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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년법은 1점 1획도 빠짐 없이 성취될 율법이고, 복음이므로 읽어주시고 퍼나르기 홍보(선교)를 부탁드립니다.
재림은 언제? 어떻게?
재림의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서 세상 통치를 위해 (천사와 함께) 다시 오는 시기입니다. 재림의 때에는 주린 자를 먹이고 나그네를 돌보아 준 양들은 영생에 들어가고, 작은 자를 찾아보지 않은 염소들은 영벌에 들어갑니다(마 25:46).
* 양의 공궤(트레포)와 염소의 공양(디아코니아)에 대한 차이는 아랫글에서 확인하셔요
감람산강론 2, 양은 누구? 염소는 누구? 겁이 납니다. - Daum 카페
그러면 그때가 언제일까요? 너무 무서운 말씀이라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살펴본 마지막 때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앞에서 재림에 대해서는 필자가 글을 쓰는 순서가 되어서 부득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3,4)
재림에 대해서는 미래에 있을 일이라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천년왕국과 재림의 시간에 대하여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그렇게 나누어지고, 여기에 세대주의 전천년설도 있습니다. 특히 이단들은 재림에 대해서 자기들이 세운 교리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아니라도 임박한 종말론에 집착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에세네파의 신앙처럼 현실 도피적 삶을 살거나 신비주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알려준 재림에 대한 내용은 첫째 재림의 징조, 둘째 재림의 때, 셋째는 재림의 준비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재림의 징조로는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을 비롯한 종교, 정치, 사회 각 부분의 혼란과 자연 현상에서 이상 조짐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징조를 어떤 사건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시대의 징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노을이 서면) 내일 날씨가 좋겠다고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궂겠다고 하듯이, 천기의 분별처럼 시대를 분별하라고 하십니다(마 16:2,3). 청개구리는 비가 오기 전에 미리 알고 소리를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서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의 징조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재림의 구체적 때와 시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합니다.
셋째, 재림의 준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가르쳐 준 교훈대로 청지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마 24:44~47).
그러므로 우리가 재림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과 준비할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재림에 대비하여 미혹 받지 않도록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림을 대비하는 거룩한 생활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생활은 세속적인 삶과 구분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뜻합니다.
재림의 때는 언제?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너희가 미혹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3,4)
제자들은 헤롯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을지를 묻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당부와 함께 그때 있을 징조들을 알려주고 때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림의 때를 추려보면 이러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34절)
그러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36)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여 ...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종의 주인이 이르러(49)
예수님은 제자의 질문에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날과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또 재림이 더딜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종이 방심하면 생각지도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오게 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그 당시 세대가 살아 있을 동안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날과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답변은 때와 시기가 구절마다 맞지 않는 것 같고, 구체적 시간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답변으로 재림에 대하여 구체적 시간 계획을 알려 주지는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질문을 다시 살펴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시점부터 그 이후에 있었던 특정 사건 또는 시대적 특징을 시간별로 보면 ①헤롯 성전이 무너질 때, ②이스라엘이 회복할 때(행 1:6), ③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재림 후에 있을 ④새 하늘과 새 땅이 마지막 세상으로 남아있습니다(계21:1,2). 그런데 재림의 때를 묻는 제자의 질문은 ①, ②, ③, ④를 하나의 시간대로 본 것입니다. 헤롯 성전이 무너지면 연이어 주의 재림과 세상 끝이 있을 줄 알고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에 대하여 ①, ②, ③, ④를 분리하여 답을 하십니다. 그래서 답변 구절마다 때와 시간이 서로 맞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①의 헤롯 성전은 예수님 예언 후 주후 70년에 무너지고, 예루살렘은 로마 병정들에게 짓밟혀서 성취되었습니다(눅 21:20,24).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예언은 주후 30년경이고, 헤롯 성전이 파기된 해는 주후 70년이므로 약 40년 후입니다. 40년 기간은 예언 당시에 생존했던 사람들도 목격할 수가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언 중 ①은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롯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 7세기경(주후 691년)에 이슬람이 세운 황금돔 사원(금을 칠한 모스크)이 들어서 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의 예언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습니다(마 24:15, 단 9:27, 11:31, 12:11). 다니엘의 예언은 이보다 앞에 있었던 사건으로 보기도 합니다. 주전 167년 경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성전에 제우스상을 세우고, 돼지머리를 제물로 올린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이미 성취된 사건입니다.
또 제사를 폐하며 멸망의 가증한 것은 미래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대환란의 시기를 내다보는 예언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구약의 제사제도가 폐지된 후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예언의 이중적 성취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예언은 어느 한때의 사건으로 특정 짓기보다 시대에 따라서 유사한 사건이 연속할 수 있고, 미래에도 있을 수 있는 시대적 징조들을 말합니다.
