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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과 소승, 출가자와 재가”-(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불기 2026년 5월 교육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_()_
1. 법 회 개 요 |
⊛주 제: “대승과 소승, 출가자와 재가”
⊛일 시: 2026년 5월 08일(금)저녁7시00분
⊛장 소: 조계사 극락전
⊛법 사: 원지 스님(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사 회: 기획부장 월도 임병웅
⊛참석자:총동문회 대경 박수정 회장 외 65명 참여
⊛집 전: 신행부 수석차장 보공 김지영
2. 법 회 식순 |
▲개회사 ▲삼귀의 ▲우리말 반야심경 ▲인사말(대경 박수정 회장)▲음성공양(그대의 미소 그대의 웃음/ 부처님 오신날)▲청법가 ▲입
정 ▲법문(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 스님) ▲발원문(부회장 대덕행 이후남) ▲ 공지사항 ▲사홍서원 ▲산회가 ▲폐회사 ▲ 기념사진 촬영
◆ 조계사는 한국 불교의 중심 사찰로서 진신사리탑은 종교를 넘어 자비의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그대의 미소 그대의 웃음/ 지휘 : 박경태교수 / 반주:안희정 /포교부장: 고정숙 여실심
3. 법 회 이 모 저 모 |
5월 교육법회 스케치
조계사 도량의 연등은 가정의 달, 부처님오신날, 스승의 달을 맞아 ‘나와 가족, 스승과 사회, 그리고 모든 중생의 평안’을 기원하는 지혜의 빛
으로 환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 뜻을 실천하기 위해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회장 대경 박수정)는 5월 교육법회를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을 모시고 극락전에서
봉행했습니다. 대경 박수정 회장과 대덕심 고문, 경담 고문, 보현행자문위원장 등 65명이 참석했으며, 월도 기획부장의 진행으로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통해 법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회장 인사말과 함께 53선지합창단이 ‘그대의 미소 그대의 웃음’, ‘부처님 오신 날’을 봉헌하
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고, 스승의 달을 맞아 스님께 꽃다발과 ‘스승의 은혜’ 노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경 회장님은 “연등 속에서 동문들의 기도와 염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며, 세계 평화와 국가 경제 안정, 고통받는 이들의 평안을
기원한다”며 “원지 스님의 법문을 통해 부처님 마음을 배우고 이타행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자”고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부처님오신날을 맞
아 1인 1등 달기에 동참해 지혜와 자비의 등불을 밝히자”고 전했습니다.
이어진 법문에서 원지스님은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통해 출가와 재가, 대승과 소승의 수행을 대비하며 진정한 자비의 의미를 조명
하셨습니다. 출가 수행자인 진성 스님은 화두 수행을 통해 철저한 자기 성찰과 깨달음을 추구하고, 재가 수행자인 순녀는 중생 속에서 고통
을 함께하며 자비행을 실천합니다. 이를 통해 수행의 길이 개인 해탈에 머무는 것인지, 중생과 함께하는 보살행인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
기하셨습니다.
또한 화두 수행은 ‘의심 하나’에 집중하여 분별과 논리를 끊는 수행이며, 대신심·대분심·대의심이 핵심임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수행 과
정에서는 비교와 자만, 집착이 생기며 이것이 ‘선근마’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짚으셨고, 반대로 자비희사와 인욕은 타인을 포용하고 함께하는
수행의 중요한 실천 덕목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결국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어느 수행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 아니라, 각자의 근기와 삶의 자리에서 수행의 방식이 다를 수 있으며, 산속
의 깨달음과 중생 속의 자비행은 서로 대립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보살행의 길이라는 점이라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 글 정리 :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4. 공 지 사 항 |
&공지사항&
❏ 2026년 5월 10일(일) 오후7시: 도량등 점등식, 일주문 팔부신중 광명식
❏ 2026년 5월 16일(토) 오후7시 행렬시작 : 연등회(동대문 ➠조계사)
❏ 2026년 5월 24일(일) 오전 10시 : 부처님 오싱날 법요식
❏ 연등회
⊛일 시 : 2026년 05월 16일
⊛장 소 : 조계사 집결
⊛문 의 :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자세한 사항은 추후 공지 예정
❏천수다라니기도법회
⊛일 시 : 2026년 06월 26일 저녁7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문 의 : 신행부장 거연 강민구
❏ 6월 운영위원회의
⊛일 시: 2026년 06월 11일(목)요일 저녁 7시
⊛장 소 : 추후 공지 예정
⊛문 의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2026년 6월 교육법회
⊛일 시 : 2026년 06월 12일 (금)저녁 7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법 사 :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주 제 : 일본불교, 임재종의 수행가풍
❏2026년 동문회 임원모집
⊛자격: 2026년 졸업예정자 및 졸업 동문(신청서는 동문회 사무실에 비치)
⊛문의: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6월 만발봉사
⊛일 시 : 2026년 06월 06일 10시~14시
⊛장 소 : 만발공양간
⊛문 의 :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합창단 모집 및 연습
⊛53선 지수합창단 상시 모집합니다. (즐겁게,아름답게,행복하게)
⊛조계사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가입하여 음성공양 할 수 있습니다.
