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에스겔 36장16~38절
제목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회복은 전적으로 그분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심판 중에 있는 이스라엘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1. 자기 이름을 위해(16~23절)
1) 말씀의 계시(16절)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회복 예고에 이어 선민(選民)들에 대한 회복이 기술됩니다.
먼저 21절까지 그 회복의 궁극적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즉 선민의 회복이 결코 그들의 의로움이나 그들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멸망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무능한 신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20:39;미 4:5;말 4:2).
2) 이스라엘의 부정과 유배(17~19절)
(1)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다(17절)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 '더럽혔나니'(예타무우)는 '(종교적, 도덕적 의미에서의) 오염이나 부정'을 가리키는 '타메'의 미완료형으로 그 범죄 행위의 습관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가 습관적으로 저질러졌으며 그 땅 전체에 만연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피의 유출은 생명의 상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죄악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여자들의 월경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레 15:19).
한편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어 18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죄의 내용(...피를 쏟았으며)에 대한 문자적 병행의 의도로 보여집니다(Schroder, Hitzig).
(2)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을 더렵혔다(18절)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
이스라엘의 죄목이자 하나님의 심판 이유가 제시됩니다.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 LB는 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murder)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살인'에만 국한된다기보다는 정치적 압제, 경제적 착취 등 이스라엘에 퇴행했던 모든 종류의 도덕적 범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어지는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란 구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22:3, 6;33:25).
(3)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여 민족을 흩으셨습니다(19절)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
이것은 모세 율법에 이미 예시되어 있었습니다(레 26:33, 38;신 28:63-65).
3)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20~21절)
(1) 유배민이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습니다(20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 이는 19절에 기술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주변 이방 국가들을 가리킵니다.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말한 자는 이방인들이지만 그 이름을 욕되게 한 궁극적 주체인 '그들'은 이방인들이(Kliefoth) 아니라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Delitzsch, Schroder).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은 일차적으로 선민으로 자처하면서도 갖은 행악을 서슴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죄악 자체 때문이었으며, 이차적으로는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루어진 선민의 포로 됨이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구원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신으로 비쳐져 멸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롬 2:24, Hengstenberg).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 고대의 신(神) 개념에 따르면 그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그 땅의 신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란 점에서 본 구절은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이방인들의 시각에 대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그들의 신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철저하게 버려진 자들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그 하나님조차 그들의 패망과 본토에서의
추방을 막지 못한 무능한 신으로 욕했던 것입니다.
(2) 조롱거리가 된 당신 이름을 아껴서 이들의 운명에 개입하기로 하십니다(21절)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 - '내가 아꼈노라'(아흐몰)는 '내가 긍휼히 여겼다' 또는 '내가 가엾게 여겼다'란 뜻으로 지고한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혹자는 이를 '(내 이름을 위하여) 그들(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겼노라'고 해석하나(LXX, Havernick), 그보다는 문맥상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거룩한 이름)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심으로 다시는 당신의 이름이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에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실 것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듯합니다(Rosenmuller, Schroder).
4)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22~23절)
(1)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이들을 구원하는 동기가 됩니다(22절)
“[22]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 '내가 이렇게 행함'은 이후 38절까지 구체적으로 전개될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을 가리킵니다.
본절에서 38절까지는 16-21절의 내용을 더욱 심도 있게 제시하는 단락으로 하나님의 사역(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과 그 사역의 목적(당신의 영광을 드러냄)을 재삼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역을 통해 모든 열방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일개 민족신에 불과하신 분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 사역을 위한 하나의 통로로 사용된 것입니다.
(2) 큰 이름을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23절)
“[23]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 여기서 '그들의 눈 앞에서'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사실을 목도하고 더불어 그 이름을 욕되게 말했던 이방인들의 목전을 가리킵니다(20:41;28:25).
그런데 혹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책임의 소재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이차적으로는 이방에 있다는 사실을 들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대상으로서의 '그들'을 보편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포괄하는 이중적인 개념으로 이해합니다(Hengstenberg, Schroder).
그러나 본절에서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 대명사가 명백하게 이방인들을 가리키므로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 하나님의 사역 목적을 보여줍니다(22절주석참조).
2. 새 언약의 백성(24~38절)
1) 정화와 새 영(24~30절)
(1) 유배민의 귀향(24절)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
본격적인 구원 사역의 내용이 전개됩니다.
본절은 그 첫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고토 귀환이 예고됩니다.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 이 두 표현은 원어상 모두 강제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모든 더러움과 모든 우상숭배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25절)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 이는 속죄 제물을 태운 재를 넣어 만든 제사용 물을 그 속죄의 대상에 뿌리는 이스라엘의 정결 의식에서(민 8:7;19:9) 인용된 구절입니다.