주) 다니엘이 말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은 적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적그리스도는 로마의 황제, 세상 권력자 등을 말하기도 했고, 특정 종파의 수장을 지칭한다고 보기도 한다. 혹자는 컴퓨터나 인공지능 시스템 같은 물건을 지목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일어난다는 예언은 헤롯 성전의 파괴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②에서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은 주후 1948년 5월 14일 독립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잎이 난 것을 보고 배우라는 말씀(막 13:28)은 ②에 대한 징후를 감지하라는 말씀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기보다 이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 특성을 보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속사의 시간 흐름을 발견하라는 뜻입니다. 무화과는 다른 과일과 달리 1년에 두 번 또는 여러 번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미래에 있을 ③재림과 ④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③과 ④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마 24:36, 마 13:32).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은 아시는데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과연 모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의 때를 모른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 말씀의 진의는 재림의 때가 자연 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재림의 시간은 숫자로 나타날 시간보다 우리의 믿음과 삶이 순종으로 충족될 질적 요건을 따라 시간이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재림 전에 전파, 증언될 복음, 재림의 질적 시기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재림의 때는 천국 복음이 지구촌으로 전파되고 증거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어 그 복음의 진정성이 검증되고 난 후에 재림이 있습니다. 이것은 재림에 대한 질적인 내용의 충족 요건을 채우는 시간을 말하는 예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정도에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재림의 시간은 질적인 내용이 충족되는 시간이므로 그 시간은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도 재림의 때를 모른다고 하십니다. 재림의 때는 우리의 삶에서 계명의 준수 여부에 따라 그 시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가나안 땅, 하나님의 계획이 늦추어진 출애굽 구원 여정
우리가 미래의 시간을 모르면, 그 시간은 과거의 이루어진 일들로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으로 구원을 받은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홍해를 건너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 구원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기간은 초기 계획보다 길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말씀의 순종에 따라 진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해변 길, 왕의 대로, 그리고 광야로 우회하는 길, 이렇게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해변 길로 가면 성인들은 일주일이면 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성과 어린이, 가축들이 함께 가려면 이보다 더 걸립니다. 그래도 두세 달, 길게 잡아도 7개월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1월 15일 홍해를 건넜으니 7월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우회하게 하시고, 시내산으로 인도하십니다. 해변 길을 택하면 블레셋이 진을 치고 있어서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 있습니다(출 13:17). 하나님은 단거리를 두고 먼 길을 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순종(준행)의 정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불러 장막 생활을 하게 하며, 율법을 받고, 성막도 짓게 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인구조사도 하여서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지파별로 진영 조직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2월에서야 가나안 땅을 향하여 출발합니다(민 10:11). 시내산을 2월에 출발했으므로 가나안 땅은 7월이면 들어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하신 출애굽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여정 기간은 총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7개월이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약 1년 6개월까지 길게 잡습니다. 성막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어도 될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을 주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광야에서 지내게 하며, 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성막부터 짓게 하십니다. 그리고 유월절 제사도 드립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보시기에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영적 훈련과 생활에 필요한 준비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합니다(민 13:31~33). 그리고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런 불평과 원망은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함께 힘을 합쳐도 가나안 땅 진입은 어려울 것인데 이렇게 불평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 영적 상태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더라도 그 땅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8년간 광야 생활을 더 하며(민 14:33), 훈련을 받도록 진입 시기를 늦추게 됩니다.
주전 1446년 1월 15일 홍해를 건너서 3월 6일 시내산에 도착하여 십계명을 받고, 성막도 짓게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로 세부 율법도 제정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2월 10일 시내산을 떠납니다. 이런 기간이 홍해를 건넌지 1년 1개월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2년인 주전 1445년 7월에 도착하게 되면 1년 6개월이 걸립니다. 7일 길, 길어야 7개월 길이 백성들의 믿음이 연약하니 1년 6개월, 기간을 연장하여 훈련과 준비를 시킵니다.
