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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주시보 최영식님의 기사는 우리 카페 팔팔삼님이 쓴
기사들입니다. 그래서 정론직필이 대신 여기 게시판에 옮겨둡니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1139§ion=sc3§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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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식의 북녘생활]나의 군생활2 | |||
기사입력: 2018/08/08 [13: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제가 중대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동기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훈련은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고 훈련이 끝나면 몸은 땅속으로 잦아드는 것 같았습니다. 신입병사이니 전체분대가 관심가지고 돌봐주었지만 내몸이 힘든건 누구도 도울 수 없었지요.
특히 훈련 중 방독면 쓰고 2킬로를 주어진 시간 안에 구보로 돌파하고 나면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시간 안에는 누구도 저의 무기나 장구류들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실전 시에는 나를 돕는게 아니고 죽으라는거나 마찬가가지라는 것이 분대장, 구대원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철봉, 평행봉 6종은 군인이라면 꼭해야할 기본동작이었기에 그걸 익히느라 진땀 흘렸습니다. 참고로 철봉, 평행봉을 못하면 북에서 군대생활 못해본 사람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훈련하던 어느 날 식당으로 밥을 먹기 위해 이동하던 중 다른 중대와 겹치게 되었습니다. 북녘 군대에서는 신입병사는 전사의 군사칭호로부터 시작되고 대열에서는 분대의 제일 뒷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식당 앞에서 대열 맞추어 기다리는 동안 옆의 중대를 곁눈질해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분명히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빨간 전사견장을 달고 저처럼 뒤에 꼿꼿이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이상하여 바라보니 그분도 저의 시선을 느꼈는지 저를 돌아보더니 웃음을 지었습니다. 당황했지만 함께 웃음을 지어준 후 바로 1년 선배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기 이상한 전사가 있다고ᆢ 그러니 선배가 웃으면서 전사생활 내려온 군관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당시는 뭔 말인지 이해를 못했지만 그 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북녘 인민군의 오랜 전통에 따라 련대장, 정치위원 이상 지휘관들의 전사생활 체험을 한해에 한 달 이상씩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분들은 최소 20년 만에 다시 전사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북녘은 통신부대, 군의소 같은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부대지휘관은 병사시절을 거치지 않은 사회대학 졸업생들도 있지만 전투부대지휘관은 100% 전사부터 시작하여 군관학교를 졸업한 알짜배기 군인들입니다. 전사생활 중인 그때 그분은 다른 려단의 정치위원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절을 포함하여 지금껏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선각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책을 통해서도 배우고 깨달은 것이 많지만 직접 체험하며 깨달은, 깨달음의 깊이가 훨씬 깊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정치위원의 웃음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고 배고파하는 저에게 자신의 몫을 반씩이나 덜어주던 분대장과 구대원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그런 분들이 오늘도 북녘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런 분들의 자식들이 지켜가고 있는 북녘입니다.
처음 남쪽에 왔을 때 주변에는 북녘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는 사람들 뿐이라 참으로 서글프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안에 붕괴한다고 방송언론은 하루 종일 떠들어대고 사람들도 그런 것으로 대부분 믿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많은 남북교류와 최근의 판문점정상회담으로 북녘에 대해 관심 갖고 올바로 아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기본적인 자세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북녘사람들의 머리에는 뿔이 있다는 황당한 거짓도 진실로 믿었던 그 시대를 생각한다면 오늘의 현실은 분명히 진보하였습니다. 저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합니다. 북녘에서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남녘의 동포들이 머리에 뿔났다거나 경멸하고 쳐부수어야 할 대상으로 교육 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 교육도, 집이나 동네어르신들의 말씀도 언젠가 하나가 되어야 할 동족이며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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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1161§ion=sc3§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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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식의 북녘생활] 나의 군생활3 | |||
기사입력: 2018/08/14 [16: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런 굴곡도 없이 올바르고 곧은 길만 가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고 ᆢ빠르게 철들고 각성하여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젊은 시절을 헛되이 보내는 것도 모자라 안 좋은 일에는 항상 이름을 알리며 살아가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역경과 고난은 인간을 빠르게 각성시키고 철들게 하지만 인간의 됨됨을 정확히 판단하게도 하지요.
