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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4 (둘째 화요일)
함께한 '분' - 마중물 / 청마(靑馬)
유성장에 들려 이곳저곳 장서는 모습을 보고 겨울철 별미인 동태찌게로 점심을 하고.
107번 동학사행 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맘놓고 천천히 숙모전을 둘러보려고 올랐는데
역시나 오늘도 숙모전의 문은 굳게 잠겨져있어 동학사를 둘러보고 상아교 건너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종점옆 제과점에 들려 따듯한 커피와 맛난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東鶴寺(동학사) 숙모전(肅慕殿)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의 東鶴寺(동학사) 경내에 있으며, 조선시대의 端宗(단종)과 충신의 충혼을 모시는 곳으로서 고은공,정도공 두 분선생의 신위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세조에 의해 원통하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모신 正殿(정전)과 東,西(동,서무)에는 癸酉靖難(계유정란)에 寃死(원사)한 황보인,김종서,정분 三相(삼상),안평·금성대군등 宗室(종실), 그리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참형을 당한 死六臣(사육신)그 외 죽음을 당한 수많은 원혼과 생육신 등 충의절사를 모신 곳이다.
1456년(세조 2년)에 김시습이 처음에 이곳에 와서 壇(단)을 모아 사육신을 초혼 제사하고
1457년에 세조가 속리산을 거쳐 동학사에 들렸다가 초혼단을 보고 감동하여 팔폭 비단에 寃籍(원적)이란 제목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명단을 적어 儒彿(유불)이 共祀(공사)토록 하고 賜牌(사패)하였다.
단종이 돌아간 후에 김시습,조상치등 향사 7신이 엄흥도와 만나 육신단 위에 一壇(일단)을 만들어 왕을 초혼제사하였고, 1728년(영조4)에 불에 타 1827년(순조27)에 다시 세웠으며,
1904년(광무 8년)에 숙모전이라 사액하였다.현재 95위가 모셔져 있고 음력 3월 보름과 10월 24일에 추모제를 지낸다.
숙모전(肅慕殿)정전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
숙모전(肅慕殿) 정전과 동·서무(東·西무) 위치도
숙모전(肅慕殿)정전에는 비운의 임금 단종(李弘暐(이홍위):1441∼1457,재위 3년)과
그의 妃(비)인 定順王后(정순왕후:1440∼1521,세종22∼중종16)의 위패를 모신곳이다.
숙모전 서무 배향위차 숙모전 동무 배향위차
1. 정민공(貞愍公) 송현수(宋玹壽:礪山) 1.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全州)
2. 충장공(忠莊公) 권자신(權自愼:安東) 2.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全州)
3. 헌민공(獻愍公) 정종(鄭悰:海州) 3. 화의군(和義君) 이영(李영:全州)
4. 충정공(忠貞公) 민신(閔伸:驪興) 4. 한남군(漢南君) 이어(李:全州)
5. 충헌공(忠獻公) 조극관(趙克寬:楊州) 5. 영풍군(永豊君) 이천(李천:全州)
6.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金寧) 6. 하령군(河寧君) 이양(李穰:全州)
7. 문민공(文愍公) 박중림(朴仲林:順天) 7. 충정공(忠定公) 황보인(皇甫仁:永川)
8. 충숙공(忠肅公) 성승(成勝:昌寧) 8. 충익공(忠翼公) 김종서(金宗端:順天)
9. 충강공(忠剛公) 박 쟁(朴쟁:雲峰) 9. 충장공(忠莊公) 정분(鄭분:晋州)
10.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順天) 10.청간공(淸簡公) 김시습(金時習:江陵)
11.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間:昌寧) 11. 정간공(靖簡公) 이맹전(李孟專:碧珍)