그런데 1년 6개월 예정한 가나안 진입 계획은 다시 40년이라는 긴 기간으로 늦추어졌습니다. 이렇게 출애굽 구원에서 약속의 땅 진입이 늦추어진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 상태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땅이 없으면 나의 생존도, 나라의 생성과 존립도 있을 수 없는 경제적 현실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기간이 짧으면 40년, 길면 400년(창 15: 행 4:6), 430년(출 12:40), 450년(행 13:19)입니다. 더 길게는 땅을 주는 언약을 한 아브라함의 때부터 680 여년, 온전한 나라 다윗 왕국까지는 1천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초대교회의 구원 과정도 광야교회의 구원 여정과 비슷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8)
신약시대에 세워진 교회의 출발과 신앙생활도 출애굽 구원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먼저 세상 속에 살던 백성들이 성령 세례를 받고 초대교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교회에서 받는 세례는 세상 속에서 지은 죄를 십자가의 피로 사함 받고, 구원을 받은 징표입니다. 사도 바울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서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는 이스라엘 백성(조상)들이 살아온 시내산 공동체를 광야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신약교회에서 받은 세례와 같으며(세례를 예표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한 공동체가 신약시대에는 교회 공동체와 같습니다(예표가 되었습니다). 광야 공동체에서 70인 장로는 초대교회에 일곱 집사로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경제도 광야 공동체는 생산없는 만나 소비, 초대교회는 네 것 내 것 없는 유무상통 공동 소비로 같습니다. 시내산에서 조직된 광야 공동체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으로 세워진 초대교회는 절기와 날짜까지 같습니다(출 19:1, 레 23:15,16, 행 2:1). 율법은 성령의 법으로 성취됩니다. 이처럼 출애굽에서 있었던 구원의 역사적 여정과 광야 공동체의 조직은 신약시대에 있었던 구원과 초대교회의 출범 과정에서 그 절차의 원리가 같습니다.
<구약시대 출애굽> 애굽 -> 홍해도하 -> 광야 공동체(성막 공동체)
<신약시대 초대교회> 세상 -> 세례 -> 교회 공동체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땅에 인도하신 구원 여정이 예수님이 초대교회에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세상 죄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나라로 인도하신 구원 과정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기간이 1년 6개월에서 40년으로 늦추어졌습니다. 신약교회 성도들도 교회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 교회에서 천국이 완성될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의 연약함과 말씀에 대한 생활 훈련의 미성숙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신학적)으로 말하면 칭의로 구원을 받았지만, 천국 백성으로 성화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약시대 말기에는 이스라엘의 구원자, 메시아가 출생하여 신약시대로 바뀌고 메시아가 자라서 이 땅에서 주어진 공생애 사역을 수행합니다. 신약시대 말기에도 세계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와서 세상을 직접 다스릴 통치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재림의 때와 시기는 구약시대에 출애굽 이후 약속의 땅에서 국가 체제를 완성한 나라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넘어가는 초림까지의 역사와 신약시대에서 다시 재림의 때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하나의 맥락으로 보고, 시간의 구속사를 축약하여 비교하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 신약시대>
①애굽 -> ②홍해 -> ③광야 공동체 -> ㄱ.구원의 시간 계획과 지체-> ④약속의 땅(다윗 왕국) -> ㄴ.시간의 지체-> ⑤초림과 공생애 활동
<신약시대 -> 재림시대>
①세상 -> ②세례 -> ③교회 공동체 -> ㄷ.구원의 시간 계획과 지체-> ④약속의 나라(지상 왕국) -> ㄹ.시간의 지체-> ⑤재림과 세상의 직접 통치
<참고> 시간의 지체 : ㄱ. 희년법 불순종으로 광야에서의 유리, ㄴ. 토지분배 지연, 희년법 파기와 포로 생활, 선지자의 활동과 중간기, ㄷ. 유무상통의 갈등, 성전 파괴, 이스라엘 독립, 성화의 기간, ㄹ. 천국 경제의 거부와 세속적 삶, 복음 전파의 지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역사적 상호관계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속사에서 ①, ②, ③이 정확하게 같은 단계로 절차적 성취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있을 ④국가의 성립과 ⑤초림 또는 재림의 과정과 단계적 성취도 그 원리가 같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구약시대가 메시아의 초림과 공생애로 성취되는 것과 신약시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 통치로 성취될 시간을 직접 대비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하더라도, 이런 비교는 지금 약속된 재림의 시기가 늦추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한 설명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광야시대에 약속의 땅 진입과 메시아를 대망한 초림의 시간도 절차적(역사적)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신약시대에도 천국의 완성과 재림의 시간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루어질 천국의 완성과 재림의 때는 ④의 나라와 ⑤의 초림·재림에 대한 시기가 언제인가를 알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종말의 시간 성취에 대하여 구속사적 관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완성과 재림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시대적 과제입니다(출 3:8).
신약시대의 천국과 재림, 시간 차이에 대한 이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이 재림 이전에 이루어지느냐, 재림 이후에 이루어지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필자도 미래에 대해서는 ④의 나라와 ⑤의 재림에 대한 순서나 시차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했으나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온전한 국가가 완성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온전한 국가란 다윗이 가나안 땅에서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 시온성(예루살렘)을 건설한 때를 말합니다(삼하 5:7). 여부스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준다는 횃불언약 때부터(창 15:21) 출애굽까지 쫓아내야 할 족속이지만(출 3:8, 신 3:7, 수 15:63), 다윗이 비로소 그 뜻을 이루고 통일왕국을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희년 주기로 22회 1,078년만입니다.