이러한 제사 의식이 모든 죄된 요소를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정결의 의미로 쓰여진 것입니다(Delitzsch, Hengstenberg).
또한 이는 죄의 정결이란 측면에서 신약 시대의 물세례를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행 19:3).
한편 혹자는 '맑은 물'의 이러한 제의적 용도를 배격하고 단지 오염된 것을 씻어낸다는 일반적인 물의 특성에 국한시켜 해석하나(Schroder, Havernick), '맑은 물'의 '맑은'(타호르)이 원어상 '(의식적, 도덕적 의미에서의) 깨끗한, 순결한'이란 뜻을 가지며 특별히 성경에서 레위인의 정결에 관련되어 쓰여졌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습니다.
(3)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26절)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회복 내용의 점진적 전개로 고토 귀환, 죄의 정결에 이어 이스라엘의 내적 갱신이 기술됩니다.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은 단순히 귀환과 죄 사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갱신까지 이르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합니다.
새 영...새 마음. - 성경의 용례 상 '영'(루아흐)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내적 본질로(살전 5:23), '마음'(레브)은 인간의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인성의 좌소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 두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두 단어 앞에 '새'라는 형용사가 첨가된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온전한 영적 갱신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새 언약 백성의 반열에 들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렘 31:31).
(4)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그분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합닌다(27절)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 '내 영'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의 용례상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란 점에서(사 42:1;44:3;59:21;욜 2:28) 본 구절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야 시대의 시작임을 보여줍니다(37:14;39:29).
(5) 언약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고, 땅에 다시 축복이 주어집니다(28~30절)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30]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성경을 통해서 일관되게 제시되어온 하나님과 그에게 속한 백성 사이의 언약 체결의 주제가 다시금 반복됩니다.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 '모든 더러운 것'은 17, 18, 20, 21절 등에 나타난 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가리킵니다.
또한 '구원하고'(호솨티)는 문자적으로 '완전하다', '돕다', '보전하다'란 뜻을 지닙니다.
따라서 29절은 이스라엘을 그러한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함은(25절) 다시는 그 죄악의 심연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Delitzsch).
“[30]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저주 받았던 땅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2) 기억해야 할 과거(31~32절)
. (1) 이스라엘은 수치스런 자신의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31절)
“[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
스스로 밉게 보리라 - '밉게'(쿠트)는 원어상 그 기본 의미가 '베어내다'인 바,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이전 행악에 대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다는 일차적 의미 외에 그 죄를 베어냄, 곧 회개의 의미까지를 내포합니다(레 26:40, Delitzsch).
(2) 과거를 잊지 않도록 자신의 지나온 길을 부끄러워하고 한탄해야 합니다(32절)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
본절에 대해서는 22절 주석을 참조하라.
3) 초라한 현실의 극복(33~38절)
(1) 폐허 재건(33~36절)
“[3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땅의 회복(1-15절)과 선민의 회복(16-32절)의 총괄적인 결산이 36절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창조 당시의 에덴과 같은 낙원의 성취와 관련있습니다(사 11:6-9;51:3;욜 3:18;암 9:13-15).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 여기서 '경작이 될지라'란 말은 이스라엘이 앞 구절의 황무한 땅과 대조를 이루는 풍성한 소출의 경작지가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 이는 약속의 땅이 창조 당시의 에덴동산과 같아질 것이라는 문자적 의미보다는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 중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회복된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 또한 그러한 창조적 축복과 같을 것이란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Hengstenberg).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 '성읍'(베추로트)은 원어상 요새화된 성읍을 가리키므로 본 구절은 그러한 성읍에 거민들이 안주하고 있다는 의미로서, 이전의 패망과 포로 됨의 정황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평안을 암시하고 있습니다(Delitzsch).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2) 인구 증가(37~38절)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본절과 38절은 9-12절에 대한 부가적 설명으로 선민 이스라엘의 특별한 번성이 기술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 이스라엘의 자발적 헌신을 촉구하는 말로 비록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로 성취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의 순종과 사역의 동참을 요구하십니다.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 '제사드릴 양떼'가 '사람의 떼'와 비교된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 절기 때 그 제사에 희생 제물로 사용될 수많은 가축들이 예루살렘 성내를 가득 메웠던 사실에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대하 35:7, Hengstenberg).
한편 그러한 절기 때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들이 성전에 나왔던바(출 34:23;신 16:16), 이러한 제사의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이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이스라엘의 온전한 신앙 공동체 회복이라는 영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하겠습니다(Hengstenberg).
