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2013년 8월 24일(토)
승차지 : 카페 메뉴 목록의 버스 승차(출발)지를 참조해 주세요.
준비물 : 중식, 간식, 식수, 자신이 드실 약주, 여벌 옷, 여름 산행장비, 기타
산행예상시간 : 약 5시간~ 6시간
-엽돈재(10:30)-(0.4km)-만뢰지맥분기점(10:40)-(1.0km)-부소산(11:00)-(1.5km)
-부소령,부수문이고개(11:20)-(2.5km)-위례산(12:10~12:25)-(2.2km)-우물목고개
(13:00)-(2.3km)-군부대, 성거산(13:40)-(0.6km)-성거산정상석(13:50~14:00)-
(0.6km)-만일고개(14:15)-(0.5km)-영인지맥분기점(14:30)-(0.5km)-걸마고개
(14:35)-(1.2km)-유왕골고개(15:00)-(2.3km)-태조산(15:35~15:40)-(1.8km)-
아홉싸리고개(16:10)-(0.8km)-유량리고개(16:20)-(0.1km)-주차장,차도입구(16:25)
○산행일시 : 2012. 1. 21.
-엽돈재는 충북 진천과 충남 천안, 경기도 안성을 가르는 경계지점이며, 고도 323m 수준점이 있음.
-엽돈재로 내려서서 진행방향 좌측 진천쪽 고갯마루로 진행하여 맞은편 마루금을 이어감.
-엽돈재에서 8~9분 오르면 만뢰지맥 분기점을 지나며, 이어서 좌측으로 금강발원지 깊은골 갈림
길을 지나면 부소산 정상임.
-부소산은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음.
-부소산을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부소령이며, 부수문이고개로도 불림.
-부소령에서는 위례산 방향 이정표를 따름.
-위례산 돌탑봉에서 정상까지는 100m 거리이며, 정상석과 위례산성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음.
-위례산을 내려오면 성황당고개를 지나 우물목고개에 다다르며, 여기서 도로를 따라 2.3km
고도를 높여가면 성거산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 정문에 다다름.
-우물목고개에서 성거산(군부대)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천주교 성지들을 여러 곳 지나게 됨.
-군부대 정문에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성거산 방향으로 진행하게 됨.
-성거산 정상은 공군부대가 주둔해 있기 때문에 출입금지 구역이며, 정상에서 조금 더 가면
삼각점이 있는 곳에 성거산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음.
-성거산 정상석 뒷쪽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는 길이 정맥길임.(길 주의)
-성거산을 내려오면 만일사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이 만일고개임.
-만일고개를 지나 국민은행 연수원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이 영인지맥 분기점임.
-영인지맥분기점을 지나 삼뱅이(매일골)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이 걸마고개임.
-각원사 갈림길 이정표와 정자가 있는 유왕골고개를 지나 태조산으로 진행함.
-태조산 정상은 정자와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음.
-태조산을 내려오면 아홉싸리고개를 지나 유량리고개에 다다름.
-유량리고개는 2차선 포장도로 상부로 동물이동통로가 설치된 곳이다.
좌측으로 100m 정도 내려가면 유량지하차도 입구 도로로 내려서게 됨.
엽돈재에서 진천방향 고갯마루로 올라서 맞은편 마루금을 이어가면 이제 충남땅으로 접어
들게 된다.
잠시 후 만뢰지맥 분기점을 지나 부소산 정상으로 향하며, 이 부근이 고대 삼한시대의 마한
목지국이었는데, 백제 온조왕이 목지국의 진왕으로 부터 동북 100리 땅을 봉토받아 백제의
첫 도읍을 세운 하남 위례성인 곳이다.
부소산으로 가는 길에는 곳곳에 옛 백제국의 첫 도읍지임을 표시하는 표지판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어서 정상석이 자리한 부소산 정상을 지나 부소령으로 내려선다.
부수문이고개로도 불리는 부소령에서 부터는 백제의 성터가 아직 남아있는 위례산이 있어
산행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50분 정도 계속해서 오름길을 올라서면, 돌탑봉을 지나 펑퍼짐한 봉우리 위에 정상석과
위례산성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위례산 정상이다.
정맥길은 다시 위례산을 내려와 우물목고개로 이어진다. 정항령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고개에서 성거산 정상 아래까지는 차가 지나갈 수 있는 포장도로가 나있고 중간 중간에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순교한 성지들을 지나 정상부에 가까워지면 공군부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 군부대 때문에 성거산 정상은 오를 수가 없고, 이곳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길은 이어진다.
그리고 정상을 밟을 수 없는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려는 듯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성거산 정상석이 있고, 그 옆으로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성거산 정상석 뒷쪽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와 만일고개를 지나면 국민은행 연수원으로 이어
지는 갈림길인 영인지맥 분기점이 있고, 여기서 '좌불상' 이정표를 따라 직진한다.