땅이 없는 애굽 생활에서 출발하여 땅을 정복하여 다윗 왕국의 건설까지는 주전 1446년에서 1004/1003년까지 약 440(442년, 423년)여년 기간입니다. 백성들 전체에게 기업을 주는(회복하는) 희년 주기로 계산하면 주전 1445년에서 1004년까지 만 9회 희년 441년 기간입니다. 그리고 다윗 왕국에서 초림과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한 시간도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기간이 주전 1004년에서 주후 26년까지 21회 희년 주기인 1,029년의 기간입니다. 이렇게 한 나라의 건설과 메시아의 통치 사역은 긴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간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여 나라를 이루려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긴 기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구원하시지만, 그 구원은 기계의 작동처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게 하시며, 하나님과 사람이 상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아도, 구원받은 백성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완성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 역사를 인도하는 구속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④와 ⑤의 순서나 시간 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상태와 삶의 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재림에 대하여 때를 너무 집착하거나, 아니면 역사적 인식이 무감각한 것이 문제입니다. 신천지와 같은 각종 이단 집단들은 재림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발생합니다. 이단들은 상징적 언어로 되어있는 계시록이나 비유 풀이 등에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을 집어넣어 성경을 이해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주관적 신앙으로 만든 교리를 가지고 사람을 미혹합니다.
신천지 집단의 성경 이해는 성경의 마지막에 나오는 계시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적용도 주관적, 자의적 견해로 사람들을 미혹하기 쉽도록 비유 풀이를 사용합니다. 비유는 실제 사실이 아니므로 해석에서 자기 주관을 집어넣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거꾸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또 이단은 아니더라도 계시록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적용하려는 임박한 종말론도 주의해야 합니다. 임박한 종말론은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신앙적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재림에 대한 삶의 준비에는 약점을 가집니다. 믿음이 종말에 집착하면, 설사 그런 태도가 종말의 때를 맞추었다고 해도 예수님께 책망 받을 수 있습니다. 재림에 대한 생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책망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우리의 전통적 신앙도 종말에 대해서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재림과 종말에 대한 인간의 약점
필자가 보는 재림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관점은 두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재림이나 종말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가 부족합니다. 이것은 신앙공동체에서 성경을 영적, 종교적으로만 보아왔기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공짜로 들어가려는 공짜 심리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공짜 현상을 “무임승차”라고 합니다. 무임승차는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서 개인은 좋지만, 경제계 전체에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가져와서 나쁜 결과를 남깁니다. 도덕적 해이를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적용하면, 영적 것만을 추구하거나 은혜만 누리면서 희생과 순종은 회피하는 삶을 말합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도 홍해를 건너듯이 공짜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년 6개월이면 들어갈 약속의 땅이 진입은 40년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에서 그런 사람들(출애굽 1세대)을 새 사람(출애굽 2세대)으로 바꾸어야 했고, 새 일꾼을 선택하여 성장과 훈련에 필요한 기간이 40년 기간이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나라의 진입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여 모든 것을 공짜로 이루어 주기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살아남은 것도 벅찬 은혜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진입마저 자력으로 불가하다고 예수님이 재림하여서 대신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받기는 좋아하고 희생은 싫어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물질 탐욕에서 기인합니다. 마귀의 유혹과 우상숭배도 여기서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신앙은 바알신을 섬기고 세속적인 율례를 따랐던 유대교처럼 다시 실패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여기서 침노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서 핍박과 희생을 피하지 않고, 천국을 기대하며 믿음을 지키고,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재림은?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3,14)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9,21)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이런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부터 시작합니다(막 1:14, 마 4:12, 눅 3:20). 이것은 율법이 선지자로, 선지자에게서 다시 예수님께 이어진 것을 뜻합니다. 오랜 기간 지속된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넘겨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전파를 시작하여(마 4:17),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복음을 믿으라고 합니다(막 1:14). 이것은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합니다. 그 선포한 희년이 회당 사람들에게 응했습니다(눅 4:18~21). 이것은 구약시대에 한 번도 시행해 본 적이 없는 희년이 드디어 구속사의 무대에 드러나게 된 선포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년 선포로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고 침입하느리라(눅 16:16)”라고 하여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이행된 것을 말하기도 하고,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취와 완성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성취(achievement)는 예언된 언약이나 사건이 눈에 띄게 이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완성은 영어로 ㉠complete, ㉡finish, ㉢completion, ㉣ perfect라는 뜻이며, 성취된 사건이 내용적으로 성숙, 충족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취는 사건이나 사역이 시간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완성은 그 사건이나 사역이 시간과는 별개로 내용적으로 충족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약 언약의 성취이고, 재림은 그 언약의 궁극적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희년법 실현과 재림 전에 있어야 할 것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마 24:35,36).
