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어령교수님에게 들은 흥미로운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달라는 말을 안해도 아무나 가르치려든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동네에서 후배를 우연히 만났어도 차한잔하자고 다방으로 데리고 가서 인생을 이러저러하게 살라고 훈계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정도가 심하다보니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가르치려들고 심지어는 나보다 더 잘 알고있는 사람을 가르치려들기도 한다. 비교문화를 연구한 이어령교수님이 볼때 세계적으로도 아주 특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연극인 송승환씨는 요즘 눈이 잘 안보인다. 이번에 '더 드레서'라는 연극을 정동극장에서 올렸는데 그 많은 분량의 대본을 전부 듣고 외워서 연기를 하였다. 나도 이 연극을 보았는데 극의 내용도 큰 울림이 있었지만 인간 송승환의 집념과 열정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오래전 송승환씨와 골프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낮은 실력이었다. 구력을 물어보았더니 제법 연조가 있었다. "바빠서 필드에 자주 못나오셨나봐요" "아닙니다. 연습을 엉망으로해서 그래요"
처음 골프를 배우러 연습장에 갔는데 특이한 경험을 한 것이다. 레슨프로가 이렇게 연습하라고 알려준 후 다른 사람을 가르치러가고 나면 그 사이에 낯선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한 후 골프는 이렇게 치는거라고 고쳐준다는 것이다. 팬이라고 반갑게 인사하며 레슨을 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한참 연습을 하고 있으면 레슨프로가 다시 와서 왜 이렇게 치느나고 펄쩍 뛴다는 것이다. 다시 선생이 하라는대로 치다가 그 사람만 사라지면 꼭 누군가 또 나타나서 레슨질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습하다 필드로 나왔으니 공이 제대로 맞겠느냐고 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송승환씨에게 레슨질하던 사람들도 같은 연습생 신분으로 골프배운지 몇개월 안되는 초짜들이었다.
'프로는 돈을 받아야 레슨하고 고수는 정중히 청해야 레슨하고 하수는 청하지도 않는데 공연히 레슨질한다'
유명한 골프명언인데 골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남을 가르치려고 안달하는걸까. 심리학적으로는 어느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우리민족은 예전부터 누구를 가르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예우를 받았다. 서당훈장, 초중고등학교 교사, 대학교수는 모두 존중받는 직업이었다. 따라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심리적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게 아닐까.
공자는 배우는 기쁨이 최고라고 하였다. 논어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아니한가)는 오늘날까지 최고의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공자는 평생 배움에 힘썼으며 누가 청하지않으면 가르치는 일은 삼가하였다. 먼저 제대로 배우고 익힌후 니중에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그동안 2030 MZ세대들의 불만중 가장 큰 것이 기성세대의 꼰대질이다. 꼰대질의 핵심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려든다는 것이다. 원래 꼰대라는 말 자체는 학교에서 나왔다. 학생들이 권위주의적 교사를 비꼬아서 쓰던 표현인데 지금은 나이를 계급으로 착각하고 후배들을 공연히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MZ세대가 꼰대를 싫어하는 이유는 시대에 맞지않는 예전 이야기를 반복하며 시도때도없이 가르치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꼰대세대를 '라떼는 말이야' 라고 비꼰다.
지금 신문명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농업사회는 수천년 걸렸고 산업혁명이 가져온 산업사회는 300여년이 걸렸다. 1980년도 이후 정보화사회는 30여년 걸렸고 지금 시작된 제4차산업혁명은 약 20여년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업사회나 산업혁명사회에 태어난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나 죽을 때나 비슷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태어난 사람들은 수명은 늘고 신문명주기는 짧아지다보니 평생동안 최소 서너번의 신문명을 거쳐야 한다. 신문명이 나타나면 빨리 배워야 한다. 요즘 지식인은 명문대를 나오거나 학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문명을 가장 빨리 배우는 '빠른 학습자'다. 신문명은 젊은이들이 더 잘 안다. 메타버스, 인공지능, 디지털기술을 누가 더 잘 알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섣불리 가르치려드는 오래된 한국인의 관습을 버리고 먼저 열심히 배우는 자세를 길러야 하지않을까. 사람은 학습인간으로 조직은 학습조직으로 변하면 나라도 학습국가로 바뀔 것이다. 서로 가르치려드는 문화를 서로 배우려는 문화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사회는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배우는한 계속 성장하는 신비한 생명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