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억의 태협이 돌아가다 초등학교 3학년 때에서 멈추어 섰다. 우리 집은 시장통에서 어물전도 하고 쌀가게도 했다. 덕분에 시장통은 나의 놀이터였다. 호기심 많은 나는 친구들 집을 오가며 놀기에 바빴다. 장사로 바쁜 부모님은 나를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들이랑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며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꽁꽁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타다 살얼음에 빠져 바짓가랭이가 흙으로 범벅이 되기도 했다. 피부는 늘 터실터실해지고 손은 터서 빨간 실금 사이로 핏기가 보이고 동상이 걸릴 지경이었다. 여름이면 동네 언니오빠들이랑 따가운 햇볕을 가로 질러 냇가로 달려가 멱을 감고 동글납작한 돌을 쌓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자주 산을 누비며 칡잎사귀를 뜯어다 토끼에게 먹이고, 어떨 땐 말벌집을 건드려 줄행랑을 치다가 개울물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나는 늘 에너지가 넘쳤고 당당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욕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했다. 이런 나에게 엄마는 ‘선머스마’라고 핀잔을 주시고, 아버지는 ‘조심성 없는 가시나’로 점찍어 버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오십 평생을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기억이 실패의 실처럼 줄줄 딸려왔다. 이렇게 어릴 적 기억을 하게 된 것은 표현예술치료 ‘몸을 통한 표현’ 과정 덕분이었다. 이 과정을 이끌던 C는 처음에 언어가 아닌 몸으로 자신을 표현해 보라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무엇인가 나의 앞을 탁 막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활기를 찾고 나도 모르게 팔을 하늘로 뻗치고 다리를 벌리고 뛰어 오르는 동작을 반복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의 파트너는 ‘활기찬 모습이 한 없이 도약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안에서 늘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솟구치고 있었다.
두 번째 활동으로 C는 우리에게 천천히 익숙한 동작과 낯설거나 불편한 동작을 하라고 지시했다. 내게 익숙한 동작은 천천히 사색하고 주변을 관찰하는 동작이었다. 낯설고 불편한 동작은 바쁘게 무엇인가를 하고 남을 질타하는 동작이었다. 이런 동작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는 짓궂게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기웃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사물을 살펴보았다. 급기야는 내 앞을 걷고 있는 K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불량스런 표정으로 한쪽 다리를 건들거리면서 한쪽 손을 허리춤에 대로 또 다른 한손으로는 삿대질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K도 나의 이런 동작에 맞장구를 치며 살짝 토라진 표정으로 응대해 주었다. 다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행동을 하고 있으니 신이 났다. 나는 껄렁껄렁한 불량배처럼 맘대로 행동할 때 자유로움을 느꼈다.
전체 과정을 마치고 나의 파트너는 자신의 느낌을 말해 주었다. ‘명랑하고 쾌활하고 장난기 많고, 호기심 많고 무엇인가 도약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그러고 보니 바쁜 일상을 살면서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무의적으로 어릴 적 자아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 즐겁게 하던 대로 할 때 진짜 행복을 느낀다. 그러니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어린 시절을 탐색해 보는 것이 좋다. 나는 ‘몸을 통한 표현’을 통해 ‘남의 눈치 안보고 신명나게 잘 놀고, 거리낌 없이 욕도 하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어릴 적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진정으로 나답게 사는 법을 찾을 수 있는 단초가 여기에 있다.
첫댓글 개구장이 아닌 어린이가 있을까요? 부모님이라는 울타리아래 세상은 아무런 의심없이 안전하게 돌아가고, 학교숙제 조금 하고나면 온통 노는일로만 하루를 살았던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개구장이들이었지요. 해가 긴 여름밤,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 노는랴 어른들의 초저녁잠을 방해하기도 했지요. 고무줄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는 기본이고 전봇대를 골대삼아 축구도 하고,, 술래잡기놀이의 쫄깃쫄깃함은 지금도 생생히 느껴집니다.. 아, 생각해보니 그 때 그 시절 모든것이 허락되던 그런 행복한 시간이 있었네요.
우리 모두 어릴적 공통된 추억을 가지고 있네요. 천진한 그때를 회복해 가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행복과 맞닿을 것 같아요.
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곰곰히 생각해봅니다~생각외로 어디에서 여행을 간다던지 함께 즐기는 곳에서 늘 외톨이 처럼 앉아있고 모두가 웃으면 즐기는 속에서 멍하니 잘 있는 이모습이 저의 모습인지 가끔 제 자신도 의문스럽습니다. 나의 본연의 모습을 찾고 싶다다는 생각이...
선생님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써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