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이대로 좋은가 / 정선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지병으로 누워 계셨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시외할머니와 시아버님,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시동생까지 대가족의 살림을 맡았다. 한여름 비가 오지 않아 밭작물이 시들해지던 어느 날 인근 면에 사는 이모님이 아버지 기일이라며 하루 전에 제사 준비를 하려고 떡을 해서 집에 오셨다. 친정에서 제사 지내는 모습을 큰집에서나 보았던 나는 뭣도 모르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시이모님 뒤를 따라 버스에 올랐다. 이모님은 시장 곳곳을 돌며 제사상에 올릴 생선 나물, 과일 등 종류와 양을 세심하게 일러 주셨다. 양손 가득 장감을 들고 집에 돌아와 손질해서 냉장고에 정리하니 해가 어스름해졌다. 전기밥통에 고두밥을 지어 엿기름 우린 물을 부어 보온으로 맞추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어나니 밤새 내리기 시작한 비가 더욱 더 세차게 쏟아졌다. 남편은 내내 가물다가도 할아버지 기일이 되면 비가 항상 억수로 온다고 했다. 입식 부엌인데도 이모님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생선을 구웠다. 탕을 끓이고 대형 팬에 전을 부치고 마당을 오가며 이모님을 도와 종일 음식을 만들어 늦은 밤에 상을 차렸다. 제사 준비부터 상차림, 제사 과정은 엄숙하고 경건하였다. "내년부터는 혼자 해야 하니 잘 보아 두라"며 당부하는 이모님 말씀에 나는 긴장하였다. 음복하고 뒷마무리까지 하고 나니 시간이 자정이 넘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맏딸이라 아들이 없으신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제사를 지내오신 터라 외손자인 우리가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97세에 돌아가신 후 따로 제사를 모시다가 3년 되든 해 손부 힘들다며 이모님이 합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외할머니 제삿날 이모님은 “어머니 내년부터는 아버지 제사에 같이 오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시아버님도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아버님과 어님 제사를 합쳤다. 현재는 일 년에 두 번의 제사와 설과 추석에 차례상 차리는 일을 합쳐 네 번의 상차림을 한다. 명절에도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만 장만하면 될 것을 예전부터 내려온 풍습대로 격식을 갖춰 차리다 보니 여간 번거롭지 않다. 제사나 명절 지내고 산소에 가서 성묘를 드리니 집에서는 생략하고 산소에서만 간소하게 하면 좋겠다. 시동생이나 시누에게도 넌지시 말을 하니 그게 좋겠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남편은 우리 대에서는 해 오던 대로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예전 방식을 고집한다.
결혼해서 32년 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명절에 서울 친정에 간 적이 없다. 명절에 어른들 뵈러 손님이 오고 남편 형제들이 고향이라고 내려와서 연휴 끝나는 날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차례상을 차려야 하니 도저히 친정에 갈 수가 없어서명절 전에 다녀오거나 지나고 다녀온다. 맏며느리는 하늘에서 내린다는 말도 있고 다들 고생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일주일전부터 이불 빨래를 시작으로 김치를 담그고 음식 준비하고 세 끼 밥상 차리는 일로 제사나 명절 지나고 나면 김장한 뒷날처럼 온몸이 뻐근해서 몸살을 앓는다. 나는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