저자신이 나라가 근심걱정 없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갔었고 고난의 길을 걷는 그 시절에는 헛되게 청춘시절을 흘러 보낸 인간이고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행하던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어느 순간 저 자신을 되돌아보니 하늘을 쳐다보기도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무안함을 안다는데 그래도 사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제가 어찌 짐승보다야 못하겠습니까.
이 글은 분명히 탈북자들도 볼 것 입니다. 그들 중 자신이 나서 자란 그 땅을 비난하고 헐뜯으며 저주하는 소수의 탈북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그 땅에서 살고 있었을 때 단한번이라도 나서 자란 고향, 사회와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적이 있었습니까? 단한번이라도 그 좋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정이 넘치는 웃음과 정다운 눈빛을 받아 본 적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마지막 한 조각 양심은 남겨두길 바랍니다. 없었다면 그 좋은 사람들로부터도 사람취급 받지 못한 자신의 떳떳치 못한 인생을 돌이켜 보기를 바랍니다.
몇 년 전에 인터넷상으로 북녘에서 3년형을 받고 교화소 생활한 걸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여성 북한 인권운동가라는 인간과 말싸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정말 웬만한 나쁜 짓을 해도 남자들도 들어가기 힘든 교화소를 여자가, 그것도 3년 씩 이나 형을 받았다면 나는 당신의 북녘생활을 알만하다 했더니 아무런 말없이 사라지더군요.
범 무서운 줄 모르던 하룻강아지도 나이 먹으며 철이 들어가는데 하물며 인간으로서 나이 값은 해야지 않겠습니까.
저는 군 생활 하면서 눈 많이 오는 아침에 기상하여 운동장에 나와 보면 중대장, 정치지도원, 소대장들이 벌써 눈을 반쯤 치운 것을 보고도, 명절 때가 되거나 훈련 중 쉬는 날이 되면 군관부인들이 밤새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고도, 공사할 때면 없는 살림에도 죽이라도 끓여가지고 나와 군인들에게 먹이던 군관들의 부인들을 보면서도 그 모든 것이 어떤 나라 군대에도 당연히 있는 현상인줄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중대장집 근처로 지나다가 땔감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 분대장과 구대원이 산에서 땔감을 구해다 주었는데 중대장이 그분들을 그렇게 혼내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혼이 났는데도 말년인 분대장들이 가끔씩 땔감을 군관가족들에게 몰래 해주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글은 군 생활했던 탈북자들도 보기에 한 점의 거짓도 없이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쓰고 있습니다. 제 글에 반박할 탈북자들은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면 저는 보석덩이 하나를 놓고 평가할 때 보석 그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지 몇 퍼센트의 불순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태여 불순물들만 원한다면 그런 탈북자들이 쓴, 그들 자신들이 행했던 온갖 나쁜 짓을 마치도 북녘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쓴 글은 너무도 많으니 찾아보시면 됩니다.
물론 불순물이었던 저도 배겨나지 못하고 남들은 10년을 자랑스럽게 보낸 군 생활을 3년도 못하고 퇴출되었습니다. 북녘에서는 생활제대라고 합니다. 남녘에서 불명예제대나 비슷할 겁니다. 북녘에서는 생활제대가 아주 치욕적인 일로 여겨집니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부끄럽고 창피한 일입니다. 저의 죄명은 절도였습니다. 부대 식량 절도해 가지고 담배, 술과 바꾸고 또 들켜가지고 미수에 그친 일도 있습니다. (물론 20 리 밖에서 사라진 어떤 물건까지 제가 뒤 짚어 쓴 건 좀 억울하기는 합니다.)
북녘군대는 항일빨치산 전통을 이어받은 군대입니다. 항일빨치산 대원들은 누가 등 떠밀어서 그 길에 나선 것이 아닙니다. 강제로 징집된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영하40도를 오르내리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은 얼어서, 굶어서 죽어가면서도 동지들에게 자신의 옷을 벗겨주고 자신의 몫으로 차려진 강냉이 한줌도 숨겼다가 동지들의 입에 넣어준 인간으로서 도달하기 힘든 가장 높은 도덕적이고 고귀한 인간애, 동지애를 후손들에게 전통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통의 군대에서 동지들이 먹어야 할 식량절도해서 담배, 술을 바꾼 저 같은 부도덕한 인간이 용서가 되겠습니까. 도저히 그런 집단에 있을 자격이 안되는 거지요.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할 때면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에 통증이 밀려 올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군사복무1년은 정말 모범적으로 하였습니다. 중대에서 신입병사 8명중 제일먼저 상등병칭호도 받았고 소대장도, 하사관들도 칭찬 많이 해주었습니다. 사관장(중대하사관들중 최고직무)감이라고 중대장 앞에서 칭찬해주던 소대장 모습이 가끔씩 떠오릅니다.
