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동돼지집>
여긴 코로나가 없는 듯하다. 조금씩 이빠진 듯 자리가 비어 있다고 해도 식당 열기가 창문으로 사정없이 들어오는 외풍마저도 누르고 있다. 코 박고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 안 되게 정신없이 퍼넣듯이 먹었다. 정신없는 가운데도 매번 숟갈질에 입 속에서 느껴지는 '맛있다'는 느낌만은 또렷하다.
맛도 좋고 식감도 좋다. 탱탱한 돼지고기와 쫀득한 돌솥밥은 분명 식감만으로도 맛을 채울 정도로 좋다. 다 먹고 나니 코로나 염려가 되살아나, 여운은 밖에서 누린다. 차가운 저녁하늘 기운에 느껴지는 한끼 식사의 풍족한 포만감이 좋다.
1. 식당얼개
상호 : 소하동돼지집
주소 : 경기도 광명시 기아로 56(소하동 1371-1번지)
전화 : 02) 805-9407
주요메뉴 : 돼지볶음과 찌개
2. 먹은날 : 2021.2.2.저녁
먹은음식 : 통돼지두루치기 2인분 18,000원(1인분 주문불가)
3. 맛보기
'통돼지두루치기'가 음식 이름이다. 통돼지는 아마도 껍질, 비계, 살코기가 다 들어있는 부위여서 붙은 이름인 거 같다. 두루치기는 조리방식, 자작하게 고추가루를 풀어 졸여낸 음식을 말한다.
여기 돼지고기두루치기는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김치와 양파를 넣어 졸였다. 특히 양파를 많이 넣은 것이 특색이다. 또 하나 총체적 특색은 돼지고기, 김치, 고춧가루를 우리 것만 쓴다는 것이다. 제맛을 낼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차려진 찬은 아주 간소하다. 가져온 김치는 그 자리에서 찌개에 집어 넣는다. 김치를 따로 먹을 일이 없다. 김치는 찌개를 위한 찬이다.
보글보글 한참 끓인다. 돼지고기는 너무 오래 끓이면 맛없다. 이 음식의 핵심은 돼지고기다. 맛있는 돼지고기 확보가 맛의 1등공신이다. 돼지고기가 비계부위도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다.
듬뿍 넣는 양파는 또 다른 비결이다. 김치는 그리 시지 않고 살짝 익었다. 양은 둘이 싹 비울 수 있을 만큼이다. 부족하다 생각되면, 두부와 라면사리를 추가하여 다양한 맛과 영양, 그리고 양을 다 잡을 수 있다.
양파와 함께 또 하나의 비결은 밥이다. 돌솥밥으로 나오는 밥은 차지고 탱글거린다. 찌개와 비비면 제 식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섞여 맛을 더한다. 찌개와 밥, 두가지 찬인 밥상에서 하나가 부족하면 당연히 충족감이 반감된다. 찬 가지수가 적을수록 밥의 질은 더 소중해진다.
고슬고슬 차진 밥, 질지 않으면서 씹으면 감칠맛이 난다. 우선 쌀의 질이 좋고 돌솥에 해내어 차진 찰기를 제대로 안고 있다. 윤기 흐르는 밥이 보기도 좋은데, 식감도 좋고, 간단한 밥상의 품격을 높여 밥상의 완성도를 높인다.
두루치기는 덮밥으로 먹기 제격이다. 두루치기가 조리방식이라면 덮밥은 먹는 방식, 혹은 플레이팅방식이다. 밥에 얹어 내므로,기호에 따라 술마다 섞어 먹거나 아예 통째로 비벼 먹는다.
비비면 나중 밥은 밥알이 부는 수가 있으므로 술마다 섞어먹는 것이 끝까지 식감을 유지하는 방법일 수 있지만, 대개 금새 먹어 버리니 불 새가 없어 비벼 먹는 사람도 많다. 비비면 식사 속도가 빨라져서, 어지간하면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대개는 비빈다기보다는 곁에두고 섞어 먹는다. 밥따로 반찬따로의 우리식 식습관이 나타나는 우리식 덮밥의 특성이다.
