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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와 같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2025년 1월 5일 / 히브리서 12:15-17
히 12:15-17 /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서로 힘쓰십시오. 여러분 사이에 독초(가라지)가 생겨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 뿌리에서 나온 싹은 고통의 원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다. 16) 누구도 성적 범죄에 빠져들거나 에서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맏아들의 권리를 팔아먹었습니다. 17) 나중에 가서 에서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 권리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기억하고 언제나 조심하십시오.
에서가 놓친 기회 : 장자권에 포함된 특권 / 에서가 놓친 기회는 무엇일까? 당시 장자권은 여러 가지 특권을 포함하고 있었다. 적어도 세 가지가 있었다. ➊ 가족을 통솔하는 가부장권 ➋ 다른 형제보다 두 배의 재산을 상속하는 권리(신 21:17) ➌ 영적 특권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가나안 땅, 믿음의 조상, 천국 소망)을 계승하는 권리 등이다.
에서는 이 엄청난 특권들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다. 팥죽이 그의 식도를 통해 내려가는 순간 장자권에 포함된 모든 특권들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결국 이 땅의 축복도 내세의 영생도 놓쳤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만회의 기회조차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야곱이 아버지에게 축복기도까지 받고 나서 그제서야 자기도 축복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애걸복걸하였다.
창 27:34, 38 /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이전에 돌이켰다면 혹시 만회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본문은 뭐라고 묘사하였나?
히브리서 12:17 /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의 기업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결국 에서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삭의 예언을 통해 잘 나타난다.
창 27:39-40 /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지으며 편하게 살지 못하고 유랑 민족으로 척박한 땅을 유리방황하면서 호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역사 속에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섬기는 일도 생긴다. 말하자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모든 육적, 영적 축복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다가 정말 크고 소중한 것을 놓쳐버렸다. 그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눈앞의 적은 물질의 이익을 위해 신령한 은혜를 놓쳐버렸다. 그러자 심지어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다.
창 27:41 /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 고서적을 애호하던 어떤 사람이 마침 조상 대대로 살던 집 다락방에 있던 성경 한 권을 버린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그 책을 읽을 수가 없더군. 인쇄한 사람이 구텐… 뭐라고 적혀 있던데.’라고 말했다. 책 애호가는 전율을 하며 외쳤다. ‘설마, 구텐베르그! 그 성경은 최초로 인쇄된 성경 중의 하나였을텐데, 최근에 그 중 한권이 200만불 이상에 팔렸다네!’ 그 친구는 무덤덤해 했다. ‘내 성경책은 단 1불도 받지 못했을 것이오. 마틴 루터라는 작자가 독일어로 온통 낙서를 해 놓았거든.’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고귀한 것을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고 쉽게 내어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로 에서가 그랬듯이 말이다. 에서는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고기를 즐겨드는 육신의 아버지 이삭에게 사랑받는 아들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머니 리브가에게는 야곱에게도 근심의 자식이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영적 대를 아들은 에서가 아닌 야곱이었고, 에서는 부모님과는 달리 자기 마음에 드는 이방인 여자와 결혼을 했다.
▶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택하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기록하였다. 이방여인이 아닌 멀리 고향에 신임하는 종을 보내서 택해오게 하였는데, 그 종 역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하나님께 있을 수 없는 조건까지 걸고 이삭의 아내를 택한 것이다.