걸마고개를 지나 25분 정도 가면 또다시 이정표가 있고, 쉬어갈 수 있게 정자가 마련되어 있는
이곳은 각원사와 유왕골약수 방향으로 나뉘는 유왕골고개 갈림길임.
태조산 정상은 이곳에서 35분 거리다.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오룡쟁주(五龍爭珠)의 형세라 하여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면서 이
산의 서록에 주둔함으로써 태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오는데, 정상에 서면 천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있지만 역시 흐린 날씨 탓에 조망은 기대할 수가 없다. 2층 정자에
어울리지 않게 태조산 정상석은 앉은뱅이 모습으로 땅바닥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교보생명 울타리를 따라 아홉싸리고개를 지나면 10분 거리에 유량리고개를 만난다.
유량리지하차도 위로 동물 이동통로가 있는 유량리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고 좌측 아래 도로변으로
내려선다.
- 산행일기 산행정리(2013, 03, 24 일요일)
09:10 엽돈재 출발/지난번 내려온 날머리에서 길을 건너 좌측으로 조금 가면
수준점이 있고, 생거진천 표지석이 있으며, 우측으로 오릅니다.
09:19 만뢰지맥 분기점/엽돈재에서 약 10분 정도 오르면, 만뢰지맥 분기점이고,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만뢰지맥은 이곳에서 금북정맥과 분기하여 만뢰산(612.2m), 덕유산(412m),
환희산(402.3m), 취령산(목령산 221.9m), 상봉산(196m), 국사봉(171m),
응봉산(175.4m)을 거쳐 미호천과 병천천의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3.6km에 달하는 산줄기입니다.
09:30 깊은골(금강발원지 샘 400m) 표지판
09:35~09:38 부소산(459.1m)/로에서 좌측으로 약간 비껴나 있으며, 정상석과
삼각점(진천 314)이 있습니다.
09:56~09:58 부소령(부수문이고개, 268m)/천안시 입장면과 북면을 이어주는
57번도로가 지나는 고개입니다.
부소령 표지석에는 "백제 첫 도읍지 하남 위례성 직산 백제시대
(BC 18 ~ 6. 13.년)이라 쓰여 있고 그 옆에 수준점이 있습니다.
10:20 멋진 소나무가 있고, 여러개의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
10:33 이정표 ←위례산 0.3 km,↓ 부수문이고개 2.1 km/좌측 위례산 방향으로
10:41 돌탑 2개와 삼각점이 있는 곳.
10:45~10:48 위례산(523m)/넓은 공터에 위례산 정상석이 2개 있고, 위례산성
표지석도 있습니다/좌측으로 진행하면서 멀리 아래로 골프장도 보입니다.
10:50 소나무가 있고 벤치가 있는 갈림길/*** 주의 *** 좌측으로 진행
10:52 군단이 갈림길/우물목고개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11:02~11:10 유성농장입구 갈림길(490m)/우측 사리목고개 방향으로 갑니다.
11:19 임도 11:20 성황당 고개
11:28 NO. 55 철탑 11:32 NO. 39 철탑
11:34 우물목고개/성거산 성지 표지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갑니다.
11:39 저속3단으로 가라는 표지가 있습니다.
11:43 저속4단으로 가라는 표지가 있습니다.
11:44~12:32 헬기장, 점심 12:34 좌측에 체육시설이 있습니다.
12:35 성거산 순례성지(제1 줄무덤)
12:35 우측으로 성거읍이 보이고, 천흥저수지가 보입니다.
12:38 제2주차장 표지판과 성거산 순례성지(제2 줄무덤)표지석이 보입니다.
12:58 우측으로 통신탑이 있습니다.
13:00 등산로 폐쇄와 우회등산로 표지판이 있습니다.
전에는 공군부대 정문까지 가서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진행 하였으나
지금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진행해도 길을 잘 정리 해놓았습니다.
조금 더 진행하여 공군부대 정문까지 가서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진행함
13:03 공군부대 정문앞에서 좌측 변전실이라 쓰여진 곳 좌측 철조망을 따라 진행
13:05 은석산 갈림길/철조망이 우측으로 휘어 지는 곳에서 좌측으로 잠깐
다녀옵니다/마루금은 우측 나무계단을 향해 내려갑니다.
13:07 은석산 방향 표지가 있는곳(좌측 봉우리)
13:08 되돌아 마루금으로 가서 나무계단으로 내려갑니다
13:14 천흥리임도갈림길/이정표↑만일사0.3km,↑각원사3.4km,→천흥리임도1.0 km
13:17 성거산/원래의 성거산은 공군부대가 자리하고 있고, 이곳에 정상석이 있고,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직진하여 조금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있으며,
*** 주의 *** 삼각점 있는 곳에서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
좌측으로(원래의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며, 마루금을 이어가야 합니다.
