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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명주마을
경주 두산마을은 토함산 줄기를 따라 동해 바다에 이르기 직전의 해변에서 십리 떨어진 산촌이다. 예부터 누에를 먹여 손명주를 짜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비단을 짜서 올린 소득으로 삶을 영위하며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하던 농촌이다. 누에가 토해낸 고치에서 실을 뽑아 만든 베는 부드러운 비단으로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바다가 지척이지만 호랑이가 늦게까지 발견되었던 범실마을과는 이십리길 거리의 토함산의 한 줄기로 단숨에 다다를 이웃이다.
이 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비단이 생산되었을까? 비단길은 최근 중국에서 지중해를 연결하는 대장정의 길로 실크로드라 부르며 비단과 문물이 교류되었던 길이다. 비단길인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자 시작점이 신라였다는 연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신라의 비단 생산지역은 어디였을까? 누에를 쳐서 생산한 명주, 삼을 재배해 실을 뽑아 생산했던 삼베, 또 다른 실크가 생산되었지만 명주가 가장 부드러운 비단으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손으로 만든 명주는 고가다.
우리나라에서 손명주를 생산하고, 기술을 전수하며 체험관과 전시관을 갖춘 곳은 바로 경주 양북면의 두산리 양지마을로 불리는 명주마을이 유일하다. 까마득하게 잊혀져가는 손명주를 생산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누에 재배와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명주마을을 둘러보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체험 할 수 없는 특별한 쉼터, 명주마을에서의 힐링로드를 가본다.
누에고치와 실
◆두산리 명주마을의 비단
경주 양북면 두산리는 산이 북두칠성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산의 봉우리가 일곱 마리의 말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북두이(北斗伊), 두이봉(斗伊奉)으로 부르며 마을 이름을 두산리(斗山里)라고 지었다. 마을이 동남향으로 인근 야산에 뽕이 자생하고, 농지에 뽕을 많이 키워 명주를 만들기에 적합한 곳이다.
명주는 누에고치를 원료로 하여 만든 옷감으로 비단을 말한다. 광택과 촉감이 좋고 부드러우면서 따뜻하다. 특히 손으로 만든 명주는 값이 비싸게 책정된다.
삼국지나 후한서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 명주는 이미 2~3세기 동예, 마한 등에서 제조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에 길쌈은 농경산업과 함께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농가소득원의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신라초기 박혁거세도 육부촌을 둘러보며 농사와 양잠을 장려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유리왕 때 길쌈을 장려하기 위해 해마다 7월15일부터 서울의 여자들을 반으로 편을 나누어 길쌈내기를 시작해 8월15일 한가위에 승부를 가렸다고 전한다. 신라의 길쌈은 고려시대에 계승되면서 가내공업으로 발전했다. 또 국가에서 관영기업으로 틀을 잡아 비단을 짜는 잡직서, 염색을 담당하는 도염서를 두어 비단을 생산했다.
조상들의 명주 생산기술을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오늘날까지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유일한 손명주 생산 마을이 두산리 명주마을이다.
최근 경북도와 경주시가 문화융성사업으로 복원하고 있는 비단과 문물의 세계적인 교역창 비단길, 실크로드는 신라시대부터 이미 형성되었다. 아시아와 중국,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의 길로 중국의 비단이 서방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비단길, 실크로드로 불리는 길이다. 비단길의 한쪽 끝이 경주라는 보고서들이 쏙쏙 제출되고 있다. 이 비단길을 통해서 불교와 간다라 미술이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되었던 통로 실크로드는 지중해, 중국을 통해 신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천년 수도였던 경주지역 고분에서 서역에서만 생산되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유리잔 등의 유물이 발굴되는 것이 비단길을 입증한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손으로 비단을 짜는 생산과정이 힘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손명주 생산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100% 전통적인 수공으로 이루어지는 손명주 생산기술이 경주의 두산마을에서 전승되고 있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기에 이르렀다.
◆경주시전통명주전시관
경주시는 손명주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2억5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5년부터 3천699m² 부지에 경주시전통명주전시관과 작업장을 건립했다. 또 명주를 아름답게 염색하는 염색관도 함께 지었다. 전시관은 2009년말에 준공해 2010년 개관했다. 매년 1만여 명의 관광객과 체험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전시관은 1층과 2층으로 구분해 1층에는 명주로 만든 스카프, 신라시대 옷, 노리개와 기념품을 전시하고, 명주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물을 상영한다. 2층은 명주역사실과 명주백과실을 설치했다.
명주역사실에는 비단길의 시작과 끝을 설명하고, 누에치는 마을의 풍경, 명주짜기의 전통기법 설명, 명주와 관련된 역사들을 풀어놓고 있다. 명주백과실은 명주를 제작하는 뽕의 기원과 효능에서부터 명주를 짜는 기구들을 전시하고, 누에치는 과정과 명주짜는 모습들을 실물, 인형으로 재현하고 있다.
작업관에는 명주를 짜는 기계를 설치해 손명주연구회원들이 상주하면서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통명주짜기에 대한 체험객들은 물론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학생과 연구원들도 줄을 이어 방문한다.
경주시는 시티투어코스에 명주전시관을 포함해 매일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전통명주의 제조과정을 고스란히 소개한다.