➪일 시:매 월 :1, 3, 4주(토)13시00분~2시 30분까지
두 번째주(금)오후5시~6시30분
➪장소:안심당 지하 합창단실
⊛문의:포교 부장 고정숙 여실심, 010-9983-5778
❏동문회비 및 정기법회 보시 계좌 안내
➪동문회비:연회비-5만원,평생 회비-50만원
⊛하나은행111-054579-03005.예금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임원회비:회장(3백만원),감사,부회장(50만원),부장(30만원)
수석차장(15만원),차장(10만원)
⊛하나은행, 263-910588-27607,예금주: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재무부장 청정화 김애숙 010-8736-0372
❏장학기금 후원(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장학회)
➪조계사 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월1천 원 이상의 장학기금 후원 가능
➪장학회 정회원 조건:출자금10만 원 월1천 원 이상 후원하시는 분
⊛후원계좌:신한은행100-030-532200 (조계종 조계사 불대총동문회)
⊛문의:장학회 총무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어르신 배식 봉사
⊛일시: 6월 19일(금),10시~14시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문의: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행복 나눔터
➪참기름(12,000원)들기름(13,000원)볶음참깨(6,000원), 약조청1kg(50,000원)
➪각버섯(10,000원), 버섯가루(10,000원)
⊛하나은행: 263-910588-28207,예금주 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 TF팀 대덕행 이후남(010-2325-6719) 여해심 이성숙(010-3897-4568)
5. 인 사 말 | 회장 대경 박수정
< 인사말 >
안녕하세요?
먼저 사중의 많은 일정으로 너무 바쁘신데도 오늘 저희 불교대학 총동문회 교육법회에 부처님 가르침주시려 귀한 걸음 해주신
종무지원 단장이신 원지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고문, 자문님과 동문님들께서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계사 도량에 연등이 예쁘게 달려서 신심이 절로 납니다. 동문 한사람 한사람 기도와 염원들이 꼭 성취되기를 바라며
세계적으로는 전쟁과 기아에서 벗어 나고 우리나라는 경제가 안정되어 고통받는 이들이 심신의 평안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4월 22일 광화문 점등식, 4월 26일 김포 점등식이 열렸습니다. 동문님들이 불자로, 포교사로 많이 참석해주셔서
더 신심나는 시간이었습니다. 16일 연등행렬에도 많은 참석 바라겠습니다.
오늘도 원지 단장스님의 부처님 지혜 법문 듣고
우리도 부처님 같은 마음내어 이타행 실천하는 불자되시길 서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혹시 바쁘셔서 1인 1등 달기에 아직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은 우리가 함께 수행하고 봉사하는
조계사 이 도량에 꼭 지혜와 자비의 등불을 밝히시길 바랍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70(2026)년 5월 08일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대경 박수정 합장]
6. 발 원 문 |
< 발 원 문>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하옵니다.
끝없는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제도하시는 부처님!
번뇌와 무명의 삶속에서 탐하고 성내며 살아온 것을 참회합니다.
번뇌와 무명 속에서도 늘 중생을 향해 손을 내미신 그 자비를 생각하며, 우리 또한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깊은 이해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소서.
오늘의 교육법회가 단순한 모임이 아닌 깨달음을 향한 길이 되고, 동문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결집하는 소중한 인연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맑고
밝은 지혜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을 발원하옵니다.
동문들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마다 자비를 새기고 작은 실천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나를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참된 수행자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고
나아가 사회와 이웃을 향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포교의 등불이 되게 하소서!
교육법회를 함께한 인연 공덕을 회향하오니 연등의 밝은 빛이 온 세상에 퍼져 갈등과 분열이
사라지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도 부처님의 자비 등불을 만나 모든 중생들이 평화롭고 따뜻한 세상에 살아가게 하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
나무 석가모니불 ()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불기2570년(2026)년5월08일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부회장 대덕행 이후남 합장]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부처님 오신날/ 지휘 : 박경태교수 / 반주:안희정 /포교부장: 고정숙 여실심
7. 법 문 | 원지 스님
[교재 : 아제아제바라아제 :1989년 작]
1.
임권택 - ‘아제아제바라아제’, 1989년作
강수연 - 순녀, 청화스님, 1990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진영미 - 진성스님
순천 선암사 - 극 중 주요 촬영지
2.
‘만다라’는 1981년作, 한국 최초(인정받은)의 불교영화. 이 영화를 계기로 임권택 감독이 인정받기 시작.
만다라는 파격적인 땡추 지산스님(전무송)과 보수적인 젊은 법운스님(안성기)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구도자의 삶에 초점.
아제아제바라아제는 재가의 순녀와 출가의 진성스님의 수행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진정한 불교의 자비는 무엇인지 묻고 있다.
일반인의 감상(한 많은 여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여성)과 불자의 감상
3.
어디서 왔는고?
광주에서…
그 이전에는?
어머니 몸 속에서…
‘부모미생전본래면목’
‘父母未生前本來面目’
4.
크게 버리는 자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재주가 많으면 중 노릇 못한다.)
5.
진성스님의 남자 - 종교적 구원의 대상
순녀의 남자 - 내 마음이 깨끗하면 내가 곧 부처
6.
달마스님 얼굴에 왜 수염이 없는가?
진성스님의 화두
7.
선근마(善根魔) - 자기가 하는 일에 너무 집착을 하면 그 좋은 일도 잘하지 못하고 수도에 방해가 되는 법이다.
‘온갖 중생들을 내가 모두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리라.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이 아무도 없다.’ -금강경
8.
니가 모든 것을 죽이고 너 혼자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네 혼령은 여기 남고 네 등신(등신불等身佛에서 나온 말, 몸뚱이)은 여기를 떠났다.
아니 네 등신이 여기 남고 네 혼령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떠나가 사는 네가 진짜인지 여기 남아있는 네가 진짜인지
그것을 바로 알았을 때 너를 괴롭히는 모든 번뇌들은 사라질 것이다. - 순녀의 화두
9.
석가는 왜 이 세상에 나와서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소.
10.
진성스님의 만행, 진성스님의 남자 - 동굴에서 만난 스님, 운동권 남학생.
순녀의 만행, 순녀의 남자 - 막장이 무너져 죽은 현우, 섬마을의 송기사.
11.
영화 만다라의 수관스님 이야기. 섬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진짜 스님은 자기 죽을 줄도 모르고 사람을 도와고, 나는 산에 천막치고 관세
음보살을 부르며 기도했다.
12
큰스님의 점검, 진성스님 - 왜 달마스님 얼굴에 수염이 없느냐. 실참을 해야 하느니라.