내가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저는 이미 정신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살아가다보니 저 같은 인간도 철이 들고 깨달을 때가 있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받습니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잘못은 생각안하고 모든 것을 나서 자란 그 땅의 탓으로 돌리며 그 땅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도 자랑으로 떠벌이며, 그 대가로 밥벌이해가며 살아간다면 그렇게 가련한 인생 또한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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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식의 북녘생활] 나의 군생활 4 | ||||||
기사입력: 2018/08/21 [16: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북녘에서는 군사복무가 공민의 신성한 의무이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불이익은 없습니다. 군대가 아니라도 공장, 농장, 탄광, 청년돌격대 등 여러 분야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곳에서 열심히 일하다보면 군사복무한사람 못지않게 인정도 받고 당원도 되고 하지요.
다만 그 사회에서는 어딜 가도 제대군인인가 아닌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저처럼 생활 제대한 인간들은 차라리 군대안간 사람들보다 못하지요. 처녀들도 결혼상대가 제대군인인가 아닌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졸업하고 바로 대학을 가는(대부분 이공계, 교원대, 사범대)청년들은 상관없습니다. 정세가 긴장해지면 이런 대학생들도 군 입대를 탄원하기도하고 실제로 입대한 대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북녘에서는 군대를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다 보내는 건 아닙니다. 학교 담임선생님, 소속된 청년조직의 보증과 추천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경 쓸 정도로 시력이 안좋으면 군대 못갑니다. 북녘군대는 안경 쓴 병사, 하사관, 초급 지휘관들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나가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생활 1~3년 정도 하다가 입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각 시, 군마다 있는 고등물리학교(군사학교라고도 불림)에서 2년 공부하고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군사복무가 3년이 지난 병사, 하사관들 중 도덕과 품성이 바르고 자질이 뛰어난 군인들을 군관학교로 보냅니다. 고등물리학교 졸업하고 입대한 청년들은 2년 이상 병사생활을 모범적으로하면 대부분 군관학교를 보냅니다.
북녘군대는 영창이라는 게 없습니다. 60년대까지는 있었다는데 그때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제가 있을 때는 없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또한 북녘군대도 젊은 청춘들의 집단이라 주먹이 날아다니는 일들이 없을 수 없습니다. 특히 동기, 1년차끼리 주먹싸움이 있지만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리고 북녘군대는 일방적이고, 치욕적이며 자존심에 상처 입히는 상관에 의한 하급자에 대한 일방적인 폭행, 구타가 일어날 수 없는 체계 입니다. 중대에는 당세포와 청년동맹조직이라는 정치적 조직이 존재합니다. 두 조직은 모든 군인들이 군사복무를 잘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게 이끌어주고 도움을 줍니다. 또한 중대의 모든 군인들을 친형제로, 중대는 한가정처럼 유지하기위해 많은 정성을 들입니다. 그렇다고 상관의 폭행사건이 완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딜 가나 말썽꾼들은 꼭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제가군복무를 할 때에도 어떤 소대장이 소대 병사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그 소대장은 저처럼 생활제대 되었습니다. 도저히 그런 건 용서가 안되는, 용납할 수 없는 집단이고 그런 인간들은 배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북녘군대에서는 자신보다 많이 늦게 입대한 군인이 먼저 분대장이 되는 일도, 먼저 더 직급이 높은 지휘관이 되는 일도 많습니다. 도덕적이고 올바른 품성을 소유한데다 뛰어난 지휘능력을 갖추면 누구든 인정하고 당 조직도 알아보기에 자신이 설자리에 서게 되는 건 당연한 거라 봅니다. 항일빨치산시절부터 뛰어난 지휘관들은 자신보다 훨씬 선배들도 부하로 거느렸고 그런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북녘군인들로서는 이상할 것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북녘군대에 뿌리내린 당조직, 청년조직들은 한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하고 분기, 연말마다 생활총화 및 사업총화보고를 합니다. 생활총화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동지들 앞에서 털어놓고 고쳐나가겠다는 결심을 이야기하는 것과 함께 다른 동지들의 잘못도 비판합니다. 사업총화보고는 조직책임자가 조직이 결정한 과업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못했는가를 조직 앞에 보고를 하고 잘한 일, 잘못한 일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앞으로의 방향과 과업을 제시하고 결정합니다. 또한 조직은 조직성원들의 능력에 따라 개별적으로 분공을 줍니다. 생활총화는 학생 때부터 했지만 군대 때는 심리적으로 많이 긴장되었습니다. 학생 때에는 같은 나이 또래였는데 군대에서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지들과 하니 그래도 튀는 인간은 꼭 있기 마련이라 병사가 6~8년 이상 선배인 분대장에게 똑 부러지게 비판하는 것도 속 졸이며 지켜보았습니다.