재림의 때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림이 언제 있을지, 그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재림의 때를 대비하여 그 징조를 주시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를 알 수 있는 사건임에도 아직 성취 또는 완성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해주시기보다 우리가 순종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필자가 늘 약방의 감초처럼 말하고 있는 희년법의 현실적 실현입니다. 이 희년법은 구약시대이든, 신약시대이든 삶에서 필요한 생활 실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로교통법처럼 지켰어야 할 법이었습니다. 희년법은 이것이 율법인지, 복음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지키면 삶에서 복을 누리고,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복과 문제는 하나님이 마지막에 하시는 종교적(교리적) 또는 영적 심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혜택(은혜)이나 고통(벌칙)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희년법의 시행은 누구도 모르게 임하는 재림의 시간과는 다릅니다. 희년법 실현은 생활에서 일어나는 실무적 절차이기 때문에 그 성취 또는 완성은 시간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정해져 있는 사건이 아직 우리의 불순종으로 성취되지 못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간적 성취가 필요한 희년이 아직 한번도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희년의 기원은 희년법이 제정, 처음 발효된 주전 1445년 7월 10일부터입니다(레 25:8). 그런데 발효된 희년이 이스라엘이나 다른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시행한 적이 없습니다. 희년은 7의 주기로 돌아오는 안식 주기의 마지막 때입니다. 7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 7안식년 다음 해로 돌아오는 희년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지나치게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같은 안식 주기에 속하는 안식년은 잘 지키지 않았고, 희년은 한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희년이란 전 백성 모두가 공식적으로 함께 지키는 때를 말합니다. 룻과 보아스, 예레미아와 같이 개인별로 희년을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분배받은 기업을 팔지 않고, 자기 수중에 가지고 있거나 경작권을 잃지 않았으면 자동으로 희년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희년을 지킨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왕 통치시대까지는 이런 상태가 유지되고 있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습니다(왕상 4:25).
희년이 돌아오면 대제사장 또는 왕, 아니면 지역의 장로들이 공식적으로 나팔을 불어 희년을 선포해야 합니다(레 25:9). 그러면 백성들은 각기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만나고, 가족과 함께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런 희년을 지킨 기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아서 70년 포로 생활이라는 벌칙을 받습니다(레 25:36, 렘 29:10, 대하 36:21). 그래도 이스라엘은 끝내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은 땅이 쉬는 해이지만, 쉬지를 못하여 땅이 황폐하게 됩니다(레 26:34,4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 첫 사역으로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했습니다(눅 4:18). 구약시대에 시행하지 못한 희년이 신약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희년의 선포와 성취는 백성들 전체가 희년의 경제 상태로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선포한 희년은, 희년법이 정한 시기와 경제 상태를 복음시대에도 되살리고, 계승, 발전시켜 시행해야 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희년법에 대한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희년의 경제 상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계승시킨 희년은 아직 이스라엘에서 지구촌 전체로 확대하여 시행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2) 공간적 실현이 필요한 토지 무르기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토지 무르기는 7월 10일 속하는 날, 곧 속죄일에 하게 되어있습니다. 구약시대에 국가는 전국의 모든 토지가 분배되어 자유와 평등경제가 실현된 상태를 뜻합니다. 안식년 7월 10일은 빚이 탕감되고, 종은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 7안식년 다음 해 오는 희년은 속죄일 죄 사함과 함께 모든 빚이 사라집니다. 모든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 사이에 빚으로 묶인 것이 풀립니다. 그래서 희년이면 죗값, 빚값, 몸값, 땅값, 세금, 실업, 금융위기, 물가상승 등 경제의 불안요소가 모두 사라집니다. 토지거래와 금융거래에서 발생한 모든 빚과 값이 시장기능에서 소멸하여 버립니다. 정부기능(강제나 시혜)이 아니고, 시장기능(자유계약)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은 사람이 자유하고, 사람에게 팔려서 빚 담보로 묶여있던 땅도 속량을 받아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은 안식년과 희년이면 풀리게 되는 몸과 땅의 무르기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 땅에서 "땅의 속량"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땅(에레쯔, 지구)이 사람의 종속물이 되어 사람이 만든 물건처럼 팔리거나 빚의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희년은 빚이 없고 몸값이나 땅값이 사라지는 자유의 해입니다. 이런 희년의 경제상태가 되지 않고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경제는 이 땅값을 감당하지 못하여 빚덩이만 커지고 있습니다. 이 빚덩이는 실물이 없어서 갚지는 못하고, 시장은 인플레이션, 정부는 이자율과 시장조작(경기조정책)으로 겨우 버텨내고 있습니다.
