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부자네
박춘희
“엄마! 야는 누구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담임 선생님 주선으로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던 산부인과 병원에 취직하여, 낮에는 병원에서 일하고 저녁에 야간 중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설 명절을 맞아 처음 집에 왔을 때, 방안에 들어와 아랫목에 덮인 이불을 들춰보고 깜짝 놀라서 엄마에게 물은 것이다. “네 동생이다.” 엄마는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있는 자식도 공부를 못 시키는데 대책 없이 또 아만 놓으면 우짤라 카능교, 제발 인제 동생 좀 그만 낳아요.” 언니는 한숨을 쉬면서 엄마에게 애청했다.
그 이후 또 한 번 임신을 한 엄마는 언니의 주선으로 그 산부인과 병원에서 중절 수술을 받은 후 출산을 끝냈고, 우리 집은 여섯 남매 중 딸 다섯인 딸 부자가 되었다.
동생이 또 생겼다는 사실에 언니가 질겁을 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사과밭에 가서 일하느라 바쁜 엄마 대신 맏이인 언니와 둘째인 내가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고 싶은데 동생들 때문에 제약이 많았으니 우리에게 동생이란 귀여우면서도 성가신 존재였다.
동생을 천으로 만든 포대기로 업고 있으면 오줌을 싸서 등이 뜨뜻해지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일하는 과수원 새참 시간에 아기를 업고 가면, 엄마는 새참으로 나온 건빵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동생에게 젖을 먹였다.
엄마도 배가 고팠을 텐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먹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형제가 몇 명인지 가구 조사를 할 때 가장 부러운 친구는 무남독녀로 형제가 없는 아이였다.
“나는 결혼하면 아이는 절대 많이 낳지 않고 딱 한 명만 낳을 거야.”
언니는 수시로 나에게 말했다.
3대 독자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뜻대로 내 남동생 외에 아들 하나를 더 낳고 싶어 했으나 매번 실패하여 딸만 셋을 더 낳은 엄마는 아들만 셋을 낳은 막내 고모를 몹시 부러워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듯이,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 대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도 없던 엄마 혼자서 여섯 명의 자식을 건사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위로부터 세 명은 일찍부터 객지로 나와서 돈을 벌어 엄마를 도와 가계에 보탬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먹을 것도 부족하고 입을 것도 부족하고 뭐든지 나누어야 해서 형제가 많은 것이 싫었고, 대책 없이 자식만 많이 낳은 부모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위로해주고 도움을 줄 때, 엄마가 나이 들어 보살핌이 필요해 졌을 때, 형제가 많아서 좋은 점을 경험하게 되었다.
엄마가 혼자 지내기 힘들어졌을 때부터 딸들이 돌아가면서 엄마를 모시고 산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당번을 정해 번갈아 가며 간병을 하니 간병인을 따로 쓸 필요가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넷째 딸은 수시로 엄마를 모시고 해외와 국내 여행을 모시고 다니고, 미용실을 하는 셋째 딸은 엄마 전용 미용사여서 지금도 딸 미용실에 자주 가신다.
외동아들이 딸만 둘을 낳자 대가 끊겼다고 걱정하던 엄마도 이제는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지 않는다.
아들만 있는 고모보다 딸 부자인 엄마의 노년이 덜 외롭고 평안하다.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다. 같은 부모의 유전자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모도 성격도 가치관도 각자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갈등, 경쟁, 다툼, 질투, 화해, 라는 과정들을 거치며 서로 양보, 타협, 배려하고 책임감을 가지는 사회생활의 기본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 닮아가는 동생들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대화도 많이 하니 서로의 외로움을 덜 수 있다.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쌓인 연대(連帶)와 공감(共感)이 우리를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것이다.
요즘은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는 부모의 뜻에 따라 왕자, 공주님으로 홀로 자란 어린이가 많다.
이왕이면 딸 하나만 낳고 싶다는 우리 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부모가 힘들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형제가 있으면 좋지 않겠냐고 은근한 권유를 하고 있다.
(2026. 5. 30)
첫댓글 딸부자 부럽네요.
선생님의 어머니께선 아들만 둔 고모님보다는 지금은 훨씬 꽃길만 걸으시네요. 형제애가 보기 좋아요 .
형제들은 자랄 때는 힘들지만 다 커고 나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형제 간에 우애가 좋아 보입니다.
우리 누나도 막내를 임신하여 배가 부른 어머니한테 왜 아이를 낳느냐고 타박하던 날이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