자아비판도 잘하고 호상비판도 잘하는 사람, 이것도 저것도 잘 못하는 사람, 자아비판은 잘하지만 호상비판을 잘못하는 사람도 있고 자아비판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입안에서 웅얼거리다가 남을 비판할 때는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맵짜게 비판하여 입 딱 벌어지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독립중대가 아닌 대대지휘부와 함께 하는 중대에서 군복무를 하다 보니 두 달에 한번정도 분대가 식당근무를 하여 식당에서 음식도 만들고 하였습니다. 북녘군대는 군관과 병사식당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음식도 한가마에서 똑같이 만들어 낸 거라 지적받지 않으려고 솜씨를 발휘하던 분대장 생각도 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군관식당과 병사식당이 따로 있고 먹는 것도 다른, 그런 나라들이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군대라면 어느 나라나 똑같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짧은 군대복무를 하면서 제일 짜증날 때는 남쪽에서 미군과의 합동군사 훈련이 있을 때입니다. 그런 때에는 밤에 신발 벗지도 못 하고 잠을 잤으며 하루에도 폭풍(비상소집)을 3번씩이나 한 적도 있었습니다. 비상소집하여 1차대피소까지 5분 안에 도착하여야 했으며 미군의1차 공격이 끝난 것으로 판단되면 바로 이동하여 10분 안에 소대갱도(벙커)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1차 대피호도 소대갱도도 핵 타격을 대비하여 산중턱의 암반을 뚫어 만들어 놓은 곳이라 그곳까지 무기장구류를 착용하고 정신없이 뛰어 올라가면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걸 하루에 3번 그것도 밤에 자다가 두 번 할 때는 정말 열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럴 때에는 미국이 이가 갈릴 정도로 증오스럽고 미웠습니다. 이제는 미국이 훈련을 중단(훈련 중단하게 된 이유야 다들 알겠지만)하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올바르게 살지 못한 인생이지만 북녘의 형제자매들이 더더욱 강해지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행복해져가고 있으니 너무도 기쁘고 기쁩니다.
저는 저의 글을 읽어보는 모든 분들께 확실하게 이야기합니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곳을 지켜가고 있는 동족들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통일을 염원하는지, 얼마나 민족을 사랑하며 조상들이 물려준 그 강산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1383§ion=sc3§ion2=
첫댓글 참다운 인간의 의리로 군생활을 하는 대조선 군인들의 모습을 보니 저 간악한 양이들의 어떠한 제재도 소용이 없음을 확신하며 통일조국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미가 넘치는 대조선의 정신을 보니 미래의 통일조국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지구상의 모범국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런 나라에 도대체 어떻게 "관행적" "인권 유린"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지...
그렇게 떠들어대는 찌라시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가 결코 잘못될 턱이 없다고 봅니다.
그런 나라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며, 세상에 우뚝서게 되는 날이
머지않아 곧 오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정론직필 모든 세상이치가 첫 시작이 중요합니다,사람도 태어나 첫3년이 인생의 모든 기초가 되지요,남과 북의 차이는 해방후 첫 정치세력의 차이가 이렇듯 서로 엇갈린 세상을 만들고 말았던게 아닌가합니다
고맙습니다.