(3) 계절적 성취가 필요한 마지막 추수 절기, 초막절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첫 명절 유월절기 초실절은 부활절로, 중간 명절 맥추절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명절, 초막절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초막절은 매년 7월 15일 보름날입니다. 한국의 8월 보름 한가위와 하루 차이로 같은 날입니다. 초실절 보리 추수부터 시작하여, 밀 추수를 마친 맥추절, 그리고 모든 열매 추수까지 다 마친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스가랴서 14:16에서 초막절은 세계 열방이 모두 이 절기를 지킬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초막절이 신약시대에도 세계 열방이 지킨다는 말입니다. 이 명절을 지키지 않으면 비를 주지 않고 재앙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초막절은 초림 때가 아니고, 재림의 때에 성취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초막절은 날짜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으므로 그때를 모른다고 하는 재림의 시기와는 시간에서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3대 명절 중 부활절과 성령강림절 등 2대 명절이 날짜마저 정확하게 성취되었기 때문에 초막절의 성취 일자도 그 날짜 7월 15일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인도로 시작한 초대교회의 유무상통 경제는(행 2:44,45, 4:32), 7월 10일 토지의 재분배로(레 25:24,28), 지구촌 모두가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레 25:10). 그래서 지구촌 모두가 생존과 자유가 보장되는 기업을 분배받고(겔 47:1~23) , 가족과 이웃이 하나되어 생수가 넘치는 초막절 천국 잔치를 가지게 됩니다(요 7:38).
그러므로 초막절은 날짜를 모르는 재림의 때보다 재림 이전에 성취되어야 할 명절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그래서 (3)의 초막절은 (1) 시간의 성취와 관련된 희년 선포일 7월 10일, (2) 죄의 속량과 토지 무르기를 하는 속죄·속전일 7월 10일, (3) 그리고 모든 추수가 종결되어 거둔 양식을 저장하는 7월 15일 수장절이 모두 7월 절기의 명절입니다. 모두 해와 달, 날짜까지 분명하게 있으므로 때와 날짜를 모르는 재림의 시기와는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 (2), (3)의 사건이 재림 이전에 있어야 할 이유는 그 외에도 더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1점 1획도 빠짐없이 다 이룬다고 하십니다(마 5:18). 재림의 시기도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증거가 되어야 세상 끝이 옵니다(마 24:14). 그런데 위 (1), (2), (3)이 말하는 내용은 모두 모세오경에 구체적으로 들어있는 율법이고, 신약시대까지 이어진 경제 복음입니다. 생활에서 때의 구분이 필요 없이 필요한 경제 규례입니다.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하고, 희년법의 복음적 적용을 위해 포도원 품꾼과 경작자의 비유 등으로 천국 경제에 필요한 경제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2), (3)은 분명히 모세의 율법이자, 지키라고 당부한 선지자의 강령이며, 예수님의 말씀으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세계만방에 전파되고 증거되어 경제적 복을 누려야 할 진리입니다. 그러나 (1), (2), (3)에 들어있는 경제적 내용은 이 법이 주어진 이래 3,500년간 전파는커녕 해석도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희년과 추수기에 지켜야 할 경제법 준수는 우리 스스로 해야지 하나님이 대신하여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에 대한 구원은 대신하여 주십니다. 불치의 질병도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추수기에 해야 하는 빚의 탕감, 토지 무르기, 땅의 안식(휴경)과 같은 경제적 속량은 대신하여 주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약속의 땅 진입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이 무너지듯이 무혈입성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발을 디뎌서 정복하여 얻도록 인도하셨습니다(수 1:3). 그렇게 해야 주신 기업을 지켜 낼 수가 있고, 경제적 무르기도 하면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영적, 정신적 역량이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간혹, 희년법은 현실적 실천은 하나의 이상향으로 유토피아일 뿐이며, 그 실현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희년법은 토지의 거래제도를 매매제에서 임대제로 바꾸는 것으로 우리가 언제든지 실천 가능한 법입니다. 희년법이 실천 불가능하다는 말은 희년법이 갖추고 있는 사유재산제와 시장원리, 그리고 정책에서 제도적, 실무적 실천 가능성을 모르고 하는 무지와 불순종을 뜻하는 의사 표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지가 없으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영원성과 실현성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희년법과 신약의 경제적 복음도 영원히 존재할 말씀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전파되고, 증언되어야 할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희년의 실현은 재림 이후에 있을 수도
