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9월 17일(화) 이사야 31:1-3 찬송 495장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개역 개정)
- 애굽을 의지하는 자에 대한 저주 -
애굽을 의지하는 것 자체가 비신앙적 행위이며
또 애굽은 실제로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즉 애굽을 의지해서는 안될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30:1-7에서 언급한 바 있다.
오늘 말씀에서는 그렇게 타당한 이유를 들어
애굽을 의지하지 말 것을 권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권면을 듣지 않는 완악한 자들을 향하여 저주를 선포한다.
한편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은 애굽의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였다.(1절)
그들은 세계 모든 역사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께
달려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에 의지하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인본주의자들이다.
따라서 애굽이 절대 권능을 소유한 신이 아닌 유한한 사람이며,
그 말들은 영존할 수 있는 영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곧 소멸될 육체라는 사실(3절)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들을 의뢰한 자들은
마땅히 애굽과 그 말들의 멸망과 함께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들이 진정으로 의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주의 일을 감당치 못하며
인생이 주를 거역하거나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고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앙망하는 신앙을 견지해야 한다.(사55:8-9, 시62:1,5)
1절)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1절 후반부를 보면 ‘그들은 말을 ~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처럼 유다는 국가적인 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대신에 애굽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는 길을 택하였다.
그들의 생각에는 당면한 위기 앞에서 하나님보다는
애굽의 강한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당면한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하나님은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처럼 그들이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때문에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향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비록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이었지만
여호와께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늘 불안하였다.
특히 위기 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강한 것들을 더 의지하려고 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앗수르의 침공이라는 국가적인 대 위기 앞에서
유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애굽의 강한 병거나 말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어떤 강한 것을
의지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 것은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신뢰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평탄한 삶을 살 때에는 매주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가 닥치면
하나님은 제껴두고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려고 한다.
사실 큰 위기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대책없고 미련한 짓처럼 여겨진다.
가만히 있으면 망할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어떤 대책을 세우고 인간적인 방법을 써야 할 것 같다.
앗수르의 침공 위기 앞에서 하나님만 의뢰하고
잠잠히 기다린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포기하고
애굽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도 역시 그와 같이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시험이다.
사탄은 위기가 닥칠 때 끊임없이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하나님을 배신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찾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없는 것처럼 멸시하게 하고
하나님 아닌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시험의 순간 하나님을 배신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사탄이 제안하는 거짓된 방법, 죄악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면
그것은 극히 일시적이고 그야말로 거짓된 위안은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초래하고
우리 심령에 평안이 사라지고 삶에는 고통과 절망만 찾아오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패배자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위기가 중하면 중대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믿음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시험을 통과하고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도 확실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 보호하심, 붙드심, 복주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믿음과 확신은 또한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리 큰 위기가 닥친다 해도, 아니 위기가 중대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참 성도로 서야 한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4: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