큰스님의 점검, 청화스님(순녀) - 여기 남아있는 너의 혼령과 밖을 떠돌던 너의 등신 중 무엇이 진짜 너 인가?
13.
진성스님은 대답을 하지 못했고, 순녀는 마음 속으로 답한다. ‘그 어느 것도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둘은 한 우물 속에 들어가야 함을 알았
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한 우물 속에 넣은 묘책을 저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14
진성스님과 순녀의 대화 - 미망을 뒤집어 쓰지 않고서 어떻게 미망 속의 중생을 구제하나. /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어라. 피곤한 사람
에게 길은 멀어라.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법구경 우암품 –법정스님 한문 법구경
⚓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지쳐 있는 나그네에게는 지척도 천리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윤회의 밤길이 아득하여라
060-현진스님 원문법구경
दीघा जागरतो रत्ति, दीघं सन्तस्स योजनं ।
दीघो बालानं संसारो, सद्धम्मं अविजानतं ॥
dīghā jāgarato ratti, dīghaṁ santassa yojanaṁ ।
dīgho bālānaṁ saṁsāro, saddhammaṁ avijānataṁ ॥
잠 못 이루는 자의 밤은 길고 지친 이의 1요자나는 멀며
참된 법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의 윤회는 아득하다.
⚓우암품 –법정스님 한문 법구경
어리석은 자는 한평생을 두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064-현진스님 원문법구경
यावजीवम्पि चे बालो, पण्डितं पयिरुपासति ।
न सो धम्मं विजानाति, दब्बी सूपरसṁ यथा ॥
yāvajīvampi ce bālo, paṇḍitaṁ payirupāsati ।
na so dhammaṁ vijānāti, dabbī sūparasaṁ yathā ॥
어리석은 이는 비록 지혜로운 이를 평생 동안 가까이 하더라도
마치 국자가 국의 맛을 (모르듯이) 그는 법을 깨닫지 못한다.
⚓우암품 –법정스님 한문 법구경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기면
곧 진리를 깨닫는다
혀가 국맛을 알듯이
065-현진스님 원문법구경
मुहुत्तमपि चे विञ्ञु, पण्डितं पयिरुपासति ।
खिप्पं धम्मं विजानाति, जिह्वा सूपरसṁ यथा ॥
muhuttamapi ce viññu, paṇḍitaṁ payirupāsati ।
khippaṁ dhammaṁ vijānāti, jivhā sūparasaṁ yathā ॥
현명한 이는 비록 지혜로운 이를 잠시 동안 가까이 하더라도
마치 혀가 국의 맛을 (알듯이) 법을 재빨리 깨닫는다.
번역 | 上-법정스님(한문법구경) 下-현진스님(원문법구경)
법 문 : "대승과 소승, 출가와 재가 " -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두 달간 제가 도반 스님들을 보내드렸는데, 법회 잘 하셨나요?
그동안 제가 일정상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법문은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고 함께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는데요. 영화는 한 번 보셨어요?
제가 오늘 또 이렇게 잘라서 주요 장면들을 보내드렸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제목을 ‘대승과 소승, 출가와 재가’로 제가 뽑았는데, 한번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이제 15가지 주제를 만들었는데, 이건 다 하지는 않고 여러분들이 아실 만한 것은
넘어가고요.
그다음 2번을 보겠습니다. 준비한 프린트물 보면 2번 셋째 줄입니다.
“만다라는 파격적인 땡초 지산 스님(전무송)이 나왔던 기억 나시죠?
그다음 보수적인 젊은 법운 스님 안성기 역할로 나왔던 이 두 스님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줬다. 여기는 삶 이건 제가 봤을 때입니다. 삶을
보여주는 구도자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면,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성이 주인공의 성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고, 그리고 원래
청화 스님이었지만 그런 어떤 사건 때문에 이제 속죄하게 되었죠. 이제 재가의 삶을 살고 있는 순녀와 출가자인 진성 스님의 수행 삶이 아니
라 수행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진정한 불교의 자비는 무엇인지 묻고 있다.
‘진정한 불교의 자비’ 여기에서 ‘대승과 소승’을 우리가 나눌 수가 있어요. 여러분, 대승은 뭔지 알죠? 불교대학에서 다 배우셨죠.
큰 수레라는 뜻입니다. 다시 한 번 설명드리면,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스님들이 부처님이 계셨을 때는
아주 든든한 집이 있었고, 아주 튼튼한 우산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외도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부처님이 다 해결해 주셨으니까 부처님만 믿었으면 됐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나서 그 당시에는 기라성 같은 제자님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즉, 10대 제자라고 불리는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수보리, 부루나, 가전연, 아나율, 우팔리, 라훌라, 아난 존자 이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도 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 부처님 열반 후 한 50년쯤 지나면 이제는 부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제자들이 다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러한 외도들의 공격, 어떤 사상적이거나 “너네 불교는 왜 그러느냐?” 하는 식의 공격이라든지 이
런 것들이 왔을 때, 우리 지도자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데 대한 그 당시 스님들의 어떤, 그러니까 법을 완벽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법
에 대한 공부를 완벽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다른 종교와의 분쟁도 해결이 되니까요.
그런데 부처님이 안 계신 그런 상황 속에서 이제 그런 분들이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해야 되는 거죠
수행을 하고 아라한이 되어서 그 법을 완성시켜야 다른 사람들과 얘기가 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스님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만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가면 아비달마라고 하면서 굉장히 논들이 많아지고 어려운 불교, 말하자면 형이상학적인 불교가 펼쳐지게 됐습니다.
스님들은 어쩔 수 없었어요. 불교의 완전무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스님들이 공부만 너무 해. 우리 스님들이 하는 얘기 너무 어려워. 우리한테 좀 쉬운 것만 해줬으
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으시는 것 같아. 너무 어렵게만 법문하셔. 그러다 보니까 대승불교가 등장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대승불교가 등장하면서 출가 스님이든 재가자든 함께 타고 있는 수레, 이게 대승이다.
