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여행을 하면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를 보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본 불상의 미소와는 느낌이 확 달랐다. 자료를 찾아보니 김원용의 「한국미의 탐구」에서 백제의 미소라 했다. ‘온화하고 고졸한 미소’와 ‘형식의 파격’은 다른 백제 문화유산보다 백제다움을 대표한다고 했다.
신라의 미소라 널리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도드라진 이마에 반듯하고 듬직한 코가 연결되며 가늘고 긴 눈과 입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자연스러운 표정에 생명력이 가득하며 잔잔한 미소다.
신라의 미소와 백제의 미소를 생각하며 경주 남산 탐방을 준비했다. 탐방로는 서남산의 삼릉에서 출발하여 금오봉을 거쳐 용장골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다. 복잡한 시간과 유월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오전 7시에 출발했다.
경주 남산은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의 남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 60여 개의 골짜기와 180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골짜기마다 많은 불교 유적이 남아있어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며 2000년에는 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하나로 등재되었다. 남산은 조상의 꿈이 서린 신화와 예술과 문화가 깃들어 있는 역사의 산이다.
삼릉은 세 개의 왕릉이 함께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아래부터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과 54대 경명왕의 무덤이다. 무려 700년 차이가 나는 왕들의 무덤이 한곳에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나는 왕릉보다 둘레솔에 눈길이 더 갔다. 세월이 가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소나무 숲과 다른 패턴이다.
금오봉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삼릉계곡 왼쪽 능선 위의 곳곳이 유적지며 부처다. 금오봉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가 부처가 될지도 모르겠다. 삼릉계 제1사지 탑재 및 석재가 있었다. 삼릉계는 삼릉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냉골로도 불린다. 석조여래입상은 머리가 없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삼릉계 제2사지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역시 머리가 없고 몸체만 있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은 삼릉계곡 큰 바위의 윗부분을 쪼아 새긴 관음보살입상이다. 작은 입 끝을 살짝 오므려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은 길고 통통하고 자비롭다. 등산로 좌측에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이 있다. 선각육존불은 삼릉계곡의 두 바위 면에 새겨진 여섯 분의 부처와 보살을 선으로 새긴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져 우리나라 선각 마애불을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자연 암벽에 음각의 선으로만 새긴 것이어서 조각이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깝다.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보니 희미하게나마 부처의 인자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등산로를 살짝 벗어나 보면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불상의 몸과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자세와 섬세한 조각 기법과 함께 품위 있는 미소가 보인다.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그늘을 만들면 널찍한 바위가 사람의 발걸음을 잡아 쉬어가게 한다. 사람이 쉬어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돌탑이 있다. 돌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있으리라. 나도 사연을 하나 더하려다 그만두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상선암에 도착해서 잠시 쉬었다. 상선암부터는 가파르고 돌이 많아 등산 기분이 든다. 바둑바위와 상사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서경주 들녘은 유월 하순의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불상 아래까지는 갈 수 없지만 능선에서 볼 수 있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다. 몸은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살피는 것 같다. 머리와 어깨까지는 입체감 있게 깊게 새겨 돋보이게 하고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겨져 있다.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금오봉에 도착하니 정상 표지석에 金鰲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남산의 모양이 금빛 자라 또는 금빛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산로는 용장골을 따라 용장마을로 정했다. 용장사곡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용장마을이 푸르름에 싸여 보였다. 삼층석탑 밑의 암벽에서 용연사지 마애여래좌상도 볼 수 있었다. 눈, 코와 입이 뚜렷하게 새겨진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보였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은 하대석이 직육면체인데 윗부분은 둥글고 그 위로 삼 층 대좌를 만들고 결가부좌인 불상을 안치하였다. 머리 부분이 없어져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보는 양식의 불상이었다. 유월의 장마철에 태양이 얼굴을 내밀자, 태양 주위에 둥글게 무지개가 생겨 머리 없는 불상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장면이라 사진에 담고 또 담았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운영되었던 남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로 추정된다.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서 「금오신화」를 집필했다. 설잠교를 지나 용잠마을에 도착해서 허기진 배를 얼큰이 소국밥으로 채우고 삼릉 공용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포석정에서 후백제 견원에게 잡혀 자결한 왕의 능인 경애왕릉에 들렀다. 신라 천 년의 역사가 물결처럼 밀려왔다.
미소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휴대폰에 있는 아내의 전화번호 이름이 ‘여보미소’이다.
남산의 마애불에는 이른 아침의 이슬 같은 미소, 오후의 태양과 함께하는 싱그러운 웃음, 석양이 남산골을 휘감을 때 보이는 편안한 미소가 있다. 마애불은 웃지 않고 걸어만 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미소는 내 마음에 있다고.
2024.6.28.(12)
첫댓글 스마일은 너무 좋은 겁니다. 늘 미소를 잃지 않는 다면 정말 좋은 일이 옵니다. 더욱 정진을 기대합니다.
경주 남산 탐방을 확실히 하셨군요. 경주 남산은 보물입니다.
남산은 찾아가고 올라가고 쉬어가기 좋은 산이지요 언제나 가도 포근한 엄마 품속 같은 인자한 산입니다. 더구나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곳, 얘기가 끝없이 솟구치는 곳이기도 하지요. 사랑스러운 우리의 쉼터입니다.
남산은 저도 1년에 한번쯤 가는곳인데 갈때마다 천년전 저 바위에 저렇게 부처님을 만들어낸 석공 또는 장인의 심정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남산 글 잘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조망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