일본식 덮밥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소고기덮밥인 규동은 국물 있는 소불고기에 밥을 적셔서 먹는 요리다. 일본식 덮밥의 가장 일반적인 음식 돈부리는 갖은 야채나 고기 등을 볶거나 부치거나 튀겨서 밥 위에 얹어 먹는 음식이다. 보통 오목한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만든 다양한 재료 오카츠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규동도 돈부리의 일종이다. 걸죽한 국물, 맑은 국물에서부터 마른 튀김까지 오카즈(おかず[御数], 반찬)의 형태는 다양하다.
산업화 시대에 일본식 1인 밥상에 어울리게 발전한 것이다. 우리는 1인 밥상보다 다인 밥상에 어울리고 밥과 반찬이 분리된 상차림의 특성을 안은 것이 우리식 덮밥이고 두루치기다.
끓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눌은밥도 숭늉도 먹을 수 있다. 단지 눌은 밥으로 먹으려면 찬이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다.
곳곳에 조리방법이 써 있다. 끓이는 방법 자체를 알려주는 것 같지만, 끓이는 과정을 즐기라는 안내이기도 하다. 맛있게 하는 요리에 참여한다는 느낌이므로 지루하지도 않고, 한 수 배운다는 느낌이 들어서 열심히 학습하다보면 금방 음식이 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안내하는 것은 그만큼 식당이 전문적이면서 친절하다는 느낌을 줘, 식당의 신뢰도를 높이고, 음식에 대한 친연성도 높인다.
*주차장도 하늘만큼 넓다.
맞은편으로 별관도 있다. 자리 부족할 일도 없어 보이나, 코로나 덕분에 별관은 열지 않은 거 같았다.
4. 먹은 후
1) 두루치기
'두루치기'는 주로 경상도 지역의 향토음식을 말하는데, 경상북도에서는 돼지고기와김치를 철냄비에 국물을 자작하게 넣고 볶듯이 졸여 끓인 음식으로 김치볶음과 유사한 음식을 가리킨다. 경상남도는 차이가 있지만 소고기를 여러 재료와 자작하게 끓여낸 것을 말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경상북도 일부지역에서는 '소볶두리'라는 음식을 먹어왔다. 소불고기에 채소양념을 많이 하고 자작하게 볶아낸 것이다. 이 또한 두루치기라는 말로 포괄할 수 있는 음식이다. 이런 음식은 물론 전라도에서도 많이 먹어왔다. 이렇게 보면 이런 두루치기는 전국 어디에서나 먹어온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두루치기라는 음식명을 사용해왔느냐가 문제다. 두루치기라는 이름은 대전에서도 많이 써왔다. 대전 향토음식이라는 두부두루치기를 오래 전부터 먹어왔다. 두부를 주재료로 다른 부재를 선택적으로 넣어 자작하게 졸여준다. 면사리를 곁들이기도 한다.
두루치기는 이처럼 자작하게 졸여낸 음식 일반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전국구가 되었다. 충남 보령에 <하니쌈밥>에 가서 키조개두루치기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키조개 산지에 위치한 그집에서 새로 개발한 요리였다.
요즘 유행하는 음식 중에 이와 비슷한 짜글이가 있다. 보글보글 짜글짜글 국물이 바짝 쫄게 끓인 찌개라서 짜글이다. 보통 김치찌개보다 더 바특하게 끓여 국물이 더 적다.
이곳 찌개도 바로 그 짜글이와 큰 차이없는 조리법이다. 단지 국물이 찌개, 짜글이, 두루치기 순으로 적어진다.국물양의 차이 판별은 임의적이라, 경계선의 음식은 지역에 따라 혹은 조리사나 식당에 따라 이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문은 '두루치기'의 어원이다. '두루치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 같지만 두루치는 것은 한가지 물건을 여기저기 두루 쓰다는 말이다. 음식에서는 그런 의미를 찾아내기 어렵다. '짜글이'는 어원이 분명한데, 두루치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숙제가 풀리면 의미의 범위도 좀더 분명해질 거 같은데 말이다.
