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03/08토(土) 시 91:1-16
“그가 나를 간절히 사랑하니, 내가 그를 건져 주겠다”(시 91:14).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참 귀한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주님께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다”(시 91:2). 피난처라는 말은 히브리어 ‘마흐세’로 위험이나 고통 속에서 보호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지존자를 삶의 거처, 피난처로 삼겠다고 합니다. 피난처는 위로, 보호, 안식, 새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피난처 되시는 자의 복입니다.
▣여호와가 피난처 되시면 환경적 저주, 재앙에서 벗어납니다.
환경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환경적인 저주와 재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어둠의 세력인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왼쪽에서 천 명이 넘어지고,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네게는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시 91:7). 그러나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환경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피난처 되시면 어둠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환경적인 저주나 재앙은 소극적인 면입니다. 태어났더니 가난하더라, 장애자로 태어났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 이렇게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태어난 환경에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면에서는 사단의 세력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권세와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정녕 주님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빼내 주시고, 죽을 병에서 너를 건져 주실 것이다”(시 91:3).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하는 것은 사냥꾼의 덫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요셉을 보호하니 죄를 이깁니다. 그러나 삼손은 사냥꾼의 덫에 걸립니다. 은혜를 떠나게 되면 실패하게 됩니다.
▣여호와가 피난처 되시면 우리의 심령을 어둠의 침체에서 벗어나 강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으면 모든 의욕이 상실하게 됩니다. 인간 속에 의욕을 심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힘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때 가장 건강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힘이 있어 응답이 있고 환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시 91:14-15). 성도는 심령이 강해야 환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호와가 나의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이길 수가 있었던 것은 심령이 강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다락방은 예루살렘 쪽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그는 늘 하듯이 하루에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단 6:10).
▣여호와가 피난처 되시면 하나님이 직접 그 사람의 무기가 되어 줍니다.
세상의 무기는 없고, 오직 하나님이 무기가 되어 주십니다. 칼을 가진 사람은 칼로 망합니다. 우리는 칼을 내려놓고 주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만이 피난처, 요새, 반석, 바위, 방패, 구원이 뿔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피난처 되시니 기드온의 300 용사로 수만 명의 미디안 군대를 물리칩니다(삿 7:22-23). 하나님이 기드온의 무기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아 폭풍 속에서도 평안을 유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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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기초가 무엇인가? 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은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다윗이 평생에 걸쳐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인간은 양이라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 살 수 없듯이 인간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피난처’란 신약의 용어로 ‘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주님이 나의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의 신앙이 자유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 그대로를 믿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성경 말씀이 나에게 레마(주관적 말씀)로 다가올 때 그 말씀을 가감 없이 말씀 그대로 믿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그 말씀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에게만 들린 것입니다. 천둥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 주관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어느 교회 청년들이 수련회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로 인해 불어난 개울물을 건너면서 ‘성경에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믿음으로 이 개울을 건너자’라고 하며 무모하게 개울을 건너다 모두 익사하였다는 오래전 뉴스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순회 전도로 상계동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된 순원모임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잘 살아내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도 혹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에 점검 차원에서 방문하였습니다. 7년 만의 방문입니다. 그분들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간추려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 주체가 ‘나’이므로 결과에 집착합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질병에 걸립니다. 특히 우울증의 경우입니다. 내가 주인 되어 산 것을 회개하고 주님의 통치를 구합니다. 주님이 주체가 되면 과정을 즐기므로 결과에서 자유합니다.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자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시제(현재) 안에서 이미 그 자녀는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현실로 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미 구원받았다고 믿으면 조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아니라 내 자녀이기에 조급합니다. 조급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주님의 자녀로 넘기면 됩니다. 응답이 더뎌지는 이유는 내 자녀에서 하나님 자녀로 맡기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맡겨질 때 주님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은혜와 진리를 깨닫는 것이 더디어 답답하다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걸맞는 은혜를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사용하십니다. 깨달음(은혜)을 구했음에도 주지 않으셨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주신 만큼 은혜받고 주님만 바라보며 살면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주신 만큼 감사하고 그 주신 은혜를 흘려보낼 때 하나님은 더 많은 은혜를 흘려보내게 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고여있기에 더 큰 은혜가 흘러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받은 것을 주변에 흘려보낼 때 하나님은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남편의 구원, 그리고 좋지 않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상황은 주님께 맡기고 ‘너는 나를 보라’입니다. 나만 주님 앞에 잘 훈련 받으면 남편이 구원받고 돕는 배필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가 남편, 자녀에게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문제 원인은 내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변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기 원하십니다.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 찾으면 됩니다. ‘나’만 변화되면 남편도 자녀도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변하길 기도하지 말고, 내 자아가 죽고 주님만 나타나기를 기도하면 됩니다. 때에 맞는 가족의 변화, 가정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대부분 그분들의 고민은 오늘의 말씀에 적힌 내용입니다. 아직 주님이 깨달음을 주지 않아 못 깨달을 뿐입니다. 이제 오늘 정확한 진단을 받았으니 삶에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가정이 천국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저는 주님의 통로로 오늘 상계동에 다녀온 것뿐입니다. 하나님께 몸을 빌려드린 것뿐입니다.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생명을 전하고 왔으니 영적 기쁨이 충만합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낙엽 속에 숨겨진 돌맹이를 밟아 발이 삐끗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괜찮습니다. 사단은 생명을 전하는 저를 공격하지만, 하나님은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그런 하나님 때문에 살맛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모든 말씀이 내게 적용된 말씀은 아닙니다. 내 상황에 맞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레마로 주실 때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상황에 따라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들어 갈 때, 그 말씀이 주님이 주시는 음성입니다. 주관적인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피난처 예수
https://youtu.be/pSY3AFy9x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