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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죽음을 보는 영적 가치관. / 死に対する霊的な価値観。
본문; 히브리서 9:23-28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물은 이런 여러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제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25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26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아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
23. このように、天にあるものの写しは、これらのものによって清められねばならないのですが、天にあるもの自体は、これらよりもまさったいけにえによって、清められねばなりません。24. なぜならキリストは、まことのものの写しにすぎない、人間の手で造られた聖所にではなく、天そのものに入り、今やわたしたちのために神の御前に現れ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25. また、キリストがそうなさったのは、大祭司が年ごとに自分のものでない血を携えて聖所に入るように、度々御自身をお献げになるためではありません。26. もしそうだとすれば、天地創造の時から度々苦しまねばならなかったはずです。ところが実際は、世の終わりにただ一度、御自身をいけにえとして献げて罪を取り去るために、現れてくださいました。27. また、人間にはただ一度死ぬことと、その後に裁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28. キリストも、多くの人の罪を負うためにただ一度身を献げられた後、二度目には、罪を負うためではなく、御自分を待望している人たちに、救いをもたらすために現れてくださるのです。
지난 주일에는 염려와 걱정, 근심을 어떻게 관리하고 마음을 지킬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근심과 걱정, 염려가 없을 수 없는 인생이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바로바로 맡겨 드리는 태도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지혜와 능력인 것을 배웠습니다. 염려할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으나, 염려에 빠지거나 걸려 넘어지지 않는 담대함으로 복된 일상을 하루에 하루만큼 행복하고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다시금 축복합니다.
오늘은 죽음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데요. 실은 죽음이라는 주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리는 주제입니다. 오히려 인생에 생명력이 넘치고, 활력과 생기가 풍성하게 채워지리라는 약속을 전하는 것이 설교자도 인간인지라 그편이 더욱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언제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지혜자는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격언을 남기기도 했지요. 성경은 삶의 즐거움과 쾌락이 가득한 잔치가 벌어지는 곳보다, 되도록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에 우선 가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 7:2)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전 7:4)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초상집에 가면 인생이 얼마나 귀중하며, 또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누구보다 더 죽음에 대해서 명확하고 확실한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요. 그래야 인생의 염려와 근심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축복을 제대로 누리는 삶을 주님 앞에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막연히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통해 참된 소망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돈, 명예, 권력, 건강, 일 등이 인생에서 매우 값지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실은 인생을 사는데 적절하게 필요한 것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누가복음 12장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시며 지혜로운 삶을 가르쳐 주시는 내용이 있는데요.
어느 부자가 풍년이 들어서 기존의 창고를 헐고 더 크게 만들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큰 창고를 짓고 넉넉히 곡식을 채울 생각에 들떠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눅 12:19)
그런데 그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하나님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심지어 행복해 하기까지 하는 그 부자를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풍요로움에 취한 나머지 죽음을 인식하지 못함으로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대부분 사람들이 죽음을 통해 인생의 귀중함과 또한 인생에서 소중한 것에 대한 분별력을 얻지 못합니다. 그저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만 어렴풋이 할 뿐이지요. 그래서 복음을 믿지 않으면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욱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삶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과 단 한 번으로 영원히 유효한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를 믿는 이들이 누리는 복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속죄제사의 제물로 바치기로 구별된 동물의 피로 속죄의 정결함을 수시로 행해야 했던 인간의 행위(구약의 제사법)로는 죄사함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제사, 즉 십자가의 죽으심과 보혈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토록 유효한 속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영생에 속한 자가 된 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질문하시는 이 말씀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멘으로 화답하시겠습니까?
만일 아멘으로 화답하셨다면, 저와 여러분은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하며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허무하게 여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죄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자임을 스스로가 선언하였고, 확증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도 바울이 이렇게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이 곧 십자가의 복음을 시인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입으로 시인하였기에 구원을 얻은 것이지요. 아멘!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제 복음을 믿지 않는 평범한 이들처럼 죽음을 단지 두렵고, 허무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입장에서 볼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할 때 나의 삶을 더욱 귀중하게 볼 수 있고,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눈을 열어 주는 문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27절에서 죽음 이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구절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죄사함을 얻고 구원받은 나에게 경고하시거나, 겁박하시려는 구절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과 안심을 주는 구절로 믿어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는 심판은 마귀와 그를 따르는 귀신들을 영원한 벌로 심판하시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심판은 영생을 확증하는 심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죄의 종노릇 하는 자에게는 죄에 합당한 징벌과 정죄의 심판이 있겠지만, 죄사함을 받은 이들에게는 영생을 확증하는 심판이 날이 우리에게 약속된 것을 믿습니다.
복음을 믿는 것은 나의 어떤 죄와 허물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겼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 자리에 서도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과 소망하는 마음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그런 죄사함과 영생에 합당한 존재로 살기 위해서 경건하게 살고, 거룩하게 살고, 믿음에 합당하게 살고, 사명에 순종하며 살고, 주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착하고 신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곧 죽음을 맞이할 암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완화해 주는 호스피스 전문의사인 오오츠 슈우이치라는 분의 저서인데요. 그 책에 기록된 25가지 중에 첫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세 번째는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하는 후회. 다섯 번째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곱 번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열세 번째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 스물다섯 번째는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와 스물다섯 번째의 후회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주제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말하지 못하는 후회, 그리고 신의 가르침, 즉 영적인 영역에 대한 가르침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후회입니다. 저는 가장 마지막으로 말하는 영적인 영역에 대한 가르침은 복음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복음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믿었더라면 언제 생을 마감하더라도 후회하거나,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죽는다는 것은 슬프고도 아픈 일입니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세계가 서로 멀리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슬프고 아픈 일이라고 해서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없고, 후회할 것도 없습니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대로 감내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 이후에 반드시 있을 심판을 생각하며 오히려 소망을 갖습니다. 영생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어 회개하면 죄사함을 얻습니다. 죄사함을 얻은 이들은 영생의 소망으로 삽니다. 영생의 소망으로 사는 이들은 인생을 살면서 동시에 영생을 시작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이미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재림으로 죄악의 심판이 있을 때... 죄악에 물든 나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죄악의 심판을 받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존재,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분명한 약속인 것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죽음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성찬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영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너무도 감격스러운 시간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기억하며, 육신의 삶에 소중하다고 착각하며 살던 것으로 인해 낙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좌절하고, 실망하던 일상에서 자유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오직 주님과 함께 손잡고, 주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후회없이 기쁘고, 감사와 기도가 풍성하고도 충만하게 채워지고도 흘러넘치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시선을 지혜롭게 갖추는 것은 복음을 믿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깨우치게 됩니다. 또한 죽음을 생각할 때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생각하는 죽음은 허무하게 모든 것이 사라지는 사건이나 사고가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함께 죄에 대해 죽은 자신의 영혼이 최종적으로 영생의 판결을 받는 소망과 환희와 감격의 순간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죽음 자체는 슬프고 아픈 일이지만, 결코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고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지요. 오히려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주님과 더 친밀하게 동행하며,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이 정결하게 된 것을 떠올리는 소망의 기회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죽음과 복음, 그리고 영생에 대한 영적인 시선이 열리고, 유지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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