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바람이 분다. 화단의 가지에 푸른빛이 도는것을 보니 봄은 정녕 오고 있나보다. 저 개복숭아 마른 가지에도 분홍 예쁜꽃이 피겠지. 작년에 너무 자라 전깃줄에 받힌다고 싹뚝 자른 살구나무가 앗처롭다. 늦게까지 수확을 보겠노라 자르지 않은 멀대같은 모과나무가 홀로 삐죽히 하늘 향해 양팔을 뻗어 정리 못해 준것이 못내 아쉽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추위속에서 홀로 새싹나는 봄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쁠것이다.
요즘 세태는 혼밥 혼술 혼걷 혼살 혼놀 왜그리 혼 자가 많이 들어 가는가. 길을 가도 젊은이들은 절대 묻지 않는다. 나같은 사람을 만나면 길을 가르쳐 주면 길치인 난 잘 찾아간다. 묻는 것을 싫어하고 자존심 상해하는 듯한 젊은이. 혼놀 혼살 잘도 한다. 따뜻한 빨래꽂이 아래서 창살로 스미드는 햇볕을 받으며 비쩍마른 감껍질을 질겅질겅 거지같이 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뒤집 아저씨가 못본체 하고 지나간다. 시외에 사는 동네 아주머니의 아들은 멀리 있어도 저 아저씨가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집을 팔려고 내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굳이 동네 말 할 필요없이 혼자서 해결 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음이라. 누구처럼 내 앞에 따뜻한 저 태양만 있으면 오늘 난 대만족이다. 나를 보고 아버지는 여동생을 시켜 돌아 다니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데 제발 집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셨다. 누가 뭐래도 볼 일이 있으면 나가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결국엔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 할 몫이다.
남편은 학교 다닐때 대구 유학 온다고 자취생활로 혼밥하며 살았다고 유명담처럼 얘기한다. 그러고 보면 결국 사는것이 오랜 예전과 달리 혼밥 혼술 혼살 혼잠 할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현대를 살아 가려면 주관이 뚜렷해야 하고 부하뇌동 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한다. 자신이 소신껏 했다면 누굴 원망할 일도 없고 다시 추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였다 해도 AI같이 빼어난 기술이 있어 그 기능과 역량이 뛰어나다 하여도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사람이 부대끼길 원하는가 농촌은. 얼마나 활성화 되길 원하면 교도소가 마을에 들어서길 희망하는가. 그러면 사람들이 모일것이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조용한 농촌 마을에 울려 퍼질것이다. 초등학교가 산간벽지에 생기면 삶의 터전을 일구어들 갈 것이니까. 문명이 아무리 변해 인공지능이 판을 친다해도 공동체를 이루며 따뜻하게 서로를 돌보는 아름다운 감정교류를 AI가 대신 해 줄 수 있을까. AI의 편리성으로 혼놀 혼살 혼술 혼잠 혼밥해도 인간세계를 삭막하게 하는 혼놀 혼살 혼술 혼잠 혼밥은 고려해 볼 문제다. 앞으로 어디까지 갈 지는 미지수라도. (20240129)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