또한 이러한 제의적 비유는 에스겔 선지자가 제사장 출신이라는 점에서(1:3) 자연스럽게 인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묵상 Point
1) 내가 내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피 흘림과 우상숭배로 자신과 땅을 더럽혔다.
그 땅을 부정하게 한 그들은 그 땅에 살 수 없도록 열국 중에 흩으셨다.
그러니 열국은 ‘여호와의 땅을 떠난 여호와의 백성’이라며 그들을 조롱했고(사실상 하나님을 조롱했다), 하나님을 무능한 신이라고 모독했다.
이제 스스로 수치를 자처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회복하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잘해서가 아니다.
이제 충분히 자격을 갖춰서도 아니다.
첫 출애굽 때처럼,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열방 가운데 주의 권능을 나타냄으로써 그 이름의 명예를 회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현실은 참담하지만, 포기하거나 용기를 잃지는 말자. 우리보다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명예에 관심이 많으시고, 기어코 그 이름의 영광을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내가 물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의 명예를 회복하시기 위해 자기 백성을 제국의 손아귀에서 빼내 본토로 돌아오게 하신다.
물로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그 마음을 변화시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싶어 하는 자녀로 새롭게 창조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자기 백성을 풍성하게 챙기시는 것을 보면서 이 좋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범한 자신들의 과거 악행이 생각나서 몸 둘 바 모르고 자신이 스스로 미워지기도 할 것이다.
3) 내가 내 땅을 에덴동산 같이 하리라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포로에서 돌이켜 회복하셔서 어떤 나라를 만드실지 두고 보라.
그날이 오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더 이상 열방의 비방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된 제물로 거룩하게 드려질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외면하시던 얼굴을 그들에게로 돌려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황폐했던 성읍에 사람들의 수효가 양 떼 같이 많아지고 제사하는 자로 성전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말씀 가이드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고 소명이다.
“그대의 몸값이 얼마인지 알고 싶은가, 그대가 몇 백에 움직였다면 몇 백 미만이요, 몇 억의 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몇 억 이상이다”.(사람의 몸값) 이스라엘은 우상에 팔렸으니 그 몸값은 우상보다 못한 데다 선민이라는 이름값도 못했고 하나님의 이름까지 욕되게 만들었다.
명예의 위기. -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더럽힌 것은 땅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다.
열국이 멸시한 것도 끌려가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자기 백성이 잡혀가는데도 어찌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신이라 무시했을 게다.
불순종과 불신이 가져온 망국이고, 망신이다.
명예의 회복. -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마음도, 연민도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동기가 된다.
심판도 구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주기도의 첫 간구가 ‘아버지의 이름’인 이유이기도 하다.
명예로운 백성.- 다시 돌아온다고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정글처럼 냉혹하고 우상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옛 마음으로는, 내 힘만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영이 새 마음을 주실 때만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은 거룩한 삶이 가능하다.
첫 창조처럼(창1:3) 그것은 또 하나의 창조다.
더 이상 먹칠하지 말자.
그 어느 시대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실추되고 하나님 나라가 수세에 몰려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직도 하나님의 이름보다 내 명예와 교회의 명성을 더 의식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내 행복을, 하나님 나라보다 내 나라를 더 욕망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6-23절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으로, 이스라엘 때문에 더럽혀진 거룩한 이름을 다시 회복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가증하고 패역한 행위로 약속의 땅을 더럽히고 이로 인해 타향으로 쫓겨났음에도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전적으로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백성의 수치를 두고 보지 못하여 맹렬히 분노하셨던 하나님의 모습과 크게 다른 듯하지만(6,7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에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와 선물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24-30절 ‘회복’은 새 창조, 곧 구원의 첫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심판의 끝인 동시에 구원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돌아온 이들을 맑은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25절, 세례), 새 영(26절, 성령)을 주셔서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셔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언약에 머물러 살 때, 주님은 구원의 복을 아낌없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구원을 ‘끝’으로 오해할 때 자칫 교만하고 방종하기 쉽습니다.
전적인 은혜로 부름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성령을 의지하면서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입니다.
33-38절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을 이방에 알리는 선교가 될 것입니다.
멸망한 이스라엘 산들을 조롱하던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회복될 수 없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폐한 땅에 다시 나무가 자라고 사람들이 돌아와 전보다 더 아름답고 견고한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보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누구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어떤 하나님을 읽어내고 있을까요?
37절 복을 주시려고 ‘구하라’ 하십니다.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시면서 이러한 일을 이루어주시길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약속을 우리 역시 소망하며 간구할 때, 하나님은 약속된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주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널리 전하는 정결한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열방-세계 인구의 15% 정도인 7억 5천만 명은 해외에서 거주하기를 희망한다.
세계 각국의 교회들이 자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역을 펼치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