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언어 전쟁-영어, 힌디어, 모국어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다른 언어가 자연스러운 나라, 인도
기차를 타고 30시간 이상 여행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콜카타에서 첸나이까지 갔을 때, 첸나이와 뉴델리를 왕복했을 때 등등 이틀 밤을 기차 침대칸에서 보내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하는 상당한 인내력을 요하는 여행이었다. 이렇게 긴 기차 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진풍경을 볼 수 있는데,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델리에서 첸나이로 내려가는 기차가 여행의 중간쯤 왔을 때였다. 한 중소도시 역 플랫폼에 도착해서는 약 40분을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곳은 그동안 기차 안에 물, 음식 등이 바닥나 다시 채워 넣는 중간기착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플랫폼으로 내려와 짜이를 마시거나 세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인도인 승객과는 달리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하나의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것은 바로 각 기차 칸의 팻말을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기차 번호는 동일하나 기차명을 힌디어에서 그 지역 언어로 쓰인 팻말로 바꾸고 있었다. 물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자였지만, 이곳이 힌디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곳이라는 점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인도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사법, 입법, 행정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만 22가지가 있다. 여기에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제법 큰 규모의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400가지가 넘는다. 현재 힌디어가 제1의 공용어로 사용되고는 있으나, 남인도나 북동부 등을 방문하여 힌디어를 쓴다면 아무도 대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겐 외국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 더 편리할 때가 있을 정도다.
한번은 내가 네루 대학교에서 알게 된 인도인 대학생과 대화하면서 힌디어를 구사했더니 매우 존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너는 어떻게 외국인이면서 이렇게 힌디어를 잘 할 수 있니?”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힌디어를 열심히 배웠지. 너는 인도인인데 힌디어를 나만큼도 못하진 않겠지?” “아니, 난 너보다 훨씬 못해. 내 모국어는 텔루구어라서 말이야.” 이 친구는 남인도의 안드라프라데시 주 출신이어서 힌디어를 기초회화 정도로만 구사할 줄 알았다. 그런 그에게 내 힌디어 수준은 상당히 유창하게 느껴졌을 것이 당연했다. 스스로 힌디어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의외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했었다.
“인도는 언어로 인해 사회 통합이 힘들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그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틀이 제공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언어의 홍수 속에 갈등과 긴장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주도권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벌이는 언어 전쟁은 인도 근현대사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가진 자의 언어인 영어를 반대한 로히아
로히아는 남녀평등과 계급 평등을 외친 사회개혁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독립된 인도에서 여러 정책에 있어 네루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평생 간디주의자로 살면서 인도식 사회주의를 실천했던 인물이다. 그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모국어를 권장하되 부득불 다른 언어 간의 소통을 위해서 힌디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인도의 역사, 문화적 혼과 정신이 담긴 모국어를 무시하고 영어를 쓴다는 것은 식민주의적 발상이라는 점이 그가 제시한 이유 중 하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영어는 당시 1퍼센트에 해당하는 가진 자의 언어이기에 그 자체가 권력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만약 영어가 관공서나 학교에서 통용된다면, 99퍼센트에 이르는 일반 대중이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상층 카스트의 영어 권력 장악으로 계급 차별이 더 심화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로히아가 영어 사용을 반대한 또 다른 이유는 인도의 유구한 문화 전통을 간직한 모국어가 세계 어느 나라의 언어보다 뛰어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이러한 문화적 자부심을 망각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도적인 것은 싸구려의 저급한 문화에 속하고, 서구적인 것은 그 반대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필두로 한 각 지역 언어의 부흥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지역민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 있는 모국어야말로 이심전심의 언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도 모순이 있다. ‘부득불’이라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언어 구사자들과 힌디어로 의사소통할 것을 주장한 이면에 힌디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되었다. 로히아의 주장대로라면 힌디어권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이 된다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영어 보이콧 주장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가 권력화 되는 것을 간파한 그의 혜안은 결국 천하고 못 배운 사람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인도를 꿈꾼 그의 이상적 사회주의 사상과 고집스럽게 놓지 않고 있던 간디주의의 바탕에서 나온 것이다.
