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는 처음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깊이 존경했지만, 1739–1741년 사이에 신학과 목회 방식 때문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 갈등을 대표적인 사건 중심으로 10가지 정리합니다.
웨슬리와 모라비안 갈등 10가지 1. 믿음 전까지 은혜의 수단을 중단하라는 가르침
모라비안 일부 지도자들은 말했습니다.
‘확실한 믿음을 얻기 전까지는
기도, 성찬, 성경읽기 같은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지 말라.’
웨슬리는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은혜의 수단은 믿음을 얻기 위해서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큰 충돌이었습니다.
2. “가만히 기다리라”는 Quietism
모라비안 일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만 기다리라.
노력하지 말라.’
웨슬리는 이것을 영적 게으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3. 구원의 확신을 절대 기준으로 만든 문제
모라비안은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강한 확신이 있다’
고 가르쳤습니다.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확신이 약해도 믿음은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큰 신학적 차이가 생겼습니다.
4. 성화에 대한 차이
모라비안 일부는
‘믿으면 이미 완전하다’
는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웨슬리는 강조했습니다.
‘성화는 평생 자라는 과정이다.’
5. 감정 중심 신앙 문제
모라비안 공동체는 감정적인 신앙 표현이 강했습니다.
웨슬리는 이것이 때로 극단적인 신비주의로 흐른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6. 교회 질서 문제
모라비안 모임에서는 때때로
이 나타났습니다.
웨슬리는 질서 있는 예배와 지도 체계를 강조했습니다.
7. 평신도 지도 문제
모라비안 일부 지도자들은
웨슬리가 만든 속회 지도 체계를 비판했습니다.
웨슬리는 오히려
‘신앙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고 보았습니다.
8. 지도자 몰리너스 사건
런던의 모라비안 지도자 필립 몰리너스(Philipp Molther)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기도도 성찬도 하지 말라’
고 가르쳤습니다.
웨슬리는 이것을 영적으로 위험한 가르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9. 펫터 레인(Fetter Lane) 공동체 분열
런던에 있던 모라비안 공동체
펫터 레인 집회
에서 갈등이 크게 폭발했습니다.
1740년
웨슬리는 결국 그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감리교 운동이 독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0. 웨슬리의 최종 평가
웨슬리는 모라비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들의 오류를 따르지는 않는다.’
그는
을 존경했지만
수동적 신앙과 반율법주의는 거부했습니다.
핵심 정리
웨슬리와 모라비안의 갈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은혜의 수단 사용 문제
확신 중심 신앙 문제
성화와 거룩한 삶 문제
이 갈등 때문에 웨슬리는 결국
모라비안 영향에서 벗어나 감리교 신학을 독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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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영성/신학/철학
모라비안과의 갈등 10가지 사건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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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1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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