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7:1~11 주의 날개 그늘에 2021. 6. 23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표제어를 봅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믹담은 이미 보았습니다. ‘알다스헷’은 ‘멸하지 마소서’라는 뜻입니다. 이런 표제어는 시편 58, 59, 75편에도 나옵니다. 배경으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라고 합니다. 다윗이 굴에 있던 때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다니는 중임을 말해줍니다(삼하22장, 삼하24장).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께 내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두 번이나 간구하면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한다고 합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는 일을 주의 날개 그늘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주의 날개 그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하겠다고 합니다. 방금 배경에서 본 것처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하고 있는 때에 다윗은 주의 날개 그늘에 숨겨달라고 합니다.
2절입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그 지존하신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모든 것들을 이루어 주신다고 합니다. 다윗이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주의 기름 부음 받음으로 인한 간구입니다. 우리도 이런 간구를 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이루어 달라고 하고 싶습니까?
3절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무엇을 보내주시면 좋겠습니까?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한데 하나님은 인자와 진리를 보내신다면 기뻐하겠습니까? 다윗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 동굴 저 동굴로 피하여 다니면서 지존하신 하나님께 군대와 무기를 보내 달라고 하지 않고 주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인자란 하나님의 언약 적인 사랑입니다. 그 한결같은 사랑과 진리를 보내어 달라고 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주의 인자와 진리가 하늘까지 가득함을 알게 되면 동굴에서도 찬양하고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서도 찬양합니다(행16:25).
4~6절입니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가운데 누웠다고 합니다. 사자나 불사르는 자들은 다윗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다고 합니다. 사나운 사자가 사냥감을 잡듯이 지금 다윗을 잡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이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동굴 속에서도 이런 찬송을 하는 이유는 주의 인자와 진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웅덩이를 파고 그물을 준비하였지만, 그들이 오히려 웅덩이에 빠졌다고 합니다.
7~9절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힘이 드는 이유는 두 마음 사이에 오락가락할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아직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동굴로 수풀로 광야로 도망 다니는 중에 확정한 일은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내 영광아 깨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은 내 영혼아 깨라고 합니다. 비파와 수금도 깨라고 합니다. 새벽을 깨우겠다고 합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를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10~11절입니다. 주님을 찬송하려고 마음에 확정한 이유는 1~6절에서 동굴에서 피하여 다니는 중에 하나님께 탄원(歎願)하고 그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탄원의 내용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어 달라는 겁니다(3절). 그래서 주의 인자와 진리를 그 죽음의 위협을 받는 동굴에서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이 찬송은 이미 5절에서도 나온 찬송입니다. 다윗이 받은 주의 인자와 진리는 주의 날개 그늘과 같습니다.
이제 주의 날개 그늘에 피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주의 ‘날개’라는 이 단어가 언약궤 뚜껑인 속죄소를 가리는 그룹의 ‘날개’와 같은 단어입니다(출25:18~20, 왕상6~7). 이 날개는 제사장의 겉옷 자락을 말할 때도 다른 겉옷의 자락을 말할 때도 이 단어를 씁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개 그늘에 피하게 하여 달라는 말은 주의 속죄소 아래 피하게 하여 달라는 말도 됩니다.
출애굽기 25:22절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5)속죄소 위 곧 6)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겠다고 하시는 장소가 속죄소입니다. 속죄소는 언약궤 뚜껑인데 그룹의 날개로 언약궤를 덮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주의 날개 그늘에 피하여 들어가고 싶다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과 그 진리 속에 거하겠다는 겁니다.
사무엘상 24:4~6절입니다.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오늘 시편의 배경이 되는 내용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중에 뒤가 마려워 굴에 들어가 겉옷을 벗고 볼일을 봅니다. 그 굴 안에 다윗의 일행이 숨어 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사울을 죽이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하는데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조금 자르고 죽이지 못하도록 합니다. 다윗은 겉옷 자락 자른 일이 마음에 찔립니다. 그 이유는 사울도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관한 찔림입니다. 여기서 왕의 겉옷 ‘자락’이 ‘날개’와 같은 단어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기에 왕의 겉옷은 제사장의 겉옷과 같이 위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왕의 권위로 백성들을 보호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왕의 권위를 가지고 오히려 기름 부음 받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를 박해합니다.
사무엘상 15:26~28절입니다.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 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갈 것을 말씀합니다. 왕이나 제사장의 겉옷이 찢어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데 여기서도 옷자락이 ‘날개’입니다.
사무엘상 22:1~2절입니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 사울 왕이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니 다윗은 비록 왕의 겉옷이 없지만, 주의 기름 부음 받았기에 다윗에게로 몰려오는 자들은 환난 겪은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주의 날개로 피하는 자들의 모습인데 예수님께 피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명기 32:9~12절을 보면 여호와의 구원과 보호와 인도를 독수리의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는 식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가는 삶은 고난의 연속인 광야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던 때부터 늘 나를 거역하였다고 합니다(신9:7). 심지어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합니다(신9:24). 이러한 거역이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징계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외부에서 보면 피할 곳이 못 되어 보입니다.
이사야 31:5~6절입니다.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6 1)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날개 아래 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날개 아래 거하는 일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사는 겁니다. 그 언약 뚜껑의 속죄소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기보다는 온갖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이사야 31:1~3절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는 것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징계하기 위하여 앗수르를 몽둥이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주의 날개 아래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망하게 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주께로 돌아오는 길은 그 인자와 진리를 믿는 겁니다. 속죄소의 날개 아래, 그 언약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날개 그늘인 그 인자와 진리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인자와 진리가 힘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 날개 그늘에 이방인들이 피하여 온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보고서 누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백성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독수리 날개로 업고 보호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믿고 그 날개 아래 보호받기 위하여 온 한 이방 여인이 있습니다.
룻기 2:11~12절입니다.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은 모압여인입니다. 그 땅으로 이민 온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을 갔는데 시아버지 주고, 자가 남편 죽고, 동서의 남편도 죽고 시모와 동서와 자기 곧 과부 셋만 남은 상태인데 시모 나오미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고 그 백성이 자기 백성이 되겠다고 따라갑니다. 시모가 돌아가라고 해도 죽음 외에 막을 수 없다고 따라갑니다. 망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는 일은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이런 룻을 향하여 보아스는 주의 날개 아래에 보호받으러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 온전한 상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들어가는 겁니다. 룻은 나중에 시모의 말을 듣고 그 보아스에 가서 당신의 옷자락을 펴 덮어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이기에 결혼해 달라는 말입니다. 결국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다윗의 증조모가 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간 것은 인자와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개 그늘에 피하여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37~39절입니다.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 날개 아래, 주의 인자와 진리 안에 자기 백성을 모으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쳤습니다. 주의 날개 아래 피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주의 날개라는 주의 인자와 주의 진리에 피하는 것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의 마음을 낮추어주시므로 다윗처럼 룻처럼 주의 날개 그늘에 피하여 들어가는 겁니다.
오늘날도 십자가라는 주의 날개 아래 피하여 들어가는 자들은 세상의 힘을 원하는 자들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십자가라는 주의 날개 아래 들어가게 됩니까? 예루살렘의 성전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무너집니다. 무너짐이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므로 새로운 살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동굴에 있든지 감옥에 있든지 주의 날개 그늘에 피하여 들어갑니다. 그 주의 날개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찬송가 415장 가사로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빛 심히 쬐이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
내 눈을 밝히소서 저 십자가 볼 때/ 나 위해 고생 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 하여 눈물만 흘리네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관계없도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