타밀 민족주의를 외친 페리야르와 힌디어 보이콧 운동
페리야르의 본명은 라마사미(E. V. Ramasami)다. 그는 남인도 태생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개혁가, 드라비다 민족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특별히 힌디어가 독립된 인도의 공용어가 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다. 이미 아리안 계열의 북인도인들로부터 남인도 드라비다인들이 괄시를 받는 것도 모자라 북인도 아리안의 언어인 힌디어를 쓴다는 것은 드라비다 문화를 말살시키는 행위로 해석한 것이다. 1937년, 마드라스 주 정부 주지사가 된 라자고팔라차리(Rajagopalachari)가 힌디어를 각급 학교의 필수과목으로 가르칠 것을 지시했다. 그는 남인도를 대표하는 인도국민회의당 소속 정치인이었다. 이를 반대하는 운동이 마드라스 주 전체에서 일어났는데, 그 선봉에 페리야르가 있었다. 그와 추종자들이 내건 구호는 “타밀나두 주는 타밀인의 손에(Tamil Nadu for Tamilians!)”였다.
이미 언급한 사실이지만, 인도는 다인종, 다종교, 다언어 국가다. 그래서 특정 계층이 우선시되는 정책이 추진되면 항상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페리야르가 바라본 힌디어 정책은 드라비다 문화가 아리안 문화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힌디어 보이콧 운동뿐만 아니라, 독립된 남인도만의 국가 ‘드라비다스탄(Dravidastan)’을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남인도만의 국가를 건설하지는 못했지만 힌디어를 공용어로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적 성과를 얻어 냈다. 힌디어와의 길고 긴 싸움은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48년에 남인도 전역에 반대 운동이 불붙어서 1952년, 1965년, 1968년 그리고 가장 최근 1986년에 대규모 힌디어 보이콧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때마다 중앙정부와의 타협을 통해 타밀어를 위시한 남인도 네 개 언어(타밀어, 카나다어, 텔루구어, 말라얄람어)가 지역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타밀나두 주를 방문하면 힌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인도인들은 어떻게 다른 주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까? 바로 영어다. 적어도 영어에는 지역이나 인종적 헤게모니가 내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중립적인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다른 주 사람들과 소통할 정도이니 이들의 드라비다 민족주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현대 인도의 언어 권력-영어와 힌디어
인도가 독립된 이후 현재 28개 주와 7개의 연방 직할지가 형성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통합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언어일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서서히 힌디어가 그 세력권을 확장하고 있다. 북인도의 지역 언어였던 과거의 상태와 비교하면 현재 힌디어는 북인도 내의 유사언어군을 거의 잠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자스탄, 펀자브, 구자라트, 마하라슈트라, 비하르, 차티스가르, 자르칸드, 히마찰프라데시, 우타르칸드, 하리아나 같은 주들은 각각의 모국어가 있지만 힌디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전혀 문제없는 지역이 되었다. 2011년 통계에 의하면, 12억 인구 중 거의 4억 5,000만 명 정도가 힌디어권에 속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도 정부의 힌디어 우선정책이 눈에 띈다. 인도 근현대사를 전공하다 보니 연구의 목적으로 힌디어뿐만 아니라 우르두어와 벵골어를 배워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델리 시내에서 위의 두 언어로 된 서적이나 관련 사전, 언어 교재 등을 구입하기 위해 숱하게 많은 서점과 문방구를 방문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어떤 서점을 가든 힌디어 관련 교재, 사전 등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발품을 팔며 알게 된 사실인데, 우르두어 관련해서는 무슬림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가야 구입이 가능했고, 벵골어는 콜카타나 서벵골 주에 가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중앙정부 차원에서 비힌디어권 인도인과 외국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그라에 기숙사를 갖춘 힌디어 학교를 세우고 델리와 몇몇 도시에 분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반면, 다른 지역 언어는 그만큼의 지원이 없다.
영어는 어떨까?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돈을 잘 벌고, 좋은 배필을 만나 집안을 일으키려면 반드시 영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곳에서는 상식이 되었다.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영어 교육은 필수이고, 중류층은 자신의 신분을 더 상승시키고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 영어 마스터가 기본이다. 하류층 혹은 하층 카스트는 어떨까? 가난과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은 배워서 출세하는 길밖에 없는데, 영어를 모르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층민은 자신은 까막눈이더라도 자식들만은 영어 교육을 시켜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 델리에 있는 여러 빈민가에서도 영어 교육 붐은 놀라울 정도다. 영어가 곧 권력이 된 것이다.
계층에 상관없이 인도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를 배운다. 로히아가 우려했던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