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60) 조숭의 절명
조숭은 둘째 아들 조덕(曺德)과 함께 일가친척 사십여 명과 종자 백여명을 데리고, 가장집물을 실은 수레 백여 대를 뒤따르게 하고 아들인 조조가 있는 연주로 길을 떠났다.
이들이 지나는 곳의 서주 태수 도겸(陶謙)은 연로한데다가 최근에 악화된 해소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아들 도공의(陶公義)가 달려와 말한다.
"아버님, 조 씨(曺氏) 어르신이 오셨습니다."
"조 씨 어르신이라니?"
"조조의 부친인 조숭(曺崇)이 우리 서주를 지나, 연주의 조조에게로 간다고 합니다."
"그래? 그러면 당장 의장(衣裝)을 갖추고 주연을 준비해라. 그리고 왕궁(王宮)의 예(禮)로서 조숭을 영접해라. 아 ,아니... 내가 직접 나갈 것이다."
도겸이 기침을 거듭하며 쉰 목소리로 말을 하고 나서, 병석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도공의가 가까이 다가오며, 손을 내저으면서 만류한다.
"아버님 이런 몸으로 어찌 나가시겠다고 그러십니까? 소자가 대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도겸은 매우 못마땅 해 하면서도, 마지 못한 소리로,
"애야, 조조의 부친이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니 내가 어찌 직접 나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간 조조하고는 왕래도 없었으니, 그저 예(禮)만 갖추면 될 텐데, 왕궁의 예까지 갖춰야 합니까?"
아들은 병석의 아버지가 ,조조의 아버지 조숭의 등장으로 화들짝 놀라며 아픈 몸을 일으킨 데 대하여 일말의 의구심을 가지고 만류하였다.
그러자 도겸은,
"난들 좋아서 그러느냐?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게야... 아들아! 우리 서주는 아주 취약한 곳이다. 북쪽에는 원소, 동쪽에는 원술, 거기에다 조조까지... 이들은 모두 우리 서주를 노리고 있어... 더구나 우리는 군사력이 약해서, 어떤 제후에게도 밉보이면 안 된다. 알겠느냐?"
그러자 아들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는다.
"그들 모두가 서주를 노린다는 것을 아시면서 어찌 왕궁의 예를 갖추란 말씀입니까?"
"이런 쯔쯧...각 제후들 중에 조조의 군사력이 막강한 데다가 위치상으로도 조조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또 대업의 야심도 가장 왕성한 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없애려도 없앨 수가 없고, 이기려 해도 이길 수가 없는데 어쩌겠느냐, 그러니 이런 기회에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라도 우리의 우방으로 만들어야만, 비로서 우리 서주의 평화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병석에서 몸을 일으킨 도겸은 불편한 몸으로 아들에게 조목조목 말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아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조숭의 영접준비를 서두르기 위해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하여 서주 자사 도겸은 조숭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기에 이르렀고, 서주에서 이틀 동안이나 극진한 대접을 받는 사이에 조숭은 도겸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을 받으며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하자, 도겸은 부하 장수 장개(張開)에게 오백 명의 군사를 주어 연주까지 조숭을 정중히 호위해서 모시도록 하였다.
조숭이 가솔을 거느리고 길을 떠나 화비(華費)에 도달했을 때, 맑게 개었던 초가을 하늘이 별안간 어두워지며 큰 비가 쏟아졌다.
일행은 가까운 절간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어 가게 되었다.
큰 비를 만나는 통에 조숭을 호위하던 도겸의 병사들은 모두 옷을 흠뻑 적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을 피우고 삼삼오오 둘러 앉아, 옷을 입은 채로 말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느닺없이 불만을 터뜨렸다.
"우리는 본래 예전부터 황건적의 부하로서 멋대로 살았는데, 지금은 마지못해 도겸의 부하가 되기는 했지만, 그 알량한 돈만 받아가지고는 술 한잔도 맘대로 못 마시게 되지않았나? 이거야 원,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짓인지 모르겠어?"
하면서 일장 신세타령을 늘어 놓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그래!"?
"나도! "?
"내 생각도 그렇구먼!"
앞서 불만을 말한 자를 동조하는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를 지켜 보던 호위대장 장개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의 불만을 내가 잘 안다. 그러나 잘 들어 보아라, 우리는 황건당 출신으로 지금은 도겸에 의탁하여 밥을 얻어 먹고는 있지만 우리는 출신으로 인해 중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전쟁이 벌어지면 앞장서 나가서 죽을 일 외에는 앞날이 불확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심복 부하가 맞장구를 친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 끝장을 내자, 지금 바로 행동을 개시하여 조숭을 죽여 재물을 모조리 뺏고, 우리는 오봉산으로 숨어들어 산적노릇이나 하면서 신선처럼 살아보도록 하자, 알겠냐?"
장개는 자신의 생각을 부하들에게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러자 부하들은,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가자!"
"네!"
이들은 즉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조숭 일행이 자고 있는 숙소에 난입하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조조의 동생 조덕이 잠을 자다가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오며 소리를 지르자, 장개가 번개같이 달려들어목을 잘랐다.