스님들의 현학적이고, 스님들 개인의 깨달음만 추구하는 저 불교는 소승적이다,
작은 수레다 라고 한 거예요.
그렇지만 스님들은 상좌부 불교도 있었고, 경량부도 있었고 여러 가지 불교들이 있었는데,
상좌부 스님들의 그런 고승들이 위주가 되어 있는 그런 불교 교단에서는 스스로를 소승이라고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대승에서 그런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서 소승이라고 부른 거예요. 소승 불교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영화에서는 대승적인 모습, 진짜 불교의 자비는 무엇일까라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 진성 스님(비구니 스님) 나오시죠.
그 진성 스님을 소승적인 모습으로 아주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모습” 그래서
나중에 큰스님의 화두에도 대답을 못하죠.
아무튼 소승이라는 말을 요즘에는 잘 안 쓰죠. 요즘에는 소승이라는 말 대신에 어떤 말을 씁니까? 남방 불교라고도 하고요, 초기 불교라고
도 합니다. 초기 불교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그런 편견이 없죠.
그래서 초기 불교 수행이라고도 하고, 남방 불교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여기에서는 소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근데 여러분, 제가 그럼 스님은 소승 불교입니까?
소승적인 모습이 있습니까? 이렇게 스님으로서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진짜 자비로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입장에서 이제 조계사에 많은 스님들이 계시죠. 많은 스님들이 다양하게 여러분들에게 다가가시고 법문도 하시는데,
이런 모습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요.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해주세요. 자비로운 스님들이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죠.
그런데 스님들 입장에서는 그럼 언제 수행해요. 여기는 진짜 너무 번잡스러워요. 수행을 하려고 하면 행사해야 된다고 나오라고
그러고, 뭐 밥 사준다고 나오라고 그러고, 뭐 사진 찍으라고 나오라고 그러고 막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면 스님들이 직접 수행을 해보면, 이게 깊이 있게 쭉 들어가 줘야 되는데, 이게 너무 이렇게 들락날락이 있는 환경이에요.
수행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여러분, 저도 열심히 수행을 해야 나중에 늙어가지고 조계사 법당에 ‘어흥’ 하면서 큰스님 초청 대법회 할 때 저도 초청 받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맨날 나와서 법문만 하고 이런 활동만 해서야 언제 제가 큰스님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저는 여러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한 어떤 물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왜 산속에서 수행만 하느냐, 큰스님이 되어서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더 크게 전법할 수 있잖
아요. 그러면 그 사이에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는 불교도 모르고, 그러면 스님이 안 가르쳐주면 불교에 대해서 알 수가 없는데 그럼 우
리는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 이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렇죠. 뭘 해야 될지?
그럼 여기에서 우리는 진짜 어떤 선택을 해야 될 것인가? 스님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될 것인가? 불자들은 어떤 스님을 좋아해야 될 것인
가? 어떤 스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깨달은 스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깨달은 큰스님한테 공양 올리고 싶으세요?
저처럼 작은 스님한테 아무것도 없는 스님한테 공양 올리고 싶으세요?
아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인데 깨달음 큰스님한테 그냥 걸리면 좋죠, 안 그렇겠어요? 저도 그렇거든요.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우리한테 친절함을 베풀어주고 우리한테 잘 가르쳐주는 스님도 필요하고, 또 깨달은 큰스님도 필요하고, 그러면 어떤 모습이 진짜
불교의 자비행일까라는 그런 물음을 가지고 이 영화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2번의 맨 마지막 줄입니다. 일반인의 감상은 이렇게 나옵니다.
“한 많은 여성과 순녀 강수연 씨, 그다음에 진리를 추구하는 여승 진성 스님의 어떤 대비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렇게만 접근을 하는데, 우리 불자들의 감상은 일반인과 달라야 됩니다.
우리 불자들은 공부도 했고 불교대학도 나왔으니까 좀 깊이 있게 불교적으로, 불교적인 것으로 깊이 있게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3번 보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강수연 씨가 순녀가 이제 출가하러 왔죠.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변희봉 스님, 은선 스님입니다.
큰스님이 강수연 씨한테 물어보죠. “어디서 왔는고?” 그러니까 “광주에서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광주 그전에는 원래 그렇게 하다 보면,
그전에는 “광주에서 태어났는데요.” 그 전에는 그럼 이렇게 하다 보면 이렇게 쭉쭉쭉 들어가다 보면 “엄마 뱃속에서요”라고까지 나와요.
그러면 “그전에는”이라고 나오는 거죠. 엄마 뱃속 전에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근데 그게 화두인 거죠.
이 원래 화두가 “석가모니 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부모에게 태어나기 이전에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이 화두인데 이 화두를 잘못 들면 내가 전생에 소였을까? 소의 모습을 그려보고, 내가 전생에 사슴이었을까?
사슴 모습을 그려보고, 내가 전생에 여자였을까? 여자였으면 ‘예뻤을까, 못생겼을까?’ 이런 것을 막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화두가 안 됩니다.
여러분 간화선에서도 경험해 보시고, 간화선도 많이 배워 보셨죠? 제가 간화선 수업할 때 진성 스님이 화두 받는 장면 있죠.
