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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신앙 / 사 50:4-11, 눅 5:1-11
오늘까지 설명절로 온 국민이 지낸다. 그러나 웬지 마음이 무겁다. 정리해고, 명예퇴직이니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코흘리개부터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이 알뜰살뜰 저축해 모아둔 수조원대의 돈을, 부도덕한 재벌회사에 너무도 쉽게 내주는 그런 세상,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형 비리, 한보사태의 파장이 매우 크다. 엄청난 액수의 부도로 인해 전국의 경제가 흔들린다. 안걸린 기업체가 없다 한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서민들 뿐이다. 과연 이런 세상에서 열심히 산다는게 무슨 희망을 주는 걸까? 또 하나 이야기는 대학 등록금 문제다. 25년 전만 해도 소 한 마리를 팔면 사립대학교 1년 학비로 충분했다. 그런데 요즘은 소 한 마리로는 턱도 없다. 학교나 과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지만 소 2-3마리는 팔아야 사립대 1년 학비를 댈 수 있는 형편이다. 이러니 농촌에서 어떻게 대학을 보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자식들은 부모라면 이 모든 학비는 당연히 부담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부모 자격도 없는 것쯤으로 취급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온 가족이 모인 설날, 예년과 달리 썰렁하게 다가온 설날,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요즘 대단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소설 ‘아버지’이다. 경찰관 출신의 무명 작가 김정현씨가 지난해 8월 중순 내놓은 이 소설은 최근 1백만 부를 돌파하는 등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50대 중년의 가장인 한정수, 그는 어느날 친구의 병원에 들렀다가 췌장암 말기의 진단을 받는다. 5개월 시한부 인생이 사형선고였다. 지방대 출신으로 뒤늦게 행정고시에 합격해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까지 신문에 소개됐던 그였다. 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한데다가 연줄조차 없어, 요직은 거쳐보지 못한채 한직으로만 전전해야 하는 변변찮은 공무원으로 살아야만 했다.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고급문화 취향인 부인 영신과는 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평행선 사이였고, 대학에 재학중인 딸 지원은 아버지가 일에 파묻혀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며 늘 원망의 눈길이 가득했다. 한정수는 자신의 병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준비해 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폭음을 하게 되고, 가족으로부터는 그만큼 더 멀어지고 소외받는다. 딸이 지망하는 서울대 영문과 입학 정원이 35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딸의 합격을 위해 35번 이상의 버스는 타지 않고, 좌석에 앉을 때도 35번 이상의 자리를 피하면서 혼자만의 미신을 지켜왔던 한정수, 하지만 딸로부터 ‘아버지, 당신은...’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부녀관계 단절이라는 최후통첩을 받는다. 부인 영신은 어느날 우여곡절 끝에 남편의 친구한테서 남편이 췌장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영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책뿐이었다. 한정수는 결국 장기기증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또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싫으니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한다. 한정수의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 딸 지원은 아버지가 병원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옷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입게 될 상복을 보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수술이 끝난 한정수의 한손에는 유서가, 다른 한손에는 부인에게 전하지 못한 진주 목걸이가 쥐어져 있었다. 최근 이 소설은 조기퇴직이다, 명예퇴직이다, 정리해고다 하여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물려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아버지의 자리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설날에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부모의 건강이다. 요즘 명절이나 되어야 겨우 부모를 찾게 되는 불효자가 많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중풍이나 당뇨병, 그리고 흔히 노망이라고 불리는 치매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흔히 집안의 기둥인 부모가 그런 회복하기 힘든 병에 일단 걸리게 되면, 그것은 당사자는 물론 온 가족의 고통이요, 가정불화의 요인이 되기 쉽다. 따라서 평소 노부모를 둔 가족들은 그들의 건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풍이나 당뇨 환자는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상태에서, 가족들이 다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보살피면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힘들어도 나름대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게 노인성 치매이다. 치매란 뇌세포가 파괴되어 후천적으로 기억력, 지적 능력 등 정신 기능이 심하게 쇠퇴하는 무서운 증상이다. 암, 에이즈 등과 함께 현대 인류의 무서운 질병으로 꼽힐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경증 치매까지 합치면 약 10만명이 넘는 노인들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혹 여러분의 부모가 이른바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등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설날에 온 가족이 모여 부모의 건강한 여생에 대해 진지한 의견들을 나누면 보람있는 설날이 될 것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인간의 삶은 만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부노와 자녀의 만남이 있다. 성장하면서 형제, 친구, 이웃, 부부 그리고 스승을 만나게 된다. 만남이라는 사실들을 떠나서 인생을 말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만남이 그렇게 중요하고 삶의 본질을 될 수 있다면 잘 만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나쁜 친구를 만나면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기에 ‘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하였겠나? 백년해로 해야할 부부가 잘못 만나면 인생을 허비하는 불행한 삶을 살 것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 좋은 부부,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인 것이다. 제가 고등학교 입학했는데 담임선생이 체육선생으로 학생지도부실 담당이었다. 하루는 종례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지도부실에 있으니까 학부형들이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 우리 아들은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한번만 봐달라고 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모에게 유유상종이라고 못된 놈은 못된 놈끼리 놀고 착살한 애들은 착실한 애들끼리 논다고 말해주었다고 하셨다. 저는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무관심이나 지나친 관심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드는 수가 있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사람이다. 또한 사람에게는 착하게 살려는 마음과 한번쯤 타락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 갈등에서 우세한 쪽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못된 애들과 어울리게 된다고 본다.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은 보다 나은 이상, 보다 바람직한 세계를 동경하며 보다 나은 자기확립을 하려고 하면서 인생이 무엇이며, 곧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하는 인생의 깊이와 근본에 대한 질문에서 철학을 논하고 종교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가장 깊고 높은 만남은 종교와의 만남인 것이다. 어떤 신앙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은 언제나 종교적인 질문과 도전을 받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을 종교적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을 간구하는 존재란 뜻이다. 존 칼빈은 ‘인간이 마음에 종교의 씨가 심겨져 있다’라고 한 말은 의미있는 것이다. 대학교 다닐 때 전도하기 위해서 전도용지를 만들기로 했다. 전도용지는 받자마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의논한 뒤에 책갈피를 만들기로 했다. 책갈피에 쓸 내용은 바로 만남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 번의 만남이 있다고 하였다. 그 첫 번째는 부모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생의 반려자와의 만남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만남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만남의 신앙인 것이다. 