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8
류인혜
* 밀라노의 풍각쟁이
이탈리아로 왔다. 밀라노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밀라노 시내와 더 가까운 곳이다. 마중 나온 가이드(박강재 339-304-3232)는 로마에서 왔다. 몸집이 커다래서 성악을 하는 유학생이로구나 짐작을 해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애 아버지다. 짐을 찾아 끌고 버스를 탔다. 파리의 버스와 모양이 비슷하다. 앞문과 중앙에 출입문이 있고, 중앙에 있는 문 옆에 화장실이 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 여전히 처음 자리를 잡은 대로 자기 자리에 앉았다.
가이드는 보통 이박 삼일 정도로 한 팀이 끝나는데 우리와는 여러 날 함께 지내게 되었기에 더 반갑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평균 나이가 많은지라 이미 지쳐서 반응이 시큰둥하자 금세 분위기 파악을 한다. 너무 점잖은 일행을 만나서 농담이 어렵단다. 그래도 자기가 해야 할 이야기는 다 한다.
앞으로 우리가 구경할 이탈리아의 전반적인 개요와 특히 기후에 대한 소개를 많이 한다. 파리보다 남쪽이라서 더 따뜻하지만, 도시마다 기온이 조금씩 다를 것이니 가이드의 차림을 보면 대충 그날의 온도를 알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아침에 이미 옷을 차려입고 나온 후에 가이드를 만나게 되는데 기준이 삼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밀라노는 이번 여정에서는 지나쳐 가는 곳이기에 저녁을 먼저 먹고 나서 중요한 몇 곳만 돌아본다고 했다.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이 층에 올라가서 둥근 테이블에 두 팀으로 나누어 앉았다. 김과 달걀이 들어간 뜨거운 수프를 먹으니 긴장으로 굳었던 몸이 풀린다. 밥과 탕수육, 양배추김치, 스크램블 등이 나왔다. 커다란 접시에 담아주어 이리저리 옮겨가며 덜어 먹는다. 파리에 도착한 날 네 번째 식사로 밥을 먹고 나서 처음 구경하는 것이라서 ‘이게 웬 밥이냐’ 모두 잘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둑어둑해졌다. 바람이 차다.
500년 동안 건축했다는 밀라노 두오모에 먼저 갔다. 사진으로 보면 화려한 외관인데 앞부분에 천막을 쳐두었다. 수리하는 것인지, 청소하는 것인지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꼭대기의 천사상이 멀리 보인다. 너무 어두워서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밀라노 시내에는 시계가 많다. 곳곳에 시계가 있다. 이상한 노릇은 분명 시계를 쳐다보며 ‘아 지금이 몇 시가 되었구나’ 인지는 했는데, 돌아서면 시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서울의 60년대처럼 노란색 전차가 시내를 누비고 다닌다. 승객이 없이 텅 비어 있다.
광장을 지나서 갈라시아(갤러리)로 향했다.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중앙에 아치형으로 입구가 있고 양쪽 날개처럼 지어진 건물이 웅장하다. 그곳으로 들어가서 길바닥에 모자이크된 황소 문양을 만났다. 뒤꿈치를 황소의 다리 부분에 대고 세 번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모두 뒤꿈치로 돌면서 소원을 빌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 200m, 상하 100m의 건물 규모이다.
건물을 나서니 바로 스칼라 광장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그곳 무대에 서는 것이 큰 영광이란다. 외국 사람이 오면 기를 죽이려고 일부러 야유하는 관중도 있단다. 안내서에서 그 존재를 읽고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궁금했는데 광장의 중앙에 레오나드도 다빈치가 머리를 숙이고 높이 서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동상의 느낌이 정중하다. 사방에 네 사람의 동상이 함께 있다. 누구인지 궁금해서 한 바퀴 돌면서 그들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길을 건너 골목을 돌아나가니 큰길이 나왔다. 패션의 도시답게 길가 상점의 진열장이 아름답고 멋진 옷들이 많다. 옷과 구두, 핸드백들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밀라노에 가면 옷을 한 벌 사라고 선심을 쓰던 우리 집 양반의 말이 떠올라 눈을 부릅뜨고 살폈지만 적당한 게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는 앞서 걸어가고 우리는 상점을 기웃거리며 지체하니 열 몇 사람의 일행이 일렬로 늘어서서 걷는다. 모든 상점이 오후 8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가 연주를 하는 거리의 악사들을 만났다. 아코디언 모양의 전통악기라고 하는데 풍짝거리는 음률이다. 15유로라 적혀있어 주머니를 뒤져 말없이 12유로를 주었더니 그쪽도 말없이 CD를 준다. 밀라노의 기념품이다.
버스 근처에서 웅장한 성을 만났다. 주변이 어두웠지만, 용기를 내어 가까이 가서 구경했다. 14세기 비스콘티가의 거성으로 세워진 스포르차 성. 15세기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개축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 <로다니니의 피에타>가 소장 된 곳이라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숙소까지는 한 시간쯤 더 가야 한다고 했다. 휴게소를 지나쳐 버려 도중에 길가의 주유소에서 멈추어서 모두 급한 볼일을 보았다. 어두운 길을 달려서 밀라노의 외곽에 있는 호텔(Park Hotel)에 도착했다. 호텔의 로비는 0층이다. 방 번호의 첫 글자대로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누르라고 한다. 우리는 2자로 시작된다. 각자의 방 번호를 정리한 종이를 한 장 주었는데 한국으로 전화를 거는 방법이 적혀있다. 옳다구나,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했다.
잠이 덜 깬 음성으로 아들이 6시 15분 전이라고 했다. 주일 아침이니 이제 일어나서 준비해야 교회로 가는 시간이 바쁘지 않다. 멀리에서도 확인하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다. 통화했으니 안심이다.
내일은 일찍 출발한다는 공지다. 입을 옷을 꺼내 놓고 가방을 대충 정리해 두었다. 세수만 하고 잠이 쉽게 들었다.
첫댓글 앗! 이탈리아까지 갔었군요.
지나치기만 계획했는제데 좋은곳은 다 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