그 장면을 꼭 씁니다. 간화선에는 3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간화선의 3대 요소: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 이렇게 이게
간화선의 3대 요소거든요. 대신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큰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여기서는 은선 스님이라고 큰스님이 나오잖아요. 이 큰스님에 대한, 이분이 깨달으신 스님이에요. 그래서 진성 스님이 됐든, 이 청화 스님,
순녀가 됐든 이 스님에 대한 믿음은, 큰스님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에요
이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라는 소설을 영화화한 겁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인데, 아
무튼 소설에 나오는 묘사들을 보면, 어머니보다도 진성 스님 입장에서는 어머니보다도, 부모님보다도 더 큰 스님 변희봉, 은선 스님을 존경
하고 따른다는 설정이 되어 있고요. 청화 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진성 스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요. 큰스님이 진성 스님은 “너는 이제 그동안 시봉을 오래 했으니 이제는 청화한테 맡겨두고, 너는
학교 가서 공부 좀 하고 오너라” 하면서 동국대학교를 보내거든요. 불교학과를 그때 진성 스님한테 화두를 주시죠. 큰스님이 그 화두가 뭐예
요? 달마 스님 얼굴 보시면 수염이 장미처럼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런데 화두는 “달마도 잘 봐라, 달마 스님 얼굴에 왜 수염이 없느냐” 이거
예요. 수염이 있어요
수염이 있는데 왜 없느냐예요.
그런데 여러분, 뭐 말도 안 돼. 우리가 만약에 그 스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한테 물어보고 있어’ 하고
흥 하고 말할 거예요. 그런데 대신심이 있으니까 청화 스님이나 진성 스님 입장에서는 큰스님이 내려주시는 화두, 이것이 그 큰스님이
진성 스님한테 화두 주고 이렇게 얘기하시죠. ‘이것은 네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이니라’라고 올가미로 확 씌어버리잖아요.
평생 풀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내가 부모님보다 더 존경하는 스님이에요. 이 스님이 저한테 숙제를 하나 주셨어요.
그리고 나는 우리 반에서 제일 뛰어난 수제자예요. 평상시 용모도 뛰어나고 으뜸가는 그런 걸 갖추고 있어요. 그래서 대단하다,
대단해 막 그렇게 칭찬 일색이에요. 여기 중에서 제일 뛰어난 사람이에요.
내가 근데 큰스님이 나한테 숙제를 주셨어. 이걸 빨리 풀어야 돼요. 느긋느긋 세월아 네월아 해야 돼요? 빨리 풀어야 되는 거예요.
진성 스님, 거기서 공부하는 장면 나오죠. 엄청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요? 다른 스님들이 다 졸고 있는데도 진성 스님은 끄떡도 안 하잖아요.
원래 근기가 뛰어나신 분이에요. 그분한테 맞게끔 큰스님이 화두를 딱 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큰스님도 잘 만나야 되는데, 아무튼 제가 간화선 수업할 때 이 장면을 꼭 쓰는 게, 진성 스님 입장에서 화두를
받았다라고 생각을 해보자는 거죠. 그러면 이걸 빨리 풀어야 되는데 답이 나와요? 안 나와요? 미쳐버리겠죠. 정말 미쳐버릴 거예요.
근데 간화선의 3대 요소 중에 첫 번째가 대신심이고, 그다음에 대분심, 분한 마음입니다. 분심은 분한 마음이에요
근데 분심은 대중 속에 같이 있다 보면 대분심이 들어요. 혼자 있으면 분심이 잘 안 듭니다. 왜냐하면 이 대중들에서는 저의
입장에서 한번 얘기를 해볼게요.
제가 그래도 26살에 출가해서 제법 어린 나이에, 그것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출신으로 출가했어요. 그러면 백양사 강원 같은 데 있으면
제가 제일 어린 편이었어요. 그리고 불교적인 지식도 웬만큼 높았고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게 좀 있어요. 프라이드 같은 게 좀 생겨요.
제가 인도에 수행하러 갔는데, 거기에 한 15명 정도의 수행자들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두 분이 비구니 스님, 그리고 비구 스님 한 분이셨는
데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수다원 인가를 받고 오셨어요. 마하시라는 곳이 있어요.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수다원 인가를 받고 오셨어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고 말하면 되잖아요.
사실 미얀마에 가시면 수다원들이 많습니다.
조금 농담 조금 보태면 길가에 다 밟히는 게 수다원입니다. 아무튼 저는 처음 봤어요.
수다원이라고 하시는 분들을 근데 제가 인도에 갔을 때 마음이, 내가 한 평생 지금까지 살면서 그때 30대 초반이었는데 계속 후회를 하면서
살았는데, 내가 인도까지 와서 후회를 하면 너는 인간도 아니다. 저 스스로 ‘나는 인간도 아니다, 열심히 해야 된다’ 진짜 나름 각오를 다지고
열심히 수행을 하는데 계속 힘들어요. 체력도 떨어지고 이렇게 잠도 오고 정말 등 대면 잠에 떨어지죠.
그런데 그중에 수다원에 들었다는 비구 스님이 한 명 있었잖아요. 그 스님하고 한 젊은 분이 있었는데, 여기 수다원에 들락말락하는
이 스님이 단기 출가자였거든요. 이 수행자가 나는 너무 피곤하고 누우려고 하는데, 그분이 침대 위에서 딱 가부좌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피곤해 죽겠는데, 그럼 마음이 어때요?
분심이 일어나는 거예요. 분한 마음이 나도 이 대중 속에 내 눈에 깨달음, 이제 인가 받은 분들이 보이잖아요. 그러면 가만히 못 있어요.
저 사람은 했다는데, 저분은 했다는데 왜 내가 못 하겠어. 그 도반들 덕분에 정말 열심히 하게 돼요.
그래서 공자님도 그러셨잖아요. ‘세 사람이 앞에 걸어가고 있으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아무튼 도반들 속에 있으면 대분심이 절로절로
일어납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늘 보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이 화두, 이것만 깨치면 내가 부처가 될 수 있어. 이것만 해보자,
이런 마음이 생겨요. 그러면서 이게 대의심으로 전환이 됩니다.
대의심이 돈독해지면, 그 제가 이걸 의심이라고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제가 어떤 큰스님 원담 앞에서 정말 한 발자국도 못 나
가고,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거든요.