그와 동시에 여기 저기서,
"앗!"
"으악!"
"사람 살려라!"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수없이 터져나왔다.
호위의 임무를 띠고 오던 군사가 졸지에 약탈의 폭도로 돌변해 버린 것이었다.
조숭은 측간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무참히 칼을 맞아 쓰러졌고, 일가 친척과 따르던 종자까지 백여 명이 넘던 일행이 씨알머리도 남김 없이 장개 일당에게 참살(慘殺)을 당했다.
이런가운데 호위의 임무를 띠고 갔던 장개의 부하중에 한 사람이 난동의 와중에 홀로 빠져나온 뒤, 서주로 달려와 지난 밤에 벌어진 참상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자 도공의가 아버지 도겸의 침소로 황급히 뛰어들며 아뢴다.
"아버님, 아버님! 큰일났습니다!"
도겸은 첩약을 먹다 말고 물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
"아버님, 조숭 어르신께서 우리가 호위로 붙여 준 장개에게 살해당하셨습니다!"
"뭐라고?"
도겸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러자 자세한 소식을 가져온 자가 도겸앞에 무릅을 꿇고 손을 모으며 말한다.
"조숭 어르신께서 연주에 도착하시기 하루 전에 장개, 그 도둑놈이 재물에 눈이 멀어, 밤새 부하들과 함께 조숭 어르신을 비롯해 그 일족을 모두 살해하고 가진 재물을 약탈하여 도망을 쳤사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아!..."
도겸은 놀라운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뒤로 자빠졌다.
"아버님!...."
화들짝 놀란 도공의가 황급히 달려와서 넘어지는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버님! 정신차리세요!"
그러자 도겸은 이즈러진 눈을 간신히 뜨며 탄식하며 울부짖었다.
"끝이다 끝이야! 모든 게 끝장나고 말았구나! 으흐흑! ...."
"진정하세요 아버님!"
"아이고, 내 탓이다. 내 탓이야!.. 내가 눈이 멀었구나! 장개 그놈이 도둑의 잔당이란 것을 잊었구나! 아, 아, 아이고! .. 난 그저 조조와 잘 지낼 생각이었는데, 이리 될 줄을 어찌알았겠느냐! 이제는 큰 화를 부르게 생겼구나, 아흐흑!....세상에, 서주는 이제 끝장이다, 끝장이야!"
도겸은 실성한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외쳐댔다.
"아버님, 어르신의 죽음은 장개란 놈의 탓입니다. 우리는 그저 사람을 잘못 쓴 것 뿐입니다. 소자의 생각에는 무엇보다 장개의 뒤를 쫓아, 놈의 목을 베어 오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장개의 목을 가지고 연주로 가서 조조를 만나 앞뒤의 사정을 설명하고 사죄하는겁니다. 그리고 아버님, 연주라면 군량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진 수십 만석의 군량으로 배상을 하면 잘 해결 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도공의는 이렇게, 실망과 불안에 잠긴 아버지를 위로하였다.
그러자 도겸은 아들의 말이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말한다.
"이이휴~...! 너는 이런말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내가 천하를 배신 할 지언정, 천하가 나를 배신할 수는 없다!> "
"누, 누가 한 말입니까?"
"조조!" ...
도겸은 말을 마치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자 아들은 놀란 두 눈을 크게 뜨고, 할 말을 잊고 아버지만 쳐다 본다.
"이제야 조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냐? 애야, 우리 서주에는 큰 재앙이 닥친거다! 아흐흑!..."
도겸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아버님, 그러면 어찌해야 하옵니까?... 아버님, 말씀 해 주십시오."
도공의는 아버지가 무엇이라도 시키면 그대로 할 듯이 조르면서 결행할 의지를 보였다.
도겸은 결연한 어조로 다시 아들에게 말한다.
"명을 전해라! 서주의 모든 군마들은 속히 전투에 대비하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도공의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가려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잠깐만, 조조가 서주로 공세를 취해오면 우리 서주군 전력만으로는 절대 조조군을 막아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서신을 몇 장 써 줄 테니, 너는 그걸 가지고 밤새 말을 달려, 기주에 있는 원소와 남양에 원술, 평원에 공손찬을 찾아 가거라. 거리상으로는 닷새안으로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속히 원군을 청하거라."
"하지만 아버님, 그들은 모두가 서주를 노리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모두 서주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서주가 조조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않겠지. 일단 우리 서주가 조조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중원을 제패한 셈이 되니, 그들에게는 이로울 것이 없다. 가서 전해라. 그 누구든지 조조군을 퇴각시키고 전쟁을 종료시킨다면 나, 도겸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해 마다 20만 석의 곡식을 바친다고 말이야...."
병들어 지치고 긴박한 가운데서도 도겸은 아들에게 손가락 두개를 펼쳐보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공의는 밖으로 나와 군사들에게 전쟁준비를 시키고, 자신은 아버지의 서한을 받아가지고 기주를 비롯한 남양과 평원을 다녀오기 위하여, 질풍같이 말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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