2) 밥
한류의 추동작 <대장금>에서는 주인공 두 궁녀가 음식 시합을 벌이는데, 제일 마지막 단계 주제가 밥짓기였다. 날마다 하는 밥, 날마다 먹는 김치가 어려운 것처럼 밥은 쉬우면서도 어렵기 때문이다. 전체가 고슬고슬 맛있게 지은 팀과 기호에 따라 다양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부위에 따라 질고 된 정도를 다르게 다양한 밥을 해낸 팀, 승자는 장금이의 후자였다. 밥상에서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밥은 밥상의 기본이면서 밥상을 완성시키며, 밥상의 품격을 결정짓는 기초 음식이다. 밥에 소금만 얹어도, 밥에 간장만 얹어도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기초음식이지만, 거친밥을 먹을지, 부드러운 밥을 먹을지는 밥상의 격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이팝에 고기국'은 생활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한국은 이제 오히려 '이팝'이 건강에 좋지않다고, 건강에 좋다는 잡곡과 현미밥으로 회귀한 지 오랜데, 아직도 '이팝'이 못 이룬 꿈으로 지속되는 동네가 한반도 안에 있다. '이팝'은 이밥의 방언, 이밥은 입쌀로 지은 밥이다. 입쌀은 잡곡에 대해 하얀 (멥쌀)밥을 지칭하는 말이다. 밥에서 쌀밥 지향 지역과 잡곡밥 지향 지역으로 삶의 질 차이를 선명하게 나눈. 재밌는 건 입쌀을 못 먹어서거나, 입쌀을 피하려고 해서거나 잡곡밥을 먹는 것은 같다는 것이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 앞서가는 놈이 뒤돌아가면 꼴찌가 된다. 선진이 후진이다.
거친밥이 아닌 부드러운 밥과의 대응이 요새는 흰쌀밥에 잡곡밥, 혹은 현미밥으로 이루어진다. 잡곡밥이든 현미밥이든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차지고 윤기나는 것이다. 이 돌솥밥의 푸르스름한 보라색은 아마도 흑미류의 잡곡에서 나왔을 터, 건강과 식감을 다 잡으려 한 노력이 담긴 밥인 셈이다. 덕분에 식감은 물론 심리적인 식감도 같이 잡아 밥맛을 높이고 음식의 격을 높인다.
3) 상차리기
주문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메뉴는 둘로 표기되어 있지만 주메뉴는 두루치기다. 주방에는 손님상에 내려는 두루치기 냄비가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다. 미리 상이 차려져 있다는 거다. 다른 찬도 서너개를 한 접시에 담아, 두 접시만 나가므로 주문과 상차림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손님 또한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한다.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오고, 먹는 시간도 최대 속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반찬이 없으므로 이것저것 골라 먹고 음미할 시간이 별로 필요없기 때문이다. 비빔밥이든, 덮밥이든 모두 먹는 데 드는 시간이 최소화된 방식이다.
상차림과 식사 외에 설겆이도 간단하다. 요긴한 찬으로만 이루어져 잔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주문에서 식사 종료까지 30~40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한 자리에 2,3팀, 혹은 3,4팀의 식사가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 정도 경제적인 식당 운영이 있을까. 운영의 경제성은 필연적으로 경쟁력을 동반한다.
우리 상업음식의 특성 중 중요한 것이 서민음식과 빠른 회전이다. 복잡한 음식, 비싼 식재료 음식과 고급스런 분위기는 느긋하게 먹어야 하므로 시간과 비용이 필수적이다. 간혹 기분 전환을 위해 이런 음식과 식당이 필요하지만, 대개는 이와 같이 저렴하고 빠른 식당이 수요가 많다.
이 식당은 값도 싸다. 2인분이 18,000원, 1인분은 9,000이다. 전형적인 서민음식이다. 빠르고 싼 이런 음식과 대극에 놓인 음식이 프랑스 음식이다. 프랑스가 음식의 나라로 이름이 높아도 정작 찾아가면 대표음식을 먹어보기 힘들다. 브이야베스가 마르세이유 향토음식으로 이름이 놓아도 가서 제대로된 서민 브이야베스 찾기 힘들다.
오랜 시간과 비싼 가격과 복잡한 요리 등등이 특색인데, 정작 대표 음식은 찾기 힘들다. 이런 허점 덕분에 케밥에 대중성을 점령당해 버렸다. 프랑스는 한끼니에 한 자리에 두 팀 예약이 없다. 시간이나 돈이 없는 젊은이는 케밥을 먹어야 한다.
내용보다 의전과 형식에 치우친 프랑스 음식에 비해 월등하게 편하고 경쟁력 높은 우리 음식 중 하나를 오늘도 맛본다. 맛과 영양과 경제성을 다잡는 경쟁력 있는 음식들이 이렇게 자라나고 있다. 음식한류는 이렇게 저력을 형성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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