큰스님 앞에 가서 질문 하나 하라고 해서 큰스님 앞에 젊은 혈기에 그 당시에는 28살인가 29살인가 그때 갔는데, 제가 큰스님한테 묻고 싶
었던 건 ‘스님, 저 좀 깨닫게 해 주세요. 저 좀 쉽게 깨닫게 해 주세요. 깨닫고는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고, 저 좀 깨닫게 해 주시면 좋겠는데
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이게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드려요? 이걸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해서 나가지도 못하겠고,
말이 입에서 안 떨어지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저는 정말 은산철벽 같은 기분을 느꼈는데, 나가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진짜 끙끙대고, 그러한 아무튼 정
말 한 발짝 나가지도 못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공부를 아니 할 수 없는 그런 게 돼 버려요
사람들은 다 나를 쳐다보고 있어요. ‘와, 큰스님한테 화두 받았대. 언제 풀까?’ 눈을 크게 뜨고 이렇게 지켜보고 있어요.
그럼 우리 회장님, 화두를 받으셨으면 어떻게 하셔야 되겠어요? 진짜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앞뒤가 꽉 막힌 마음으로 오직 화두, 의심 하나만 들고 있는 게 화두 수행입니다.
여러분, ‘부모 미생전 본래면목’이라고 해가지고 내가 전생에 뭐였을까, 뭐였을까, 뭐였을까
사유하고 생각을 계속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은 화두가 아닙니다.
화두라는 수행은 굉장히 매력적인 수행인데, 우리는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그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단칼에 끊는 것이 화두입니다.
그래서 화두를 논리적으로 풀려고 하면 정말 뱀에다가 다리를 그린 다음에 발가락까지 그려가지고 그 뱀 발가락에 양말을 끼우는 격이에요.
그렇게 화두를 들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화두는 의심 하나, 앞뒤가 꽉 막힌 의심만 가지고 밀어붙일 때 그게 화두 수행이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으면 헛짓거리하고 있는 것이다. 뱀의 사족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4번 보겠습니다. ‘크게 버리는 자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라고 큰스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이 말이 물론 그렇습니다.
부모에 대한 애정도 버리고 친구들에 대한 어떤 것도 버리고 오직 이 수행 하나, 오직 부처가 되려고 하는 마음 하나로 해야 되는 건데요.
이게 이제 스님들끼리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재주가 많으면 중 노릇을 못한다.’ 제가 컴퓨터 조립을 할 줄 알았거든요. 백양사 강원에 들어
갔더니, 제가 컴퓨터 조립을 해 준다니까 모든 스님들이 다 저를 불러서 컴퓨터 조립 좀 해달라는 거예요.
1년 내내 컴퓨터 조립해 드리고 다녔어요. 아, 나도 공부하기 바빠 죽겠는데 그런 걸 하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재주가 너무 많으면 중 노릇을 못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두를 한번 볼까요? 6번에 보면 진성 스님의 화두는 ‘달마 스님 얼굴에 왜 수염이 없느냐’
이것은 네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이니라라고 큰스님이 확 얽어매는 거예요. 목을 확 얽어매는 거예요.
그러면 큰스님이 이제는 다음에 만날 때마다 “스님 안녕하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러면 큰스님은 이것밖에 얘기 안 합니다. “그래, 달마 스님 얼굴에 왜 수염이 없느냐.” 이것만 하는 거예요. 이게 진성 스님의 화두고요.
한 장 뒷면 넘기시면 8번에 순녀가 쫓겨났다. 청화 스님이 쫓겨날 때 스님이 쫓겨나는 스님에게 화두를 줍니다. 이렇게 얘기하죠.
네가 모든 것을 죽이고… 사실 청화 스님 하는 걸 보면 좀 아니꼽죠. 눈에 눈이 시리죠. 잘난 척을 너무 많이 하잖아요. 안 그래요?
영화 보시면서 못 느끼셨어요? 너무 잘난 척 많이 해요. 근데 “‘네가 모든 것을 죽이고 너 혼자 되었을 때, 그 모든 것을 다 죽이고
오롯이 그거 하나만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네 혼령은 여기 남아 있고 네 등신, 육체 몸둥이를 얘기하는 거예요.
네 등신은 여기를 떠난다.’
아니, 네 등신이 여기 남아 있고 네 혼령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떠나가 사는 네가 진짜 너인지, 여기 남아 있는 혼령이 진짜 너인지
그것을 바로 알았을 때 너를 괴롭히는 모든 번뇌들이 사라질 것이다.
순녀가 쫓겨났잖아요. 가기 싫었는데, 마음은 늘 마음의 고향이 있는 거예요. 없겠어요? 마음은 늘 선암사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 그렇
게 살아보신 적 없으세요? 마음은 늘 거기 있는 거예요. 그리고 몸은 떠나 있는 거죠
이 순녀가 한 번씩 열심히 살다가 현타가 올 거 아니에요. 현타가 오면 무슨 생각이 들겠어요? ‘아, 나는 스님의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나.’ 제가 몇 주 전에 현타가 좀 왔었어요. 아, 중 노릇 하기 힘드네. 언제 떠나지 이런 생각 한 번씩 오거든요.
아무튼 순녀의 화두는 이렇습니다. 진성 스님의 화두는 이렇고, 같지 않죠. 왜 같지 않아요? 큰스님이 근기가 다르니까 근기에 맞게끔
화두를 주시는 거예요. 거기에 딱 걸려들게끔해요
다시 앞장으로 넘어와서 7번에 선근마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거 여러분 아주 잘 공부하셔야 되는 주제입니다. 이 선근마, 청화 스님이 잘하
려고 그랬어요. 근데 눈꼴 시려. 재수 없어. 그게 큰스님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것을 선근마라고 하는 일이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너무
집착하면 그 좋은 일도 잘하지 못하고 수도에 방해가 되는 법이다
여러분, 맡은 수행 잘하고 싶죠? 근데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화가 되는 법이에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자비행을 할 때 늘 내가 자비희사를 하고 있는지, 내가 늘 오계를 지키고 있는지, 내가 늘 십선업을 행하고 있는지 돌아
보게 됩니다. 십선업의 소임을 하다 보면 막 싸우는 분들이 있어요. 소임 하다 보면 “네가 잘못됐니 뭐니” 그런데 십선업에 보면 어떠해요?
