들과 어울려 세월을 보내고 계셨지요.
아버님께서 애용하시던 물품“목침”(나무로 만든 벼 개)이 저희들을 살렸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듸오 대신 같은 부피의 목침을, 좋은 포장지로 포장해서 상품으로 주기로...( 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칭찬해 주세요.)
지금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내어놓고 태연하게 행사를 진행하는 우리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표 팔아서 4 h 자금 만들어 놀러 도 다니고 동네 새마을 사업도 돕고...
다른 또래들은 무대에 올라 제마다 목청을 돋아도 나는 바빴습니다. 동리 이장님, 새마을 지도자님, 반장님 등 을 모셔놓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동리노인들께서 자리에 남아 해결해 주십사하고....
즐거운 노래자랑이 끝나고 시상을 하기 전, 드럼 등 악기를 미리 행사장에서 빼내고 노인 회장님에게 상장과 상품을 수여하게 하고... 또래들은 숲속에 숨어 눈만 뺀질뺀질하게 내어놓고 지켜보기로.. ( 겁많은 또래는 아예 도망을 갔겠지요)
모든 준비를 끝내고 누구도 보면 놀랠 상품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수여를 했습니다. 일등을 한 해병대 대원들은 약속을 어기고 상품을 들고 줄행랑을 놓고 우리는 숲속으로 도망을 가고야 말았습니다.
해병대들이 남정 골 서낭당 고개에 올라 달빛에 상품을 뜯어보니 때가 반질반질한 알 수없는 물건이 그들 손에 쥐어졌으니 얼마나 황 당 했을까요. 그들이 일개 분대 병력으로 행사장을 찾았을 때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인 몇 분만이 묘지 앞에서 한담을 나누고 계시니
어쩌란 말 입니까. 휘 엉 청 보름달빛만 밝은데...
그때 열아홉, 나도 좋아하던 노래, 울어라 열풍아... 물론 일등을 한 해병대의 노래도 이 미자 님 의 울어라 열풍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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