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에 오른 형제들과 인천 월곶 꽃게잡이를 떠났다. 멀미가 쏠렸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과 엄마를 생각
하니 견디어낼 수 있었다.악착같이 뱃일을 배우며 통발을 끌어 올리고 꽃게를 큰 트렁크에 털었다. 게 중에는 딱게가 있고 털게가 있고 물렁게도 있다. 선별 작업하여 망에다 꽁꽁 싸매어 배 안에트렁크에 집어넣는다. 나는 연실 밥을 해닸고 선장과 일
꾼들은 배고픔에 한 숨에 달려와 밥을 흡입했다. 씹어먹는 정도가 아니라 흡수다.! 살기위한 수단! 그 배 안에
선 선장의 마이크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죽음이다. 실제로 죽은이가 많단다
뭍에 나갔을 때는 한없이 겸손하지만 배에서만은 명령에 따라야하고 욕을 먹어야한다. 찰칙이고 선장은 우리
의 목숨을 아끼기 때문이다.2년 간 꽃게잡이배를 타고 그만뒀다. 허리가 아파서이다. 5,6번 허리 디스크가 왔 고 병원비도 꽤 들어갔다. '난 누구인가'! 홀로 여관방에서 누워 생각하며 '난 왜 사는가?' 되돌림표로 나를 응접했다. 과연 나는 알콜 중독자의 아들이고 평생 가슴에 묻어둔 엄마의 막내아들이었다. 다시 길을 간다. 그때 최인호의 '길없는 길'을얻어 읽게 되었다. 5부작인
데, 난 큰 깨닳음을 얻었다.세월이 조금 흘러 내 나이 26살... 여자친구를 만났고동거를 했다. 딸 둘을 낳고
장인어른께 인사를 드렸다. 딱 6년 살고 헤어졌다. 앞전에 신랑이 있단다. 아들 하나도 있고 아들이 너무 보
고싶단다. 소피아를 더이상 곁에 두고싶지 않았다. "네 자유대로 살렴" 이혼했다.
장인장모가 부잣집이니 내겐 그녀에게 맡기는게 나았다. 난 개신교를 열심히 다닌 성도다. 하지만 현실은 마티아로 거듭났다. 언젠가 엄마한테 전활 걸었는데 없는 전화번호라 한다. 033-433-3730 강윈도 집 전화번호이다. 세월이 흐르고 잘 있을 줄 알았던 엄
마한테 전활 걸었지만 없는 전화번호란다. 난 쉰둥이다.엄마가 쉰에 날 낳았다. 내 나이 서른... 엄마
나이 팔십이다. 수소문 끝에알아봤더니 울산 큰 누나가 엄마가 치매가 와서 모시고 있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졌
다...! 매형이 울산 배 만드는 현대 독고장에 다니셨는데, 매형이 다단계식 피라미드에 빠져들어 아파트마저 날아가게 생겼단다. 엄마를모시고 있던 큰 누나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래서 작은형이 엄마를 서울 어린이대공원 요양원에 엄마를 모셨다. 작은형과 누나와 내가 돈을 모아 병원비를 감당했다. 그로부터 엄마는 빠짝 마라갔고 미이라처럼 눈만 뻐끔뻐끔 나를 바라 보았다.
막내아들인지 누군지 알아보질 못하였다. '안옥순 안나'어린이 대공원 근처에 성당이 있는데 수녀님이 매일같이 오셔서 우리 엄말 포용해주셨다. 수녀님께서 엄마에게 '안나'라는 세례명도 지어 주셨다. 30kg도 안나것 같은 엄마를 휠체어에 번쩍 않고 샤워실로 이동한다. 조금만 힘을 주면 으스러질 것같은 엄마 어깨를 비누로 살살 문질러본다. '속상했다' 엄마...! 엄마를 씻기고 나와 어르신들 다 모여있는 자유공간에서 어르신들의 눈을 마주하며 성가를 불렀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쭉 이어가며 기도해드렸는데 어머니들이 기뻐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난 기분이 좋아 수박을 사왔다.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사진관으로 갔다. 백발의 엄마와 막내아들... 잘 찍혔다. "엄마, 다음 주에 또 올게...! 알아들을 리가 없다. 고개를 숙이고 일터로 향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를 만나러 왔다. 408호실 5번인데 가보니 엄마가 없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러 카운터로 갔다. 삼일 전에 돌아가셨단다. 치매 10년 앓다 막내아들 얼굴 보고 가신 것이다. 엄마가 쉰에 날 낳았기 때문에 내 나이 서른 때 엄마는 80이었다. 88세에 돌아가셨다.어이가 없어 눈물도 안 났고 내살을 꼬집어봐도 큰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수녀님께서 나에게 한 말씀 중 "저분이 하느님이시다" 막내 아들을 기다리시고 있다가 얼굴 보고 돌아가신 것이다. 수녀님의 말씀에 큰 위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