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작 쿵작, 쿵자자 쿵작, 따다다다단다'로 반복되는 트로트리듬 모티프에 유랑극단 혹은 집시음악을 환기하는 트럼펫, 심벌, 아코디언, 현악기의 합주가 인상적인 '한강찬가'에서 봉준호 감독의 의향을 반영한 이병우의 음악적 유희가 확연히 드러난다. '괴물'에게 납치된 딸 현서를 구출하기위해 병원을 탈출해 도주하는 장면에 삽입된 이 테마곡은 강두네 가족의 코믹 시추에이션과 맞물려 웃음 짓게 만든다.
그 안에는 그러나 사회적으로 절대약자의 편에서 자체의 힘만으로 험난한 상황을 헤쳐 나가야하는 가족의 서민적 애환이라는 특수정서 내에서 세계적 경찰국가인 미국과 부정부패공화국 대한민국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해체시키고자 한 봉준호식의 냉소적 의도가 다분히 내재되어있다. 영화음악을 맡은 이병우는 그러한 감독의 지향성과 부조리한 영화시스템의 자가당착적 요구에 적당히 타협해 음악작업을 순조롭게 풀어나갔다.
딸을 구해보겠다고 발버둥 치듯 달아나는 가족과 뒤따르는 경찰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음악설정이 아닐 수 없으나, 한국적 정서와 교묘히 접속한 이 멜로디와 리듬을 주제로 여러 갈래로 변주하고 재현해 낸 이병우의 음악은 시종 동일한 감정의 흐름을 유지하며 영화의 내러티브적 메시지에 헌신한다. 차라리 영화전체에 음악을 깔아도 무방하다고 본 원래의도를 장르적 컨벤션에 합당한 차원에서 고집스럽게 밀어붙였으면 결과물이 어땠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만큼 이병우의 음악이 영화의 텍스트 안에서 제구실을 거의 못하고 있다는 거다. 감독이 표현하고자 한 영화의 원초적 감정에 어느 정도 부응하는 것은 좋으나 이건 아니다 싶다. 제 1,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현악기를 주체로 피아노와 트럼펫, 오보에를 첨가한 실내악(Chamber Music)편성에 퍼커션과 컴퓨터미디음악만으로 최대한 한국적인 분위기로 일관해 가져가려 한다.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추종하는 걸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음악의 외관이나 느낌 자체를 배제하고 오직 영화에 담긴 무비디렉터의 관점과 지향에 꼭 맞는 맞춤형음악의 재단이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의한 덩치 큰 사운드의 과잉이나 전자음악의 현란한 톤에서 비롯될 수 있는 할리우드적 심포닉 사운드의 거창한 윤기를 쫙 빼버린 거다.
음산하고 불길한 몽환적 컴퓨터미디음악 사운드와 저음과 고음을 가르는 스트링의 어둡고 기괴한 음조로 괴물이 주는 무드를 간결하게 규정지으면서 일체 완고한 톤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여버린다. 진부하고 촌스러움, 회상적인 특유의 낭만성을 주선율로 한 두곡정도의 테마음악을 가지고 극적인 효과를 투영해내려는 일련의 작곡방식 중 하나가 그 타협적 음악성향 안에서 충실히 재현되어 나타난다.
괴물의 오프닝에 삽입된 '프롤로그-드넓은 한강, 괴물은 자란다.'와 장재형('왕의 남자',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주제가를 부른)의 노래버전으로도 재현되는 '한강찬가'의 변, 복주가 영화 전체의 분위를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장면과 음악은 영화의 엔딩에 삽입된 '눈오는 매점'이다. 기타리트로서 내재되어 있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고전적 감상성이 가장 잘 투영되어 나타나는 이 장면의 트랙에는 피차카토 스트링과 이병우의 클래식기타연주 화음이 중반부터 가세하는 현악반주와 더불어 한층 더 실내악적인 분위기로 드라마적인 감성적 차분함과 평온을 극명하게 전해준다. 딸 현서의 보호로 목숨을 구한 고아 세주를 향한 강두의 인간적인 훈훈함에 초점을 맞춘 테마음악이다.

[연애의 목적]을 기점으로 [왕의 남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분홍신], [호로비츠를 위하여] 그리고 이번 [괴물]에 오기까지 영화음악가로서 그의 행보는 너무 숨 가쁘다. 서정적인 본바탕에 실험성을 가미해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던 [흡수]앨범 이후 과도하게 밀려든 영화음악 작품은 대부분 정서적인 면에 치중돼 있다. 그러다보니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못한 감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욕을 제대로 다 보여주지 못한 감이 없지 않더라도 국내에 국한된 게 아닌 지구촌 다수관객의 감동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에 걸 맞는 음악적 감흥을 전해주어야 할 책무를 다 해줬어야했다. 이태리의 장인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처럼 감수성 깊은 음악을 추구하는 그가 영화음악가로서 다작의 다 장르 영화에 능통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련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적당한 자기복제도 좋지만 폭넓고 정확한 영화읽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면 독립앨범으로 볼 수 있는 것이지 영화를 위한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괴물]의 사운드트랙이 꼭 그렇다. 블록버스터의 마스터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영화감독이면서 왜 소리의 마술사로 인정받는지 다시금 되새겨보게 하는 영화 그리고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