창 24:11-15, 16-21 / 그 성읍에 도착하여 성읍 밖에 있는 우물가에서 살고 간 낙타를 쉬게 하였다. 때는 저녁쯤이라 동네 아낙들이 우물로 물을 길러 올 때였다. 12) 그 종은 거기서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다. “우리 주인님 아브라함이 섬겨 모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 이것이 이곳까지 찾아온 목적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 주인님께 하신 약속을 꼭 이루어 주소서.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13) 성읍에 살고 있는 아낙네들이 이제 이 우물로 물을 길러 나올 것입니다. 14) 그 가운데에서 한 처녀에게 이렇게 말하렵니다. ‘아가씨, 물항아리를 내려 내게 물을 마시게 해주시오.’ 그때 그 아가씨가 ‘예, 어르신. 어르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먹이겠어요.’ 하고 말한다면 그 아가씨가 바로 우리 도련님 이삭의 짝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아가씨인 줄 알겠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주인님께 은총을 베푸시어 약속을 들어주신 줄로 믿겠습니다.” 15) 그가 이런 기도를 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어깨에 물항아리를 메고 우물가로 다가왔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과 그 아내 밀가 사이에서 태어난 브두엘의 딸이었다. 16-21) 그 아가씨는 매우 아리땁고 예쁜 처녀였다. 그녀는 우물로 내려가 항아리를 내려놓고 물을 가득 채워서 다시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17) 아브라함의 종은 뛰어가 ‘아가씨, 물 좀 마실 수 있겠소. 목이 마르오.’ 하였다. 18) ‘그러시지요. 여기 있어요.’ 하고 그 아가씨가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어깨에 메고 있던 물항아리를 내려 그에게 물을 떠주었다. 19) 리브가는 그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물을 마시고 나자 ‘어르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지요.’ 하였다. 20) 그러고는 물항아리에 남아 있는 물을 구유에 쏟아 붓고는 낙타에게 충분히 물을 먹이려고 얼른 우물로 달려 내려가 물을 더 길어 왔다. 21) 그는 리브가가 하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가 여기까지 찾아온 목적을 여호와께서 잘 이루어 주실까 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이 우리에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실정을 보면 놀랍다.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으나 그보다 리브가의 마음씨와 행위는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밧단아람 지역의 사정을 이해하면 이 조건이 거의 불가능한 것임을 곧 알 수 있다. 물이 귀한 이 지역에서는 물 근원을 찾아도 지하로 보통 20~30m를 파 들어가야 물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동으로 성 밖에 우물 하나를 파 놓고, 처녀들이 그 우물에 나가서 물을 길었다. 나그네를 선대하는 것이 밧단 아람 지역의 관습이어서 그 정도는 거의 의무 사항이었지만, 물 항아리를 지고 30m의 계단을 내려가 길어 올린 물을 좀 달라고 하는 것조차 미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약대에게까지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문제가 달랐는데, 보통 목이 마른 약대 한 마리가 마시는 물은 약 100L 정도이므로 아브라함의 종이 이끌고 간 열 마리의 약대에게 물을 마시우려면 1,000L의 물을 길어야 했다. 물이나 기름의 수송에 사용하는 드럼통 하나의 용량이 200L이니 열 마리의 약대에게 물을 마시우려면 처녀의 몸으로 물 항아리를 지고 30m의 계단을 내려가 다섯 드럼통의 물을 길어야 했다. 골고다에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이에 아브라함의 종은 모든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창 24:26-27 / 그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여호와께 기도드렸다. 27) ‘우리 주인님이 섬겨 모시는 여호와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여호와께 찬미드립니다. 우리 주인님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꼭 지켜 주시는군요. 우리 주인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토록 진실되이 약속을 지켜 주시는군요. 주께서는 이것을 우리 주인님의 아우 집으로 인도하시는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과연 아브라함과 이삭을 잇는 영적 상속자의 자격이 있는가? 팟죽 한 그릇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겉으로 들어난 행위에 불과했다. 이미 에서는 장자권을 소유하기에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후였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이 낳은 딸들을 보니 그렇게 아리따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인들을 각각 아내로 맞아들여 혼인하였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어차피 쓰러질 수밖에 없는 살덩이에 지나지 않으므로 내 숨결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영원히 함께 하도록 하지도 않을 것이다.(창 6:2-3)’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언약의 자손에게서 태어난 그것도 장자로서 태어난 에서가 노아시대의 세상사람처럼 행동을 한 것이다.
창 26:34 / 에서의 나이 40세가 되었을 때 헷 사람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35) 이삭과 리브가는 이러한 에서 때문에 걱정을 하였다.
결국 한 그릇의 음식을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영적인 축복인 장자의 신분을 팔아버린 ‘세속적인 사람’이었다. 에서가 배고픈 한 순간을 위해 영원한 것을 희생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한심한 거래를 되돌려 놓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 잠시 사건의 전말(顚末)을 보자. 어느날 야곱이 죽을 쑤고 있을 때 마침 에서가 돌아왔다. 사냥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는지 몹시 피곤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이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 팥죽을 끓이고 있었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에서는 아주 조급하게 팥죽을 달라고 말했다. 야곱은 기회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쌍둥이 형의 장자권을 가지고 싶어했다. 꾀가 많은 야곱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야곱은 장자권의 가치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으나 에서는 물질적 가치관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야곱은 굶주려있는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라고 하였다. 이에 에서는 ‘그 까짓거 아무것도 아닌 것, 장자권이 있다고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라고 생각하고는 ‘내가 배고파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하며 선뜻 ‘그러마!’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팥죽을 받아먹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에서는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고, 야곱은 이에 가득히 채워주었고 나중에는 더 먹으라고 권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에서의 문제는 무엇인가? 장자의 명분의 중요성을 외면하면서 당장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맛난 팥죽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현실에 빠져 버린 것이다. 장자의 명분을 버린 것이 지상최고의 실수요 인류 역사상 가장 뼈아픈 오판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이런 에서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고 에서의 행동이 흔한 사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영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적으로도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가 경제논리보다 소홀히 여김을 받고 있다. 경제 지표나 실물경제나 외환규모나 실업률, 경제정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가치가 도덕이나 윤리, 영적인 가치보다 앞설 때 나라는 붕괴하게 되어 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뺏겼고 결국은 야곱한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복이 넘어가고 말았다.
