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56)
말동무
어깨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어릴 때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놀러 다닌 기억이 난다. 어깨동무를 하고 걸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지루하지 않았다.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이 남북한이 갈라지며 북한에서 즐겨 쓰면서 남한에서는 기피 단어가 되어 안타깝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모친을 모시고 온 막내아들이
“선생님, 어머니와 이야기를 좀 많이 해주십시오. 어머니는 소소하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탁 할머니는 84세였다. 입원 첫날 이분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12년 전 남편을 사별한 후 혼자 살면서 우울증이 깊어졌다고 한다. 다음날 회진을 마치고 이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향이 어디인지, 자녀가 몇 분인지, 몇 살에 결혼했는지 물어보니, 이분이 마음의 문을 열고 말을 하셨다. 한번 말문이 열리니 끝없이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안동이 고향입니다. 21살에 안동 출신 동갑 남자와 결혼했지요. 안동김씨 장동파 가문은 서울에서도 알아줍니다. 3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했어요. 시아버지가 안동에서 서당을 하셨는데 제자가 서른 명이 넘었어요. 나는 2남 4녀 중 막내로 밭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손주들이 모두 9명이나 됩니다”라며 가족사진을 보여주셨다. 할머니를 가운데 모시고 세 아들과 딸 하나와 손주 9명이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우와, 할머니, 안동김씨 가문에 들어가 가문을 엄청 번창시켰군요. 장하십니다. 장하셔요. 큰 상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왜 혼자서 사셨습니까?”
“자녀들이 같이 살자며 오라고 하지만 딸 집에 가면 부엌데기 되고 아들 집에 가면 골방데기 되는데 왜 가겠어요? 마을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시골에 노인들만 사는 동네가 많아 여러 명 모여서 같이 살거나, 동네 노인정 등을 노인들이 사는 주거공간으로 이용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시, 군 등 지자체에서 도우미가 와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준다고 한다. 배우자를 사별한 후에 우울증을 앓는 분이 많다. 이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동무이다. 배우자는 늙을수록 더 필요한 존재이다.
새벽에 운동하러 갈 때 종종 만나는 분이 있다. 은퇴하신 분인데 새벽마다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하신다. 산책이라기보다 힘차게, 나이가 무색하게 파워워킹을 하시는데 개도 열심히 주인을 앞서서 간다. 이분과 잠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무역회사에서 기계부품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일했습니다. 중국 등 여러 나라를 다녔고 일본에는 백번 넘게 출장을 갔었어요. 아내는 몇 년 전에 사별했지요. 아내와 사별한 후 1~2년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아내가 천식이 있고 몸이 약해 골골했지만 그래도 곁에 있을 때가 백번 나았어요. 내가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는 바람에 자녀들이 엄마를 간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나만은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명절 때마다 오지 말라고 합니다. 3년 전에 송정의 유기견보호센터에서 개를 한 마리 데려왔습니다. 이 녀석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 매일 장산체육공원까지 다녀오는데 2시간 이상 걸려 운동이 상당히 됩니다. 봄, 여름, 가을은 산책하기 좋지만 한겨울에는 새벽에 꼼짝도 하기 싫지요. 하지만 이 녀석이 겨울에도 새벽이 되면 나를 깨웁니다. 산책 가자고. 내가 이 녀석을 구해주니 이 녀석도 나를 구해줍니다. 이 녀석이 말동무도 되고,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나도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아무리 악처라도 자식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하더라도 곁에 배우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지금부터라도 곁에 있는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하자. 남편과 아내 둘만 있으면 자식이 찾아오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
혹 한 사람이 아프면 머리에 물수건이라도 올려주고 병원에도 동행하자.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서로 사랑으로 바라보자. 이 사람이 없으면 나도 이 세상을 행복하게 바라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