욕하지 말라가 있어요. 욕하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을 그렇게 상처 주면 안 됩니다. 그럼 십선업을 못 지키고 있죠?
그렇죠, 자비희사가 있어요. 자의 마음과 비의 마음이 있어요. 자의 마음은 아낌없이 베푸는 마음이 자의 마음이에요. 아낌없이 베푸는데
싸울 마음이 있어요. 비의 마음은 상대방의 어떤 슬픔이나 아픔이나 결여된 것을 내가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이에요.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대하는데 상대방하고 말다툼이 있어요.
희의 마음은 상대방이 좋은 일을 했을 때 칭찬받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예를 들어서 우리 거사님만 칭찬한다고 해 봐요. 제가 큰스님이라고 치고 그러면 다른 분들이 ‘저 거사는 뭔데 스님한테 찾아가
알랑방귀만 끼나 봐’ 이러면서 막 질투를 해요. 그러면서 눈꼴 시린 시선으로 보고, 잘해도 ‘저거는 뒤에서 뭔가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자비희사, 사무량심을 닦으면 자비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사촌이 땅을 사면 같이 기뻐해 주는 거예요. 거사
님이 스님의 칭찬을 받으면 ‘너무 잘됐다, 너무 좋겠다,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같이 기뻐해 주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안 되기 때문에 선근마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내 것만 잘되면 돼’ 그러면 이건 소승이죠.
우리가 얘기했던 소승입니다. 나만 되면 되니까
우리 불교는 두루두루 잘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계속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육바라밀이 있는 거예요. 육바라밀과 팔정도를
비교해 보면 다 비슷비슷한데 인욕 하나가 더 두드러져요. 인욕. 사실 인욕은 정진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보시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물 마시고 싶은데 물 안 마시려고 참으면 그게 인욕이잖아요. 그것은 정진에도 포함되어 있는 거거든요. 내가 뭔가 습관이 들어
있는, 뭔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참고 안 해야 되잖아요. 이미 정진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근데 왜 인욕이 있을까? 스님들끼리 있으면 별 말이 사실 필요 없거든요. 대중생활할 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별 말이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스님들이 기본적으로 말을 잘 안 하고 묵언하니까.
근데 재가자들을 모아놓고 수행하면 “거기 뒤에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막 서로 잘났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아, 인욕이 필요하구나’ 저도 인욕 많이 하거든요. 아무튼 대승의 시대,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가고자 했을 때에는 인욕하는 마음이 참 많이 필요하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여러분도 인욕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금강경에 이런 말이 있죠. ‘온갖 중생들을 내가 모두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리라.’
여기 회장님도 있고 팀장님도 있고 여러 단체의 장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은 내가 다 잘되게 했으면 좋겠죠. 다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죠.
그런데 금강경의 가르침은 뭐예요?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이 아무도 없다. 이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의 보살행도, 우리의 소임도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예요.
다음은 9번이, 그 왜 시커먼 동굴 속에 비구 스님이 거세를 한 다음에 그것을 이제 드러내 보이는 그 장면 이후에 나오는 장면이에요. 이후에
‘왜 그런 무상한 쓸데없는 짓을 하셨습니까?’ 그러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껄떡껄떡 되는 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가지고 이렇게 거세를
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뒤에 나오는 얘기가 ‘석가는 왜 이 세상에 나와서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거는요, 여러분이 깨달아보려고 덤벼 들어보셨으면 이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아이고, 나도 될 것 같은데 안 되거든요. 아니,
나도 저 사람은 된다는데 나도 될 것 같은데 안 돼요.’ 그럼 막 답답해 죽거든요.
그러면 진짜 이런 말이, 한탄 같은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순녀가 나중에 섬에 들어가서 간호사로 하잖아요. 그럴 때 전염병이 돌잖아요. 근데 하루에 10명 중에 한 명이 죽어 나가고 있는 전염병이에
요. 그런 전염병이 돌고 있었어요.
근데 순녀는 어때요? 먹는 거 보셨어요? 잘 먹죠? 남들은 비위가 상해서 계란 하나 겨우 먹는데 순녀는 밥을 이만큼 막 먹잖아요. 왜 그래
요? 이 사람들, 내가 기운이 나야 이 사람들을 다 돌볼 수 있으니까 자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순녀가 열심히 하잖아요.
이거를 보면서 저는 만다라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만다라에 보면 수관 스님이라고 있어요. 안성기 씨 도반 같이 출가하신 분이에요.
이분이 그 손가락 단지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끝나고 만행을 떠날 둘이 하는 대화에서 내가 어느 마을에서 만행하고 있을
때 진짜 스님을 만났다. ‘진짜 스님을 만났어?’ 그래, 어떤 스님이야? 그 섬마을에 전염병이 들어가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그 스
님은 자기 죽을 줄도 모르고 죽은 사람 염해주고 제사 지내주고 뭐 도와주고 물 갖다 주고 막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전염병이 끝나고 난 뒤에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서 절 지어주려고 했는데 어느새 섬을 떠나버렸더라. 그때 수관 스님은 뭐 하고 있었
어? ‘나는 산속에 천막 지어놓고 관세음보살만 부르고, 관세음보살님께 저 불쌍한 사람들 구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지.’
똑같죠. 그때 그게 만다라에 지산 스님이라고 나오잖아요. 지산 스님의 행동이 지금 순녀의 행동과 똑같죠. 자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열
심히 염하는 모습 근데 이 수관 스님은 전염병이 무서워 갖고 산속에 천막 쳐놓고 그 염불만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어떤 모습이에요?