12. 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韓山) 12. 정절공(貞節公) 조여(趙旅:咸安)
13.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他:晋州) 13. 정간공(貞簡公) 원호(元昊:原州)
14. 충경공(忠景公) 류성원(柳誠源:文化) 14. 정숙공(貞肅公) 성담수(成聃壽:昌寧)
15.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杞溪) 15. 문정공(文貞公) 남효온(南孝溫:宜寧)
16. 정간공(貞簡公) 허후(許후:河陽) 16.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寧越)
17. 충정공(忠貞公) 박심문(朴審問:密陽) 17. 충정공(忠貞公) 조상치(曺尙治:昌寧)
18. 충장공(忠莊公) 이보홈(辛甫欽:永川) 18.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礪山)
19. 절민공(節愍公) 조숭문(趙崇文:玉川) 19. 한산인(韓山人) 이축(李蓄)
20. 진천인(鎭川人) 송석동(宋石同) 20. 진주인(晋州人) 정지산(鄭之産)
21. 옥천인(玉川人) 조철산(趙哲山) 21. 여흥인(驪興人) 민보창(閔甫昌)
22. 한양인(漢陽人) 조순생(趙順生) 22. 하양인(河陽人) 허조(許造)
23. 창녕인(昌寧人) 성희(成熺) 23. 안동인(安東人) 권책(權策)
24. 의성인(義城人) 김한계(金漢啓) 24. 문정공(文靖公) 이지활(李知活:星州)
25. 순천인(順天人) 박인년(朴引年) 25. 밀양인(密陽人) 손서윤(孫서倫)
26. 하음인(河陰人) 봉여해(奉汝諧) 26. 한양인(漢陽人) 조명(趙銘)
27. 순천인(順天人) 박영년(朴氷年) 27. 남양인(南陽人) 홍 연(洪演)
28. 무주인(茂朱人) 김선지(金善之) 28. 진주인(晋州人) 강승(姜昇)
29. 영천인(永川人) 이종검(李宗儉) 29. 평산인(平山人) 신숙서(申叔胥)
30. 영일인(迎日人) 정종소(鄭從韶) 30. 문혜공(文惠公) 최선문(崔善門:和順)
31. 이천인(利川人) 서 호(徐호) 31. 여산인(礪山人) 송경원(宋慶元)
32. 반남인(潘南人) 박희권(朴希權) 32. 남양인(南腸人) 홍구서(洪九서)
33. 경주인(慶州人) 정지년(鄭知年) 33. 아산인(牙山人) 이집(李緝)
34. 강릉인(江陵人) 최시창(崔始昌) 34. 영광인(靈光人) 정예손(丁禮孫)
35. 밀양인(密陽人) 박대손(朴大孫) 35. 무송인(茂松人) 유귀산(庾龜山)
36. 청주인(淸州人) 이세영(李世滎) 36. 무송인(茂松人) 유오산(庾鰲山)
37. 광산인(光山人) 김효종(金孝宗) 37. 풍산인(豊山人) 심 주(沈胄)
38. 문경공(文景公) 박충원(朴忠元:密陽) 38. 평산인(平山人) 신규(申奎)
39. 김해인(金海人) 김계희(金係熙) 39. 우계인(羽溪人) 이수행(李秀亨)
40. 순천인(順天人) 박기년(朴耆年) 40. 우주인(紆州人) 황장손(黃長孫)
41. 희의공(僖懿公) 이농(李농:全州) 41. 경주인(慶州人) 이석손(李碩孫)
42. 휴계공(休溪公) 전희칠(全希哲:沃川) 42. 달성인(達城人) 서한정(徐翰延)
43 순천인(順天人) 박대년(朴大年) 43. 김녕인(金寧人) 김현석(金玄錫)
44. 충강공(忠剛公) 이징옥(季澄玉:仁川) 44. 순천인(順天人) 김종한(金宗漢)
45. 영일인(迎日人) 정보(鄭保) 45. 김해인(金海人) 김계금(金係錦)
46. 현풍인(玄風人) 곽사(郭師) 46. 정무공(貞武公) 기건(奇虔:幸州)
47. 문화인(文化人) 류자비(柳自湄) 47. 초계인(草溪人) 정창(鄭昌)
48. 밀양인(密陽人) 박흥생(朴興生)
동학사에는 다른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이 있는 건축물이 있다. 동학사 경내에 들어서려면 두 기둥이 우뚝한 홍삼문을 볼수 있는데, 이는 궁궐, 관아, 능, 묘, 원 앞에 세우는 문으로 사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30자 이상의 홍살문이다. 이것은 동학사가 사원이면서도 경내에 유신의 사당인 동계사, 그리고 삼은각과 숙모전이 있는 점들과 상호 연관된 인연들이 어우러져 세워진 것이다.
