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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말씀(2019.7.21.) 말씀/ 고린도 전서 1장 18 십자가의 비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지난 주 김효주 선교사님 말씀 드렸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블라디보스톡과 우스리스크를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박 2일 이지만 정말 알차게 유익하게 시간을 보낸 여행 이었습니다. 누군가 말했지만 여행은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깨는 것이라는 말임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영행을 통해 받은 은혜를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트래킹의 백미로서 루스키아 섬은 정말 환상적 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루스키아의 끝 북한섬 마지막 절벽 끝에서 우리는 누군가 세운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늘 가는 길’ 이라는 큰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칠 수 없어서 예수님이 이미 지신 그 십자가를 한 사람씩 져봄으로 은혜를 새기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돌아와서 영행 배경으로 여섯 편의 글을 써서 올리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임재범 집사님이 그 십자가를 보고 저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끊어진 길 , 그 절벽에 십자가가 놓인 것이 아름다운 비경보다 더 백미입니다. 그 보다 더 완전한 사랑이 있을까요? 없죠.” “언제 한번 가보세요” “모든 장벽과 단절을 넘어선 그 분의 놀라운 사랑은 가히 이 세상 것과는 비교불가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십자가를 보면서 찍은 사진에 아름다운 미소와 행복함이 묻어나오던데 어떤 의미 인가요?” 사실 저도 그 점을 깊이 생간은 하지 못했습니다. 행언 목사님 십자가 앉고 웃는 것이 좀 경건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사진을 올렸는데... 임 재범 집사는 오히려 큰 감동과 은혜로 받아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 때 제마음속에 즉시 답이 나왔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자체는 고통이요 아픔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십자가는 나음과 치유와 자유와 평안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금욕하고 인상 쓰며 괴로원 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 아하, 베리굿 잘 가르쳐줘서 감사 합니다.“ 이제 웃으면 사세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기쁨으로 사세요. 믿음의 사람들은 즐겁게 기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그 이유입니다. 그 카톡을 한 후 다시 십자가 사진만 모아서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여러분, 왜 십자가가 비밀인가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멸시와 치욕의 상징입니다. 로마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죄를 지었을 때 사형당하는 사형틀 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형벌입니다. 강도 살인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예수님도 강도모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당신 유대인들은 이 십자가를 조롱하였고 침 뱉었습니다. 이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실패한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자가 어찌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있는가? 그들은 의문을 던지며 너 자신을 구원하라고 저주하였습니다. 제자들도 처음에 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보고 모두가 고향으로 낙향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 1장 18절에서 바울은 십자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 합니다.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영적으로 닫히면 미련한 것이요 열리면 구원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비밀 인 것입니다. 오직 이 비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열려있는 축복의 십자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이 비밀은 누구에게나 믿음으로 열립니다. 열린 십자가는 구원이고, 자유이고, 평안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이 비참한 끝이고 그 다음은 낭 떨어지기 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하늘 아버지께로 가는 새롭고 산 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평안이고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날 우리는 우스리스크에서 독립군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이러시아 변방에 이런 독립군의 발자취가 있는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막상 기념관과 기념비를 둘러보며 사연을 읽어가다 보니 숙연해졌습니다. 이들은 일제 치하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쓰고,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들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고국에서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죽어서도 이 낯선 이국 땅에 묻혀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을 읽으며 이런 분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무역교역국가 10위에 이르고 국민 소득 3만불 시대에 이르게 된 것이 누구 때문 이겠습니니까? 이런 분들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들의 공적을 기년 보존하고, 또 후손들이라도 잘 대우해주어야 하는 게 그렇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약하다 우스리스크에서 서거한 이상설 선생, 독립전쟁의 전설적 영웅 홍범도 장군,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민족 영웅 안중군의사, 13도의군 도 총재 유암 류인석, 그리고 최재형! 저 역시도 여기서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동안 독립 운동을 한 그 후손들은 발 붙일 곳이 없이 냉대를 받으며 거지처럼 살아왔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아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 서민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해방 후 전쟁이 일어났고, 남북이 갈라져 국가를 세울 때...남쪽은 일제 잔제를 청산하지 않고 그대로 정치, 경찰 치안 교육 등 모든 지도부에 대부분이 친일파들이 기득권 세력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그 것은 남북이 갈라진 상황에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서 차라리 일제 청산보다 경험 있는 그들을 쓰는 것이 낫겠다는 신리적인 편리성 때문 이었습니다. 그 점에 미국이나 이승만 정권이 일치를 본 것입니다. 친일파가 누구 입니까? 일제에 붙어서 실리를 채우며 민족을 잡이들이고 고발하고 죽인자들 입니다. 