13:27 구조표시목(제 30지점)
13:33 만일고개/이정표 ← 송전리 1.3 km,↑ 각원사 2.7 km,↓ 성거산 정상 0.6 km,
→ 만일사 1.0 km/각원사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13:42 영인지맥 분기점/은행연수원 방향이 영인지맥이라 합니다/좌불상 방향진행
13:49 걸마고개/이정표 ↑ 태조산 각원사 1218 m, ↓ 성거산 정상 1362 m
14:10 구조표시목(제 21지점) 상명대학교 갈림길
우측으로는 상명대학교, 좌측 태조산 방향으로 갑니다
14:13 유왕골 고개/사랑의 쉼터 표지석과 정자, 유왕골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음
이정표 ↑ 태조산 정상 2360 m, ↓ 성거산 정상 3430 m
14:16 각원사 좌불상 갈림길 14:22 구조표시목(제 17지점), 유왕골(약수터) 갈림길
14:25 좌측으로 자갈 지압길이 있고, 우측으로 정자가 있는 봉우리를 지납니다.
14:28 구조표시목(제 1지점) 14:46 펜스 출입문을 나가 좌측으로 올라갑니다.
14:51~14:53 태조산(421.5m)/팔각정과 정상석이 있습니다.
15:00~15:20 휴식 15:44 365m봉. 삼각점/이정표 2POST, 제3포스트 1230m →
15:52 전망 좋은곳
16:06 아홉싸리 고개/이정표 3 POST 16:13 NO. 13 철탑
16:16 좌측 유량리고개 도로로 내려서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바우덕이(1848∼1870 )
바우덕이의 본명은 김암득(金岩德)으로, 그 이름이 바우덕이로 불리어진 내력을 생각하여
볼 때에 이름 자에 나오는 岩이 바우임으로 <바우 + 德이 = 바우덕이>로 불리어진 듯하다.
바우덕이는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이다. 조선시대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출생했으며, 5세 때 안성 청룡사 안성남사당에 입단했다. 15세 때 안성남사당 꼭두쇠로
추대되어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가 된다.
남사당이란 조선 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단체로서 전문
공연예술가들로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연예집단이라 할 수 있다. 남사당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40∼50여명으로 조직되었고, 이 단체를 이끌어 나간 대표를 '꼭두쇠'라고 불렀다.
그 밑에는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등짐꾼 등으로 직책을 나누었다.
이들은 꼭두쇠를 중심으로 공연계획을 수립하여 기량을 연마하였고, 전국 장터를 다니면서
풍물놀이는 물론이고 줄타기, 탈놀이, 창(노래), 인형극, 곡예(서커스)를 공연하였다.
안성 남사당과 바우덕이
청룡사 안쪽의 불당골은 100여년전 나라 안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안성 남사당패의 본거지. 서민 사회에서 발생한 예인(藝人) 집단인 남사당은
성립 배경이나 연원은 확실치 않으나 일정한 거처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졌다.
남사당이 펼쳐온 놀이는 풍물, 대접돌리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 꼭두각시놀음
이렇게 여섯 가지로, 밥 먹여주고, 잠 재워 주면, 다른 보수 없이도 밤새워 놀곤 했다.
이들의 은거지로는 경기도 안성·진위, 충청남도 당진·회덕, 전라남도 강진·구례,
경상남도 진양·남해, 황해도 송화·은율 등지.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안성 서운산
불당골의 팔사당 마을을 은거지로 삼았던 안성 남사당패였고, 그 인기의 한가운데엔
드물게도 ‘바우덕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바우덕이에 대한 일화 한 토막.
1865년 대원군 시절, 경복궁을 중건할 때 노역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남사당패 중
안성 남사당패가 인기가 있었는데, 특히 바우덕이의 노래·춤·줄타기는 일품이어서 넋을
빼앗긴 일꾼들이 빈 지게만 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대원군은 바우덕이의 가무를 칭찬하고, 옥관자(정3품에 해당)를 하사했다고 한다.
이 지방에 전하는 속요엔 바우덕이의 명성이 잘 드러나 있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小鼓)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가네.’
이런 대중적인 사랑에 힘을 얻은 까닭인지 1910년경 안성 남사당패는 꼭두쇠 자리에 여자인
바우덕이를 앉히는 대혁신을 한다. 그 후 그녀는 10여년 간 남사당패를 이끌고 돌아다니며,
기예를 펼치다 결국 병을 얻어 스물세살의 처녀로 죽은 뒤 가마니로 둘둘 말린 채 눈 속에 묻혔다.
다만 “청룡리 개울가 어딘가에 그녀의 무덤이 있다더라”하는 입소문만 간간이 전해질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