1) 동계사 : 신라 멸망 후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이 태조19년(936)에 이곳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박제상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동계사를 짓고 제사를 지내다 병화를 만나 전소되었다가 1956년 다시 중건되었다.
2) 삼은각 : 이태조 3년(1394)에 야온 길재가 동학사에 와서 박제상을 모신 동계사 전에 단을 설치하여 포은 정몽주를 위해 제사지내고 5년후(1399) 유방택이 목은 이색을 모시고, 후에 야은을 모신 곳이다.
3) 숙모전 : 매월당 김시습의 충절과 애통함이 깃들인 곳이다. 매월당은 당대 걸승으로서 생육신 한 분이다. 세조 1년 거지꼴의 한 승려가 삼온각에 엎드려 통곡을 하고 있었는데, 이 거지 승려 매월당은 단종이 숙부(세조)에게 왕위를 박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후 여기에와 그들의 혼백을 붙들고 통곡을 했던 것이다. 그는 세조2년 사육신이 참수를 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다시 돌와와 초혼각을 짓고 충정를 기렸다. 세조는 그 후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그러한 내력을 전해 듣고 자기로 인하여 죽음을 당한 280명의 이름을 열거해 초혼각에 모시도록 했다. 이 초혼각은 영조 때 전소되어 혼기를 잃어 58위만 봉안하고 고종때 중건하여 고종으로부터 숙모전이란 사액을 받았다. 그 후 26위를 추가해 현재 89위만 봉안되어 있고 음력 3월 보름과 10월24일에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동학사는 공주에서 약 25km, 대전에서 8km 정도 떨어진 반포면 학봉리에 자리잡고 있다. 계룡산 동쪽 골짜기에 싸여 있는 천년고찰 '동학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비구니 강원(일명:승가대학)으로서,150 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의 일대시교 및 수행과 포교에 필요한 제반교육을 받으며 정진하고 있는 유서깊은 도량이다. 또한 동학사는 문필봉(文筆峰)이 있어서 대강백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도 유명하며 비구니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는 맑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하나로 어우러져 고즈넉한 산사에 그 청아함을 더해준다.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고 교통이 편리해 계룡산의 관광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특히 박정자삼거리에서 동학사에 이르는 약 3km 거리의 가로수는 벚나무로 이루어져 봄이면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93년부터 매년 동학사 봄꽃축제가 개최된다.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상원조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곳에 회의화상이 창건 하였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했었다. 고려 태조 3년(920)에 도선국사가 왕명을 받아 중창하였는데,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을 기원했다해서 '원당'이라고도 불리우다가 그 후 영조 4년(1728) 신천영의 병화로 사원이 전소되어 80여년 동안 빈 절터인 채로 내려오다 이조 순조 14년(1814)에 금봉화상이 옛 원당터에 실상암을 짓고 절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개칭하되,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하여 "동"자를 따고 사판국청학귀소형(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 "학"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고, 또 계룡산 동쪽 사찰 입구에 청학이 깃들었다는 학암(鶴岩)을 위주로 하여 동학이라는 절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그 뒤 고종 원년(1864)에 만화화상이 개창하였고, 그의 제자인 경허성우 스님이 고종 8년(1871)에 강의를 열었으며 1879년에는 이 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근대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절의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졌다가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으며, 지금도 일주문 불사 및 상원암(옛 계명장사로 남매탑이 있는 곳) 복원불사가 진행중이다. 현재 전각으로는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을 비롯하여 조사전, 육화당, 강설전, 화경헌, 엽화실, 실상료, 숙모전 등이 있다. 신내암자로는 미타암, 길상암, 관음암, 문수암, 심우정사, 상원암 등이 있다.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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