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le ton)와 심정(la nuance), 그리고 생성
일성(一聲, un son) ! 작곡의 처음 순간에 있는 작가가 처음 음을 떠올렸을 때 그 일성은 특정한 한 음이 아니다. 이 소리가 찰나의 짧은 음이든, 곡 전체에 해당하는 기나긴 소리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내적 차이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껏 응축되어있는 한 다발(la gerbe)이다. 그러니 그것은 차(差)와, 차의 차이화보다 더 깊이 있으며, 더 심오하며, 더 감지하기 쉽지 않다. 대단한 작곡가들의 음악 속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 일성은 반복되고 변주되는 음들의 차이화들 속에서 틀림없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다’고는 하기 곤란한 강도로, 일컫건대 존재하기보다는 현존한다.
자, 일성은 특정한 음이 아닌 고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려, 경향을 나타내는, 어쩌면 모호할 수밖에 없는 말들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빛의 삼원색의 완벽한 혼합이 흰색인 것처럼, 이 일성의 개념은 무엇보다 밝지만, 무엇보다 혼융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보자. 음악가의 일성은 한 톤[심기(心氣), le ton]이다. 말하자면, 붉음이라기보다는 붉다이겠지만 아직은 불그스름하다는 아닌 것이다. 종소리이기보다는 종소리가나다겠지만 아직은 종소리스럽다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 톤에는 아직은 불그스름하지 않은 그러나 붉음은 확정한 온갖 붉음의 다발이 속해있다. 그러므로 이 톤에는 아직은 종소리스럽지는 않은 그러나 종소리는 확정한 종소리의 다발이 울리고 있다. [나로서는 슈베르트의 소나타들이 줄곧 이러한 톤의 순간들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 14번 소나타가 그러한데, 극초기의 알베르트 베이스가 돋보이는 미완성 소나타들에서 부터도 특히 그렇다. 마치 베토벤이 놓치고 있지만 자신은 드러낼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이 순간들이라는 듯이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명백한 영향 속에서도 달리 이 일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또 슈만은.... ]
그리고 다분히 사연이 순서 없이 집적된 시들에서 우리는 이러한 톤의 조짐을 잘 볼 수 있다. 모닥불과 함께 너울거리는 사연의 톤들은 아직 특출난 뉘앙스를 지니지는 못했다. 홍경나의 외주물집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 조야함은 매력이다. [기실, 이 시들은 이 심기의 평면이 공동체 공명의 장과 맥락이 닿아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루지는 않겠지만.]
모닥불
백석 / 시인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뭉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외주물집
홍경나 / 시인
반공방첩 포스터가 붙은 나무전신주 신작로를 따라 키가 껑충 달리아 모닥모닥 짓을 내던 저절로 눈질이 가닿던 외주물집에는
열흘씩 보름씩 집을 비는 애비 개암들어 쇠구들서 천날만날 고롱대는 골비단지 에미 회초리를 들어야 재우 말을 듣는 닷 살배기와 뻐뜩하면 물찌똥을 싸고 말라붙은 젖을 물고 점두룩 깨살이나 부리는 두 돌배기 중학 안 보냈다고 바깥으로 겉돌다 읍내 향촌옥 여리꾼을 한다는 발록구니 오래비 날품도 팔고 길품도 팔던 화랭이 아부지가 굿판 불려갔다 온 다음날이면 꼭 무명밥수건에 계면떡을 싸와 노나묵던 우리 반 영실이가 살았다
때에 찌든 컴컴한 빗살봉창이 하나 숭숭 구멍 뚫린 바람벽엔 시멘트 뿌시래기가 퍽석퍽석 살비듬거치 떨어지고 죄 삭아빠진 삘건 함석지붕에선 찰까당찰까당 자꼬 철못 널찌는 소리가 나던 외주물집에는
노랑꽃 핀 영실이 왕눈이 영실이 동동 종굴박 거튼 쪼맨한 영실이 우짜다 저물손에 할매캉 내캉 그 집 앞을 지내가다 정지서 식은 밥 양푼에 덤불김치 멀건 된장 툭수바리 차린 쥐코밥상을 들고 나오던 영실이캉 고마 눈이 딱 마주칠 때면 금방 울 거 맨치로 왕눈을 더 크기 뜨고 도로 정지로 들어가 나오도 몬하고 꼼짝도 몬하고 섰던 명년 국민학교 마치면 성서방직공장 취직 가서 집을 일바실 거라는 살림밑천 내 동무 영실이가 살았다
외주물집 : 마당이 없이 길가에 바싹 붙여지어서 길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이는 작고 허술한 집.
짓(을) 내던 : 흥에 겨워 마음껏 멋을 내던
개암들어 : 아이를 낳은 뒤에 잡병이 생겨
골비단지 : 몹시 허약하여 늘 병으로 골골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발록구니 : 하는 일이 없이 놀면서 돌아다니는 사람.