평상시에도 그러했지만 사소한 것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려야하는데 그런 은혜에 이르지도 못한 것이다.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사는 것만큼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에서는 후에 그 가치를 깨닫고 눈물로 간청하였으나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증언하였다.
에서가 배가 고플 때 고소한 팥죽 한 그릇의 유혹이 얼마나 마음을 흔들었을까? 육의 사람 에서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비슷한 유혹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이다. 생무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권이란 먼 훗날의 문제로 느껴졌을 것이다. 반면 팥죽은 당면한 현실문제였다. 그런 가운데 팥죽을 향해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것을 절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웁게도 장자권이 넘어가자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주시는 주셨던 축복의 약속도 넘어갔다. 하나님의 관심도 에서를 떠나 야곱에게 집중되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씩 하나씩 그에게서 멀어져갔고 장자권의 주인이 된 야곱의 생애는 부각되기 시작했다.
장자권의 가치를 경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유혹이 올 때 잘 절제한다. 영원을 바라보고 순간의 유혹을 이겨낸다. 진짜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에게도 현실의 쾌락을 미끼로 수없는 유혹의 손길이 뻗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굶주려 있는 에서를 유혹하는 팥죽 한 그릇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사단은 팥죽 한 그릇을 시장한 우리 앞에 흔들며 장자권과 바꾸자고 유혹한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처럼 ‘나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련다'라고 외쳐야 한다.
■ 700년경 한 무리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지금의 뉴욕에 속한 매해튼(Manhattan)섬 남부에 이주해왔습니다. 다시 맨해튼 섬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 외국인들에게 "여기는 우리의 땅이니 나가라"고 텃세를 부렸습니다. 오갈데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인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 땅을 자기들에게 팔라고 간곡히 애원했습니다. 인디언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섬은 별로 쓸모 없는 땅인데 저 백성들이 애처롭게도 목을 매는구나 이 기회에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아야지"이렇게 해서 흥정이 시작되고 얼마후 맨해튼 섬은 대서양을 건너온 네덜란드 사람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섬의 땅값으로 인디언들이 받은 것은 고작 양주 2병이었다고 합니다. 그 흥정이 있은 후 300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날 맨해튼은 세계의 중심지로 웅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 외교, 금융, 문화의 중심지로 「미국중의 미국」이 되었습니다. 그 옛날 양주 2병과 쓸모 없는(?)땅덩어리를 맞바꾼 인디언들이 오늘날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맨해튼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울까요?
■ 불란서의 파리를 여행하던 한 미국사람이 파리시내의 장신구점에서 한 중고품 호박목걸이를 샀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공항에서 이상하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스럽게 생각한 그 사람은 목거리를 들고 보석상에 가서 감정을 부탁하였습니다.
보석상 주인은 그 목걸이를 2만 5천불에 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더욱 권위있는 감정사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현미경으로 조사해 본 그 감정사는 '이 목걸이를 나에게 파신다면 3만5천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궁금증을 도저히 풀수 없었던 목걸이의 주인은 도대체 그 목걸이가 왜 그렇게 값이 나가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감정사는 그를 현미경앞으로 인도하고 ,' 자 이것을 보세요.' 그가 현미경을 들여자 보자 그 사람의 눈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프롬 나폴레온 보나파트 투 조세핀"(조세핀에게,나폴레온으로부터) 즉 나폴레옹 황제가 그 애인 조세핀에게 준 선물 목걸이 였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귀하고 값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 반면 이런 사람도 있다. - 1m 철학 - /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쏟아져나와 그 해를 ‘황금의 해’라고 불렀다. 어떤 청년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의 금광을 사서 열심히 채굴했지만 금이 나오질 않자 금광을 팔아치웠다. 그런데 새로 인수한 사람이 1m쯤 파고들어가자 노다지가 터져 나왔다. 금광을 판 청년은 여기서 황금보다 귀한 교훈을 얻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1m 철학’을 정립하고 모든 일에 임했다. 그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들어가 1m 철학을 실천했다. 고객을 대할 때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이때까지 기울인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험 가입을 성사시켰다. 1m 철학이 결국 그를 거부로 만들었다. 기도에도 1m 철학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러나 의외로 응답까지 1m를 남겨놓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끝까지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이다.
