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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밤의 긴 경 (M109) Mahāpuṇṇama-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3권 716-726쪽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사왓띠의 동쪽 원림에 있는 미가라마따(녹자모)의 강당에 머무셨다.
2. 그 무렵 세존께서는 보름 포살일의 보름밤에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 노지에 앉아 계셨다.
3. 그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가사를 수하고
세존께 합장하여 인사드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의 질문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세존께 어떤 점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의 자리에 앉아서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하라.”
그러자 그 비구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4. “세존이시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란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想取溫), 취착의 [대상인]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의 [대상인]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가 아니겠습니까?”
“비구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란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想取溫), 취착의 [대상인]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의 [대상인]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이다.”
“세존이시여, 감사합니다.”라고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리고
세존께 계속해서 질문을 드렸다.
5. “세존이시여, 이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는 무엇에 뿌리를 둡니까?”
“비구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는 갈애(chanda)에 뿌리를 둔다.”
6. “세존이시여, 그러면 취착은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와 동일합니까,
아니면 취착은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와 다릅니까?”
“비구여, 취착과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와 동일하지도 않고,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와 다르지도 않다.
비구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이 취착이다.”
7. “세존이시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은 차이가 있습니까?” (*1)
“비구여, [차이가] 있을 수 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미래세에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인식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심리현상들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알음알이는 이렇게 되기를!’이라고.
비구여, 이와 같이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은 차이가 있다.”
8. “세존이시여, 어떻게 무더기[蘊]라는 술어가 무더기들에 대해 적용됩니까?”
“비구여,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것은 물질의 무더기이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것은 느낌의 무더기이다.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것은 인식의 무더기이다.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것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이다.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것은 알음알이의 무더기이다.
비구여, 이렇게 무더기라는 술어가 무더기들에 대해 적용된다.”
9. “세존이시여,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을 조건하여 물질의 무더기가 드러납니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을 조건하여 느낌의 무더기가 드러납니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을 조건하여 인식의 무더기가 드러납니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을 조건하여 심리현상들의 무더기가 드러납니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을 조건하여 알음알이의 무더기가 드러납니까?”
“비구여,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이 원인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을 조건하여 물질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감각접촉[觸]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느낌의 무더기가 드러난다.(*2)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인식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심리현상들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정신과 물질[名色]이 원인이고 정신과 물질을 조건하여 알음알이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10.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깁니까?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자아 안에 알음알이가 있다고 관찰하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비구여, 이렇게 [불변하는] 존재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긴다.”
11.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기지 않습니까?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어서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자아 안에 알음알이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해서 [불변하는] 존재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기지 않는다.”
12. “세존이시여, 무엇이 물질에 대한 달콤함이고,
무엇이 재난이며 무엇이 그것에서 벗어남입니까?
무엇이 느낌에 대한 …
무엇이 인식에 대한 …
무엇이 심리현상들에 대한 …
무엇이 알음알이에 대한 달콤함이고, 무엇이 재난이며 무엇이 그것에서 벗어남입니까?”
“비구여, 물질을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물질에 대한 달콤함이다.
물질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물질에 대한 재난이다.
물질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길들이고 열망과 탐욕을 버리는 것이 물질에서 벗어남이다.(*3)
비구여, 느낌을 조건하여 …
인식을 조건하여 …
심리현상들을 조건하여 …
알음알이를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알음알이에 대한 달콤함이다.
알음알이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알음알이에 대한 재난이다.
알음알이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길들이고 열망과 탐욕을 버리는 것이 알음알이에서 벗어남이다.”
13.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외부의 모든 표상(*4)들 가운데서(*5)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비구여,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다.
비구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생기지 않는다.”
14. 그러자 다른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물질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자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자아가 없이 지은 업들은 도대체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6)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음으로 그 비구의 생각을 아시고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쓸모없는 인간은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그의 마음이 갈애에 지배되어 마음으로 스승의 교법을 능가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참으로 물질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자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자아가 없이 지은 업들은 도대체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저런 법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경우로 질문하여 그대들을 가르쳤다.”
