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父子) 추억 만들기 여행 – 아일랜드(2)
(아일랜드에 가서 아일랜드 시골 사람 스타일 모자를 쓰고 한 컷)
더블린 시내 중심가에 다니엘 오코넬(1775-1847)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랍니다. 영국의 개신교, 성공회의
탄압을 받아 100 년 동안 카톨릭 교도는 아일랜드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게 한 금지의
벽을 깼다고 합니다. 또한 아일랜드를 영국에 합병한 영연방법 폐지운동을 했답니다.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 다니엘 오코넬의 동상)
시내 관광 요금을 내면 버스를 얼마든지 타고 내리고 하면서 곳곳을 구경할 수가
있었습니다. 세인트 패트릭 교회를 지나가며 봅니다. 아일랜드 수호성인으로
4세기에 로마로 가서 이곳, 대륙을 떠난 영국의 섬들로 기독교를 최초로 전래한 사람입니다.
(아일랜드 수호성인 세인트 패트릭 기념 교회라고 합니다. Jonathan Swift가 이 교회 사제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트리니티 대학)
(사무엘 베케트가 불어, 이태리어와 영어공부하고 가르쳤던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교정에서.)
이와 같은 오랜 캐톨릭의 전통이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백년 된 그림으로 그린 성경 이야기 책)
우리와 일본과는 달리(?)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은 깊은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입니다. 에이레 말과 토착 경기도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축구와 럭비와 골프는
아일랜드의 국민 체육이 되었고 영어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문학을 구성하고 있는 위대한 작가들 중 다수가 아일랜드 사람들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 가 그 첫째입니다.
(걸리버 여행기의 조나던 스위프트)
거기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네 사람의 유명한 아일랜드 시인 작가들이 있습니다.
20세기 문학의 최고봉으로 추앙되는 위대한 시인이요 극작가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가 있습니다.
그는 1923년에 아일랜드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 상금으로 비로소 빚을 갚고 그의 아버지의 빚도 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윌리엄 버틀어 예이츠)
극작가요 열렬한 사회주의자였던 너무나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 1856-1950).
노벨 문학상(1925)과 미국의 영화상인 오스카 상(1939)도 받았습니다. "피그말리온"이라는 극본으로
만들어져 뒤에 "My Fair Lady"라는 뮤지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이었지요.
(죠지 버나드 쇼. 노벨상 수상을 거절했다가 부인의 간청으로 조국 아일랜드에 바치기 위해
받기는 했어도 상금은 스웨덴 문학의 영어번역을 위해 쓰라고 기어히 거절했답니다.)
그리고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참 어려운 연극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전위작가요 극작가이며 시인인 그는 제임스 죠이스의 제자였고 조교였으며 또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최후의 모더니스트였고 또한 최초의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라고도 합니다. 작품은 불어와 영어로 썼습니다.
1969년에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Samuel Beckett)
그리고 시인 세이머스 히니(Seamus Heaney 1939- )가 그들입니다. 노벨상(1995)과
T.S. Eliot 상(2006)을 받았습니다.
(세이머스 히니)
또한 노벨상은 못 받았지만 20세기 가장 영향을 미친 작가요 소위 현대주의 소설의 최고의 난해한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율리시즈”(1922)를 쓴 제임스 죠이스(James Joyce 1882-1941)가 있습니다.
“율리시즈”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가 쓴 “더블린 시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젊어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쓴 글에 어릴 때 기네스 맥주 공장에 가서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기네스 맥주 공장에 가면 제임스 죠이스가 말한 그 자리에 어린 제임스 죠이스 인형을
만들어 올려 놓고 있습니다.
(제임스 죠이스)
각종 세계기록의 "기네스 북"으로만 알려져 있는 기네스 가문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기네스 가문의 이 기네스 흑맥주는 전세계로 수출되어 아일랜드 경제의 반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이 가문의 불운한 쇠퇴에 관한 신문 기사가 옛날에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네스 맥주 공장 견학 이모저모)
(기네스 공장 지하 바에서 주는 기네스 맥주를 마시면서)
(탤봇 성을 둘러보고 그 앞에 서서. 더블린에서 모자를 하나 사 썼더니 호텔 아가씨가 꼭 시골 사람 같아
보인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