다만, (1)시간에서 7의 주기인 희년, (2)공간에서 토지의 속량과 생활 희년, (3)추수기에서 성취될 절기의 시간은 오실 예수님의 주권적 통치로 바꾸어질 수는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복음으로 바뀌면서 구약의 때와 날짜도 신약시대에 맞추어서 바뀔 수가 있습니다. 맥추절과 성령강림절은 원래 같은 날인 오순절에 지켜야 하지만, 한국교회는 성령강림절은 부활절 후 7주째 주일에 지키고, 맥추절은 한국의 보리 추수기에 맞추어서 7월 첫 주일로 나누어 지킵니다. 그러므로 재림 전에 있어야 할 희년과 초막절의 성취도 이처럼 시간이 한 시대를 초월하여 재림 이후에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때가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 부활의 때와 일치한다면(마 22:30), 현실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희년법의 실현은 필요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희년은 이 땅에서도 지킨 적이 없었고, 재림에서도 버려질 것이라면, 1점 1획도 빠짐없이 다 이루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때에도 자신 말씀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구속사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일꾼을 바꾸어야
또한 (1), (2), (3)의 경제적 내용은 유대인이나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순종함으로 성취될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계속하여 거부하면 그때는 부득이 재림 이후, 최종 통치권자의 강제력에 의해 실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는 세상을 미혹한 마귀가 먼저 강제 결박을 당할 것입니다. 이 마귀는 하나님에게 있는 토지 소유권을 사람에게 준다면서 눈을 멀게하여 쌀값과 땅값의 성질 차이도 식별하지 못하게 한 요물이고, 귀신입니다. 그다음은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공동체 전체에서 많은 변화와 희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 공동체에서 첫 희년을 거부하면 40년 광야 살이를 했습니다. 왕정시대도 희년법을 불순종하여 70년 포로 생활을 합니다. 그다음은 광야 2세대, 포로기 2세대를 뽑아서 훈련시켜 나라의 새 역사를 맡깁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때까지 우리가 자력으로 희년법을 실현하지 못하면, 광야시대나 포로시대처럼 세대 교체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긴 기간(가령 천년?)이 필요합니다.
구약시대 역사를 보면 시대별 세대교체는 출애굽에서 20세 이상은 모두 신세대로 교체, 포로 귀환기의 지도자들도 바벨론에서 태어난 신세대가 구속사에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도 족보 계승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계보에서 이름이 탈락되거나 교체된 인물이 족보에 이름이 오릅니다. 애굽 종살이 시대는 400여년간 유다지파를 두고 요셉과 요셉지파인 여호수아가 공동체를 주도합니다. 사사시대는 유다지파 주류인 엘리멜렉보다 이방 여성이자 기생이었던 라합의 후손으로 족보가 이어집니다. 왕정시대는 유다지파의 왕들보다 빈들에서 외치는 선지자들이 구속사의 주역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족장시대에 적자손 셀라보다 이방여성 다말의 후손 베레스, 사사시대는 기생 후손 보아스, 왕정시대에는 장자보다 차자, 왕족인 솔로몬의 계보보다 사가의 족보인 나단 계보가 중단 없이 구속사의 대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은 희년을 지킨 자에게 주어집니다(레 25:10,24,28). 포도원은 세(貰)를 내는 자에게 줍니다(마 21:41). 그러므로 희년법이 재림 이전에 불순종으로 성취하지 못하면, 재림의 때에 기성 세대들은 광야 1세대처럼 기업을 얻지 못하고 장기간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긴 기간 동안 나그네로 살거나 포도원 품꾼처럼 임금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마 20:1). 물론 이런 추정은 말 그대로 추정일 뿐, 모든 것은 다시 오실 세상 통치자의 주권에 맡겨져 있습니다.
희년법 실현과 인간 구원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은 개별적인 구원입니다. 앞에서 본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영생과 영벌의 구분도 개인구원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에서 약속의 땅 진입과 다윗 왕국의 건설은 공동체 전체의 영성과 순종에 따라 달라집니다. 북 이스라엘이 바알 숭배로 타락해 갈 때에도 하나님은 7천명을 남겨겼으나(왕상 19:18) 끝내 나라는 패망하게 했습니다. 사회구원은 개인의 믿음에 대한 신실성과는 별개입니다. 백성들이 잡혀간 포로기 생활이나 이스라엘 나라의 흥망성쇠도 개인구원과는 별개입니다. 심지어 신약시대에 예수를 믿었던 유대인들도 자기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137년 경의 디아스포라는 유대교나 기독교의 구분 없이 사회 전체의 영성과 순종에서 문제가 있어 발생한 역사입니다.