15.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17.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을 염오하고 느낌을 염오하고 인식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을 염오하고 알음알이를 염오한다.”
18.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 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7)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 60명의 비구들은 취착 없이 마음이 번뇌에서 해탈했다.
(*1) “‘열망과 탐욕은 차이가 있습니까(chandarāga-vemattata)?’란
열망과 탐욕은 다양합니까(nānatta)라는 뜻이다.
(*2) “‘비구들이여, 접촉하여 느끼고 접촉하여 의도하고 접촉하여 인식한다.’는 「쌍 경2」(S35:93)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감각접촉[觸, phassa]이 세 가지 무더기가 드러나는 원인(hetu)이고 조건(paccaya)이다.”(MA.ⅳ.78)
(*3) “‘이것이 물질에 대한 달콤함이다(ayaṃ rūpe assādo)'라는 말씀으로
철저하게 앎의 꿰뚫음(pariññā-paṭivedha)과 괴로움의 진리[苦諦, dukkha-sacca]를 말씀하셨다.
‘이것이 물질에 대한 재난이다((ayaṃ rūpe ādīnavo)’라는 말씀으로
버림의 꿰뚫음(pahāna-paṭivedha)과 일어남의 진리[集諦, samudaya-sacca]를,
‘이것이 물질에서 벗어남이다((ayaṃ rūpe nissaraṇa).’라는 말씀으로는
실현의 꿰뚫음(sacchikiriyā-paṭivedha)과 소멸의 진리[滅諦, nirodha-sacca]를 말씀하셨다.
이러한 세 가지 경우에 대한 바른 견해 등의 법들(dhammā)은
수행의 꿰뚫음(bhāvanā-paṭivedha)이고 도의 진리[道諦, magga-sacca]이다."(MA.ⅳ.78)
(*4) ‘표상’은 nimitta를 옮긴 것이다.
표상으로 옮긴 니밋따(nimitta)는 ni(아래로)+√mā(to measure)에서 파생된 중성명사다.
초기불전과 특히 주석서 문헌에서는 표상(nimitta)이라는 술어가 아주 많이 나타나는데
① 신호, 표시, 징조, 조짐, 등의 뜻으로 쓰이고(영어의 sign)
② 외관, 흔적, 자국, 특징, 성질 등의 뜻으로도 쓰이며(영어의 mark)
③ 영상, 잔영, 표상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영어의 image)
주석서 문헌에서는 세 번째 의미로 많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의미로 쓰이는 표상은 특히 삼매수행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본삼매의 증득은 준비단계의 표상, 익힌 표상, 닮은 표상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주석서 문헌들은 설명하고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여러 문맥에서 나타나는 nimitta를 모두 표상으로 통일해서 옮기고 있는데,
『디가니까야주석서』에서 “인식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표상(nimitta)’이라 한다.”(DA.ⅱ.500)고 설명하고 있듯이
모든 종류의 인식은 대상이 드러내는 혹은 대상을 통해서 생기는 표상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표상은 한문의 表相 혹은 表象을 염두에 두고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5) 『앙굿따라니까야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밖의 모든 표상들(bahidhā sabba-nimitta)’이란
색깔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맛의 표상, 감촉의 표상,
영원함 등의 표상, 인간의 표상, 법의 표상, 등 이러한 밖의 표상들을 뜻한다.”(AA.ⅱ.206)
(*6) “이 비구는 ‘[업을 저장하는] 자아가 없는데
어떠한 자아에 서서 그 업이 과보를 생성하는가?’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은 상견(sassata-dassana)에 빠지는 것임을 세존께서 말씀하신다.”(MA.ⅳ.79)
(*7) 본경 §§15~18에 나타나는
①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기 ② 무상·고·무아 ③ 염오 ④ 이욕 ⑤ 해탈 ⑥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니까야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과정이다.
보름밤의 긴 경(M109)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