◆비단짜기 체험
경주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지되고 있는 손명주 짜는 기술을 공개하는 한편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명주를 짜는 기구는 생소하게 보이는 다양한 목재로 구성되어 있다. 실을 뽑는 기구로 조사기, 채, 자새, 고치솜제거리 등이 있다. 실을 나르는 기구로 실패, 얼레, 실 감는 틀, 네다리 날틀, 실거는 틀이 있다. 명주를 짜는 기구로 베틀, 비경이, 바디집, 베북, 명주북, 최활, 북, 베바디, 뱁댕이, 명주바디, 꾸리 감는 틀 등이 있다.
명주가 완성되는 과정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다. 누에를 먹여 고치를 만드는 과정이 우선 농사의 1차적인 절차다. 고치를 삶아 실을 뽑고, 베틀에서 베를 짜고, 다시 삶아 말리고, 다듬이질로 부드러운 비단을 만든다. 다시 아름다운 옷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염색과정이 필요하다.
체험은 대부분 경주시티투어를 통해 진행된다. 동해의 주상절리와 감은사지, 문무대왕릉을 둘러보고 명주마을에서 1시간여에 걸쳐 손명주 짜기를 체험한다. 체험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된다. 체험 참가비는 무료다.
체험행사는 베짜기, 고치풀기, 물레 돌리기, 실 감기, 꾸리 감기 등의 내용으로 진행된다. 모두 생소한 경험이어서 서툴지만 재미있어 하는 과정이다. 손수건 염색 체험은 5천 원 정도의 체험비용이 필요하다.
체험신청은 경주손명주연구회 홈페이지나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 사무실 전화 054-777-3492번이나 회장 휴대폰 010-2480-1694으로 하면 된다.
손명주 시연
◆손명주연구회 김경자 회장
경주 양북면의 두산손명주연구회가 보기 드물게 개인이 아닌 단체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지난해 김경자 회장을 비롯해 16명의 마을주민들이 회원으로 등록됐다. 지금은 고령의 할머니가 사망하면서 회원은 15명으로 줄었다. 고치에서 가늘디가는 실을 뽑아 베를 짜고, 두들겨 비단결 같은 직물을 만들어내는 전통 손명주 제조단체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연구회는 명주마을 11명과 이웃 송전마을 4명을 포함 15명의 부녀회원으로 구성됐다. 70대, 80대 고령의 노인도 있고, 50대와 60대가 주를 이룬다.
김경자 회장은 “지금은 저희 50대와 60대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손명주 제작기술이 전승되고 있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 30~40년이 지나면 후계자 육성이 숙제”라고 걱정했다.
손명주연구회원들은 할 일이 많다. 이들이 직접 누에를 먹이는 일부터 실을 뽑고, 명주를 제작하는 일까지 전 과정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체험에 소요되는 실을 모두 감당하기에는 누에를 치는 일이 어려워 지금은 실의 원료가 되는 고치를 대부분 양잠협회에서 구매해 사용한다.
연구회는 체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2장 정도의 누에를 직접 먹이고 있다.
김 회장은 “회원들의 나이가 노령화 되고 있지만 누에 먹이는 양을 늘릴 계획으로 지난해와 올해 뽕나무를 심었다”면서 “내년부터는 10장 정도의 누에를 직접 먹여 고치를 사는 비율을 절반 이하로 줄일 것”이라 말했다.
연구회원들은 대부분 명주마을에 거주하는 부인들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시집오면서 누에를 먹이고, 명주를 짜는 일을 배운 사람들이다.
연구회원들의 일은 벅차다. 그러나 모두 재미있고 보람이 있어 힘든 줄 모른다며 신명나게 일한다. 이들은 전시관에서 체험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까지 물레를 돌리고, 고치에서 실을 푸는 체험을 함께 하면서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해준다.
손명주 짜는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질 뻔 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누에를 많이 먹였지만 일이 힘들어 사라지게 됐다. 명주마을에서는 부녀회가 농촌소득사업으로 누에치기와 명주짜기를 채택해 추진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다.
전통명주짜기 체험
김경자 회장도 이 마을로 시집오면서 누에를 먹이고, 베 짜는 것을 배워 35년째 명주를 손으로 짜는 일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이 부녀회장을 맡아 부녀회를 운영하면서 손명주 짜는 일을 본격적으로 부녀회 사업으로 추진했다. 김 회장은 농촌소득사업과 함께 전통문화를 계승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구회를 조직하고, 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신청해 지난해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7년 전에 신청했지만 처음에는 자료준비 등이 부족해 무산되었다가 2차 신청해 등록에 성공한 것이다.
김 회장은 “단순한 생산으로는 소득이 안 되어서 전시관 등 체험사업으로 돌려 추진하고 있다”면서 “손명주는 부드럽고 따뜻해 좋지만 한 필에 50만 원씩 받아야 하는 고가여서 판로가 거의 막혔다”고 소개했다.
손명주는 고급 수요자들이 가끔 찾기도 하고, 수의로 활용이 되어 명맥을 이어왔지만 화장문화로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연구회원들은 체험사업을 추진하면서 개인적으로 판매사업도 조금씩 추진하면서 맥을 이어간다. 회원들이 집에서 직접 베를 짠다. 한 사람이 연간 3필 정도 짜지만 소득은 겨우 250만 원 정도에 그친다.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전통문화 전승 지원금 등으로 편안하게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경주 두산마을의 전통명주전시관에서 진행되는 체험으로 색다른 힐링을 체험해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첫댓글 두산 명주마을에 가시면 지금도
물레를 돌리며 고치에서 실이 뽑아져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