종굴박 : 조롱박
저물손 : 해가 지는 저녁 무렵
일바실 : 일으킬
홍경나
대구 출생
2007년 《심상》으로 등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천강문학상 수상
http://m.poetnews.kr/12094
너무나 쉽게는 : 음악가의 일성은 적색이었다, 적색 경향(la tendance)이었다, 음악의 일성은 종소리였다, 종소리가 흘러들었다고 말해버릴 수 있지만, 이러한 추상화는 이미 표현되어 굳어버린 것만을 다루어서, 바로 그 차이가 생성되는 뜨거운 순간을 포착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나와 그 사람에게 열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유용한 언어라는 도구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 감수하는 일들이다. 사실은 경향 la tendance도 톤 le ton도 tendre, 한 방향으로 당기다 동사에서, 더 어원적으로는 파생 어휘가 수십 개는 족히 될 동사 τείνω, teínô 테이노에서 온 것이지만 방향을 나타내는 말로서 지속 방향에 대한 더 추상적이고 더 장구한 단위가 경향이라면 그보다는 덜 추상적이되 더 정밀한 단위가 톤이다. 여기서도 본다. 언어조차도 다발이고, 순식간에 미분화되고, 그 미분화가 남긴 주름들로서 개념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 기호사이다.
일성으로서 이 톤은 음악가 자신에게조차도, 순수한 톤으로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작자는 난처하다. 마치 출발에 있는 0을 다루기 곤란한 것처럼 톤은 있다. 곤란한 이유는 그 존립이 위태로워서가 아니라, 앞서도 말했듯이 자칫 스쳐지나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반에서 재생되어 나오고 있는 순간에도 그렇다. 녹음의 기피하는 연주자들이 있는 이유, 음악의 특징으로 늘상 꼽히는 흘러감, 그 음악의 일의성의 핵심에 바로 이 톤의 문제가 있다. [연주와 작곡 사이에서 게다가 청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톤과 톤과 톤의 교차와 길항은, 심기의 평면은 사실 더 정교하게 다루어져야할 주제이다]
그가 여기에 만족한다면, 일성을 단지 말할수없는것(l’ineffable)으로 자신의 인격 안에 그저 거두고 말겠지만, 예술가는 그렇게는 하지 않는 존재이다. 즉 내뱉을수밖에없는존재이다. [실은, 내뱉음으로서 그 내뱉음으로서만 내뱉지않을수있는것을 내뱉는다는 묘한 말을 해볼 수 있는데, 렉톤에 대한 이 논의는 여기서는 그치겠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 뉘앙스를 부여한다. 이 뉘앙스가 도출되는 순간부터 음악가에게도 우리에게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어떠한 음악적 기호가 나타난다.
그렇다, 톤은 뉘앙스를 생성한다. 뉘앙스는 차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선언이다-이 선언이 들리는 순간부터는 우리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 차이가 뉘앙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뉘앙스가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사물이 지속 속에서만 자신이 현존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는 그때가 뉘앙스의 때들이며 이를 일반화하는 어떤 방식이 차이와 반복이다. 그 반대일 수는 없다. 다른 일반화의 방식에는 현상학도, 헤겔의 변증법도, 신화학도 있지만, 그것들조차도 이 뉘앙스의 생성 안에서는 작은 부분들이다. 생성학, 형이심학이 그렇게 만든다. 다만 이 철학, 저 철학조차도 이 생성의 뉘앙스들인데, 우리는 어떠한 생성의 뉘앙스가, 이 뉘앙스의 생성을 제대로 보는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색과 톤과 뉘앙스와 경향과 ........ 그러니까 흐름을 볼 수 있어야 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음악 전 악장의 흐름을 다 파악해야 그 음악의 생성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아아, 무엇보다도 톤을 말할 수는 없을까?] 생성의 발산이 아니라, 생성의 포박을 목적으로하는 논리는 우리에게 전복의 대상일 뿐이다.
[슈베르트와 슈만은 어떤 전개 속에서 베토벤을 전복했나? ]
Teinte, Ton, Nuance
Tous les termes de couleur sont polysémiques....
Les sens et les nuances colorées auxquels ils renvoient peuvent parfois se chevaucher mais jamais se superposer.
Mauve n'est pas violet, mais ce n ’est pas non plus lilas, ni parme, encore moins prune, pourpre et aubergine.
Le ton : désigne la modification d’une couleur dans sa valeur :
clair, foncé, sombre, obscur, moyen, vif, opaque, transparent...
La teinte : désigne ce qu’est la couleur :
rouge, orangé, jaune, vert, bleu, violet, blanc, noir, gris, brun, rose...
La nuance : est chacun des degrés d’une même couleur, il en existe des milliers :
(rouge) Vermillon, Cerise, Sang de bœuf, Carmin...
http://www.lescouleursdesophie.com/vocabulaire.htm
De τείνω, teínô (« tendre »), apparenté à tenor en latin.
τόνος, tónos \ˈto.nos\ masculin
Tout ligament tendu, ou pouvant se tendre.
Corde, cordage.
Sangle de lit.
Cordage pour le jeu d’une machine.
Fil tordu pour les mailles d’un filet.
Muscle, tendon.
Action de tendre.
Tension (des cordes de la lyre).
(Par suite) Intensité, force, vigueur, énergie (en parlant du corps)
(Musique) Mode. Ton (aigu ou grave).
(Métrique) Rythme, ou mesure d’un vers.
(Grammaire) Accentuation, accent tonique.
nuer \nɥe\ transitif 1er groupe (voir la conjugaison)
(Vieilli) Assortir, disposer des couleurs, dans des ouvrages de laine ou de soie, etc., de manière qu'il se fasse une diminution insensible d'une couleur à l'autre, ou d'une même couleur, en allant du clair à l'obscur, ou de l'obscur au clair.
Il eut soin de nuer le céleste plumage des plus fines teintes de l'arc-en-ciel. — (Anatole France, Le joyeux Buffalmacco, I, dans Le puits de sainte Cl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