몬문 눅 5장에 보면 시몬 베드로를 게네사렛 호수에서 제자로 부르신 사건이 한 폭의 그림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 본문 속에 나타난 만남의 신앙 내용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1. 만남의 신앙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는 만남이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신이 인간(죄인)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시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이 역사 속에 오셨다. 그러기에 은총의 종교라고 말하게 된다.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범죄한 후 나무 숲 사이에 숨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방문이 곧 구원의 빛이요,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는 복음의 내용이 곧 기독교의 진리인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구세주로 이 땅에 보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33년간의 지상생활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기 위하여 찾아오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현존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죄인인 인간을 만나시기를 열망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어느 날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수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을 보셨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셨다. 배 위에서 무리를 가르치셨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 위에 오르시고 배드로에게 말씀을 먼저 건네셨던 것이다. 이 말씀에서 인간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여러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마음에 물어보기 바란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란 고백이 가능할 것이다. 아직도 계속하여 모든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계속하여 역사 속에, 우리들의 삶의 현실 속에 찾아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인식하고 살아야 하겠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그때에 우리 주님은 베드로와 그 동료들을 찾아오셨던 것이다. 주님의 방문, 이것이 바로 구원의 빛이 비추는 은총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기 위하여 찾아오신다는 은총의 복음임을 알야아 한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면서 순종하였더니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 두 배에 고기를 나누어 실어도 두 배가 물에 잠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주님 앞에서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된 이 상황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밤새도록 노력하였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그들이 그 많은 고기를 잡고 나니 그들에게 명령하신 예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예수님을 보는 순간, 기적을 보았다. 자기 자신을 근본적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이 고백은 새 창조의 영광이 비추는 길목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사도 바울의 고백 중애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 하는 고백은 얼마나 놀라운 자기 발견인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로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자신을 망각한 위선자에게 예수님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보면서 어찌하여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라고 하셨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바로 아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다. 프랑스의 문인 리퐁테에느는 ‘세계를 알면서도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노자는 ‘남을 아는 것이 지(智)요, 자신을 아는 것이 명(明)이다’라고 하였다. 명은 지보다 높고 어려운 것이라 하였다. 자신을 바라보기가 어렵다. 욕심과 자기 중심의 동굴에 싸여 자기를 볼 줄 모르는 불행이 오늘 우리 사회 안에 만연해 있다.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됨을 고백하는 이같은 자기 발견이 곧 회개요, 신앙이요, 구원인 것이다.
3. 그리스도는 만난 자는 사명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선교하라는 초대장이다.
10절하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고기잡던 어부를 부르셔서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여러분, 누구나 숨을 쉬며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뚜렷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 사명이 여러 가지 일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명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는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생산자의 사명,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경영자의 사명, 가르치고 배우는 자의 사명, 자신의 일터에서 맡은 일에 충실히 일하는 사명 등 수천 수 만가지의 사명 내용의 분류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역시 복음 전파의 사명인 것이다. ‘나를 만나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신 그를 전파하는 사명’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까 두렵다’고 강하게 말했던 것이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만난 확실한 중거는 무엇인가? 그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므로 증거를 보여야 하겠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개인 개인을 찾아서 전도하는 축호전도, 문서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문서전도,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도하는 방송 선교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방법은 다양하니까 여러분들은 전도하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미국 알라바마주 갯스덴에 있는 쥬얼 피어스 목사는 30년간 위스키 병을 사용하여 전도하였다. 빈 위스키 병들을 수집하여 그 속에 성서구절을 쓴 종이를 넣어서 강물에 띄웠다. 수만개나 되는 빈병 안에 성서구절을 기록하여 쿠사강에 띄웠다. 그 병들은 멕시코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병들은 해변을 따라 어디든지 가게 되었다. 29개주와 8개국에서 병 속의 글을 읽고 회답이 온 것이 6만통이 넘었다는 것이다, 그 편지 내용 중에는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는 내용도 있고, 더러는 낙심되었던 자들이 신앙의 재각성을 다지는 결단의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기발한 생각도 다 해야 하겠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잊지 못할 전도의 왕은 최봉석 목사님이다. 이 분이 너무나 전도를 많이 하셔서 최권능 목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루는 최 목사님이 시장 한복판에서 배를 움켜쥐고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하면서 고함을 지르니까 시장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이때 최 목사님은 ‘실은 배가 아픈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지옥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불쌍해서 내 마음이 아파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하자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었다. 그러나 사괴를 드리고 그때를 포착하여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되었다. 방법은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아도 전도하고자 하는 그 열망을 우리가 배워야 하겠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그를 전하는 사명의 부름을 받았다.
여러분, 지금까지 눅 5장에 근거하여 ‘만남의 신앙’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만남의 신앙은 주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신앙이다. 만남의 신앙은 주님을 만나므로 자기를 발견하는 신앙이다. 만남의 신앙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는 신앙인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지속성이 단절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사모해야 겠다. 올 한해 주님과 함께하는 만남의 신앙으로 평안과 기쁨이 넘쳐 주께 영광 돌리고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1997-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