한 마디로 매국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해방 후 계속 정치를 하고 민족의 교육을 담당했으니 일본과 싸우며 독립 운동하던 자들과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에서는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만일 그들을 살리고 역사를 세운다면 그 것은 곧 자신들의 치부를 들어내고 스스로 죽는 일이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이러니한 잘 못된 역사가 방공 이데오로기에 가려지고, 경제 성장에 가려져 70년을 내려온 것입니다. 정치권을 보면 그 잔재가 지금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최재형 이분을 저는 거기서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이분은 노비 출신으로서 자수성가하여 이곳 연해주에서 큰 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명 같은 그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붓고 후세 교육에 투자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숨은 공로자요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동의회 조직도 사진을 보니 안중군 의사도 그 아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분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당하여 다수의 군인들이러시아령으로 넘어오자, 의병·군자금 모집에 나섰고,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과 함께 독립군600명을 훈련시킨 다음,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여 함경북도 경원의 신아산, 회령 영산에서 일본수비대를 궤멸시켰습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러시아령 노우키예프스크로이주하여 귀화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해군소위로 경무관 부속 통역관이 되어 활동했습니다.1910년 <해조신문>을 인수하여 <대동공보>로개칭·재간행했고, 노우키예프스크에 한인중학교를설립했으며, 권업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일했습니다. 1920년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에 대해 재러 한인 독립군부대를 총집결하고 사단장이 되어 러시아 적군과 함께 치열한 시가전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죽었습니다. 이제라도 죄송한 마음으로 순국선혈들을 잊고 살아왔음을 회개하고 감사의 마음을 올렸습니다. "당신이 있어 오늘 내가 있습니다.""당신들이 있어 지금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일본과 경제 침략을 인한 전쟁을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반듯이 이겨야하고 강국이 되어야 하고 부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부로 얕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부끄러워도 진실이 역사의 정신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패가 척결되고 대접 받을 자들이 제대로 대접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5:24절은 이렇게 말 합니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마지막날 찾아보고 은혜 받은 곳이 러시아 문호 푸시킨 동상입니다. 우수리스크에 푸시킨 동상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꼭 찾아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네 명이 묻고 물어서 찾았습니다. 우선 푸시킨의 폼을 잡고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이 푸시킨의 대표적인 시가 있는데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현재는 한 없이 우울한 것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고절망의 날 참고 견디면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마음은 미래에 살고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모든 것은 한 순간 사라지지만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내용을 보면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노하거나 서러워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 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유명해졌습니까? 유시민씨가 이 시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한 러시아 대사가 이 시를 가지고 인용하면서 인사를 했는데 그는 이 시가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대표작인 아닌데도 한국에서 애송되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답니다. 특별히 정치적 역사적 배경이 있는 작품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 시는 1925년 그가 어머니 영지에 가 있었을 때에 이웃 마을 지주의 딸의 앨범 적어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유독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 밑바닥에 잔잔히 파고드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 누군가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삶이 노엽고 슬펐던 조선 민중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부터 계속 전해 내려오는 애송시가 된 것입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을 하는 짓을 보면 정말 분노가 일어나려 합니다. 독립군들이 러시아까지 와서 나라를 위해 싸운 것도 일본 때문인데, 지금도 반성을 하지 않고 못된 짓하는 이들을 보면서 노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무튼 위로가 되는 시입니다. 참고 견디면 반드시 기쁨의 날이 온다고 합니다. 현재는 슬퍼도 순간이며 지나갈 것이며 미래가 되면 지난 과거도 소중하고 그리운 것이 된다고 한다. 누가 동영상을 보내서 보았는데 이번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서 한국 기술대학 교수 김광석 교수 는 아베에 대해서 고마워 하야한다고 합니다. 경제 식민지에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삶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잘 참아서 일제 36년도 극복하고 해방을 맞았습니다. 6.25 페허에서 잘 참고 일어났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경제 전쟁에서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삶이 나를 속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이미 십자가에 승리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슬프고 아프고 버림받은 그 십자가가 당장에는 피하고 싶었던 쓴 잔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죽음 앞에서 조차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 날마다 죽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푸시킨의 시가 아니더라도 승리의 십자가 그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블라디보스톡 우스리스크의 여행은 아주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김표주 선교사님 이 십자가로 우스리스크 선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한주간도 십자가의 비밀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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