신약에서 희년법 실현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도 이와 같이 개인구원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의 구원에 속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개개인이 구원을 받는 것과 백성들이 사회적, 영적인 여건 성숙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관에서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포로기에 잡혀간 포로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신실하였다면, 영적인 구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예수를 믿었으나 세계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대인 성도들도 나라를 이루어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구원과 영적인 구원은 받을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있을 천년왕국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구분해서 풀어야 할 주제로 보입니다. 천년왕국과 재림의 시기는 무천년설, 전천년설, 후천년설 중 어느 하나의 시기에 맞추어져 있기보다 생활 규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통치권자의 주권으로 결정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생활 규례란 아직 불순종으로 성취되지 않은 희년과 토지 무르기, 그리고 추수기 초막절 규례 등을 말합니다.
희년과 초막절은 지구촌이 함께하는 잔칫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한가위는 배에서 생수가 흘러넘치는 날입니다(요 7:37,38).
희년과 초막절은 경제생활에서 이루어질 생활 규례입니다. 그래서 희년과 초막절은 우리가 생활 규례를 따르면 재림과 관련 없이 지키게 됩니다. 이것이 경제적으로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노력으로 오는 것이기보다 우리가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주어집니다.
초막절은 속죄·속전일 값 치르기로 하나님과 사람, 땅과 사람 사이에 묶여있는 모든 것이 풀려서 자유하게 됩니다(레 25:10). 초막절은 세계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즐기는 지구촌 명절입니다(슥 14:16). 한국의 한가위가 이날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희년이 구약시대는 때가 되거나 값을 치르는 무르기를 돌아옵니다(레 25:24~28). 그러나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이미 값을 다 치러주셨기에 우리가 순종만 하면 무르기 절차 없이 영구 희년을 맞을 수 있습니다(마 20:1, 21:33). 이에 대한 상세한 것은 다음 글에서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희년과 초막절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날이 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과 같이 풍성한 복을 누리면서 천국 잔치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추신> 희년법 경제 이해는 이단의 해석 오류를 밝혀줍니다.
(1), (2), (3)의 경제적 내용은 신천지나 이단들이 가진 성경 해석의 무지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신천지 교단은 이른바 추수꾼들을 뽑아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초막절을 양력 7월 15일에 지킵니다. 성경 달력 7월 15일을 숫자만 딴 것입니다. 양력 7월 15일은 성경 달력보다 두 달 앞인 5월 15일경이 됩니다.
성경의 초막절은 모든 추수를 다 마치고 가지는 절기인데 신천지 집단은 아직 포도가 익을 철도 아닌 여름철에 초막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초막절은 지키지만, 3대 절기 중 유월절기 초실절과 맥추절 추수는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그들이 성경이 말하는 추수 때를 중시하며 추수꾼 포교를 하고 있지만, 진작 추수에 대해서는 날짜와 시기, 추수기 해야하는 경제적 내용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이단들은 성경을 그들의 주관적 견해에 맞는 특정 구절만 뽑아서 이해하고, 적용합니다.
그들의 비유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그들 종교의 시금석으로 여기지만, 그 씨를 뿌리면 언제 거두는지, 추수한 후 빚을 탕감하고 토지 무르기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실제적 내용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들만의 종교적 교리를 만들어서 그 교리에 순종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추수꾼 지도자 144,000명을 말합니다. 이들은 추수기에 해야 하는 경제적 역할은 아무것도 알지도, 전하지도 못하는 사이비 추수꾼들입니다.
7의 주기를 중시하는 제칠안식재림교도 안식일을 중시하지만, 경제적 내용을 다룬 안식년은 종교적으로만 이해합니다. 7의 주기가 완성되는 희년은 아예 없습니다. 희년은 종말의 시기를 세는(점치는) 숫자풀이로만 사용하고, 경제적 내용이 없습니다. 경제생활을 위해 제정한 희년제도에 경제적 내용은 빠집니다. 구약의 7대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안산홍증인회도 추수에 대한 경제적 내용은 빼버리고, 그들의 교리에 맞추어 놓은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절기만 지킵니다.
이와 같이 말세를 내세우며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 종교는 우리가 지키지 않는 희년법 경제 규례를 갖다 대면 저절로 드러납니다.
전통 교단에서도 재림과 종말에 대한 관점은 그동안 무관심으로 성취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희년, 토지 무르기, 초막절에 대한 현실 인식과 구속사의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교통 질서를 위해 제정한 도로교통법은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필요하듯이, 경제 질서를 위한 희년법과 초막절 추수 규례는 율법과 복음, 믿음과 행위, 현재와 재림의 때를 구분하지 않고 생활 실무로 필요합니다. 이것을 알고, 지키고, 누리는 것이 재림과 종말의 준비입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희년법의 현실적 실현과 재림의 때, 그리고 천국의 완성에 대하여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