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하담보다 20년 年上인 金庭睦의 편지를 받고난 후 쓴 시이다. 金庭睦은 장흥부사를 지냈고 그가 問題의 試題를 냈으면서도 그의 責任을 掌試官인 자신 김시양에게 떠넘겨 난처하게 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종성과 회령의 경계 상에서 만나 주고받았던 「見金長興庭睦書」이다.
不是憐同病 같은 병 앓음을 가련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何人問逐臣 그 누가 쫓겨난 신하를 위문하리 會寧爲近地 會寧은 가까운 곳 鐘府更愁人 鐘城 있음이 또 다시 사람을 수심케 하네. 白鴈傳書日 흰기러기에 편지 전하는 날 黃雲野戌春 황혼 구름 낀 들의 수루엔 봄날이네 相思憑短幅 서로 생각하는 정 짧은 편지에 의지하니 看罷更沾巾 보고 나니 다시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萬死投荒日 만 번 죽다가 변방에 던져진 날 同遷我二臣 함께 流配된 우리 두 사람 世情雖欲殺 세상의 정은 비록 죽이고자 했으나 吾意不尤人 우리의 뜻은 남을 원망 않았네 北地常多病 북쪽 땅에는 항상 병이 많아 南歸畏及春 남쪽으로 돌아 간데도 봄에나 미칠런가 相思難可見 서로 생각만 할 뿐 만나기도 어려워 回首暮江濱1) 머리를 돌리니 강가에 노을이 지네.
試題事件으로 인해 荷潭은 鐘城으로, 金庭睦은 회령으로 流配가게 되었는데 조금도 그를 怨望하지 않고 境界 상에서 서로 자주 만나 시를 和答하며 지냈을 때 지은 詩이다. 보통 사람들은 怨望하며 相從을 않을 텐데 그는 조금도 변함없이 지냈다. 그의 人品을 알 수 있는 詩이다. 1수에서 서로가 같은 병을 앓으니 서로의 心情을 잘 안다고 했다. 회령은 종성에서 가까운 곳이기에 위문의 편지를 받고나니 다시 또 그리워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고 자신의 슬픔을 表現했다. 2수에서는 만 번 죽다가 겨우 살아나 邊方에 던져진 두 사람을 世上에선 이이첨 등의 간신배들이 죽이려 했지만, 두 사람은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남쪽으로 돌아간대도 병이 많아 겨울인 지금은 어렵고, 봄에나 가능할 것이란 希望을 보이지만 쓸데없는 생각임을 자인한다. 現在 만나기도 어려운데 어찌 가능할까하고 체념 하면서 강가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돌아갈 希望도 없는 암울한 流配生活에서의 고통을 곡진하게 표현했다. 金庭睦은 流配된 지 2년 만에 회령에서 죽었으며 이때 荷潭은 그에게 輓詩를 지어 哀悼했다.
1)『荷潭文集』卷之十,「見金長興庭睦書」, p.3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