여러분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라면 이거 쉽지 않아요. 이게 진짜 쉽지 않습니다. 순녀가 정말 이 만다라의 이야기가 오버랩 되는 이 속에서 이제 마지막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할게요. 큰스님이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 가지고 순녀하고 진성 스님이 다 오죠. 진성 스님은 그 사이에 비구 스님도 만났고,
그다음에 학생 운동 하는 남자도 만났는데 아무튼 그런 스토리가 있었고, 오랜만에 아주 수척해진 모습으로 진성 스님이 왔는데, 그 마을
다른 스님들은 큰스님이 진성 스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봐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했는데 어땠어요? 그래 “달마 스님 얼굴에는 왜 수염이 없느냐” 했는데 진성 스님은 대답을 못 하죠. 그때 큰스님이
“실참을 해야 하느니라.” 진짜 거짓된 잘난 모습, 열심히 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고 진짜 마음이 화두와 탁 사무쳐서 진짜 수행을
해야 되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문 열어봐라, 그 아이가 왔다” 그러잖아요
그때 순녀가 울면서 들어오죠. 그때 세 번째 만났던 남자도 죽고, 만난 남자마다 다 죽었죠. 그렇게 왔는데 큰스님은 마지막 남은 호흡 하나
를 쓰면서 ‘그래, 여기 남아 있는 혼령과 떠나간 등신 중에 누가 진짜 너이더냐’ 큰스님의 이 마음을 우리가 배워야 됩니다.
아무튼 그러고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 순녀가 큰스님 다비식을 보면서 마음속에 대답을 하죠. 13번에 그 뒤에 ‘그 어느 것도, 그러니까 여기
남아 있는 혼령과 떠나간 등신이 그 어느 것도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둘은 한 우물 속에 들어가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한 우
물 속에 넣을 묘책을 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걸 알기 위해서 1천 개의 탑만 세워보겠습니다
그러면서 큰스님 사리를 수습해 가잖아요. 뼈 사리, 그 허망한 것을 뭐 하러 줍고 있습니까? 큰스님이 분명히 사리 구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고 했는데 순녀가 그걸 하고 있단 말이에요.
진성 스님이 “그 허무한 것을 왜 그러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미망을 뒤집어쓰지 않고서 어떻게 미망 속에 중생을 구제하겠습니까?
여기에 어떤 영화 감독이라든지 소설가의 눈에 계율을 지켜야 되는 스님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분명한 한계가 보이고, 그렇지만 그 한계 속
에서도 충분히 제시할 만한 이야기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아무튼 이 말은 지산 스님의 했던 그 만다라에서 계속 했던 그것과 상통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러면서 순녀가 떠나가죠. 순녀가 떠나가면서 그 마지막 장면에 진성 스님이 잠 못 드는 이에게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어라.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것의 원본은요 법구경의 마지막 장입니다. 우암품, 어리석음 품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암은 어리석음이에요
교재에 왼쪽은 법정 스님이 한문 법구경을 보고 번역하신 거고, 오른쪽은 원문을 갖고 번역한 것인데 거기에 이렇게 나옵니다. 이건 한번 읽
어 보시고, 그 밑에 있는 것은 좋은 글이어서 제가 가져왔습니다. 읽어 보시면 되고요.
시간이 없으니까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만다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교 영화로 손꼽히는 그러한 명작입니다. 영화 자체의 재미도 있는
아주 그런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두 편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불자로서 어떤 고민을 더 해야 될까, 진정한 자비행은 중생 속에서
해야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선방에서 산속에서 이 작은 곳에서 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깨달음을 가지고 중생
구제를 해야 될 것인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여러분들이 다 보살행을 하고 계시잖아요. 보살행을 하는 입장에서 나는 진성 스님의 자비행의 모습, 순녀의 자비행
의 모습, 법운 스님의 자비행의 모습, 지산 스님의 자비행의 모습, 우리는 4가지 부류의 수행자의 모습을 봤어요. 나는 어디에 가깝나, 나는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나, 나는 앞으로 어떠한 보살행을, 자비행을 어떻게 실천해야 될까. 내가 만약에 진성 스님이라면 큰스님이 이런 화두
를 주었을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만약 순녀라면 이런 전염병이 돌 때 나는 어떻게 했었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을 스스로 던지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그러한 불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짧게 하고 싶었는데 이 시간이 너무 짧아서 혹시 질문 있으세요? 있으시면 저한테 찾아오세요. 다음에 우리가 어떠세요? 이거 이렇게
계속하는 거. 영화 그래도 한 번씩 보고 나면 옛날에 봤던 영화지만 또 보면 완전히 다르죠? 불교 공부하고 보면 완전 다르거든요.
다음에 볼 영화는 일본 영화 팬시 댄스인데요. 일본 영화입니다. 자막을 좀 보셔야 되는데 영화 자체는 굉장히 코믹 영화입니다.
코믹 영화라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제가 바로 공유해 드릴 테니까 시간 나실 때 미리 보시고, 스님들은 그거 보면 배꼽 잡고 웃습니다. 왜냐하면 강원 생활이 그대로
거기 들어가 있어가지고요. 그런데 이제 일본 임재종의 모습을 다음번에 할 때 좀 이렇게 얘기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다음 영화는 일본 영화 팬시 댄스 1989년 영화입니다. 자,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 조계사 종무행정지원 단장 원지스님 합장]
홍보부에서 촬영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나가 곧 모두이고, 모두가 곧 하나이다"
아침에 마시는 물 한 잔에도 구름과 바람과 햇빛과 수 많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수많은 인연들과 함께 합니다. - ( 화엄경에서)
[ 글 정리 :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
#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조계사 종무행전지원단장 원지스님 # 조계사 사회법회

첫댓글 원지스님의 법문을 듣고나니 수행법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재밋고 유익한 말씀 지금도 생생해요.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