몇년 전 조선일보가 '요덕 스토리'라는 것을 미국과 짜고 헛소리 떠들어 대는 꼴 보니 반드시 이것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사는 세상이구나
팔팔삼님이 선생이셨군요. 그랬었군요. 팔팔삼님 카페글들은 카페가입시 모두 때로는 반복해서 읽어 보았는데(그 잔존효과가 아직도 마음에 생생 - 뿌리와 출발이 너무나도 중요), 최근 자주시보에 올리신 글들도 매일 반복해서 읽게되 ....(김련희씨 글과 함께, 기타 몇 분의 글들도, 그 외에도 여러분 있고). 어느 비판적 사고로 명망있는 분이 최근 태영호씨 글을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이게 아주 무서운 것임) 자본주의적 시각(길들여진)과 이른바 그 아비투스에 기반해서 여기와 비교하는데 내내 마음 속에서 선생과 김련희씨 글이 함께 읽혀지더군요. 덕분에 '배임횡령으로 탈북(일반 인민은 물론이지만 특히, 간부로서 북조선체제에서는
용납불가한,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행동이라는 것)'한 사람의 글이 남한식 사고 내지는 잣대(혹은 아비투스)로 쓰였는데도(결국은, 일종의 남한체제·지배층의 불합리점들에 대한 합리화로 이용되는 듯한 아니면 생존위해 알아서 처신하는 듯한 의구심이 들기도 - 내 시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불구하고 그걸 읽는 이도 글 속에 숨겨진 그 무엇을 보지 못하고 같은 아비투스로 읽는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그걸 논해보려도 논자가 아직은 일방적이라서 ... 어느 독자의 말처럼(또, 김련희씨처럼) 책으로도 다양한 글들이 엮어 나올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자신이 북에 있을 때에 생활제대군인이였던 사실도 숨김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참 솔직한 분이시네요
북의 군대들은 제대될 때에
만기제대
감정제대
생활제대 등 대체로 세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만기제대는 말그대로 병사생활기간을 만땅으로 채우고 하는 제대
감정제대는 병 부상 등으로 건강검진및 감정소견을 받아서 하는 제대
생활제대는 말 그대로 상하관계나 동지호상관계 군민관계 등에서
돌이킬수 없는 과오가 발생하였을 때 그 엄중성에 따라 하는 제대
그런데
제대군인들의 99.999%는 만기제대자들이지요
만명에 한두명 정도가 감정제대 생활제대군인이지요
북녁의 조선인민군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세계 어느나라 군대에 비교해도
사상의지력이나 단결력이나 전투력에 있어서도 단연 으뜸일것입니다
전에 중국에서 군복무를 한 조선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였었는데
중국군에서도 때리기도하고 하급이 상급의 빨래를 해주고
밥도 챙겨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적이 있었는데
상급이 하급에게 사생활적인 빨래 밥 등 심부름을 시키는것은
인민군에서는 볼수 없습니다
상급이나 구대원이 하급이나 어린대원을 때린다면 생활제대되거나
강등되여 전사(무급)가 되여 마지막 대원이 되기도 하지요
@kbsns 안녕하세요? 팔팔삼님글을 댓글까지 재탕해 보다 보니 kbsns님 고향이 함남 단천이라고 나와 그때서야 탈북동포인지 알았습니다. 그 외 활동 안하시는 분들도 이제야 ... 어찌 살아보신 듯 구체적으로 얘기하셔서 혹시나 했었고요.. 많은 사실을 알고 있고 알려고 적지않은 시간 노력해 왔지만 이 사회의 모순이 갈때까지 간 형태로 극심해서 그 속에서 사는 한은 가끔 정신줄을 놓칩니다. 읽기만 해도 기분 좋은(다른 한 구석으론 여기 현실이 비참하기도 하고)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하고 오랫동안 대화하며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이틀은 탈북동포들의 글읽기에 빠져있어요.
우리 카페에 탈북자분들이 여러분 계시는데....
앞으로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북에서의 경험담 등은
이제 의미가 없어질 겁니다.
왜냐면 남측에서 북에 직접 가서 사람들이 직접 살펴볼테니까요.
그러나 아직도 남북교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그러나 아마 조만간 남북교류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인데...
그런데 찌라시들은 아직도 북측을 헐뜯는 폄하적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지금이라도 북측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내용들을
우리 카페 탈북자 회원님들께서 써주시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우선, "진실뉴스" 기사로 쓰면, 여기 우리 카페로 퍼오는 방식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보입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8.23 14:37
고참 빤스 빨아주던 마지막 세대입니다.
집합 없는 날은 더 긴장했습니다.
자다가 집합 당했으니까요.
읽고 보니 지난 군생활이 떠오릅니다.
^^
그런 훌륭한 군대가 지구상에 있다는 것에
감동스럽고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