에서에게 있었던 쓴뿌리를 제거하고, 욥과 같이 야곱의 뒤를 잇는 신앙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은혜보다도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보다도 자신을 더 믿고 있는 사람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훨씬 크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놓아두고 작은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반면 믿음의 사람은 티끌같은 자신의 능력(시련이 끝난 욥이 자신을 티끌이라 표현)을 내려놓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욥 42:1-6 / [하나님께 꿇어 엎드리다] 그러자 욥이 여호와께 이렇게 아뢰었다. 2)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는 줄을 나는 잘 압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모든 일을 다 이루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3) 주께서는 말씀하셨지요. ‘알지도 못하면서 내 계획을 가리는 자 그 누구냐?’라고 말입니다.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깨닫지도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 댔습니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해댔습니다. 4) ‘주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듣고만 있으라’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질문하실 때 ‘대답해 보라’라고 말입니다. 5) 전에는 내가 소문으로만 주님에 대해서 들어 왔습니다만, 이제 이 두 눈으로 주님을 똑똑히 뵙고 있군요. 6) 이렇게 내가 꿇어 엎드립니다. 먼지바닥 위에 앉아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욥의 3친구에게 이러한 명령을 하셨다.
욥 42:7-9 / …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분노를 참을 수 없다. 너희는 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으나 내 종 욥은 얼마나 솔직하게 말하더냐? 8) 그러니 이제 너희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욥에게 가서 너희들을 위하여 번제를 올려라. 그래서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빌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이는 너희에게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너희는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9) 그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이전에 사단이 빼앗어 갔던 모든 것에 배로 복을 내려주셨다.
욥 42:10-17 / 욥이 세 친구들을 위하여 빌자, 여호와께서 그동안 욥이 말도 못하게 고생한 것을 돌아보시고 그가 전에 갖고 있던 재산보다 두배나 더 주셨다. 11) 그러자 욥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지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그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또한 욥을 위로하느라 각각 금조각과 금고리를 그에게 선물하였다. 12) 여호와께서는 욥이 여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가 어려움을 당하기 전보다 더 많은 복을 내려 주셨다. 그래서 그의 재산은 양이 1만 4천 마리, 약대가 1천 마리, 소가 1천 쌍, 나귀가 1천 마리나 되었다. 13) 또한 딸을 셋, 아들을 일곱이나 주셨다. 14) … 15) 온 땅에서 욥의 딸들만큼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없었다. … 16) 그 뒤 욥은 140년을 더 살면서 손자들과 증손자들을 보며 17) 천수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떴다.
하나님께서 배의 축복을 주셨는데, 욥의 건강도 완벽하게 해 주신 것이 아닐까?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도 엘리사 선지자 말대로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니 나병환자의 피부에서 어린아이의 피부같이 되었다면 욥의 건강은 아픈 흔적도 없이 100%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욥에게 주신 배의 축복이 이것뿐이었을까? 나는 ‘아니요’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욥이 영적으로 크게 성장했다면 이에 걸맞는 거룩한 마음과 더불어 하나님의 일을 활발하게 하는데 필요한 은사도 배로 주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배의 축복을 주셨다면 영력도 갑절로 주셨을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불러가시면서 엘리야 선지자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강력히 요구하지 않았는가?
왕하 2:9-11 / 그렇게 하여 요단강의 건너편에 이르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자네를 위하여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엘리사가 간청하였다. ‘선생님께서 예언자들에게 넘겨 주실 영력 가운데서 제게는 두 몫을 물려주셔서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님의 남은 사역을 수행하게 해주십시오!’ 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자네의 요구는 내 권한 밖의 일일세. 하지만 주께서 나를 데리고 올라가실 때(승천)에 그 광경을 자네에게 보여주신다면 아마도 자네의 요청대로 될 것이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네의 요청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네!’ 11) 그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말들이 끄는 불수레가 달려와서 그 둘 사이를 갈라놓으며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휘감아 하늘로 데려갔다.
▶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를 부르고 싶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신의 염려를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육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웃을 먼저 사랑함으로 육신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내가 되자.
나의 기도 / 하나님! 욥에게 주셨던 아름다운 신앙 –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교만했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게 하옵소서. 간구하옵나니 욥과 같은 믿음의 신앙으로 남은 생애를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영광중에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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